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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 원명 「강태공 (姜太公)」
김 동 리
기주 (岐州)의 서백후(西伯疾) 희창(姬昌) ―주문왕(周文王) ―의 도성(都城)에서 서남쪽으로 약 백 리를 들어가면 반계(磻溪)라는 청수(淸水)가 있다. 위하(渭河)의 상류다. 본디 물이 맑고 깊은 데다 또한 몇 군데 검푸른 소가 파여 붕어 잉어 금잉어 껄떠구¹ 피라미 따위는 물론이요, 모래무지 미꾸라지 메기 장어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민물고기로는 없는 것이 없다. 특히 윗소에는 맷방석만 한 자라가 있다는 둥 아랫소에는 천 년 북은 이무기가 있다는 둥 하여, 근방 사람들은 이 깊이 모를 청수에 대하여 은근한 공포와 아울러 신비적인 전설을 붙이기도 한다. 맷방석만 한 자라나 천 년 묵은 이무기는 몰라도 거의 짚단만큼씩이나 한 잉어가 이따금씩 꼬리를 두르며 올라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더욱이 이 반계 협수(峽水)의 장관은, 물이 맑고 푸르고 소가 많다는 데 그치지 않고 양쪽 언덕의 천 년 고목(古本)으로 어우러진 울창한 숲과, 그 기슭의 천연으로 반석을 이룬 넓고 깨끗한 바위들과, 이것들이 서로 어울려, 깊고 그윽한 자연의 풍치를 자아내는 데 있다.
다만 골짜기가 깊고 읍촌(邑村)이 멀어서 이 아름답고 장한 풍경도 완상하는 사람이 없다. 그 맑고 깨끗한 물고기들도 제 혼자 굵어서 늙어지는 대로 버려져 있을 뿐 좀체 건져가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간혹 나무꾼이 지나가다,
“야야, 저놈의 잉어 봐라!”
하고, 작대기로 바위를 두들겨보거나, 나뭇짐을 진 채 돌을 하나 물에 던져보거나 하는 것쯤이 고작이다.
사실 그 이상 그들이 이 푸른 물에 덤벼들어본다는 것은 켕기는 일이다. 그 깊이 모를 물 속에는 맷방석만 한 자라와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누가 그 위험하고 두려운 일을 즐겨 한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 그 위험하고 두려운 일을 즐겨 하는―듯한―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머리는 백발이요, 얼굴빛은 붉고, 코는 주먹만 한 것이 불거진 양쪽 광대뼈 사이에 펑퍼짐히 주저앉고, 코의 양쪽에셔 시작하여 광대뼈 밑을 돌아간 범령 (範令) 금은 양쪽 입귀에서도 멀찍이 둥그러미를 그어, 그 주걱같이 크고 넓은 턱 가운데를 에워 돌았다. 언제나 닫혀 있는 입술은 붉고 눈은 본디 움쑥한 데다 코가 높고 눈썹이 길어서 눈동자는 소같이 깊어만 보인다. 그는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반계에서도 가장 반석이 좋고 물이 깊은 중간 소에 자리를 잡은 채 말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것이다.
나무꾼들은 이 노인을 보는 대로 이름이 달랐다. 혹은 사람이 아닌 귀신일는지도 모르리라 했고, 혹은 신선이거나 산신령 일 것이리라고도 했다.
어떤 자는, 그 소 속에 들어 있는 천 년 묵은 이무기나 혹은 ‘맷방석만 한’ 자라가 둔갑(遁甲)을 하여 사람으로 화한 것이라고도 했다.
아무튼 그는 그 청수와 반석과 고목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젊은 나무꾼들은 그가 언제부터 거기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를 잘 모르리만치, 그는 어쩌면 본디부터 거기 살던 노인 같기도 했다. 그렇도록 노인은 그 크고 넓은 반석 위에 앉아 천연의 한 부분같이 그 푸른 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 깊은 물 속에 들어 있을 자라나 이무기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혼자서 조금도 심심해하거나 고적해 보이는 기색도 없었다.
나무꾼 가운데 계악(季岳)이란 자가 있었다. 힘이 세고 모험을 좋아하는 기짙이라 용기를 내어, 그 노인 곁으로 갔다.
“할아부지 많이 낚았입니꺼?”
“……”
“할아부지 다래끼² 좀 볼끼요?”
“……”
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없는 채 먼저와 꼭 같이 그냥 낚섯대를 들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계악은 맘속으로 겁이 좀 났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에는 하등 노한 기색이 보이는 것도 아니므로, 안심하고, 다래끼 속을 들여다보았다. 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다래끼를 물에서 건져보았다. 역시 빈 다래끼다.
“할아부지 여태까지 고기를 한 마리도 못 낚았입니꺼?”
“……”
노인은 역시 대답이 없다.
그러자, 또 계악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겁이 났다. 이 노인이 이렇게 고기는 한 마리도 낚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을 보면, 동무들이 말한 것처럼, 정말, 귀신이거나 신선이 아니면, 저 이무키나 자라의 화신 (化身) 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자코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뒤 계악이 나뭇짐을 지고 들어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다보니, 어저께외 그 노인이 손자 같은 젊은이에게 다래끼를 들려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나뭇짐을 받쳐 세워두고, 노인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할아부지 인제 들어가십니꺼?”:
하고,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나무꾼을 한참 바라보았다.
