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읍지의 서생진 마애기(磨崖記) 비문에 대한 검토
― 임진전란사 속 총독장 천만리와 문무제장의 공훈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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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울산읍지 저자 : 김용제
발 행일 : 1935년 발행자 : 금기찬방(金琪燦方)
1. 머리말
임진왜란은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안긴 국제전이었다. 특히 명나라가 대규모 원군을 파병하여 조선을 지원한 사실은 여러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나, 전투 현장에서 남겨진 기념비적 기록은 매우 드물다.
울산읍지에 기록되어 서생진의 층암절벽에 새겨졌다고 전하는 마애기(磨崖記)는 바로 그 예외적 자료로서, 임진전란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고에서는 울산읍지에 전하는 마애기의 전승 양상과 판본, 그리고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고, 그 사료적 의의를 검토하고자 한다.
2. 동정기(東征記)의 전승과 판본
고종실록 1901년 9월 30일자 기사
고종실록에 의관(議官) 이봉래(李鳳來) 등이 화산군 천만리의 시호(諡號)를 청하는 상소에 "정유년(1597년)에는 또 중사마로 조선에 와서 직산에서 일본 군사와 싸웠는데 매복하였다가 들이치자 적들은 풀대같이 쓰러지고 울산까지 도망치는 적을 승세를 타고 곧바로 무찔러 버리고 그 공로를 서생진 층암절벽에 새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丁酉又以中司馬來, 與日兵, 戰于稷山, 伏兵擊之, 敵披靡而走, 至蔚山, 乘勝直擣而磔之 勒功于西生鎭層巖巓之域也)
이 비문은 울산읍지에 마애기(磨崖記)라는 제명으로 수록되었을뿐만 아니라 1846년에 천씨문중에서 발행된 사암실기(思庵實記)에 울산서생진도독동층암전각기(蔚山西生鎭都督洞層巖鐫刻記)라는 제명으로 수록되었다.
또 비문을 찬(撰)했다는 편갈송의 절강편씨유사(浙江片氏遺事)에도 수록되었다.
천씨 3세 유사의 동정기(東征記)
3. 비문의 내용과 특징
비문의 내용은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와 조선 연합군의 울산 전투의 승리를 기록했는데 주요 내용은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명 황제가 분노하여 병력을 파병하였고 마귀, 양호, 형개 등 명나라 장수의 역할과 울산 전투의 치열함을 묘사했다. 또한 황제의 은혜와 장수들의 공훈을 기념하여 공적을 후세에 남긴다고 하였고 특히 비문 말미에는 편갈송(撰), 시문용(書), 천만리(督工鐫建) 등의 이름이 명시하여, 전각 작업의 주체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은 영양천씨 가승의 동정기(東征記)에 우적계문무제장원훈병전(右赤鷄文武諸將元勳並鐫”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단순히 명나라 장수들의 공로만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울산 전투에 참전한 문무 제장 전체의 공훈을 아울러 새겼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기존의 실록, 징비록, 난중일기 등에서는 보기 어려운, 집단적 전공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우적계동정문무제장원훈병전(右赤鷄東征文武諸將元勳竝鐫) ※적계(赤鷄)는 정유년을 뜻함 어사 御使 진 효(陳 效), 참정(參政) 숙응긍(肅應宮), 낭중(郞中) 동한유(董漢儒), 부총병(副總兵)오유충(吳惟忠) 동정의(董正誼), 해 생(觧 生), 노계충(盧繼忠) 이방춘(李芳春), 이여매(李如梅), 고 책(高 策), 참장(參將) 팽우덕(彭友德), 양등산(楊登山), 유격(遊擊 ) 우백영(牛伯英), 번 귀(煩 貴), 파 빈(擺 賓), 시등과(柴登科), 모국기(茅國器), |
4. 역사적 의의
첫째, 동정기는 임진왜란의 국제적 성격을 증언한다. 명·조선 연합군이 함께 일본군을 격퇴한 사실을 현장에서 기념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전쟁사의 공동 기억을 보여준다.
