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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도물(阿堵物) : 돈 대신 사용하는 말.
아비규환(阿鼻叫喚) : 여러 사람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울부짖는 참상.
아유구용(阿諛苟容) : 아첨하여 구차하게 굶.
아전인수(我田引水) : 자기에게만 이롭게 하려는 것. 【참고】제 논에 물 대기.
아치고절(雅致高節) : 아담한 풍치와 높은 절개. ‘매화’의 속칭.
안고수비(眼高手卑) : 눈은 높으나 손이 낮음. 눈은 높으나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 전에는 사치하게 살던 사람이 가난해져 눈은 높고 돈은 전처럼 쓰지 못할 경우를 일컫기도 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 : 편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앎.
안빈낙도(安貧樂道) :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기며 삶.
안중지인(眼中之人) : 눈 속에 있는 사람. 정(情)든 사람을 뜻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말하기도 하고, 눈앞에 없어도 평생 사귄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안중지정(眼中之釘) : 눈에 박힌 못이라는 뜻. 곧, ①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비유. ②몹시 싫거나 미워서 항상 눈에 거슬리는 사람(눈엣가시)의 비유.
【동의어】안중정(眼中釘).
[출전] ‘신오대사(新五代史)’의 ‘조재례전(趙在禮專)’.
당나라 말 혼란기에 조재례(趙在禮)라는 악명 높은 탐관오리(貪官汚吏)가 있었다. 그는 하북절도사(河北節度使) 유인공(劉仁恭)의 수하 무장이었으나 토색(討索)질한 재무를 고관대작에게 상납하여 출세길에 오른 뒤, 후양(後梁)과 후당(後唐), 후진(後晉)의 세 왕조에 걸쳐 절도사를 역임했다. 송주(宋州)에서도 백성들로부터 한껏 착취한 조재례(趙在禮)가 영흥(永興) 절도사로 영전, 전임하게 되자 송주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놈이 떠나가게 되었다니 이젠 살았다. 마치 ‘눈에 박힌 못(안중지정(眼中之釘))’이 빠진 것 같군.” 이 말이 전해지자 화가 난 조재례(趙在禮)는 보복을 하기 위해 1년만 더 유임시켜 줄 것을 조정에 청원했다. 청원이 수용되자 그는 즉시 ‘못 빼기 돈(발정전(拔釘錢))’이라 일컫고 1,000푼씩 납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미납자는 가차 없이 투옥하거나 태형에 처해졌다. 이처럼 악랄한 수법으로 착취한 돈이 1년간에 자그마치 100만 관(貫)이 넘었다고 한다.
안하무인(眼下無人) : 눈 아래 사람이 없음.
암중모색(暗中摸索) :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음. 어림으로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아내려 함.
【준말】암색(暗索). 【동의어】암중모착(暗中摸捉). 【유사어】오리무중(五里霧中).
[출전] ‘수당가화(隋唐佳話)’.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허경종(許敬宗)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경망한데다가 방금 만났던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할 적도로 건망증이 심했다. 어느 날 친구가 허경종(許敬宗)의 건망증을 비웃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네 같은 이름 없는 사람의 얼굴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조식(曹植)이나 사령운(謝靈運) 같은 문장의 대가라면 ‘암중모색(暗中摸索)’을 해서라도 알 수 있다네.”
암향부동(暗香浮動) : 그윽한 향기가 퍼짐.
앙급지어(殃及池魚) : 재난이 뜻하지 않은 곳에 미치다. 초(楚)나라 성문에 불이 나자 성 밖에 있는 연못의 물로 이 불을 끄게 되었는데, 못의 물이 전부 없어져 그 속에 있던 고기들이 모두 말라 죽은 고사(故事)에서 비롯됨. 이유 없이 재앙(災殃)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애매모호(曖昧模糊) : 사물의 이치가 희미하고 분명치 않음.
애인여기(愛人如己) :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듯 함.
애인자인항애지(愛人者人恒愛之) :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늘 그를 사랑해준다.
약롱중물(藥籠中物) : ‘약농 속의 약품’이란 뜻으로, 항상 곁에 없어서는 안될 긴요한 인물(심복)을 이르는 말. 【동의어】약롱지물(藥籠之物). 【참조】양약고구(良藥苦口).
[출전] ‘당서(唐書)’의 ‘적인걸전(狄仁傑專)’.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황후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때의 이야기이다. 14세 때 2대 황제인 태종(太宗)의 후궁이 된 그녀(무후(武后))는 26세 때 태종이 죽자 여승이 되었으나 재색(才色)을 탐낸 고종의 명에 따라 환속(還俗)하여 그의 후궁으로 있다가 고종 6년에 황후가 되었다. 그 후 고종이 중풍에 걸리자 무후는 스스로 천후(天后)라 일컫고 수많은 명신(名臣)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고, 전 황후의 소생인 태자를 폐하는 등 포악한 정치를 했다. 고종이 죽은 뒤 무후(武后)의 친아들인 중종(中宗)과 예종(叡宗)을 세웠으나 곧 폐하고 67세 때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라고 했다.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가 출현한 이 정변을 무주혁명(武周革命)이라고 한다.
그 무렵 적인걸(狄仁傑)이라는 청렴 강직하고 식견이 높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더없이 잔인하고 명석한 무후를 직간(直諫), 보필하여 어지러웠던 정치를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유능한 선비를 추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조야(朝野)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따라서 적인걸(狄仁傑)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원행충(元行沖)과 같은 박학다재(博學多才)한 인물도 있었다. 그 원행충이 어느 날 적인걸(狄仁傑)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공(相公) 댁에는 ‘맛있는 것(훌륭한 인재)’이 많습니다. 혹 과식하시어 배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저 같은 쓴 약도 곁에 놔두십시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양약고어구이이어병(良藥苦於口而利於病)), 충언을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충언역어이이이어행(忠言逆於耳而利於行))’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자 적인걸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야말로 바로 내 ‘약롱중물(藥籠中物)’일세. 하루라도 곁에 없어서는 안 되고 말고(불가일일무야(不可一日無也)).”
약방감초(藥房甘草) : 무슨 일에나 빠짐없이 끼임.
약육강식(弱肉强食) :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힘.
양금택목(良禽擇木) :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는 뜻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김의 비유.
【동의어】양금상목서(良禽相木棲).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專)’의 ‘충공십팔년조(衷公十八年條)’, ‘삼국지(三國志)’의 ‘촉지(蜀志)’.
춘추시대 유가(儒家)의 비조(鼻祖)인 공자(孔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遊說)하기 위해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孔子)에게 상의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孔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衛)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양금택목(良禽擇木))’고 했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하느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孔文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공자(孔子)의 귀국을 만류했다.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衛)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 더 머물도록 하시오.” 공문자(孔文子)의 간곡한 만류에 따라 공자(孔子)는 기분이 풀리어 위(衛)나라에 머물려고 했으나 때마침 노(魯)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간청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공자는 노구(老軀)에 스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노나라로 돌아갔다.