“할아부지 오늘은 멫 마리나 낚았입니꺼?”
하고, 나무꾼은 서슴지 않고 또 젊은이의 손에 들린 다래끼를 들여다보았다. 큰 손바닥만 한 봉어가 한 마리 있었다.
“할아부지 붕어 한 마리 낚았네요.”
“자네 성명이 무어지?”
노인은 드디어 입을 열어 이렇게 물었다.
“저는 계악이라고 합니더 .”
그러자 노인은 계악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자네 편모 시한가?”
하고 묻는다.
계악은 마음속으로, 이 노인이 내 편모 시하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러고 보면 동무들이 말한 것처럼, 이 노인은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고 신선이나 귀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또 한번 일으키며,
“네, 그렇십니더 .”
“연세가 몇이신가?”
“올해 갓 예순이올시더.”
그러자 노인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자네 하루에 나무 두 짐 할 수 있겠나?”
한다.
“나무 두 짐 하기야 문제없지요, 두 번 져내갈 수가 없어 그렇지……”
“그럼 낼부터는 두 짐을 해다가 여기까지만 져내오기야……”
“예.”
이튿날 어스름 때였다. 노인은 어저께와 같이, 젊은이에게 다래끼를 들리고 어저께와 대개 같은 시간에 돌아오고 있었다.
“할아부지 오늘은 및 마리 낚았입니꺼?”
계악이 다래끼를 들여다보니 오늘은 두 뼘 반이나 될 듯한 붕어가 두 마리 들어 있었다.
“자, 이거 한 마리 가져가서 자네 모친 반찬 해드리게.”
하고, 노인은 봉어 한 마리를 내어 계악에게 준다.
계악은 너무나 황송하여 ,
“할아부지 땔 나무는 걱정 마이소, 지가 대겠입니더.”
하고, 그 봉어를 받아 가지고 갔다.
이튿날도 역시 어스름 때, 계악은 나뭇짐을 지고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의 집은 동구(洞口)에 있었다. 초가집이 두어 채나 되었다. 큰 채에 노인 양주가 있고, 작은 채에는 노인의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집 뒤에는 대밭이 둘려 있고, 앞에는 오동나무와 소나무가 몇 그루 가려 있었다.
살림이라고는 독이 두어 개 놓여 있을 뿐이요, 따로 값나갈 가구가 있는 것도 아니요, 식량이 쌓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곳간이라고 하는 것이 겨우 땔나무를 쌓아두는 곳이었다. 계악이 맘속으로, 이 할아부지도 우리만치나 가난하군 했을 정도다.
계악이 나뭇짐을 져다 놓고 돌아가던 날도, 마씨(馬氏)는, 남편이 저녁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또 언제나 하는 버릇처럼 넋두리를 시작하였다.
“아아니 영감이 올해 나이 몇 살 된 줄이나 아슈. 벌써 몇십 년 전부터 밤낮 여든만 되면 공후(公侯)를 낚는다고 꼬여놓고 여든이 다 됐어두 왜 이날 이때까지 요 꼴이란 말유. 내 온 마흔 해 동안이나 영감 따라 사느라고 진일 마른일 어느 하루 쉴 새 없이 머슴같이 일만 해온 것이 공후는 고사하고, 당장 먹을 양식 걱정이나 없구, 몸에 걸칠 옷벌이라두 있다면 이다지 분하지 않겠소. 큰 서울서 고생을 겪다 겪다 못하여 동해변(東海邊)까지 이사를 갔다가 또다시, 이 기주 반계까지 오천 리도 넘고 만 리도 넘는 길을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끌고 다니며 죽을 고생만 시키고서도 아직 한이 덜 차서 사람 천대를 이 위에 더 시킬 작정 이유?”
마씨는 시렁 위에 얹어두었던 나무바가지에서 실꾸리를 집어 들며 노인을 향해 사뭇 넋두리다.
그러나, 이러한 마누라의 넋두리를 귀에 담아 듣지도 않는 듯한 노인은, 그 이마 꼭지 위에 솜을 쥐어다 붙여 놓은 듯이 두 군데나 하얗게 팍팍 센 마누라의 앞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다. 영감 마누라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꽤 차이가 있는 듯하다. 노인의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 자(字)는 자아(子牙), 나중 태공망(太公望)이 된 사람이지만, 그 재취 부인인
이 마씨의 넋두리에만은 그도 대적할 수 없었던 모양으로, 사정없이 볶아치는 마누라의 푸념에, 그는 잠자코, 방문 밖으로 열린 밤하늘의 별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니 영감도 입이 있으면 대답을 좀 해보우. 영감 나이 여든만 되면 날 호강시키겠다고 했소, 안 했소?”
“……”
“아아니, 사내대장부가 나 같은 계집사람 하나 속여먹으려고 거짓말을 했단 말요? 대답이나 좀 들어봅시다.”
