[독서일기] 오늘도 여전히 기적이다
2014년 12월 22일
오늘 하루를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여러 번 그 생각을 했고, 언제나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 것이고, 내일 또한 오늘처럼 평범하게 살 것이다. 하루하루가 기적이 아니던가. 그곳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부당해 보인다. 그렇다, 오늘은 기적의 시간이다. 난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만약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에 큰 의미를 부여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면, 밥 먹는 것도 아까울 것이고, 따뜻한 커피숍 구석에 숨어 책 읽는 재미도 누리지 못할 것이고,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에 독서일기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난 특별한 마지막이 아닌 평범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 특별함은 사소함의 발견이지 특별한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도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래서 천생연분인가?
삼일후면 성탄절이다. 그동안 함께 ㅂ교회를 섬기던 ㅊ목사님이 임지를 옮겼다. 2주 전에 사임하고 지난주에 사직동에 있는 ㄷ교회로 부임했다. 이사를 마치고 쉬는 월요일이라 찾아 가기로 했다. 두어 시간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지나온 삶의 여정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달라 보이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공통분모는 있기 마련이다. 삶은 공통분모와 분자를 공유하며 사는 것이 아니던가. 같음과 다름을 이해하며 한 존재로서 서로 잇대어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멈추는 순간 존재가 사라진다. 공유는 함께해야 가능하고, 합의는 타자로서의 상대를 인정할 때 시작된다. 2년 동안 같이 사역을 하면서 처음 느낀 것은 '다름' 이었고, 2년이 끝나갈 즈음 알게 된 것은 '같음'이었다. 처음 만나면 다름이 커 보이지만, 살아가다보면 같음도 많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아름다운 관계이다. 한 참을 담소를 나누다 나중을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하나님게서 ㅊ목사님의 사역에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기독교 서점으로 향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평시보다 4배가 넘는 사람들이 서점을 채우고 있었다. 기독교 서점은 연말연시와 여름행사 시즌에 손님이 많다. 서점에 사람이 꽉 차 있으니 흐뭇하고 행복했다. 늘 사람들이 많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2015년도 중고등부 공과를 주문했다. 아내와 나는 다시 책장 앞에서 한 참을 서성였다. 내가 책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꽂으니 아내가 그런다. "배 사례 받았으니 사세요. 이럴 때 사지 언제 사겠어요!" 아내가 참 고맙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다. 카드빚이 네 자리 숫자로 늘었으니 아내의 말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다. 아내도 분명 채무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고 있으나 책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무모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 속내를 아는 지라 망설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의 손에는 책이 잔뜩 들려 있다. 그렇게 상당한 액수의 책을 사고야 말았다. 지난주에 5만 원 정도의 책을 산 것 외에 몇 달 동안 거의 책을 사지 않았다. 책 갈증에 빠진 나를 위해 아내는 기꺼이 카드를 내밀었다.
이번에 구입한 책은 두께가 상당하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
마틴 루터의 <탁상담화>
리차드 백스터의 <참된 목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레이먼드 딜라드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성경 읽기>
김태현의 <내가 사랑하는 수업>
탁상담화와 하나님이 도성만 합해도 55,000원이다. 이 책들은 그동안 침만 꿀꺽 삼킨 책들이다. 반드시 읽어야할 중요한 책이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뤄왔던 책들이다. 덕분에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두 번이나 읽었으니 그것으로 위로 삼았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로마의 멸망 후 교회에 던져진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로마(당시 기독교 국가)가 어떻게 망할 수 있단 말인가? 의 답이다. 하박국과 에스겔도 동일한 질문 앞에서 고민하지 않았던가. 이 질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1200년 후 마틴 루터에 의해 다시 <두 왕국론>으로 재현된다. 최초의 역사철학서라는 별명을 가진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종말론적 역사관을 견지하면서도 아직 도래하지 않는 참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라는 내용이다. 오스카 쿨만이 <그리스와 시간>을 쓰기 수백 년 전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있었다. 데이비드 노우리스의 해제가 앞부분에 있으니 먼저 읽고 가야 한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만 제대로 읽어도 다른 책 1000권을 읽어도 알 수 없는 지혜와 역사관을 얻게 되지 않을까.