양대(陽臺) : 해가 잘 비치는 대. 남녀의 정교(情交)를 의미한다.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 : 한 번 정교(情交)를 맺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다.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의 고기를 내걸고 실상은 개고기를 팖. 겉과 속이 다름. 【동의어】현양수매마육(懸羊首賣馬肉),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유사어】양질호피(羊質虎皮), 현옥고석(衒玉賈石).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의 ‘무문관 양자법언(無門關 揚子法言)’.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 때의 일이다. 영공은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그 유행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禁令)을 내렸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양두구육(羊頭狗肉))’과 같은 것이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금하십시오.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공은 안영의 진언(眞言)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금지령(男裝禁止令)을 내렸다. 그러자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양상군자(梁上君子) : 들보 위의 군자, 집 안에 들어온 도둑의 비유. 천정 위의 쥐를 달리 일컫는 말.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진식전(陳寔傳)’.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태구현(太丘縣)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현민(縣民)들의 생계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식(陳寔)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내가 몰래 들어와 대들보 위에 숨었다. 도둑이 분명했다. 진식(陳寔)은 모르는 척하고 독서를 계속하다가 아들과 손자들을 대청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악인(惡人)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양상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그러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 진식(陳寔)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는 마룻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진식이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악인(惡人)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 진식(陳寔)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이로부터 이 고을에 다시는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
양수집병(兩手執餠) : 두 손에 떡을 진 격.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 좋은 약은 쓰다. 【동의어】간언역어이(諫言逆於耳), 금언역어이(金言逆於耳),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
[출전]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侯世家)’,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육본편(六本篇)’.
이것은 공자(孔子)의 말씀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육본편(六本篇)’과 ‘설원(說苑)’의 ‘정간편(正諫篇)’에 실려 있다. 효과가 있는 좋은 약은 입에 넣을 때 쓰고, 사람들에게 듣는 충고는 좋은 말일수록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은 곧은 말을 하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번창했고,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무조건 따르는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 임금에게 다투는 신하가 없고, 아버지에게 다투는 아들이 없고, 형에게 다투는 동생이 없고, 선비에게 다투는 친구가 없다면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하가 간(諫)해야 하고,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들이 간(諫)해야 하고, 형이 잘못을 저지르면 동생이 간(諫)해야 하고,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친구가 간(諫)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나라에 위태하고 망하는 징조가 없고, 집안에 패란(悖亂)의 악행도 없고, 부자와 형제에도 잘못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간 학정에 시달려온 민중(民衆)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2세 황제 원년(元年)에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훗날의 한고조)은 역전(歷戰) 3년 만에 경쟁자인 항우(項羽)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했다. 유방은 3세 황제 자영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劉邦)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자 강직한 용장 번쾌(樊睫)가 간했다.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 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옵소서.” 유방(劉邦)이 듣지 않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張良)이 간했다. “당초 진(秦)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같은 서민이 이처럼 왕궁에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정하시자 재보와 미색(美色)에 현혹되어 포악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충언역어이이어행(忠言逆於耳利於行)), 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독약고어구이이어병(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樊睫)의 진언을 가납(嘉納)하시홉소서.” 유방(劉邦)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에 진을 쳤다.
양자력(量自力) : 자기 자신의 능력의 정도는 자신만이 안다는 의미. 어떤 일을 마음이 곧고 충실하게 탐구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양자택일(兩者擇一) : 둘 중의 하나를 택함.
양포지구(楊布之狗) : 변한 겉모습을 보고 속까지 변했다고 판단하다.
양포(楊布)가 외출할 때는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맞아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는데, 양포의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 대서 개를 때리려 했더니, 형 양주(楊朱)가 말하기를 “네 개가 나갈 때는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온다면 너 역시 괴상하게 여기지 않겠느냐?”고 나무랐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겉모습이 변한 것을 보고 속까지 변해 버렸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양호유환(養虎遺患) : 범을 길러 우환거리를 남김. 호랑이를 키워 후에 그 호랑이에게 해를 입는다는 말.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한테 도리어 손해를 입게 된다. 혹은 스스로 화를 만들어 당함을 뜻하는 말이다.
어두육미(魚頭肉尾) : 물고기는 대가리, 짐승의 고기는 꼬리가 맛이 좋음을 이르는 말.
어로불변(魚魯不辨) : 매우 무식함.
어망홍리(魚網鴻離) :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렸다. 즉, 구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반대로 구하려고 하지 않은 것을 얻었다는 말이다.
어목연석(魚目燕石) : ‘어목(魚目)’은 물고기의 눈, ‘연석(燕石)’은 연산(燕山)의 돌. 모두 옥(玉)과 비슷하여 옥으로 혼동함. 허위를 진실로 우인(愚人)을 현인(賢人)으로 혼동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변성룡(魚變成龍) :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됨. 어릴 적에는 신통치 못하던 사람이 자라서 훌륭하게 됨을 일컫는 말이다.
어부지리(漁父之利) :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다투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봄.
【동의어】견토지쟁(犬兎之爭), 방휼지쟁(蚌鷸之爭), 전부지공(田父之功),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 ‘전국책 연책(戰國策 燕策)’.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燕)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하도록 부탁했다. 조(趙)나라에 도착한 소대(蘇代)는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惠文王)을 설득하여 혜문왕의 연나라 침공 계획을 철회시켰다고 한다. “오늘 귀국(貴國)에 들어오는 길에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방합(蚌蛤))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휼(鷸))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 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雙方)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어부(漁夫)에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燕)나라가 조개라면 조(趙)나라는 도요새입니다. 연(燕)과 조(趙)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하게 만든다면, 귀국(貴國)과 인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漁父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입니다.” “과연 옳은 말이오.”하며 혜문왕은 침공을 중지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 즉,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뜻한다.
어수지친(魚水之親) : 고기와 물의 친함. 임금과 백성이 친밀한 것을 일컫기도 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동의어】수어지교(水魚之交).
어유부중(魚遊釜中) :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동의어】부중지어(釜中之魚).
억강부약(抑强扶弱) :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일.
억조창생(億兆蒼生) : 수많은 백성.
언문풍월(諺文風月) : 지난날, 우리 글로 지은 시가(詩歌) 따위를 얕보아 이르던 말. 격식을 갖추지 아니한 사물을 이르는 말.
언서지망(偃鼠之望) : 쥐는 작은 동물이라서 강물을 마신대야 자기 배하나 밖에 못 마신다. 자기 정한 분수가 있으니 안분(安分)하라는 말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 :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음.
언중유골(言中有骨) : 말 속에 뼈가 있음. 예사로운 말 속에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말한다.
언즉시야(言則是也) : 말인즉 옳음.
엄목포작(掩目捕雀) : 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으려 한다. 일을 성취하려면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
엄이도령(掩耳盜鈴) : 자신이 듣지 않는다고 남도 듣지 않는 줄 알다. 방울을 훔치는 도적이 방울이 소리가 난다고 자기 귀만 막고 방울을 훔친다. 모든 사람이 그 잘못을 다 아는데 얕은 수를 써서 남을 속이려 하나 아무 효과가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동의어】엄이도종(掩耳盜鐘).
