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9.
냉장고
매월 한 번은 집에 온다. 승용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내 삶의 절반 이상을 산 도시에 도착한다. 눈에 익은 풍경과 바람에 안겨 오는 익히 아는 공기 그리고 익숙한 소음이 있는 곳.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교육생 숙소동의 원룸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과 손때 묻은 내 물건들로 안락함이 가득하다. 여기가 내 집이다.
소외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부대끼던 주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겠지. 혼자 지내는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지고 가끔 나타나는 그리움은 하루 이틀 보이더니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온기를 잃은 썰렁한 아파트는 골이 나고도 남았을 거다.
모두가 그대로 있다.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청소기를 돌려 사랑하고 있음을 알린다. TV에 플러그를 꽂아 전원을 넣고 싱크대와 세면대도 눈길을 준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알리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다. 실내는 환기되고 가전기기는 생명을 얻고 수도꼭지는 물을 뿜어낸다.
딱 하나가 다르다. 냉장고 디스플레이의 깜박임이 눈에 거슬린다. 냉동 온도 23℃. 추석 전에 수리받은 냉장고 냉동 모터가 수명을 다한 게 확실하다. 내부의 음식은 폭삭 상했다. 냉동 채소와 고기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삭았고 모든 식재료는 두꺼운 곰팡이를 피웠다. 간간이 곰팡이가 날리고 있어 얼른 문을 닫아 공간을 폐쇄한다.
대가는 공정하다. 내가 소홀한 만큼 그도 내게 서운함을 말하는 듯하다. 20리터 쓰레기봉투에 가득 담아 버리고 내부를 닦아내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내부에 담겼던 것을 몽땅 버렸다. 전원을 꽂아 냉장고가 다시 정상 작동하기를 기다린다. 17년 전, 막내딸네 다니러 왔던 장인어른께서 예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선물로 사준 냉장고다. 사랑이 담긴 물건이니 정이 남다른 데, 이놈은 몹시 서운했나 보다. 냉장고가 나를 버린다.
냉장고 없이 어쩌란 말인가. 이빨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의 잇몸은 김치냉장고다. 냉장이나 냉동하지 않고 생활하기란 몹시 어렵다. 며칠이야 버티겠지만 깊이 생각하고 신속하게 사야 한다. 요즘은 4도어 900리터짜리가 대세다. 없는 살림에 휘청일 만큼 가격대 역시 엄청나다.
빈집은 집이 아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 집이다. 사람의 호흡이 층층이 쌓이고 손때가 묻어 반들거려야 생기를 얻는가 보다. 같이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애착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첫댓글 인사도 없이 가버리다니 많이 황당하고 놀랐겠네
쿠팡에서 모셔오자
혼났다. 죽을뻔 했다. 하도 바빠가 김미화 오지마라 했다. 치우고 또 치우고 그라고 또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