마씨는 실꾸리를 놓고 노인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노인은 마지못해 얼굴을 돌리더니,
“앞으로 두 해만 더 참아보게.”
하고, 태연한 목소리다. ˛
“하느님 맙시사, 사십 년 동안을 밤낮없이 여든만 되면 부귀를 누린다고 하더니 여든이 돼서는 또다시 두 해를 더 참으라는구려! 아이 분통이 터져 죽겠네!”
“……”
노인은 뜰에 있는 사람을 내다보듯 표정 있는 얼굴로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금 이 마씨를 상대로, 사십 년 전에 자기가 여든이라고 한 것은, 반드시 여든 살이라고 박아 말한 것이 아니요, 여든쯤 되면 성공이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씨를 새삼스레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봐도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그는 방구석에 세워두었던 오현금(五絃琴)을 내루어³ 안았다. 현금(絃琴) 줄은 그의 손이 닿자 스르릉하고 생물(生物)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용(龍)아, 잠긴 용아.
쉰 길 물 속 노는 용이로다.
세월은 천 년,
강물은 만 리
어느 별도 어김없이
온통 비 되고
구름 되어
일어 높이 날리로다.
하늘이 부르시는 날.
용아, 잠긴 용아.
구천(九天) 기약하고
물 속 노는 용이로다.
소낙비 우레 속에 내리고
구름 번개 함께 일어도
소에 맺은 언약 깊으니
어찌 하리오
상기 일어 날지 못하노이다.
노인은 언제부터인지 오현금 가락에다 이렇게 물에 잠긴 채 하늘 날지 못하는 용의 노래를 붙일 때가 많았다. 그의 나이는 올해 여든 살이었다. 무을(武乙) 십오년에 나서, 태정(太丁) 제을(帝乙) 양대를 거쳐, 현왕(現王) 수신(受辛) 곧 주왕(紂王)에 이르기까지 4대의 왕을 보내고 맞이하는 동안 이미 팔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태정 (太丁)이 왕위에 있던 이십팔 년 동안은 아직도 그의 나이 너무 젊었거니와, 제을(帝乙) 이 즉위하던 마흔 살 때부터는 자기의 지혜와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에 몸부림이 일 때도 있었다. 제을왕이 즉위하던 경오(庚午)년에 왕의 명 령을 받들어, 지금의 서백후 희창의 아버지인 계력(季歷)이, 시호(始呼) 예도(翳徒) 두 이적 (夷賊)을, 물리칠 때만 해도, 그 대임(大任)을 자기에게 맡겨준다면, 하고 얼마나 혼자서 안타까워 가슴을 태웠던 겐지 몰랐다.
태정 이십칠년,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그는 상처를 당했다. 삼 년 지나서, 마흔한 살 때 재취를 맞아들인 것이 지금의 마씨였다.
뜻이 크고, 살림이 구차했던 그는, 그때 아직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 어린 대로 상당히 어여쁘기도 하던 후실 부인 마씨를 달래느라고, 잠자리 같은 데서 장래의 부귀와 공후를 은연히 약속한 바도 있어, 이 점, 지금 와서 마씨의 넋두리도 아주 언턱거리 없는 억지만은 아니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기가 은조(殷朝)에 공을 세우고, 그로 인하여 부귀를 누리게 되리란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만치 제을왕은 현명한 군주였고, 또 상도(商都:은의 수도)엔 제을의 왕위(王威)가 떨치고 있었다. 그때 아직 젊은 색시이던 마씨가
“마흔 살이면 지금부터 벼슬해도 빠를 건 없잖우?”
하면,
“그러나 큰일은 맡겨주지 않을걸…… 중신(重臣)들이 많으니까.”
하고, 그도 어디까지나 공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있음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큰일이란 뭐유? 벼슬하믄 됐지…….”
“하기야 그렇지. 하지만, 나한테 맞지 않는 일을 무리로 할 수는 없잖아?”
자아(子矛)는 자기의 그릇이 크기 때문에 작은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러자 마씨도 남편의 어딘지 자신에 넘치는 듯한 태도가 믿음직 했던지 얼굴에 생기를 띠며,
“그럼 작년에 계력이 오랑캐를 쳐서 큰 공을 세웠다던데, 당신도 그런 일을 맡았음 좋을 뻔했구려.”
“물건에 주인이 있듯이 일에도 다 주인이 있는 법이라 남의 일에 내가 괜히 춤을 추어도 싱거운 일이고, ……또, 큰일일수록 한 사람에게 그렇게 여러 번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니야.”
그도,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맘속으로는 설마 앞으로 스무 해 안에야 적당한 기회가 돌아오지 않으랴, 했던 것이다.
강상(姜尙) 자아가 생각한 ‘기회’ 란 것은 결국 국난(國難)이었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백성이 도탄에 들 때가 온다면 자기가 그것을 건지려 나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을이 현명하고 덕이 있으므로 다행히 그러한 국난은 오지 않았다.
