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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Any Town in the U.S.A., 1981
에드 루샤 : 물질의 허구와 하이웨이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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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어느 여름날, 에드 루샤는 달리는 뷰익(Buick) 자동차의 차창 밖으로 타자기 - 로얄 모델 X (Royal Model X) - 를 대던짐으로써 그것의 성능을 시험(road-test)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움직임과 사고의 그래픽적 언어들을 생략한 행동 속에서 그 실험은 실패한 모든 작가들(Writers)이 이미 알고 있는 '타자기를 강제로 작동하게 할 수는 없다' 라는 사실외에 별다른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실험을 마친 그 기구는 말할 나위도 없이 가장 충실하고도 모순된 의미에서 타자기로서는 완전히 망가진 물건(write-off)이었다. 그러나 근엄하고도 희극적인 교훈으로서의 '로얄 로드 테스트(Royal Road Test)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충격을 받아 튕겨 나오는 활자 이상의 무언가를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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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처럼 기록된 그 실험은 마치 종이위의 줄들이 도로 위의 선들과 합쳐지는 것처럼 자동차(the automotive)와 인쇄술(the typographic)을 충돌시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활자운동적(typomotive)이며 자동기술적(autographic)이었다. 언어의 물질적 본질이 해체의 종국적 속도로 치달을 때 우리의 그것에 대한 이해는 시적인 관성의 지점으로 느리게 향한다. 그를 앞섰던 상징 주의자들이나 초현실 주의자들 그리고 다다이스트들과 같이, 루샤는 언어란 유동적이며 심지어 단어의 물질적 형태 -그것을 구성하는 철자들 - 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결코 끝나지 않는 게임의 부분임을 보여준다. 루샤의 비워진 풍경 화면들 속에 거주하는 단어와 구절들은 이런 조합(encounter)의 반영을 계속한다. 서술적 내용의 한계에서 벗어나, 그들은 역사와 의미추구로부터 무자비하게 몰락한 문화의 기존 패턴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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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창조하는 남쪽 캘리포니아로 향한 루샤의 대륙 횡단의 항해는 그의 친구인 작가 메이슨 윌리암스(Mason Williams)와 함께 오클라호마(Oklahoma)에서 서부로 이주하기 십년전에 진행되었다. 미국의 심장 지대(heartlands)에서부터 천사의 도시(City of Angels)까지의 여행은, 루샤에겐 66번 도로의 끝없이 지나치게 되는 전신주들과 공허한 휴식 시간들의 연속이었고 그것은 흡사 비트(Beat)족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시인 휘트먼(Whitman)이 "우화적 저주"(fabled damned)라고 말한 비트족의 긴 방랑이란 단순한 물질주의로부터의 이탈, (전형적인 미국 고속도로 풍경인 : 역자주)대형 화물차로 같은 방향의 방랑자들을 태워주며 지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도로를 향해 흥분속에서 질주하는 것이지만, 루샤의 순례여행은 여행에 대한 진부하고 냉정한 기록과 참신한 언어들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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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작 Twentysix Gasoline Station는 Royql Road Test를 포함한 16개의 관련 출판 작업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었다. 