여도지죄(餘桃之罪) : 사랑할 때는 허물이 되지 않던 일도 사랑이 식으면 죄가 된다.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동의어】여도담군(餘桃啗君).
[출전] ‘한비자(韓非子)’의 ‘설난편(說難篇)’.
전국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刖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彌子瑕)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彌子瑕)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먹이다니…”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彌子瑕)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彌子瑕)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여도(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을 밟는 것과 같음. 매우 위험한 것을 말함.
여민동락(與民同樂) :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김.
여반장(如反掌) :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매우 쉽다는 뜻.
여우여로(如愚如魯) : 당나라 때 동산선사의 ‘보경삼매(寶鏡三昧)’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이름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조용히 행할 뿐’임을 가리킨다.
여자동포(與子同袍) : ‘자네와 두루마기를 같이 입겠네’ 라는 뜻으로 친구(親舊)사이에 서로 허물없이 무관하여 하는 말.
여출일구(如出一口) : 한입에서 나온 것처럼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같음.
역린(逆鱗) : 용의 턱 아래 거슬려 난 비늘. 군주의 노여움에 비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 항우(項羽)의 힘센 기상을 비유한 말. 영웅의 힘이 세고 기상이 큰 것을 일컬음. 【주】발산개세(拔山蓋世) :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함.
역자교지(易子敎之) :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치다. 부자(父子)사이에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인다.
역자이식(易子而食) : 식량이 없어 아들들을 바꾸어 삶아 먹다.
역지사지(易之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말.
연도일할(鉛刀一割) : 납으로 만든 칼도 한번은 자를 힘이 있다. 자기의 힘이 미약하다고 겸손하게 하는 말로도 쓰이며, 소인배도 한번은 착한 일을 할 수 있으나 두 번은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말로도 쓰인다.
연목구어(緣木求魚) : 불가능한 일을 하고자 할 때 비유하는 말. 산에서 물고기 잡기.
[출전] ‘맹자(孟子)’의 ‘양혜왕편(梁惠王篇)’.
전국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 3년, 양(梁)나라 혜왕(惠王)과 작별한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로 갔다. 당시 나이 쉰이 넘은 맹자(孟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遊說) 중이었다. “전하의 대망(大望)이란 무엇입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孟子) 앞에서 패도(覇道)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하였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 아니면 아름다운 색(色)이 부족하시기 때문입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孟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은 천하통일을 하시고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하오나 종래의 방법(무력(武力))으로 천하통일(天下統一)을 이루려 하시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연목구어(緣木求魚))’과 같습니다.” ‘잘못된 방법(무력(武力))으론 목적(천하통일(天下統一))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것이 그토록 무리한 일이란 말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합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습니다. 하오나 패도(覇道)를 좇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연부역강(年富力强) : 나이가 적고 젊음이 넘쳐 혈기가 왕성함.
연비어약(鳶飛魚躍) :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다.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으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도(道)임을 말한다.
연안대비(燕雁代飛) : 제비가 올 때 기러기는 떠난다. 사람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유사어】연홍지탄(燕鴻之歎).
연저지인(吮疽之仁) : 장군이 부하를 지극히 사랑함을 이르는 말. 중국 전국 시대의 오기(吳起)라는 장수가 자기 부하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낫게 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다. ‘사기(史記)’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연하고질(煙霞痼疾) :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병처럼 깊음을 뜻하는 말이다.
【유사어】천석고황(泉石膏肓).
연홍지탄(燕鴻之歎) : 봄과 가을에 엇갈리는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이다. 【유사어】연안대비(燕雁代飛).
염념불망(念念不忘) : 자꾸 생각하여 잊지 못함.
염량세태(炎凉世態) :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사어】세태염량(世態炎凉).
영고성쇠(榮古盛衰) : 사람의 일생은 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함.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 그 곳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흘러간다. 배움의 길도 속성으로 이루려 하지 말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닦아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영만지구(盈滿之咎) : 가득 차면 기울고 넘친다. 만사가 다 이루어지면 도리어 화를 가져오게 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영어(囹圄) : 감옥. 교도소.
예미도중(曳尾塗中) : 부귀로 인해 속박 받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살겠다.
오동일엽(梧桐一葉) : 오동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 한 가지 구실을 보면 일의 전말을 알 수 있다는 말로 쓰인다.
오두미배요(五斗未拜腰) : 녹으로 받는 오두미 때문에 허리를 꺾을 수 없다.
오리무중(五里霧中) :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장해전(張楷傳)’.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병을 핑계대고 끝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장해(張楷)는 ‘춘추(春秋)’의 ‘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서 평소 거느리고 있는 문하생만 해도 100명을 웃돌았다. 게다가 전국 각처의 숙유(夙儒)들을 비롯하여 귀족, 고관대작, 환관(宦官)들까지 다투어 그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는 이를 싫어하여 화음산(華陰山) 기슭에 자리한 고향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해(張楷)를 좇아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은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볐다. 나중에는 화음산(華陰山) 남쪽 기슭에 장해(張楷)의 자(字)를 딴 공초(公超)라는 저잣거리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장해(張楷)는 학문뿐만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능하여 쉽사리 ‘오리무(五里霧)’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방술(方術)로써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편 관서(關西) 사람인 배우(裵優) 또한 능히 3里의 안개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배우(裵優)는 스스로 장해(張楷)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장해(張楷)의 제자로 들어가 배우기를 바랐지만 장해(張楷)는 모습을 숨겨서 그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주】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은 ‘오리무(五里霧)’에 ‘중(中)’자를 더한 것인데 처음부터 ‘중(中)’자가 붙어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만무도(傲慢無道) :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고 버릇이 없음.
오매불망(寤寐不忘) : 자나 깨나 잊지 못함.
오매사복(寤寐思服) : 자나 깨나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오비삼척(吾鼻三尺) : 내 코가 석자. 내 일도 감당 못해 남을 도울 여유가 없음을 뜻한다.
오비이락(烏飛梨落)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우연의 일치를 의도적인 것으로 남에게 의심을 받았을 때 하는 말.
오상고절(傲霜孤節) :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 ‘국화’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오설상재(吾舌尙在) : 몸은 조금 망가졌어도 혀만 성하면 뜻을 펼 수 있다.
【참조】시오설(視吾舌).
오십보백보(五十步 百步) :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 근소한 차이를 말함. 【동의어】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유사어】대동소이(大同小異).