자아는 자아대로, 또 사십 전후 때와 같이 이제는 그렇게 자기의 지혜와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은 의욕에 가슴을 태우는 일도 없어지고, 나이 들면 들수록 자기가 사십 이전에, 일단 그 오의(奧義)에 달통(達通)한 거라고 생각했던 괘리(卦理)에 대한 연구가, 이제금 다시 미달했던 점을 깨닫게 되곤 하였다. 그의 나이 예순여덟 살 때, 제을이 죽고, 수신(受辛)이 즉위했다. 소위 주왕(紂王) 또는 은주(殷紂)라 부르는 ‘은’나라 말왕이었다. 이 무렵부터 마씨의 넋두리는 점점 히스테리로 화해갔다.
“아아니 예순 안에는 큰일을 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일흔도 내일모렌데 대관절 어떻게 되는 셈요?”
마씨가 핀잔을 주면, 자아는
“무어 그리 급할 게 있나, 여든에 하면 못 하겠수?”
“어머나, 이젠 또 여든이야? 사람이 다 늙어빠진 뒤에 부귀를 하면 뭘 해요?”
“그렇지만 아직 일이 없는 걸 어떡허나…… 내 공부도 아직 모자라고…….”
“아유, 또 공부가 모자란대, 칠십 년이나 끙끙댄 건 다 어쩌구…….”
자아는 마누라의 푸념을 뒷전으로 남긴 채 낚싯대를 들곤 했다.
전왕(前王) 제을이 장자 미자계(微子啓)를 태자(太子)로 세우려고 한 것은 옳았다. 그것을 중신들이 공연한 형식론에 사로잡혀서 기어이 셋째 아들 수신으로 하여금 태자를 봉하게 했을 때, 자아는 이미 나랏일이 앞으로 어지러울 것을 깨달았다. 수신은, 자아가 예기한 바와 같이 과연 즉위한 즉시로 여색 (女色)을 탐하여 천하에 미인을 구해들이라고 엄명을 내루었다. 그리하여 그가 즉위한 지 칠 년 만에 달기(姐己)를 후궁으로 들이게 하였고, 달기가 후궁으로 들어온 이듬해에, 달기의 농간질로 강황후(姜皇后)를 위시하여 모든 양신(良臣)특을 죽이고, 그의 황음(荒淫)과 폭주(暴酒)는 극악에 달하게 되었다.
수신이 처음으로 달기를 후궁으로 들여서, 밤낮으로 주지육림(酒池肉林)⁴에 빠져 있던 어느 날 화백 (禾伯)의 가신(家臣)으로 있는 비신(費信)이 자아를 찾아왔다. 화백은 그 당시 수신의 중신이요, 비신은 일찍 이 기산(岐山) 백운자(白雲子)에게 음양(陰陽)과 인상(人象)을 배운 술객(術客)으로 자아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 그는 가끔 자아를 찾아와서는, 백운자와 화백의 사람됨을 칭송하는 동시, 수신의 부덕(不德)을 개탄하곤 하던 터였다. 붕어회에 막걸리를 몇 잔씩 나누고 나서, 비신은
“강선생 그러시지 말고 이때 나와서 일을 하시지요.”
하고, 자아를 건너다보았다.
“이때라는 뜻은 무엇인고?”
자아가 되물었다. 비신이 ‘이때’란 말을 설명 했다.
“물론 성군(聖君)을 기다려 일을 하는 것이 원측이란 것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지요. 그렇지만 선생의 나이 올해 일흔다섯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무한정하고 성군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그래 송언(松言: 비신의 자〔字〕)의 말인가?”
자아가 빙긋이 웃으며 또다시 이렇게 되묻자, 비신은 정색을 하며,
“관상(觀象) ―인상(人相) ―이야기야 제가 감히 선생께 하겠습니까? 제가 오늘 선생을 찾아뵌 것은, 사실은 화백의 부탁입니다. ……화백 말씀이 대장부의 할 일은 어느 때나 있는 거라고요, 군주가 어질지 못할 때는 그로 하여금 어질도록 하는 것도 또한 대장부의 일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건 화백의 말이야, 화백은 그런 사람이거든…….”
자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화백의 말씀이 타당하지 못합니까?”
“그거야 화백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좋은 말이기야 하지. 그러나, 화백이 이미 그것을 실행해온 사람이 아닌가?”
“그렇지요.”
여기서 자아는, 더 할 말은 없느냐는 듯이 비신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고 있다. 그러자 비신은,
“네, 네, 알겠습니다. ……화백께서 이미 오륙 년 동안이나 그것을 실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과 같이 왕을 조금도 더 어질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냐 하시는 말씀이죠?”
“……”
“그러니까 화백 말씀은 자기와 뜻 맞는 사람이 조정에 하나라도 더 있을수록 힘이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또 선생 같은 분이 같이 계시면 혹 지금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글쎄 문제는 거기 있다니까. 모든 일에는 방법이란 것이 있지 않느냐 말일세.”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에는 기틀이 있지 않은가?”