그것은 흡사 타락한 카톨릭 교도의 상징적 갈보리 언덕으로 비유 될 수 있는, 십자가(cross)가 아닌 Bob's Service, Phillips 66, Standard, Frying A,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름에도 걸맞게 Fina Station of Groom, Texas 등의 간판이 붙은, 왕복여행동안 보았던 정거장과 주유소들에 대한 기록이 되었다. 루샤의 팝 골고다(Pop Glogotha)를 위한 그래픽 광고 문구는 "Exactly as good as the best"라고 적혀있다. 작가가 "무한대의" 공간으로 묘사한 적이 있는 나중의 회화작업들 처럼, 휘발유 좋교(gasoline religin, 휘발유가 없으면 생활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믿음 : 역자 주)의 특수한 문법으로 된 표지판은 텅빈 광활한 주차장들, 빈 페이지들 그리고 경과된 시간들을 하나의 추상적인 대지로 변형함으로써 언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깊이와 규모에 도전한다. 문맥의 일관성은 캘리포니아 아스팔트 이음새들을 따라 천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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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Space for Message, 1991
3년후에 시행된 Royal Road Test는 문학적 형태의 유사한 노변 해체를 암시했다. 로얄은 당대 최상급의 타자기였다. 그것의 스타카토적 리듬은 레이몬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대이쉘 해미트(Dashell Hammet), 그리고 L.A. 느와르파의 간결한 산문체를 분절화한다. 이 리듬들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햇빛내리 쬐이는 타락의 바다를 가로질러 사실과 허구의 모호함을 신호하는 음자적 모스부호처럼 탐정 소설의 일반적인 언어들을 사용한다. 루샤의 책표지는 추리 장르책의 저속한 표지 대신에 안에 들어선 실제적 내용을 암시하는 ROYAL 이라는 단어만을 특유의 문장적 서체로 담고있다: "그것은 스스로 지니고 있는 자신의 파괴의 근원인 부정의 외침이 아닌 무언가가 되기에는 그 자체의 고통에 너무나 직접적으로 묶여있다. "라고 표지 안쪽에 풍자적 묘사로 씌여있다. 우리는 오직 책의 뒤따르는 페이지들에서 루샤의 파괴적인 주목의 대상 - 열쇠와 움직임의 성전 - 을 보게되고 그 충격이 책 페이지에서 도로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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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Compas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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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South, 1991
책의 나머지 부분은 법정 서류같은 무표정한 태도(deadpan manner)로 진행된다. 그 성능시험은, 알다시피, 1966년 8월 21일 일요일 오후 5시 7분에 행해졌다. 1963년 형 르 사브르(Le Sabre)자동차는 시속 90마일로 달리는 중이었다. 날씨는 "완벽했다", 액션 그 자체는 결코 보여지지 않고 - 오직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표현적인 연결로써만 추론되었다. 파편들은 그것이 사막에서 그랬던 것과 같게 풍요로운 정지감과 빈 페이지들을 뒤덮었다. (충돌 지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Piece of Ribbon and Frame Shift Assembly' 혹은 'Line Lock Assembly with Link'의 캡션들은 법정 진열 방식에 있어서 증거용 문서 끝에 부착된다. 루샤는 우리가 언어의 정면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허용하면서 우리의 의심을 즐기며, 우리는 이미 아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나 다니엘 웨스트(Nathaniel West)의 The Day of the Locust가 캘리포니아 풍경의 축적된 속임수로부터 벗어나며 " 진정으로 엄청난" 무언가를 상상한 것처럼 루샤도 편집증적으로 기획된 법정 증거물 A 같은 공허의 환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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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Gas Stations