[출전] ‘맹자(孟子)’의 ‘양혜왕편(梁惠王篇)’.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중엽,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진(秦)나라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다(이후 양나라라고도 불렸음). 그러나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도 늘 패하는 바람에 국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그래서 혜왕(惠王)은 국력회복을 자문하기 위해 당시 제후들에게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 중이었던 맹자(孟子)를 초청했다. “선생이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이렇게 와 준 것은 과인에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비책(秘策)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겠소?” “전하! 저는 귀국(貴國)의 부국강병과 상관없이 ‘인의(仁義)’에 대해 아뢰고자 왔나이다.” “백성을 생각하라는 선생의 ‘인의(仁義)의 정치(政治)’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힘써 베풀어 왔소. 예컨대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이들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옮기고, 늙은이와 아이들에게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누어 주도록 하고 있소. 그와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면 하내의 곡식으로 구호하도록 힘쓰고 있지만, 백성들은 과인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것 같지 않고, 또 이웃 나라의 백성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전하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아뢰겠나이다.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사옵니다. 그런데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다면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나이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소?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들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는 이웃 나라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惠王)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웃 나라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백성을 구호한 것을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서 구호한 것인 양 자랑한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오언장성(五言長城) : 오언시(五言詩)를 잘 짓는 것이나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조하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바랄 수 없는 일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오우천월(吳牛喘月) : 오(吳)나라의 소가 더위를 두려워해서 ‘달’을 보고도 ‘해’인줄 알고 헐떡인다. 지레 짐작으로 공연한 일에 겁을 내어 걱정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참고】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오운지진(烏雲之陣) : 까마귀가 흩어지는 것처럼, 또 구름이 모이는 것과 같이 모임과 흩어짐이 계속되는 변화가 많은 진법(陣法)을 말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 :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같은 경우에 처하게 됨. 【동의어】오월지사(吳越之思), 오월지쟁(吳越之爭). 【유사어】동주상구(同舟相救), 동주제강(同舟濟江), 오월지부(吳越之富), 호월동주(胡越同舟).
[출전] ‘손자병법(孫子兵法)’의 ‘구지편(九地篇)’.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死地)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예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오월동주(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吳)나라 사람이나 월(越)나라 사람이나 모두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은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오조사정(烏鳥私情) : 까마귀가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임. 부모에게 효양(孝養) 하는 정(情).
오합지졸(烏合之卒) : 임시로 모집하여 훈련이 없는 병사. 수는 많으나 쓸모가 없음.
【동의어】오합지중(烏合之衆). 【유사어】와합지중(瓦含之衆).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경감전(耿龕傳)’.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전국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 대사마가 된 유수(劉秀)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려고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劉秀)의 토벌군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 “유자여(劉子輿)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王郞)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王郞)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劉秀)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아내는 것과 같을 뿐이다.
오합지중(烏合之衆) : 까마귀 떼와 같이 조직도 훈련도 없이 모인 무리.
옥상가옥(屋上家屋) :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말. 헛수고를 하거나 필요 없는 일을 거듭함을 뜻한다. 【참조】옥하가옥(屋下架屋).
동진의 유중초가 수도 건강(健康:지금의 남경)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詩) ‘양도부(陽都賦)’를 지었다. 그는 먼저 이 시를 친척이자 재상인 유양에게 보였다. 유양은 친척간의 정리 때문이었던지 턱없이 치켜 세워주었다. “양도부(陽都賦)는 좌태충이 지은 ‘삼도부(三都賦)’와 비교해 보아도 손색(遜色)이 없군.” 이렇게 되어 너도나도 유중초의 양도부(陽都賦)를 베껴가는 바람에 나라 안의 종이가 동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한심한 작태에 태부(太傅) 사안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탄식했다. “양도부(陽都賦)란 시는 마치 ‘지붕 밑에 지붕을 걸쳐놓은 것(옥상가옥(屋上家屋))’과 같은 시야. 삼도부(三都賦)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건데…”
그 뒤 상당한 세월이 흘러 남북조시대에 나온 ‘안씨가훈(安氏家訓)’이란 책에도 이런 대목이 보인다.
『위진(魏晋)이래의 책들은 내용이 중복되고 남의 흉내만 내고 있어 ‘지붕 밑에 지붕을 만들고’ 평상위에 평상을 만든 것 같다.』
【주】처음에는 ‘지붕 밑에 지붕을 걸쳐놓은 것’이었는데, 어느 때 부터인지 ‘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것(옥상가옥(屋上家屋))’으로 바뀌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옥석동궤(玉石同櫃) : 옥과 돌이 한 궤짝 속에 있음. 좋은 것과 나쁜 것, 혹은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한데 섞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옥석혼효(玉石混淆) : 옥과 돌이 뒤섞여 있다. 【동의어】옥석동가(玉石同架), 옥석동궤(玉石同櫃), 옥석혼교(玉石混交). 【유사어】옥석구분(玉石俱焚), 옥석동쇄(玉石同碎).
[출전] ‘포박자(抱朴子)’의 ‘외편 상전(外篇 尙專)’.
동진(東晉)의 도사(道士)인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이 ‘도의(道義)의 대해(大海)’라 한다면 제자백가(諸子百家:춘추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의 글은 그것을 보강하는 냇물의 흐름이라 할 수 있으며, 방법은 달라도 덕(德)을 닦는 데는 변함이 없다. 옛사람들은 재능을 얻기 어려움을 탄식하여 ‘곤륜산(崑崙山:중국 전설상의 산)의 옥이 아니라 해서 야광주(夜光珠)를 버리거나 성인(聖人)의 글이 아니라 해서 수양에 도움이 되는 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漢)과 위(魏) 이래 ‘본받을 만한 좋은 말(가언(嘉言))’이 많이 나와 있는데도, 식견이 좁은 사람들은 자의(字義) 해석에만 사로잡혀 오묘한 점을 가볍게 보며 도외시(度外視)한다. 또한 소도(小道)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거나, 넓고 깊어서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고 많은 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룬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또 천박한 시부(詩賦)를 감상하는가하면, 뜻 깊은 자서(子書:제자의 서(書))를 가볍게 여기며 유익한 금언(金言)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래서 참(진(眞))과 거짓(위(僞))이 전도(顚倒)되고, ‘옥과 돌이 뒤섞이며(옥석혼효(玉石混淆))’, 아악(雅樂)도 속악(俗樂)과 같은 것으로 보고, 아름다운 옷도 누더기로 보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옥오지애(屋烏之愛) : 사람이 사랑스러우면 그 사람 집의 까마귀까지도 귀여워함. 한번 사람을 좋게 보면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을 좋게 보게 됨을 말한다.
옥하(玉瑕) : 옥에도 티가 있다.
옥하가옥(屋下架屋) : 집 아래 집을 다시 짓는다. 부질없이 모방만 하고 새로운 발전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조】옥상가옥(屋上家屋).
온고지신(溫故之新) :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안다. ‘온고(溫故)’는 ‘옛 것(고(故))을 배우다(온(溫))’는 뜻이고, ‘지신(知新)’은 ‘새 것(신(新))을 알다(지(知))’이니, ‘온고지신(溫故之新)’은 ‘옛 것을 공부하면 새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참조】구이지학(口耳之學), 기문지학(記問之學).