비신은, 이렇게 말하는 자아의 귀신같이 깊고 신비한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아의 말뜻을 도무지 확실히는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아는 이렇게 무언지 멍청한 얼굴로 자기의 눈 속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는 비신을 향해, 끝으로 한마디,
“뜻도 하늘이요, 기틀도 하늘일세, 하늘 아니면 피하는 것이 옳으이.”
이렇게 넌지시 던지며 술잔을 들었다.
이듬해 화백은 과연 충간(,忠諫)을 그치지 않다가 포락(胞烙)⁵이란 극형에 죽었으며, 비신은 화(禍)를 피해 동해변 (東海邊)으로 달아나게 되었던 것이다. 자아도 그들과 전후하여, 이 죄악의 도시를 피하고자 처음엔 일단 비신의 연줄로 그의 뒤를 좇아 동해변 쪽으로 갔다가 이듬해엔 다시 생각한 바 있어 서백후의 영지(領地)인 기주로 옮겨 앉게 되었던 것이다.
자아가 동해변에서 멀리 서백후의 영지를 찾아, 그 넘기 어려운 동관(潼關)을 넘어 기주로 옮겨 앉게 되었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서백후 희창이 괘리에 통달한 당대의 성인이라는 정평 (定評)이 이미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자아가 그의 영지를 찾아간 것은, 그가 베푸는 선정(善政)의 혜택을 입자거나 그와 더불어 괘리를 논의해보자거나 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더불어 하늘 뜻을 받드는 기틀을 함께하고자 하는 원대한 경륜에 관련되는 일이었다.
자아는. 수신이 제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즉시로 술과 여색에 빠짐을 보고서도 그 자신이 은실(晟史室)을 떠나 하늘을 받들어야 하리라고는, 처음, 생각하지 못했다. 제후(諸侯)에, 서백, 남백(南伯 ―鄂崇禹), 동백(東伯 ―姜桓楚)이 있고, 조정에 백미자(微子) 미중(微仲) 비간(比干) 기자(箕子) 등 곧은 신하와 어진 왕자들이 있으니 신(辛)이 끝내 횡포하면 그를 물리치고 다음 왕을 세울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뜻 아니한 이적(夷賊)의 침입 같은 것을 계기로 하여 정신을 돌릴 기회도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왕의 악행과 부덕은 극도에 달하여 동백 남백 화백을 모조리 극형에 부쳐 참살시키고, 왕자를 추방하고, 서백을 가두고, 요화(妖花) 달기의 웃음 한 번을 즐기기 위하여 일만 사람의 피와 눈물이 주지육림을 이룬 가운데, 백성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는 것을 보았을 때, 드디어 그는 은실에 천의(天意)가 다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아가 성탕(成湯)을 생각하게 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당대에서 제일 현명한 서백이 만약 이윤(伊尹)을 찾는다면 자기는 서백으로 하여금 성탕이 될 수 있게 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발로 서백을 찾아갈 성질도 아니었다. 하늘의 뜻을 믿는 그는 종내와 같이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묵묵히 하늘 기틀이 익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에 한 번씩 계악은 할아버지(자아)의 집에 나무 한 짐씩을 지고 왔다. 그러고는 대개 봉어나 잉어를 한 마리씩 얻어가곤 하였다. 이렇게 그들 사이에는 무언중에 약속이 성립되다시피 되었다.
얼마 동안 이렇게 지내는 사이에, 계악은 할아버지에 대해서나 세상 일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많아졌다. 그는 이제 이 할아버지의 성이 강씨요, 이름이 상이요, 자가 자아며, 호가 비웅(飛熊)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날마다 낚시질을 하되 그것은 혼자서 무엇을 생각하기 위한 방편이요, 고기잡이가 중요한 목적은 아니란 것과, 그러므로, 고기는 집 에 들어올 때나 되어 한두 마리
낚는 것이 보통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 낚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온종일 빈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 있다는 것과 그러면서 그는 천지간에 모르는 것이 없는 이인(異人)이거나 선인(仙人)일 수밖에 없으리라고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일방, 자아가 볼 때, 계악은 뚝심이 세고, 마음이 순실(淳實)하고, 효성이 두터운 나무꾼이었다. 지각만 다소 발달된다면 앞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리라 했다.
“할아부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입니꺼?”
“서백후가 성인이다.”
“서백후가 성인이면 먼젓번에는 왜 북백(北伯)을 쳐서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입니꺼?”
“성인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성인도 왜 이기지 못합니꺼?”
“기틀이 설어서 그렇다.”
“기틀이 설다는 건 무슨 뜻입니꺼?”:
“때가 덜 됐다는 뜻이다.”.
그러자 계악은 자아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더니,
“할아부지 저도 칼 쓰고 활 쏘는 거 배웠음 좋겠입니더.”
“가만있거라. 너는 내가 데리고 가마.”
“할아부지는 어디로 가실랍니꺼?”
“더 큰 고기를 낚으러 가야지.”
계악은 자아의 말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무언지 흡족한 마음이 되어 돌아갔다.