만약 주유소들의 언어학적 잠재력이 정적인 광고(static advertisement)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도로의 대중적 꿈(pop dream)에 속한다면 Royql Road Test는 그 문자적 의미가 여행의 속도에 의해 통제당한 잠재력의 분산을 암시한다. 그러한 행동의 상징적인 공명(resonance)이 근간의 러다이트(Luddite)운동 - 씌여진 단어를 지배하는 묘하게 함축적인 주권을 가진 쓰는 기계의 파괴 - 의 일부분임을 암시하는 반면, 주의깊게 수집된 증거 서류는 내용을 서술하기 보다는 그저 회화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언어의 실체들을 재구획 한다. 루샤는 공허한 사실들의 심술궂은 재현 이상의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실들 자체가 파악되기 힘든 것임을 드러낸다. 헐리웃(Hollywood)과 같은 명사들은 동사들의 겉잡을 수 없이 다양한 의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소통의 대리인이라기 보다는 방해물로 새로운 모양을 취한 명사들은 표준화된 질적 의미로 채워지기를 거부한다. 루샤는 의미화의 선들 너머 이미지와 단어들 사이, 단어와 사물사이의 공간을, 심지어 그것들을 붕괴시키기도 하며 좁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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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Untitled (Old Sign), 1989
회화와 문자의 관계 속에서 언어적 유희와 동음이어는 루샤의 예술을 형성해 간다. 단어에 공간감(dimension)을 부여함으로써, 캔버스의 형태는 종종 화면이 포함하고 있는 언어의 수직 수평적 긴장을 반영한다. 70년대와 80년대의 시리즈에서 파노라마식 시네마스코프 형식은 텍스트를 자막형태로 풍경화화하며 문자적 의미와 새로운 의미를 한꺼번에 합성한다. 1966년의 Every Building on Sunset Strip 처럼, 이것들은 자세히 탐색하는 만큼 끝이 없는 세계로 우리들을 이끌어갈 작업들이다. 그들의 시각적 전망은 차창의 이동식 가리개 망을 선호하여 정적인 이젤 회화의 전통을 거부한다. Heil 1/2 Way Heaven 이나 You and Me 같은 작품들은 말 그대로 관객을 운전석에 앉힌다. 우리는 그것들의 완전함을 취하는 것이 블가능하므로 자동차앞 유리와 후미경 사이의 황무지속에 포착된 채 앞서나가는 현재와 후퇴하는 과거 사이를 오간다. 우리는 단어들 사이를 오가며, 모든 것은 발견됨으로써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기억상실증의 웅장한 형태로서의 운전 경험을 재생산한다. 도로 표지판처럼 루샤의 텍스트는 측정 될수 없는 거리의 언어를 말한다. 전진 이동에 자동차의 후경을 중첩시켜 그들의 시제는 영구적인 현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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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Wonder Sickness, 1984
생명이 없는 들판들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또다시 나타나는 파편화된 메시지들의 신호는 노래, 광고 게시판, 상표 및 단조로움 그리고 자동적 세계의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다른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음성에 대한 문화적 기억 장치로부터 이끌어 내 진 것이다. 회화들 그 자체는 보이지 않는 이의 음성이 갖는 품위 있는 잠재성을 향해 열려있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1987년의 Talk Radio는 이야기가 있는 건축믈이 전혀 없는, 불은 켜져있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소외된 거대한 규모를 가진 도시 풍경의 빛나는 그물 격자 위로 뒤죽박죽된 대화의 암시를 띄운다. 여기에 묘사된 도시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망막의 들판을 가로질러 그들의 느린 표류를 시작하는 지점으로서 환각적 환영의 특징을 취한다. 이미지의 웅변적 공허(eloquent emptiness)에, 물질적 언어는 그것의 의성어적 팽창을 더해 준다.