[출전]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 된다. 즉 고전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예기(禮記)’의 ‘학기(學記)’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기문지학(記問之學: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기문지학 부족이위사의(記問之學 不足以爲師矣)).』 지식을 암기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溫故之新)’과 표리(表裏)를 이루는 말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 원수를 갚고자 고생을 참고 견딤을 비유한 말.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딤의 비유.
【유사어】절치액완(切齒扼腕), 회계지치(會稽之恥).
[출전] ‘사기(史記)’의 ‘월세가(越世家)’.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임종 때 합려(闔閭)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勾踐)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吳王)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와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夫差)야! 월왕 구천(勾踐)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때마다 부차(夫差)는 임종 때 부왕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참모인 범려가 간(諫)하는 것도 듣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越)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吳)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夫差)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상담(嘗膽))’, ‘회계의 치욕(회계지치(會稽之恥))’을 상기(想起)했다. 그리고 구천 부부는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을 당한지 12년이 지난 후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曆戰) 7년 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에 육박한 구천은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을 수 있었다. 부차는 용동(甬東)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勾踐)의 호의를 끝내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완물상지(玩物喪志) : 쓸 데 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소중한 자기의 의지를 잃음. 물질에만 너무 집착하다보면 마음의 빈곤을 가져와 본심을 잃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완벽(完璧) : 모자라거나 흠잡을 데가 없다.
【동의어】완조(完調). 【유사어】연성지벽(連城之壁), 화씨지벽(和氏之壁).
[출전] ‘사기(史記)’의 ‘인상여열전(藺相如列傳)’,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조편(趙篇)’.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천하명옥(天下名玉)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어떻게든 화씨지벽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조(趙)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성(城) 15개와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혜문왕(惠文王)에게는 실로 난처한 문제였다. 제의를 거절하면 당장 쳐들어 올 것이고, 화씨지벽(和氏之壁)을 넘겨주면 그냥 뺏겨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혜문왕(惠文王)은 중신들을 소집하여 의논했다.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강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다’하여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혜문왕(惠文王)은 중신들에게 물었다. “사신으로는 누가 적임자일 것 같소?” 그러자 대부인 목현(繆賢)이 말했다. “신의 식객에 지모와 담력이 뛰어난 인상여(藺相如)라는 자가 있사온데, 그 자라면 차질 없이 중임을 완수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리하여 사신으로 발탁된 인상여(藺相如)는 소양왕(昭襄王)을 알현하고 화씨지벽(和氏之壁)을 받치게 되었다. 화씨지벽을 손에 들고 살펴보던 소양왕(昭襄王)은 감탄하여 희색이 만면했으나 약속한 15개의 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인상여(藺相如)는 조용히 말했다. “전하, 그 화씨지벽(和氏之壁)에는 흠집이 조금 있사온데 그것을 외신(外臣)에게 주시면 가르쳐 드리겠나이다.” 소양왕(昭襄王)이 무심코 화씨지벽을 건네주자 인상여(藺相如)는 그것을 손에 든 채 궁궐 기둥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소양왕(昭襄王)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하께서 약속하신 15개의 성을 넘겨주실 때까지 이 화씨지벽은 외신이 갖고 있겠나이다.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화씨지벽은 외신의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 부딪쳐 깨지고 말 것이옵니다.” 화씨지벽이 깨질까 겁이 난 소양왕(昭襄王)은 인상여(藺相如)를 일단 숙소로 돌려보냈다. 인상여는 숙소에 돌아오자 화씨지벽을 부하에게 넘겨주고 서둘러 귀국시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양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당장 인상여(藺相如)를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죽였다가는 신의 없는 편협한 군왕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그대로 곱게 돌려보냈다. 이리하여 화씨지벽은 ‘온전한 구슬(완벽(完璧)’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인상여(藺相如)는 그 공으로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왕자불가간(往者不可諫)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왕후장상(王候將相) : 제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왜자간희(矮子看戱) : 난장이가 키가 작아 구경은 못하고 남들이 보고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가 본 체, 아는 체 한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남이 말하면 자기도 같이 아는 척하고 떠드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요동지시(遼東之豕) :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준말】요시(遼豕). 【동의어】요동시(遼東豕).
[출전] ‘문선(文選)’의 ‘주부서(朱浮書)’, ‘후한서(後漢書)’의 ‘주부전(朱浮專)’.
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백두(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河東)에 가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하게 된다면 그대는 폐하(광무제(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팽총(彭寵)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光武帝)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 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요령부득(要領不得) :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출전] ‘사기(史記)’의 ‘대완전(大宛專)’, ‘한서(漢書)’의 ‘장건전(張騫專)’.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의 일이다. 당시 만리장성 밖은 수수께끼의 땅이었다. 그러나 영맹한 흉노는 동쪽 열하(熱河)에서부터 서쪽 투르키스탄(중앙아시아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뻗쳐 빈번히 한(漢)나라를 침범 약탈하였다. 그래서 무제(武帝)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 흉노에게 쫓겨 농서에서 서쪽 사막 밖으로 옮겨간 월지(月氏)와 손을 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월지에 다녀올 사신을 공모한 결과 장건(張騫)이라는 관리가 뽑혔다.
건원(建元) 3년, 장건(張騫)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쪽 이리(伊犁:위구르 자치구 내)란 곳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월지를 찾아 장안(長安)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흉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장건(張騫)은 활짝 트인 성격으로 인해 흉노에게 호감을 사 장가도 들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장건(張騫)은 처자와 일행을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뚝 솟은 천산(天山)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타림 분지를 횡단한 그들은 대완국(大宛國)과 강거국(康居國)을 거쳐 마침내 아무 강 북쪽에 있는 월지(月氏)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곧 월지의 왕을 알현하고 무제(武帝)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서천(西遷) 이후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소. 그러니 백성은 이제 구원(舊怨)을 씻기 위한 그런 쓸데없는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오.” 장건(張騫)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大夏國)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史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요령부득(要領不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 넘게 억류되었으나 부하 한 사람과 탈출, 13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3년 후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진 장건(張騫)은 계속 서역(西域)사업에 힘썼는데 그의 대여행은 중국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동서의 교통이 트이면서 서방으로부터 명마(名馬)와 보석(寶石), 비파(琵琶), 수박, 석류, 포도 등이 들어오고 한나라로부터는 금과 비단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크 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 : 산과 물을 좋아함.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의 준말로 지혜 있는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 한다는 뜻이다.
요원지화(燎原之火) : 넓은 들에 붙은 불길. 세력이 대단해서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요조숙녀(窈窕淑女) : 마음씨가 얌전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 ‘요조(窈窕)’는 고상하고 정숙함을 뜻한다.
요지부동(搖之不動) : 흔들어도 꼼짝하지 아니함.