그러나 그 이튿날부터 자아에게는 새로운 불행이 닥쳤다. 가난으로 지지리 고생을 하며 영감(자아)에게 바가지 긁기를 일삼던 마씨가 병으로 갑자기 눕게 되자 일어나지 못한 것과, 바로 그 이튿날 나무를 지고 와야 할 계악이 그날부터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마씨의 병은 날로 위중을 더하여 이레 만에는 드디어 숨을 거두게 되었다. 급상(急傷)으로 심장을 다친 것이었다. 앞머리만이 솜을 붙인 듯이 새하얗게 세고, 뒤는 아직 반백으로 희끗희끗하던, 그해 아직 쉰여덟밖에 되지 않던 마씨는 그날도, 자아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공후를 낚지 못한다고, 자기는 평생 머슴살이 신세 밖에 되지 못하느냐고, 갖은 넋두리로 자아를 들볶다가 자리에 눕게 된 것이 종내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겨우 입을 뗀다는 것이
“고, 공후, 언제 낚우……?”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자아는 마씨의 운명이 다한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몹시 불쌍히 생각했으나 인력으로 미치지 못하는 바라 어찌할 수도 없었다. 시체를 거두어 뒷산에 묻고, 아들 급(伋)과 손자 득(得)으로 하여금 하루에 세 번씩 곡하게 하였다.
마씨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계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반드시 변괴 (變怪)가 아닐 수 없어, 계악의 생년월시와 성명을 부쳐서 신상을 알아보았다. 몸은 동남방에 있었다. 갇힌 몸이었다. 입에서 난 재앙이었다. 사흘 뒤엔, 풀리고, 도리어 서상(瑞祥)을 안게 되어 있었다. 자아는 혼자서 미소를 지었다. 계악의 재앙과 서상이 모두 자아 자신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닷새 뒤에, 계악은 뜻 아니했던 진객 한 사람을 데리고 과연 자아를 찾아왔다. 진객이란 오 년 전에 헤어진 뒤 서로 소식을 모르던 비신이었다.
“아아 반갑네, 그러지 않아도 오늘쯤은 저 사람 소식이 오지 않나 하고 있었네.”
자아는 계악을 가리키며 비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사가 끝나자 계악은 방 밖으로 나가고, 자아와 비신 두 사람은 방에서 술잔을 건네며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조용히 나누기 시작하였다.
비신은 먼저 계악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계악이 서백후에 대하여 불경한 말을 퍼뜨렸다는 죄목으로 관헌에 붙잡혀 들어온 것은 스무 날 전이라 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비신은 먼저, 그동안 자기가 서백후의 은혜를 입고 있었다는 것부터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신이 서백후를 찾아온 것은 두 해 전이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세월만 그다지 험악하지 않으면 다시 상도(商都)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옛날 스승인 백운자(自雲子)를 찾아가 뵈인 결과, 뜻을 돌이켜 서백후를 찾아오게 된 것이라 했다. 백운자를 만나보고 뜻을 돌이켰다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는 듯했다. 백운자는 당대에 있어 서백후와 병칭(倂稱)될 만한 도인(道人)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백후가 괘리에 통달한 성인이라면, 백운자는 관상(觀象: 天象·地象·人象)에 접신(接神)한 도인이었다. 그러한 백운자가 비신의 뜻을 돌렸다는 말 속에는, 이미 은조(殷朝)의 기수(氣數)가 다하고 새로운 천의 (天意)가 서백에게 비쳤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서백후는, 옛날 화백이 조성에 있을 때 그(화백)와 남달리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그 가신으로 있던 비신과도 잘 아는 터이므로 고인을 생각하고 특별히 반갑게 맞이해주었을 뿐 아니라, 궁중에 있으면서 그의 일을 돕게 하라는 분부까지 내리 게 되었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비신은 곧 마음속으로 자아의 생각을 했으나, 그 있는 곳을 몰라 늘 궁금하게 지내던 차, 계악이라는 뜻 아니했던 수인(囚人)의 진술로 지금의 이 주소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악의 진술이란 것은 다음과 같다.
계악이 처음 서백후에 대하여 불온한 말을 했다는 것은, 계악이 그날 마침 나무를 팔려고 기도(岐都)로 들어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자기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굉장한 이인을 알고 있다고, 자아의 자랑을 시작하여, 서백후가 아무리 당대의 성 인이라고 하지만 이 노인(자아)을 당할 수는 없을 게라고, 그 증거로 서백후는 먼짓번에 북백(北伯)을 쳐서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이 노인이 만약 군사를 거느리고 나갔더라면 문제없이 이기고 돌아왔을 거라고, 하늘 끝까지 추켜올리는 통에 서백후를 신과 같이 존경하고 승배하는 다른 사람들과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더라는 것 이다. 계악이 본디 뚝심 이 세고, 하니, 상대자를 한 대 갈긴 것이 그자의 갈비뼈를 분질러서 기절을 시켰다. 여기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과, 또 서백후에 대하여 불경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끌려와서 감옥에 갇혔는데, 그뒤, 기절했던 사람이 도로 살아나고, 또 서백후가 본디 인자한 사람이라 우매한 초부(樵夫)를 함부로 형벌하지 말라는 특지가 내려, 수인의 진술을 자세히 청취하기로 했던 바, 그 진술 속에 뜻밖에도, 강상자아 비웅이라는 노인이 등장하게 되어, 이런 인물이 과연 실제에 있느냐고 궁중에까지 화제가 도는 판에, 비신도 비로소 그 이름을 듣게 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거기서 곧 계악이라는 수인을 직접 만나보니 지극히 순실한 초부로 거짓말을 꾸며 할 사람 같지도 않고, 또, 그가 진술한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아 전날의 자아에 틀림이 없을 것 같아서, 비신이 서백을 만나보고, 자아와 자기의 관계를 자세히 이야기했더니, 서백도 그러한 인물 같으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즉시로 계악을 앞세우고 찾아온 것이라 했다.
