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세상을 향한 무심함detachment을 기를 수 있습니까?
B.: 필요한 것은 비애착non-attachment이지 무심함detachment이 아닌데, 그것은 단지 지각된 비애착의 미덕에 대한 애착 또는 지각된 애착의 악덕에 대한 혐오일 뿐입니다. 애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무심하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합니다. 마음의 변형이 없는 것이 단 하나의 유일한 진짜 비애착입니다.
Q.: 세상의 것들에 대한 저의 애정을 포기하고, 제가 소유하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정신적으로 포기한다면, 그 대가로 저에게 갸나가 주어지겠습니까?
B.: 당신은 그 대가로 갸나를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는 더 높은 힘의 자비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는 갸나에 대한 야망 또한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문제 또한 일어날 수 없습니다.
Q.: 이것들은 가혹한 조건입니다.
B.: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 목에 단검을 꽂고 깨달으라고 강요했습니까? 솔직한 사실은, 삼사라의 고통으로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들이 언제나 그리고 필연적으로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존재가 완전히 견딜 수 없고 심지어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을 때, 그때 깨달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만약 삼사라가 여전히 당신에게 받아들여지거나 짐작될 수 있다면, 당신이 깨닫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삼사라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노골적으로 자명한 진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그가 깨달을 수 있습니까? 명백하게 독이 있는 삼사라의 내용을 분명히 보고 이렇게 해서 마음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막아서, 마음을 가슴의 빛 안에 밀어 넣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유혹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렇게 논의합니다. ‘나를 깨닫기 위해 나는 어떤 사다나를 수행해야 할지 모르겠다. 깨닫기 위해 슈리 라마나 바가반의 기법을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슈리 오로빈도의 기법을 수행할 것인가?’ 만약 뜨거운 석탄 조각이 손에 떨어진다면, 당신의 첫 본능은 그것을 떨어뜨리는 것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자, 이것은 목탄일까, 토탄일까, 아니면 코크스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집요하게 삼사라에 매달립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아비디야마야의 장갑이 그 사람을 모든 고통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순전하고 완전한 충격으로 그 고통을 느낀다면, 그는 극도의 고통을 야기하는 교전 대상을 즉시 떨어뜨릴 것이고, 실재는 그것의 허구의 보완 상대인 마야를 빼앗길 것입니다. 그 고통은 일단 볼 때는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고 오직 위장된 고통일 뿐인 소위 말하는 쾌락과 번갈아 나타나기에, 사람은 그에게 강제로 떠안겨진 벌겋게 달아오른 석탄 조각을 붙잡음으로써 삶이라 불리는 장엄하고 즐거운 도전을 완수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이 쾌락이라고 부르는 보수를 얻게 될 것이라고 믿도록 자신을 속입니다. 이와 같이 보통의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편안하게 벗어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절대적 희얄을 깨닫는 그의 잠재력을 무시한 채, 항상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삼사라를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이끌립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실제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구루의 은총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무지의 장갑은 터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그의 생애에 완전한 파괴가 예정되어 있는 그 운 좋은 사람은 전과는 전혀 다른 고통을 겪기 시작합니다. 삼사라에 관한 그의 오래된 입장은, 이런 나쁜 상황들이 단지 나쁜 날씨의 지나가는 구름일 뿐이고, 곧 문제들이 개선될 것이라고 그를 납득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개선의 기미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 장갑의 파열은 더 커졌습니다. 그의 손은 한때는 그가 허황되게 ‘도전’이라고 여겼던 것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한 불길에 꿈틀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장갑이 타버리는 것처럼 그는 더 이상의 저항을 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알고 삼사라라고 알려진 타다 남은 불을 혐오스럽게 버립니다. 이것이 구루의 은총이 어떻게 깨달음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비밀입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깨달음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는 헌신자의 잘못된 굴복을 재촉함으로서 단지 그것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할 뿐입니다.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자신을 전적으로 굴복하려고 하는 사드시쉬야의 이번 탄생 이전에도,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삿구루는 [이슈와라 역할을 함에 있어서] 바로 그 생애에서 그에게 모든 신뢰를 주었던 순진하고, 어린 아이같은 헌신자의 해방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가 가슴과 영혼, 마음과 육체를 그의 발에 굴복하게 만들도록 헌신자의 카르마로부터 교묘한 선택을 수행합니다. 이와 같이 오직 불행만으로 그의 삶에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폭격이 가해짐으로써 그는 삼사라에 대한 강한 혐오감과 역겨움을 심어주어 그를 그의 발로 완전히 데리고 옵니다. 삿구루는 그의 보살핌에 자신의 모든 삶을 둔 헌신자들의 경우에만 이 급진적 접근법을 자유롭게 채택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사다나를 계속하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한 다음 조용히 있습니다. 만약 삿구루가 어떤 헌신자에게 해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면, 브람마조차도 의미 있게 이의를 제기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그러므로 해방을 얻는 데 있어서 실패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삿구루의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Q.: [감정적인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면서]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삼사라를 완전히 포기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필요하다면 제 삶에 불운을 가져다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생애에서 깨닫기를 원합니다. 저는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타서 재가 되게 두십시오. 제가 나병환자로 죽게 내버려 두십시오. 하지만 오! 바라건대, 이 생애에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십시오!
그 남자는 B.의 수행원으로부터 약간의 마실 물을 받았고 곧 진정되었다. B.은 미소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