욕소필연(欲燒筆硯) : 붓과 벼루를 태워버리고 싶다. 남이 지은 문장의 뛰어남을 보고 자신의 재주가 그에 미치지 못함을 탄식하는 말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 : 일을 속히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 서두르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용두사미(龍頭蛇尾) :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 처음은 왕성(旺盛)하지만 끝이 부진한 형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宋)나라에 진존자(陳尊者)라는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용흥사(龍興寺)란 절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절에서 나와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길에서 나그네들이 주워 신도록 짚신을 삼아 놓아두곤 했다고 한다.
이 진존자(陳尊者)가 노년(老年)에 접어들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중을 만나 선문답(禪門答)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이 느닷없이 ‘에잇’하고 기성(奇聲)을 질렀다. 진존자(陳尊者)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중을 쳐다보자 그 중은 또다시 ‘에잇’하고 호통 치듯 큰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한 경지에 든 스님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어쩐지 수상쩍었다. 진존자(陳尊者)는 ‘이 중이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진짜는 아닌 것 같다.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용두사미(龍頭蛇尾))’가 분명해’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보시오. 큰 소리는 그만 지르고 선문답(禪門答)이나 계속합시다.”라면서 그 중을 다그쳤으나 밑천이 다 드러난 중은 입을 다물고 마침내 뱀 꼬리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용미봉탕(龍尾鳳湯) : 맛이 썩 좋은 음식.
용사비등(龍蛇飛騰) : 용과 뱀이 나는 듯 활기가 있는 매우 잘 쓴 글씨.
용의주도(用意周到) : 고루 마음을 쓰고 준비하여 빈틈이 없음.
용호상박(龍虎相搏) : 용과 범이 서로 싸운다는 뜻. 두 강자끼리 서로 싸움을 이르는 말.
용훼(容喙) : 간섭하여 말참견을 함.
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 【유사어】마부작침(磨斧作針(鍼)), 수적천석(水適穿石), 적토성산(積土成山).
[출전]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춘추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문인들이 열자의 철학사상을 기술한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두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無理)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이에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시려고요?”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愚公)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知未)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령이다’라며 비웃자 우공(愚公)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蛇神)은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太行山)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王玉山)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도 없다고 한다.』
우수마발(牛수馬勃) : ‘소 오줌과 말똥’이란 뜻으로, 아무 데도 쓰지 못할 하찮은 것을 일컫는다.
우왕마왕(牛往馬往) : 소 갈 데, 말 갈 데. 갈 수 있을 만한 곳은 다 다녔다는 뜻이다.
우유부단(優柔不斷) :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하지 못함.
우이독경(牛耳讀經) : 소귀에 경 읽기.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는 일, 또는 그처럼 무지한 사람을 가리킨다. 【동의어】우이송경(牛耳誦經), 우이탄금(牛耳彈琴).
우직지계(迂直之計) : 곧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줄도 아는 계략.
우화등선(羽化登仙) : 사람이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 : 비온 뒤에 솟는 죽순같이 어떠한 일이 한때에 많이 일어남.
운니지차(雲泥之差) : 구름과 진흙의 차이. 사정이 크게 다름을 말한다.
【유사어】천지지차(天地之差).
운상기품(雲上氣稟) : 속됨을 벗어난 고상한 기질과 성품.
운예지망(雲霓之望) :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 그 희망이 간절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운주유악(運籌維幄) : 휘장 안(야간 지휘소)에서 전략을 세운다. 즉 들어앉아 기획한다는 뜻이다.
운중백학(雲中白鶴) : 구름 속을 나는 두루미라는 뜻으로, 고상(高尙)한 기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운증용변(雲蒸龍變) : 구름이 들끓어 용으로 변함. 영웅호걸이 때를 만나 일어남을 일컬음.
원교근공(遠交近攻) :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침.
【참조】누란지위(累卵之危).
[출전] ‘사기(史記)’의 ‘범저열전(范雎列傳)’.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秦)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누란지위(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范雎)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范雎)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 드디어 범저(范雎)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齊)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范雎)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昭襄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과 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齊)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秦)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韓)과 위(魏)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차적병(借賊兵)),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재도량(齎盜糧))’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소양왕(昭襄王)의 신임을 얻은 범저(范雎)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은 천하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에 있는 것은 급할 때 도움이 안된다.
[출전] ‘한비자(韓非子)’의 ‘설림편(說林篇)’.
춘추시대 노(魯)나라는 이웃 나라인 강국 제(齊)나라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목공(穆公)은 아들들에게도 제(齊)나라를 견제할 수 있는 진(晉)나라와 형(荊)나라를 섬기게 하였다. 이는 위급할 때 진(晉)나라와 형(荊)나라 같은 강국의 도움을 받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목공의 의도를 간파한 이서가 간곡히 간하였다. “사람이 물에 빠진 경우, 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청해서 구하려 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사오며, 또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渤海)와 같이 먼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 불을 끄려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역시 때는 늦사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고 했듯이, 노(魯)나라가 이웃 제(齊)나라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먼 진(晉)나라와 형(荊)나라가 아무리 강국이라 하더라도 노나라의 위난은 구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원앙지계(鴛鴦之契) : 금슬(琴瑟)이 좋은 부부사이.
원입골수(怨入骨髓) :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마음 속 깊이 맺혀 잊을 수 없다는 말. 【원말】원입어골수(怨入於骨髓). 【동의어】원철골수(怨徹骨髓), 한입골수(恨入骨髓).
[출전] ‘사기(史記)’의 ‘진본기(秦本紀)’.
춘추시대 오패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중신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장군에게 정(鄭)나라를 치라고 명했다. 진(秦)나라 군사가 주(周)나라의 북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곳에 소를 팔러 온 정(鄭)나라의 소장수인 현고(弦高)는 진나라 장군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정(鄭)나라 주상(主上)께서는 장병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소생에게 소 12마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 세 장군은 공격 목표를 바꾸어 진(晉)나라의 속령(屬領)인 활(滑)로 쳐들어갔다. 당시 진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어 국상(國喪)중에 있었으나 태자(太子:후의 양공(襄公))는 즉시 용장(勇將)을 파견하여 침략군을 섬멸했다. 포로가 된 세 장군은 태자 앞에 끌려 나왔다. 그러자 목공(繆公)의 딸인 태자의 모후(母后)는 그들의 구명을 청원했다. “저들을 죽이면 강국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원한이 뼈에 사무쳐(원입골수(怨入骨髓))’ 반드시 이 나라를 칠 것이오. 그러나 저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소.” 태자(太子)는 모후(母后)의 말을 옳게 여겨 세 장군을 모두 풀어 주었다.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 :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원화소복(遠禍召福) : 화(禍)를 멀리하고 복(福)을 불러들임.
월단평(月旦評) : ‘매달 첫날의 평’이란 뜻으로, 인물에 대한 비평을 일컫는 말.
【준말】월단(月旦). 【동의어】월조평(月朝評).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허소전(許邵專)’.
후한(後漢) 말, 12대 황제인 영제(靈帝) 17년에 일어난 ‘황건(黃巾)의 난(亂)’ 때 큰 공을 세운 조조(曹操)가 아직 두각을 나타내기 전의 일이다.