비신은 이야기를 마친 뒤 자아를 쳐다보며,
“내 생각 같아서는 지금 서백이 강선생과 손잡을 수만 있다면 천하 일은 이렇게 쉬울 듯합니다.”
하고, 자기의 왼쪽 손바닥을 뒤집어 보였다.
“아직은 그렇지 않겠지.”
자아의 대답이었다.
비신이 다시 입을 열어,
“서백후는, 먼젓번에 북백 승후호(崇候虎)를 친 것으로 보아 천의는 이미 다다른 것으로 보되 다만 아직 이윤(伊尹)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철군(撤軍)을 했나 봅니다.”
한즉, 자아는 잠자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천하를 위해서 나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송언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내 거처를 알아버렸으니 내가 이제 이 반계 물고기나 편히 먹을 수 있겠나.”
자아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비신은 자아의 이 말로써 그에게도 움직일 생각이 없지 않음을 짐작했다. 그는 계속해서 물었다.
“일찍이 상도에 있을 때, 선생께서, 뜻도 하늘이요, 기틀도 하늘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이때를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 송언은 좀 서두르는 편이야, 나는 아직 이 반계에서 낚싯대나 들고 좀더 앉아 있고 싶은데…….”
“그렇지만 선생 연세가 이미 여든둘이 아닙니까. 아직도 낚싯대를 더 들고 계신다면 천하 일은 언제 하십니까?”
“내 나이 늙는다고 천하가 바빠서 더 빨리 늙어주겠나?”
“그 점이야 선생께서 더 아시겠지만 천하도 늙을 만치 늙었답니다.”
“……”
자아는 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비신은 끈기 있게 뎌욱 말을 붙였다.
“선생께서 상도에 계실 때 부인에게 공후(公侯)를 약속한 것도 이미 두 해 전에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러다가는 저도 부인처럼 선생의 공명을 구경하기 전에 명이 모자라겠습니다.”
“하늘 뜻이면 명이 모자르려구·…… 그렇다면 어디 내 현금 소리나 다시 한번 들어보게.”
자아는 이렇게 말하며, 비신의 입을 막으려는 듯이 오현금을 내루어 안았다.
자아의, 마디는 억세나 피부가 아직 젊은 사람같이 윤기 있는 손이 한번 현금 줄을 어루만지자, 갑자기 산골이 쩡쩡 울리는, 우렁차고 탄력 있는 가락이 튀기 시작하였다.
용아, 잠긴 용아,
천지의 품에 안긴 듯
물 속 노는 용이로다.
봄에 꽃 피면 새 우네
여름은 우레 번개,
하늘에 먹장구름 뭉게뭉게 일고
가을의 들녘
겨울의 솔바람
모두 임이 내게 주사
날 즐기게 하심이라
어화, 내 임을 좇노이다.
자아가 현금을 쉬자, 비신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선생의 현금 가락을 듣고 있으니 천지간에 즐거움이 충만해지는 듯합니다.”
한즉, 자아도 그 귀신같이 깊고 빛나는 두 눈 속에 미소를 담으며,
“자네 말마따나 나도 한 팔십 년간 이 천지간에 즐겁게 놀았으니, 이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은 천지의 은혜를 갚으려 하네.”
하며, 열린 방문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흘 뒤, 반계 골짜기에는, 늦은 봄날의 화창한 햇빛이 무지개를 쓰고 쏟아졌다. 오색 (五色) 수기(繡旗)와 푸른빛 일산대⁶에 싸인 속에, 황금으로 뚜껑하고, 은으로 멍에한 마차 한 대가 반계 동구에 머물렀다.
서백후가 마차에서 내렸다. 신장이 아홉 자 가웃, 용(龍)의 얼굴에 호랑이 눈썹이요, 눈은 모나고, 코는 우뚝 솟았다. 머리는 백발이요, 살빛은 희고, 기름한 얼굴엔 우아(優矛炷)와 서상(瑞祥)의 귀기(貴氣)가 서렸다.
문관 예복을 입은 비신과, 무관복을 입은 계악이 앞장서서 인도하고, 그 밖의 수십 명의 문무가 좌우와 앞뒤를 에워싼 가운데 서백후는 자아의 초옥을 찾아 좁은 산길로 발을 옮겨놓았다.
비신과 계악이, 먼저, 자아가 지금 초옥 속에 있지 않음을 알고, 서백후와 문무 일행을 마차 속에 머물게 하고, 두 사람만 중간 소의 낚시터를 찾아 들어갔던 것이다.
