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세상이 바뀌는 격동의
시간 속에서 전국의 명산을 누볐다. 한탄강, 소백산, 내변산, 비슬산, 지리산
바래봉, 내린천/자작나무숲,
도명산/화양구곡, 금수산, 설악산 서북능선, 청량산… 어느
곳을 돌아봐도 수려한 경관이었고 친구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전에 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던 해를 마감하는 송년산행은 양주 불곡산으로 간다. 대부분이 정기산행이 지방의 산이었다면 이번에는 서울의 근교산을 찾는 것이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들의 얼굴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같은 완숙함을 느낀다.
사당과 서초, 복정에서 스무 명의 산우들을 실은 동진관광이 북쪽으로 달린다. 차가운
날씨에 이동하는 차량이 적고 이른 시간 양주시청 앞마당에 닿았다. 차에서 내리자 산중턱에 드문드문 눈이
쌓였고 공기가 시원하다. 입구에서 지나가는 산객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한다.
불곡산은 경기도 양주의 산이고 양주는 경기북부의 가운데 자리한 인구 18만명의 도시다.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과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 파주, 북쪽으로 연천, 동쪽으로 동두천, 포천, 의정부시와 이웃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와 각축전을 벌이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영등포가 서울의 한강 이남을 통칭하는 곳이었다가 여러 개 구로 분리 되었듯이, 양주는 서울의 북동부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가 동두천시, 의정부시, 남양주로 나뉘었다. 2003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홍길동, 홍경래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의적 중 한명인 임꺽정이 태어난 곳이고 그의 생가터가 불곡산 기슭에 남아있다. 불곡산은 임꺽정의 놀이터였다.
오늘의 코스는 양주시청 – 상봉(471m) – 상투봉
– 임꺽정봉 – 대교아파트 로 총 5.5km, 4시간을예상한다.
산허리에서 눈밭을 만난다. 서둘러 아이젠을 착용한다.
불곡산은 바위산이다. 유명한
악어바위를 비롯해서 펭귄바위, 생쥐바위, 물개바위, 코끼리바위,공기돌바위, 복주머니바위
등등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볼거리이다.
높지 않은 산이면서도 경사가 심하고 곳곳에서 철봉에 매달리고 계단과 로프에 의지해야하는 험한 암릉길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먼지 하나 없이 쾌청한 날씨에 시계가 좋다. 월출산처럼 평지에 솟은 산이라 전망이
탁 트였다. 멀리 북한산이 보이고 도봉산의 봉우리들과 포대능선이 보인다. 감악산이 보인다. 태조 이성계의 꿈이 서린 회암사지를 안고 천보산이
서있다.
가슴을 활짝 열고 크게 호흡해본다. 짙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 있고 서늘한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 했는데 우리는 양주벌에 우뚝 솟은 이 산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작은 소나무가
바위에 뿌리 박고 서있다. 칼바람 속에서 몸속에서 화학물질을 흘려내여 바위를 녹이면서 뿌리가 파고든다는데
그 자연의 이치가 오묘하다. 헐벗은 민초를 위해 일어난 임꺽정의 혼백이 서려있어서일까. 소나무는 작지만 옹골지다.
규철이 오늘도 원숭이 신공을 선보인다. 5미터는 족히 넘을 나무에 가느다란 가지를 타고 오른다. 그 끝에 난 겨우살이를 보았다. 밑에서는 친구들이 신기,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본인은 거침이 없다. 몸이 저렇게 부드울 수 있을까.
불곡산 바위 중
으뜸인 악어바위 앞에 섰다. 겨울 햇살이 역광으로 비추어 악어 등가죽의 디테일은 살릴 재간이 없었으나
그 모습이 너무도 흡사하다. 열대동물인 악어는 왜 먼 곳까지 와서 불곡산 정상을 향해 오늘도 기어가고
있는 것일까. 수미산을 향해 끝없는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계속하는 티벳의 수행자 처럼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것일까. 불곡산의 다른 이름이 불국산(佛國山)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억측은 아닌 듯 하다.
하산을 하고 우리의
버스는 오늘의 회식장소인 종재의 식당, ‘밥이 술술’로 향한다.
반갑게 맞아주는
종재, 못보던 사이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식당엔 50석 정도의 홀과 넓은 별실이 있다. 이번에 기아그룹에 합격했다는
예쁜 딸이 달려와 일손을 돕고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큰 냄비에 약간 데친 석화가 가득 담겨 나온다. 위 뚜껑을 열고 꿀같이 단 굴을 입에 넣는다. 짭조름한 바다의 맛이 허기진 목을 타고 넘는다. 이어 서대찜이 나온다. 막걸리를 나누고 건배를 한다.
최대장이 인사를
한다. 올해도 12번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모두의 협조에 감사한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동참하기 바란다. 2월 한라산 산행에 대한 준비를 하자.
우리도 최대장께 추웅서엉!
매너남 젠틀가이 금표가 사회를 보며 후미대장을 소개했다. 우리 산악회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등산가들이 대열의 제일 뒤에서 묵묵히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 두 분 덕에 선두는 앞으로 가는 것이고 안전사고 없이 산행을 마치는 것이다. Unsung heroes 소리없는 영웅들, 두 친구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금표가 영환의 장군 진급을 건의한다.
'등산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우정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명 건배사를 했던 영환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본인의 소회를 밝힌다.
저는 진급할 의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시켜주신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환호, 박수, 만장일치로
영환은 오늘 별을 달았다. ★ 김 장군 만세!