루터의 <탁상담화>는 종교개혁의 핵심 이슈들을 다룬다. 분절된 루터의 단문들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편하게 읽어도 된다. 리차드 백스터의 <참된 목자>는 목사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교사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한 영혼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할지,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가르쳐야 할지를 잘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지만 그 감동은 여전하다. 이전 책을 분실해 새로운 번역판으로 다시 구입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엮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역시 목회자들의 필독서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위이기도 했던 브레이너드는 전도 열정에 사로잡힌 젊은 청년이다. 하루하루 자신의 영혼 상태와 전도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적은 일기다. 아직 미국이 독립하기 전의 상황인데, 일기를 읽다보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초기에 아메리카는 인디언들과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그들의 후예들은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두 권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필독도서이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특히 리차드 백스터의 <참된 목자>(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되었다. 생명의말씀사는 <참목자상>이란 제목을 붙였다.)는 목회 현장에스 쓸수 있는 팁도 많고, 목사의 사명의 무엇인지 진정성 있게 들려준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성경 읽기>의 저자는 레이먼드 딜라드이다. 웨스트민스터 교수였다는 그는 1993년 갑자기 임종했다. 그는 그곳에서 문학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려는 시도를 했다. 보수주의 신학교에서 시행된 그의 성경독법은 상당해 유용했다. 원 제목은 'Faith in the Face of Apostasy'인데 왜 한글 제목을 그렇게 정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열왕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들의 배교의 모습을 그려준다. 김태현의 <내가 사랑하는 수업>은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을 들여다보는 순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페이스북에서도 친구에 있기에 종종 그분의 소식을 받아 보지만, 책이 그런 내용인지는 서점에서 살펴보고 나서야 알았다. 일반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귀한 책이다. 이 책은 후에 다시 서평을 올린 생각이다.
총회 구역공과 책도 구입했다. 가격이 고작 3,000원이다. 그림도 없고 몇 개의 질문으로 구역원들이 모여 나눔을 할 수 있게 한 책이다. 52주로 되어 있다. 아이들의 신앙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구입한 책이다. 작년에 제자훈련원에서 나온 책으로 나눔을 하다 두 달 만에 그만 두었다. 책이 너무 어렵고 길었다. 절반씩만 해도 1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도 쉽지 않은 공과였다. 결국 그대로 방치하게 되었고, 아이들도 오히려 좋아했다. 한 가족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없다. 여러 책을 찾다가 결국 구역공과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가능하다면 매주 공부할 내용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움직이고 있으며, 한 사람의 사소한 일상의 겹들이 함께 공유됨으로 우리가 되고, 사회가 되고, 공동체가 된다. 일상 속에 두 도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리될 수도, 할 수도 없다. 신앙으로 플로톤 주의자이지만, 삶은 언제나 아리스토주의자이다. 작은 모래 한 알을 통해 우주를 통찰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듯, 오늘도 여전히 기적이라 믿는다.
첫댓글 팍팍 도전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ㅎㅎ
하나님의 도성은 저도 고민만 하고 쉽게 사지 못하는 책인데, 지름신이 강력하게 임하길 기도해야겠네요 ㅎㅎㅎ
아멘! 저도 십년을 참다 어제 구입했습니다.
자극이 되네요~~! 하나님의
도성이
제일 눈에 띄네요. 글고 식탁담화^^
저도 그 두 책이 가장 뿌듯합니다.
손에 모터 달렸어요? 글 계속 꾸준히 올려주세요. 도전됩니다^^
거북이 모터에요!
도전받고 갑니다.목사님! 읽을 책이 너무 많네요.ㅎㅎ 하나님의 도성^^ 저도 그 의미를 아는 날 오겠죠..자극주심에 감사요^초보 평신도 올림...
저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읽을 뿐이죠. 도전 받았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