그 무렵 여남(汝南) 땅에 허소(許邵)와 그의 사촌 형 허정(許靖)이라는 두 명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매달 첫날(월단(月旦))’이면 허소(許邵)의 집에서 향당(鄕黨)의 인물을 뽑아 비평했는데, 그 비평이 매우 적절하여 평판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당시 ‘여남(汝南)의 비평(批評)’으로 불리던 이 비평을 들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조조(曹操)가 허소(許邵)를 찾아와서 비평해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난폭자로 소문난 조조(曹操)의 청인지라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다. 조조가 재촉하자 허소(許邵)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대는 태평한 세상에서는 유능한 관리이되,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웅(姦雄)이 될 인물이오.” 이 말을 듣고 조조(曹操)는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황건적(黃巾賊)을 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고 한다.
월영즉식(月盈則食) :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 한번 흥하면 한번은 망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 : 고향을 그리워함.
월하노인(月下老人) : 혼인을 중매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월하빙인(月下氷人) : ‘월하노(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말로, ‘결혼 중매인’을 일컬음.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람. 【동의어】빙인(氷人), 빙상인(氷上人), 월하노(月下老). 【유사어】적승(赤繩).
[출전] ‘속유괴록(續幽怪錄)’, ‘진서(晉書)’의 ‘색탐편(索眈篇)’.
‘속유괴록(續幽怪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 때 위고(韋固)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송성(宋城)에 갔을 때, ‘달빛 아래 한 노인(월하노(月下老))’이 손에 ‘빨간 끈(적승(赤繩))’을 든 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위고(韋固)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하고 묻자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세상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빨간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네.” “그럼, 지금 제 아내감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이 송성(宋城)에 있구먼, 성 북쪽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진(陳)이란 여인네의 어린아이야.” 위고(韋固)는 약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 상주(尙州)에서 벼슬길에 나아간 위고(韋固)는 그곳 태수(太守)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 날 밤 위고가 아내에게 신상(身上)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실은 태수(太守)님의 양녀입니다. 친아버지는 송성에서 벼슬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지요. 그 때 저는 젖먹이였는데 마음씨 착한 유모가 성 북쪽 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하면서 저를 길러 주었답니다.”
‘진서(晉書)’의 ‘색탐편(索眈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晉)나라에 색탐(索眈)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다. 어느 날 영고책(令孤策)이라는 사람이 ‘몽점(夢占)’을 치러 왔다. “꿈속에서 나는 얼음 위에 서서 얼음 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색탐(索眈)은 이렇게 해몽(解夢)했다. “얼음 위는 곧 양(陽)이요, 얼음 밑은 음(陰)인데 양과 음이 이야기 했다는 것은 ‘얼음 위에 선 사람(빙상인(氷上人))’인 그대가 결혼 중매를 서게 될 조짐이오. 성사(成事) 시기는 얼음이 녹는 봄철이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고책(令孤策)은 태수의 부탁을 받고 태수의 아들과 장(張)씨 딸의 중매를 서서 이듬해 봄에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위군난위신불이(爲軍難爲臣不易) : 임금 노릇하기도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
위급존망지추(危急存亡之秋) :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
위기일발(危機一髮) : 위급함이 매우 절박한 순간.
위수강운(渭樹江雲) : 위수(渭水)에 있는 나무와 위수를 지나 강수(江水) 위에 떠 있는 구름. 떨어져 있는 두 곳의 거리가 먼 것을 이르는 말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벗이 서로 그리워하는 말로 쓰인다.
위여누란(危如累卵) : 위태로움이 계란을 포개놓은 것과 같다.
위여조로(危如朝露) : 아침 이슬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듯이 위기가 임박해 있음을 말함.
위이불맹(威而不猛) : 위엄(威嚴)은 있으나 결코 난폭하지 않음.
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 증자(曾子)가 행한 일일삼성(一日三省) 중 한 가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도모하는 데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가?
위편삼절(韋編三絶) :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여러 번 읽어 그 책을 매었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나온 말로, 책을 많이 읽음을 비유함. 한 권의 책을 몇 십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참조】개권유익(開卷有益).
[출전]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
고대 중국에서는 책을 몇 십장의 죽간(竹簡)을 끈으로 철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끈이 몇 번이나 끊어지도록 책을 계속하여 읽는 것을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한다. ‘삼절(三絶)’이란 딱 세 번에 한정된 수가 아니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끊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알려진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가운데 ‘공자전(孔子傳)’, 즉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실려 있는 말로, 공자가 만년에 역경(易經)을 애독하여 ‘위편삼절(韋編三絶)’에 이른 데서 나왔다고 한다.
한편 공자(孔子)는 “내게 몇 년의 수명이 더해진다면 주역(周易)에 대해서 그 가르침을 밝혀낼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자(孔子)는 늙어서도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역경(易經)’을 열심히 뒤지다보니 책을 묶은 가죽끈이 몇 번이나 끊어졌다는 것이다. 독서를 권장하는 말에는 ‘개권유익(開卷有益)’이란 말도 있다.
유교무류(有敎無類) : 교육에는 차별을 두는 일이 없다.
유구무언(有口無言) :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음.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제압한다.
유록화홍(柳綠花紅) :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자연에 조금도 인공을 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유만부동(類萬不同) : 여러 가지가 많다 하여도 서로 달라 같지 않음. 비슷한 것들은 수만 가지가 있어도 같지는 않다. 모든 것이 서로 같지 아니함을 뜻하는 말이다.
유명무실(有名無實) : 이름만 있고 실지 내용은 없음.
유방백세(流芳百世) :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
유비무환(有備無患) : 사전에 준비가 갖추어져 있으면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출전] ‘서경(書經)’의 ‘설명(說命)’.
‘설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이란 어진 재상을 얻게 되는 경위와 어진 정사에 대한 부열(傅說)의 의견과 그 의견을 실천하게 하는 내용을 기록한 글인데, 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부열(傅說)이 고종(高宗) 임금에게 한 말 가운데에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時期)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能)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功)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갖출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이옵니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정나라에서 값진 보물과 가희(佳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오자, 진나라 도승은 이것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그러자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
유속불식(有粟不食) : 곡식이 익어도 먹지를 못한다.
유수불부(流水不腐) :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항상 움직이는 것은 못쓰게 되지 않는다는 비유로 쓰인다.
유시무종(有始無終) : 시작만 있고 끝이 없음.
유신(維新) : 모든 것을 고쳐 새롭게 하다.
유아독존(唯我獨尊) : 세상에 자기 혼자 잘났다고 뽐내는 태도.
유야무야(有耶無耶) :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희미함.
유약무실약허(有若無實若虛) : 꽉 차 있어도 텅 빈 것 같이 보인다.
유언비어(流言蜚語) : 근거 없는 좋지 못한 말.
유언자불필유덕(有言者不必有德) :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그만큼 수양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같은 패끼리 서로 따르고 쫓으며 왕래하여 사귐.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유일불원(遺佚不怨) : 세상이 나를 돌아보지 않고 버려두어도 원망하지 않는다.