두식이 만식에게서
총무의 대권을 이어 받았다. 계산을 잘못해서 어려울 거라는 친구들의 놀림에 분연히 일어선다. 내가 할 뜻은 없었으나 여러분이 나를 그렇게 알았다 하니 내가 한번 보여 드려야겠다. 짝짝짝! 항상 열정이 넘치는 두식 총무의 큰 활약을 기대한다.
외국의 산에도
도전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작년에 백두산을 제안했다가 참가자가 너무 소수라 실망했던 최대장이다. 필자가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을 때도 한국에서 온 60대 등산
그룹을 만났다. 그동안 바빠서 엄두를 못 냈지만 정년을 맞이하고 시간 여유들이 생기면 외국이라고 못
갈 것은 무엇인가. 가까운 일본 산들부터 시작하여 히말라야, 알프스, 로키, 안데스의 산들에 거침없이 도전해보자.
종재의 메인 메뉴인 오리탕이 나왔다. 광주 영미오리탕 스타일인데 그보다
맛있다.
오고 가는 막걸리 잔에 년말 인사를 얹어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종재네의 환송을
받으며 차가 출발하려는데 최대장이 머프를 두고왔다며 황급히 다시 식당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보니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을 잊고 있었다. 최대장이 몸개그에 모두 한바탕 웃으며 우리의 송년산행도 끝났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흐름에 대한 체감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이 있다. 세월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그때그때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며 알차게 사는 것이다. 대나무에 적당한 간격으로 마디가 있어서 더 강해질 수 있듯이,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건강을 다지는 산행이 우리를 젊고 강하게 만들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이륙산악회 산우들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함께한 친구들)
최성원, 김두식, 정강훈, 김유성, 최만수, 박규철, 박동석, 최세종, 김영환, 최금표, 김위영, 김영량, 김태환, 김호열, 노만식, 김영록, 안재붕, 박주형, 박승렬, 고승훈 (20명)
첫댓글 참 재미있게 읽었다. 술 먹으면서 했던 얘기들을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는가? 녹음을 하지 않았다면 두식이가 암산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듯, 기억력이 특별한가봐.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데 후기를 읽으니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2017년 마지막 송년 산행에 참가를 못한게 못내 아쉬웠는데, 승훈대사의 후기를 접하니 똑같이 산행한 것처럼 생생하게 그날의 행적이 가슴에 와닿구만! 역시 내공의 힘인가 승훈대사의 필담은 자연스럽고 그날의 산행을 그림 그리듯이 펼쳐놓으니 동참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에 너무 충분한 산행기구만! 역쉬 고승은 프로여!
바닷가(임재기)
역시 고승답다!
최대장 말대로 그날 보고 들었던 야그를 죄다 수록한 걸 보면 내공이 엿보인다.
예전 불곡산을 올랐을 땐 산행 초보인 나는 악어바위는 물론 기암괴석을 기억해낼 수가 없다.
이번엔 색다른 산행처럼 느껴지고, 보다 많은 불곡산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좋았다. 여지껏 그냥 종재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이번을 포함하여 3번 했다는 것, 그리고 정이 듬뿍 담긴 맛있는 고기와 반찬이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는데 ^^~~
고독을 즐기며 해외여행과 해외 산행을 한 우리의 고승의 후기는 일품~수고하셨어^^~~
황송합니다. 바로바로 올려서 산행의 여운을 즐겨야 하는데 해를 넘겼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일마다 좋은 일
사람마다 좋은 사람
고승의 글은 시원한 폭포수처럼 매끄럽고 군데기가 없이 깔끔하다. 역시 고수다운 경지에 오른 필력이다. 올 해 송년 산행은 의미가 있다. 종재 집에서 송년 모임을 가져 종재를 격려해 주는 것도 이륙회답고 영환 산우에게 Star를 달아 준 것도 이륙회만이 할 수 있는 역량이고 자랑이다. 주산 암산 능력이 5단인 두식이를 총무로 세운 것도 잘한 일이다. 이런 여러 이야기들을 흐르는 물처럼 엮어 한 편으로 드라마 대본처럼 만든 것은 승훈 대사의 내공이다. 작년 한 해 무사 산행하였으니 올 해도 안전 산행하며 모든 산우들이 축복받기를 소망한다. 후기를 남긴 승훈대사에게도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악어바위 팽귄바위 물개바위...생쥐바위...불곡산에 널려 있는 기이한 바위처럼 내 머리도 질서가 잡히지 않고... 해가 바뀌었는데 댓글 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런~이런~일이.... 머리에 쓰고 있는 머프를 찾으러 간 최대장의 몸개그?이런 씨추에이션..이 문제가 아니다. 글을 올린 명문 고수에게 큰 실례를 범한 것 같다. 사실 핸펀으로 몇 번을 읽었지만...워낙 손가락 작업이 싫어하는 터라 차일필 미루다가 댓글 다는 데 암튼 실패했다. 등산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우정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김장군의 멘트가 등산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댓글 다는 데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로 들린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우리는 양주벌이 우뚝 솟은 이 산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칼바람 속에서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소나무....헐벗은 민초를 위해 일어선 임꺽정의 혼백...이란말인가?
글은 눈으로 읽는다지만... 가슴으로 맛보는 이 맛은 씹을수록 더 풍미가 나는 듯하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고승의 글, 읽을수록 또 다른 맛을 더한다. 우리 산우들의 극찬이 빈말이 아니다. 확실히...
그리고 열혈산우들께, 함께하지 못한 용서를 위해, 아부라도 해보자...ㅋㅋ
최대장께 추웅서엉!
만장일치의 장군진급을 축하하며 김영환장군님께도 추웅서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