둘째, 동정기는 울산 전투의 현장성을 담고 있다. 후대 문헌이 아닌 전란 직후의 기록으로, 당대인들의 전투 인식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동정기는 총독장 천만리의 존재와 역할을 보여준다. 단순한 가문적 전승이 아니라, 전란사 현장에서 직접 확인되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천만리 연구의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5. 맺음말
울산 서생진 동정기는 비록 원석이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지만, 천씨문중의 가승과 지방지, 중국 문헌 등 다양한 전승 자료를 통해 그 내용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문은 조선과 명나라의 문무 제장들이 함께 울산 전투의 승리를 기념한 유일한 기록으로, 향토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쟁사 연구에서도 귀중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울산읍지의 마애기(磨崖記)는 우적계동정문무제장원훈병전(右赤鷄東征文武諸將元勳竝鐫)이 기록된 동정기(東征記)로 제명과 내용이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비문의 전승 계통과 판본을 더욱 분명하게 규명하여 울산 전투 현장의 고증을 통해 동정기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6. 참고 사항
동정기(東征記)
萬曆二十五年丁酉孟春蠢玆島夷且屠東藩
邦畿千里盡爲賊窟流血四漲 帝赫震怒大
發士卒特救箕封至是欽差經畧東征提督
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御倭軍務總兵官中
軍都督府大都督兼雲谷宣大等處騎兵都督
兼陜西省兵馬大元帥燉煌伯兼都指揮都總
諸將師加一品服大司馬大將軍行兵部尙書
麻公貴統率勇將三十六員鐵騎一千騎兵一
萬六千蒼頭八百而受 詔徃倭 朝廷又以
右僉都御史楊公鎬爲經理兵部尙書邢公玠
爲都總諸軍門同渡鴨綠分鎭三路西靖南攻
乘勝長驅至于蔚山圍之島山皷譟呐喊掀驚
天地暨于此時壯心揚揚鳴鑼挑戰濉水之勝
赤壁之捷亦莫過此噫盖維中國出師萬里掃
氛濟藩侯太古以來未之有也恢復 朝鮮永
奠蒼生長保社稷王業無竆至歟壯哉吁
天子再發將卒再討兇醜金銀糧帛士馬物故
不可勝討以玆之意銘書層巖以垂後世 皇
上罔極之恩將士山海之功舆彼溟渤相終云爾
大明萬曆二十六年仲春上浣
天朝征倭提督中軍 片碣頌 撰
游擊中軍 施文用 書
運糧使兼總督將 千萬里
總兵把摠 張海濱
遊激把總 徐 學 督工鐫建
右赤鷄東征文武諸將元勳竝鐫
御使 陳 效,
參政 肅應宮,
郞中 董漢儒,
副總兵 吳惟忠 董正誼, 觧 生, 盧繼忠, 李芳春, 李如梅, 高 策,
參將 彭友德, 楊登山,
遊擊 牛伯英, 煩 貴, 擺 賓, 柴登科, 茅國器,
천씨 가승(家乘)의 동정기(東征記)는 1824년 갑신보 이전에 기록된 것이고 사암실기의 층암전각기(層巖鐫刻記)는 1846년에 발행된 것이므로 1934년에 발행된 울산읍지(蔚山邑誌)나 1903년에 발행된 절강편씨유사의 오류로 판단된다.
특히 천씨 가승의 동정기와 사암실기의 마애기를 대조하여 보면 將→軍 受→奉으로 글자가 바뀌었으나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徃이征으로 바뀐 것은 정왜(征倭)로 써야 바른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울산읍지의 오기된 내용을 보면 持→指 聲→掀 動→驚 士→將 數→故 計→討 刻之→鐫建으로 오기되었고 將, 朝廷, 侯太, 以來가 누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절강편씨유사의 동정승첩비문을 보면 流血→血流 斯→震 軍→將 奉→受 戰→勝 玉→糧 計→討 壯→將 河→海 으로 바뀌고 江자 한자가 추가되고 편갈송의 직함을 大明征倭漁陽摠節使兼遊擊將 丁酉 提督中軍 攝 兵部尙書 摠督諸軍門 29글자가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적계동정문무제장원훈병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17인의 문무제장의 이름이 기록된 동정기(東征記)가 이 비문의 제명(題名)이고 원문(原文)으로 판단된다.