두 사람이 자아 앞에 나아가, 반석 끝에 꿇어앉아 절하며,
“서백후께서 친히 선생을 뵈오려 반계 동구에 머물러 계십니다.”
한즉, 자아는 낚싯대를 잡고, 앉은 채 푸른 물ㅌ} 묵묵히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서백후께서 친히 선생을 뵈오려 이곳까지 행차하셨습니다.”
“……”
자아는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도 그가 얼굴을 돌릴 때까지 이번에는 말없이 그냥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뒤에 자아는 낚싯대를 거두었다.
“후께서 반계까지 행차가 계셨다면 내가 내려가 뵙겠네.”
자아는 빈 다래끼와 낚싯대를 계악에게 들리고 비신의 인도를 받아 동구로 나왔다.
동구에서 행차를 머무르고 있던 서백후는 자아가 낚시터에서 돌아온 것을 보자 드디어 초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백후가 자아의 좁은 방에 들어가자, 그를 호위하여 따라온 문무 수원들은 방문 밖에서 뜰로 늘어섰다. 자아와 서백후는 서로 두 번씩 절했다.
자아가 허리를 구부려 절할 때마다 그의 흐트러진 흰머리털은 학이 춤을 추는 듯 너울거렸다. 나이는 서백후가 한 살 어른이요, 키도 석 자나 더 높았지만 본디 천품이 워낙 우아하게 생긴 이라 자아보다 더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보고, 이내, 무한한 즐거움을 깨달았다. 팔십이 넘도록 서로 이 사람을 기다린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즉각적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아의 심정은 천 년 외로운 소에 혼자 늙던 이무기가 흘연히 짝을 얻어 하늘 나는 용이 된 듯하였다.
“공후께서 이렇게 친히 누옥(陋屋)을 찾아주시니 황공무지(惶恐無地)로소이 다.”
자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의 높으신 덕을 사모하기 오래다가 오늘에야 친히 존안을 뵈오니 흥감하기 그지 없소이다.”
서백후도 만면에 희색을 띠고 이렇게 대답했다.
“상(尙)이 본디 능한 것이 없고, 믐이 이미 쇠했거늘 어찌 공후의 돌아보심에 견딜 것이 있사오리까.”
“과인(寡人)이 이제부터 선생의 가르치심을 받든다면 이는 하늘의 은혜가 만민에 미치는 바니 선생은 과히 사양하지 마십사.”
그들은 다시 일어나 서로 두 번씩 먼저와 같이 절했다.
서백후는 자아에게 바로 기도(岐都)로 동행할 것을 청했다. 자아는 사흘의 말미를 구했다.
이튿날 자아는 마씨의 무덤을 찾고, 사흗날엔 반계의 소와 숲과 반석에 제사를 지냈다.
약속한 사흘이 되자, 기도로부터, 금은으로 장식된 마차 두 태와, 산의생(散宜生) 신갑(辛甲) 등 문무 대표와 비신 계악 들이 자아를 맞으려 나왔다. 금으로 뚜껑하고 은으로 멍에한 마차에는 자아가 타고, 은으로 뚜껑하고 구리로 멍에한 마차에는 그의 가족들이 탔다.
오 년간이나 정을 붙이고 살던 초옥 앞뒤의 우거진 녹음 속에서는 꾀꼬리가 울고, 칡 넌출이 너울거리는 동구 밖 붉은 황톳길 위로는 태공망 진국대군사(太公望 鎭國大軍師)의 수기를 앞세운 금뚜껑 마차가 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구르기 시작하였다.
주
강태공(姜大公)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 선조가 여(邑) 땅에 봉해졌다 하여 여 상(呂尙)이라고도 함. 자(字)는 자아(子牙), 호(號)는 비태(飛熊), 나중 은주(殷紂)를 치고 주(周)를 일으킨 공으로 제(齊)에 봉해짐.
서백후(西伯侯) 성은 희(姬), 명 (名)은 창(昌). 자아(姜太公)를 등용시켜, 주(紂)를 치게 하고, 주역(周易: 彖辭)을 만들어낸 성인. 나중 주(周)문왕 시호(諡號)를 받음.
수신 (受辛) 은(殷)의 말왕(末王). 후에 주왕(紂王) 혹은 은주(殷紂)라 불림.
무을(武乙) 은(殷)의 제27대 왕.
태정 (太丁) 은(殷)의 제28대 왕.
제을(帝乙) 은(殷)의 제29대 왕.
마씨(馬氏) 전설에서 취재(取材).
비신(費信) 계악(季岳), 화백(禾佰), 세 사람 모두 가공 인물.
성탕(成湯) 하(夏)의 걸왕(桀王)을 치고 은(殷)을 세운 은의 제1대 왕
이윤(伊尹) 성탕을 도와 걸왕을 친 영웅.
연령(年齡) 기록에는 서백후가 강태공보다 십 년 장(長) 이라 하였으나 여기서는 일 년 장으로 하였다.
-끝-
2016년 5월 1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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