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폭력
박완서
귀여운 아이와 젊은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는 버스 좌석이 있었다. 아이는 심심한지 신을 신은 채 좌석에 올라서서 널을 뛰는 것처럼 콩콩 발을 구르기도 하고 돌아서서 등받이를 짚고 뒷좌석을 넘겨다보기도 하고 오물오물 콘칩을 먹기도 했다.
엄마는 아이를 나무라지도 돌보지도 않고 있다가 목적지까지 다 왔는지 황급히 내렸다. 모자가 내리고 나서도 그 빈자리엔 아무도 앉지를 않았다. 마침 날이 궂은 때라 아이의 신발이 더러웠던지 아이가 널을 뛰고 군것질을 하던 자리는 엉망으로 더러웠던 것이다.
버스는 점점 만원이 되는 데도 그 자린 비어 있었다. 허리굽은 노인도 젊은이에게, ' 이 늙은이 좀 앉읍시다'하고 자리 양보를 강요할망정 그 자리는 외면했다.
참다못해 나는 차장에게 일렀다.
"아가씨, 이 자리 좀 훔치지 그래, 걸레가 없으면 휴지로라도.
아가씨는 험악한 눈으로 내 아래 위를 훓었다. 그러더니 심히 아니꼽다는 듯 흥 하고 코웃음 먼저 치고 나서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아주머니, 그렇게 깨끗한 거 좋아하면 자가용을 타셔야죠. 이 더러운 버스 누가 타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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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때문에 동네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구청에 몇 번 신고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거의
한 통에 걸친 지역이 함께 당하고 있는 곤란이라 동회를 통해 구청으로 진정하는 방법을 취하자고 이웃끼리 의견이 모아져서 우선 통장에게 의논을 했다.
통장은 평소 마음씨 좋고, 동네 일에 헌신적인 훌륭한 분이었다. 그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매우 성실하게 전달하고 그것을 이행하기를 이웃에게 권고하는 데에 매우 열성적인 분이었다. 그런 그의 인품으로 봐서 아래에서 생긴 곤란한 일을 위로 전달하는 데도 그만큼 열성적이기를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딴판으로 그분은 냉랭했다.
말해봤댔자 소용없을테니 그저 가만히 참고 기다려보라는 것이었다.
될지 안 될지는 나중 일이고 일단 해보기라도 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가 아니겠느냐고 했더니 그분의 얼굴에, 먼저 이야기한 버스 차장 같은 경멸과 비웃음이 떠올랐다.
" 아주머니가 통장 보시면 아주 잘 보시겠어요, 아주머니가 통장 보시죠. 저 이 자리 조금도 미련 없습니다요."
이렇게 해서 회담은 통장의 KO승으로 끝났다.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말의 폭력에 약하다. 단 한 펀치에 뻗는 약골이 되어, 내앞의 위대한 폭력자 앞에 무릎을 꺽고 두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 절망한다. 가슴을 칠 기력조차 없이 완벽하게 절망한다.
박완서 작가
경기도 개풍 출생(1931~2011)
학력
숙명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중퇴
서울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경력
2004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6
제27회 동인문학상 본심 심사위원
1996.5
토지문화재단 발기인
1995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회원
1993.5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
수상
2011
금관문화훈장
2006
제16회 호암상 예술상
2001
제1회 황순원문학상
1999
제14회 만해문학상
1998
보관문화훈장
1997
제5회 대산문학상
첫댓글 존경하는 박완서 소설가님의 말의 폭력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데
기왕이면 살리는 말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말은 폭력적으로 한다든지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박완서 소설가님의 좋은 글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의 첫날 한달 내내 건강과 행복이
동행하시고 행운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