사암실기 蔚山西生鎭都督洞層巖鐫刻記
萬曆二十五年丁酉孟春蠢玆島夷且屠東潘邦
畿千里盡爲賊窟流血四漲 帝赫震怒大發士
卒特救箕封至是欽差經畧東征提督薊遼保定
山東等處防海御倭軍務總兵官中軍都督府大
都督兼雲谷宣大等處騎兵都督兼陜西省兵馬
大元帥燉煌伯兼都指揮都總諸軍師加一品服
大司馬大將軍行兵部尙書麻公貴統率勇將三
十六員鐵騎一千騎兵一萬六千蒼頭八百而奉
詔征倭朝廷又以右僉都御史楊公鎬爲經理兵
部尙書邢公玠爲都總諸軍門同渡鴨綠分鎭三
路西靖南攻乘勝長驅至于蔚山圍之島山皷譟
呐喊掀驚天地暨于此時壯心揚揚鳴鑼挑戰濉
水之勝赤壁之捷亦莫過此噫盖維中國出師萬
里掃氛濟藩侯太古以來未之有也恢復 朝鮮永
奠蒼生長保社稷王業無竆至歟壯哉吁 天子
再發將卒再討兇醜金銀糧帛士馬物故不可勝
討以玆之意銘書層巖以垂後世 皇上罔極之
恩將士山海之功舆彼溟渤相終云爾
大明萬曆二十六年仲春上浣
天朝征倭提督中軍片碣頌 撰
游擊中軍施文用 書
運糧使兼總督將 千萬里
總兵把摠 張海濱
遊激把總 徐 學 督工鐫建
울산읍지 磨崖記
서명 : 울산읍지 저자 : 김용제 발행 : 1935년 발행자 : 금기찬방(金琪燦方)
古蹟 85쪽 都督洞 在西生壬辰亂明麻提督駐兵之地故云磨崖記曰
萬曆二十五年丁酉孟春蠢玆島
夷且屠東潘邦畿千里盡爲賊窟流血四漲帝赫震怒大
發士卒特救箕封至是欽差經畧東征提督薊遼保定山
東等處防海御倭軍務總兵官中軍都督府大都督兼雲
谷宣大等處騎兵都督兼陜西省兵馬大元帥燉煌伯兼都
持揮都總諸將師加一品服大司馬大將軍行兵部尙書
麻公貴統率勇將三十六員鐵騎一千騎兵一萬六千蒼
頭八百而奉 詔征倭 朝廷又以右僉都御史楊公鎬爲經理兵部
尙書邢公玠爲都總諸軍門同渡鴨綠分鎭三路西靖南攻
乘勝長驅至于蔚山圍之島山皷譟呐喊聲動天地暨于
此時壯心揚揚鳴鑼挑戰濉水之勝赤壁之捷亦莫過此
噫盖維中國出師萬里掃氛濟藩侯太古以來未之有也恢復 朝鮮
永奠蒼生長保社稷王業無竆至歟壯哉吁天子再發士
卒再討兇醜金銀糧帛士馬物數不可勝計以玆之意銘
書層巖以垂後世 皇上罔極之恩將士山海之功舆彼溟
渤相終云爾
大明萬曆二十六年仲春上浣
天朝征倭提督中軍片碣頌 撰
游擊中軍施文用 書
運糧使兼總督將 千萬里
總兵把摠 張海濱
遊激把總 徐 學 督工刻之
정강편씨유사 東征勝捷碑文
萬曆二十五年丁酉孟春蠢玆島夷且屠東潘邦畿千里
盡爲賊窟血流(流血)四漲 帝赫斯(震)怒大發士卒特救箕封至
是欽差經畧東征提督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御倭軍
務總兵官中軍都督府大都督兼雲谷宣大等處騎兵都督
兼陜西省兵馬大元帥燉煌伯兼都指揮都總諸軍(將)師加一
品服大司馬大將軍 行兵部尙書 麻公貴 統率勇將三
十六員鐵騎一千騎兵一萬六千蒼頭八百而奉(受) 詔征倭
朝廷 又以右僉都御史楊公鎬 爲經理 兵部尙書邢公
玠 爲都總諸軍門 同渡鴨綠江(추가)分鎭三路西靖南攻
乘勝長驅 至于蔚山 圍之島山 皷譟呐喊 掀驚天地 暨
于此時 壯士(心)心(揚)揚 鳴鑼挑戰 濉水之戰(勝) 赤壁之捷 亦
莫過此 噫 盖維中國 出師萬里 掃氛濟藩侯 太古以
來未之有也 恢復 朝鮮 永奠蒼生 長保 社稷王業無
竆 至歟壯哉 吁天子 再發將卒 再討兇醜 金銀玉(糧)帛
士馬物故 不可勝計(討) 以玆之意 銘書層巖 以垂後世
皇上罔極之恩 壯(將)士山河(海)之功舆彼溟渤相終云爾
大明征倭漁陽摠節使兼遊擊將 丁酉 提督中軍 攝 兵部尙書 摠督諸軍門
(天朝征倭提督中軍)片碣頌 撰
游擊中軍施文用 書
運糧使兼總督將 千萬里
總兵把摠 張海濱
遊激把總 徐 學 督工鐫建
大明萬曆二十六年仲春上浣
첫댓글 소중한 연구자료에 감사함을 올립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는 오류를 이렇게 잡아 주시는 연구에 깊은 존경을 표하고요.
아울러 위와 같은 소중한 연구자료들은 널리 알려 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