Ed Ruscha
Bird, Buffalo Study #2, 1995
구절들, 반쪽만의 진실(half-truths), 진부한 표현들, 광고 문구들, 그리고 평범한 이야기가 이미지로 부유한다. 우주적 이상주의와 개념적 실용주의의 혼합인 루샤 회화의 의미들은 간접적인 동시에 극도로 직설적이다 : I Think That There is Something Dangerous Going on Here. 라고 작가는 화약위에 적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End 시리즈에서는 채색된 스크린을 타고 검은 고딕 활자체가 내려온다. 진부하고 견딜수 없는 루샤의 end 자막은 의미의 마지막 게임을 공허하게 만든다. 그들의 상처 난 하강에서 남은 모든 것은 활자 그 자체와 그들의 바보스러운 미소(idiot smiles)들 뿐이다. 그들은 두운적으로 겹겹이 층을 이루며, 소리의 증명사진들처럼 보여지기 시작한다. 단어들 자체의 모든 문자적 내용과 명백하게 "수동적인" 서체에 대해, 그들의 복화술적 방송은 불안정한 반 생명체와 분리된 의미들로 대기를 채운다. 회화는 언젠가 돌아로리라는 믿음으로 암호화된 시그널들을 보내는 방대한 문화적 음향실과도 같이 기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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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Cameo Cuts, 1992
루샤의 가장 최근 작업은 지난 30년간 진행된 직선을 이루는 단어와 풍경화들로부터 벗어난다. 캔바스들은 이제 그 자체가 마치 "자만에 빠진 제국들"과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콤한 핑크빛의 쇠락 뒤에서 고조되는 "부푼 음"을 포용할 수 없을 만큼 불룩하게 돌출되고 부풀어 오른다. The의 거의 가장 중심적인 T가 캔바스를 외곽으로 밀어내는 도상적 분산 요소로 작용하는1988년 작 The Mountain 과 같은 작품에서는, 곡면이 TV수상기의 모서리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굴곡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1998년의 Metro, Petro, Neoro, Psycho 와 같은 다른 작품들에서 회화 자체는, 마치 루샤의 개방되고 하이픈으로 연결된 합성어가 중앙에 모인 'politan, muscular, chemical, logical' 의 단어 덩어리가 캔바스의 한계 하중을 향하면서 그것을 외곽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확장하는 움직임속에 포착되어 있는 듯하다. 한때는 단어의 그래픽이 우리의 이해(understanding)의 한계를 밀어낸 곳에서 이젠 캔버스가 그 행위를 되풀이 한다. 최근의 작품들에서 유일하게 단어들을 배제한 1997년작 Lady with Spreader는 신문이나 잡지의 개인적 광고로부터 채택한 한 여인의 거대하게 확대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미지 앞에는 채색된 길게 뻗은 막대가 spread를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 루샤의 전형적인 언어 유희에서 여인과 그림은 가능한 형식들의 뒤틀린 융합에서 탄생한 부풀려진 의미의, 자신과 서로를 위한 광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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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Ruscha
Bunny, 1986
새로운 그림들은 단어들의 문자적이고 음성적인 차원을 서체 너머 그들 구조의 틀까지 밀어내며 말 그대로 시각적인 영역을 확장시킨다. 남 캘리포니아의 불안정한 어두움은 투사된 빛의 섬광과 채색된 산들의 일반화된 개념 속에서 지속된다. 그 단어와 구절들은 잠재된 꿈속의 풍경인 30년 전의 이주(migration)와의 비밀스런 관계를 아직도 유지한다. Critters Crave Salt는 루샤의 오랜 친구이자 협력자인 메이슨 윌리엄스에 의해 쓰여진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긴 송시에서 채택된 것이다. 1997년 작 Bloated Empire, Stuffed Regime의 딕 트레이시(The Dick Tracy)스타일의 옆모습은 H.C. 웨스터맨(H.C Westerman)인데, 그는 종종 엽서 속에서 태양이 빛나는 파괴의 소용돌이 안에 굳게 서 있는 해병대 출신 작가로 그려졌다. 오직 캔버스의 묘한 굴곡만이 단어들을 분리시키며, 단어 내부에서 단어들이 서로 의성적이고 시각적으로 반복을 이룬다. 이런 잠재의식의 의미심장한 헛소리를 통해 감정을 숨기면서, 작가는 언어의 아름다운 시체에 형식주의 회화의 시체를 더한다.
1966년, 루샤는 언어를 도로변으로 밀어냈고 그 형태의 충격들을 도로의 자동적 쓰기(Writing)로 변환시켰다. 30년간 같은 궤적 속에서, 단어나 구절들은 다른 전통의 지류를 향해 밀려나가며 새로운 의미화 작용을 계속한다. 그것은 회화의 역사와 미적 가치의 창출을 포괄하는 의식적인 전략의 일부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캔바스의 여분의 화면을 조금 더 얻어내는 - 모서리를 변형시키고 규칙을 구부리는 - 루샤의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