유주망국(有酒亡國) : 술로 인해 망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유필유방(遊必有方) : 자식은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는 그 슬하에서 모셔야 하며 비록 유학(遊學)을 할지라도 부모가 알 수 있도록 반드시 일정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 【참조】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육도풍월(肉跳風月) : 글자의 뜻을 잘못 써서 알아보기 어렵고 가치 없는 한시(漢詩).
육사자책(六事自責) : 여섯 가지로 자책하다.
융절용안(隆절龍顔) : 코와 이마가 높아 남자답게 잘 생기다.
은감불원(殷鑑不遠) : 이전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아 경계하다. 멸망의 선례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원말】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의어】상감불원(商鑑不遠). 【유사어】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출전] ‘시경(詩經)’의 ‘대아편(大雅篇)’.
고대 중국 하(夏)와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은왕조(殷王朝)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북방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라는 희대의 요녀독부(妖女毒婦)였다. 주왕(紂王)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國庫)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폭락(飮酒暴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다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주왕(紂王)의 포학(暴虐)을 간(諫)하다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의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당했으며, 서백(西伯)은 유폐되었다. 서백(西伯)은 그 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殷王朝)의 시조인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 당한 하왕조(夏王朝)의 걸왕(桀王)을 거울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고 충간(忠諫)하다가 화(禍)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의 ‘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殷)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先例)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夏)나라 걸왕(桀王) 때에 있네(은감부원 재하후지세(殷鑑不遠 在夏后之世)).』
삼공(三公)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와 기자(箕子), 비간(比干)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紂王)은 걸왕(桀王)의 비극적인 말로(末路)를 되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마침내 원성(怨聲)이 하늘에 닿아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離叛) 당한 주왕(紂王)은 서백(西伯)의 아들 발(發)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은거방언(隱居放言) : 세상에서 숨어 살면서 말을 기탄없이 한다.
은인자중(隱忍自重) : 괴로움을 감추어 참고 몸가짐을 신중히 함.
음덕양보(陰德陽報) : 남모르게 쌓은 덕은 후일 버젓하게 복을 받게 마련임.
음마투전(飮馬投錢) : 말에게 물을 먹일 때 먼저 돈을 물속에 던져서 물 값을 지불할 정도로 결백한 행실을 비유하는 말.
음풍농월(吟風弄月) : 맑은 바람을 읊조리고 밝은 달을 보며,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함.
읍참마속(泣斬馬謖) :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공정한 법운용을 위하여 사사로운 인정을 버리는 것을 비유.
[출전]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편(蜀志 諸葛亮篇)’.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형의 진을 치고, 제갈량(諸葛亮)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司馬懿)인 만큼 군량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을 수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蜀)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諸葛亮)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諸葛亮)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馬謖)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諸葛亮)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馬謖)은 전 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馬謖)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諸葛亮)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 마속(馬謖)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諸葛亮)은 듣지 않았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응접불가(膺接不暇) : 아름다운 경치가 계속되어 인사할 겨를도 없다.
의관장세(倚官仗勢) : 관리가 직권을 남용하여 민폐를 끼침.
의금경의(衣錦褧衣) : 비단 옷을 입고 그 위에 안을 대지 않은 홑옷을 또 입는다. 군자가 미덕을 갖추고 있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의금야행(衣錦夜行) : 비단 옷 입고 밤길 가기란 뜻.
의려지망(倚閭之望) : 자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
의마심원(意馬心猿) : 말처럼 날뛰어 다루기가 어렵고, 원숭이처럼 이 흉내 저 흉내 다 내어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번뇌와 욕심은 동요하기 쉽고 억누르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의문지망(倚門之望) : 멀리 가 있는 아들을 매일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을 일컫는 말이다. 【준말】의문(倚門).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는 뜻. 곧, ①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짐. ②선입관은 판단을 빗나가게 함.
【유사어】절부지의(竊斧之疑), 배중사영(杯中蛇影).
[출전] ‘열자(列子)’의 ‘설부편(說符篇)’.
어떤 사람이 소중히 아끼던 도끼를 잃어버렸다. 도둑맞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이웃집 아이가 수상했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슬금슬금 도망가는 것 같은 자세였고, 안색이나 말투도 어색하기만 했다. ‘내 도끼를 훔쳐 간 놈은 틀림없이 그 놈이야.’ 이렇게 믿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저번에 나무하러 갔다가 도끼를 놓고 온 일이 생각났다. 당장 달려가 보니 도끼는 산에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웃집 아이를 보자 이번에는 그 아이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별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마당에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본 이웃 사람이 주인에게 말했다. “집 안에 말라죽은 오동나무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네.” 주인이 막 오동나무를 베어 버리자,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땔감이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다. 주인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이제 보니 땔감이 필요해서 날 속였군. 이웃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엉큼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인물사사인물의(疑人勿使使人勿疑) : 사람을 의심하면 그 사람을 부리지 말고,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을 의심하지 말라는 뜻.
이군삭거(離群索居) : 동문의 벗들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 것을 말함.
이덕보원(以德報怨) :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 두 개의 복숭아로 세 명의 무사를 죽이다.
이란투석(以卵投石) :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
이목지신(移木之信) :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 곧, ①남을 속이지 아니한 것을 밝힘. ②약속을 실행함.
【동의어】사목지신(徙木之信). 【반의어】식언(食言).
[출전]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專)’.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 상앙(商椽)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으로 법률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펼쳐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했다. 한 번은 상앙(商椽)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 줄지 그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앙(商椽)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三丈:약 9m)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商椽)은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주었다. 그리고 법령(法令)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이불해해지(以不解解之) : 글의 뜻을 푸는 데 풀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풀어낸다. 즉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해석하면 곡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이사위한(以死爲限) :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하여 나감.
이서기지심서인(以恕己之心恕人) :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이순(耳順) : 나이 예순 살 된 때를 이름.
이실직고(以實直告) : 사실 그대로 고함.
이심전심(以心傳心) : 마음과 마음이 통해 서로 뜻이 맞음.
【동의어】염화미소(拈華微笑). 【유사어】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참조】심심상인(心心相印).
[출전] ‘오등회원(五燈會元)’, ‘전등록(傳燈錄)’의 ‘무문관(無門關)’, ‘육조단경(六祖壇經)’.
송(宋)나라의 중(僧) 도언(道彦)이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를 기록한 ‘전등록(傳燈錄)’에 보면,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송나라의 중(僧) 보제(普濟)의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염화(拈華))’.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迦葉)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미소(微笑))’. 그제야 석가는 가섭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전해 주마.”』
이양역우(以羊易牛) : 양을 가지고 소와 바꿈.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에 대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여반장(易如反掌) : 쉽기가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다.
이열치열(以熱治熱) : 열은 열로 다스림. 힘은 힘으로 물리침.
이율배반(二律背反) :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명제가 동등한 권리로 주장되는 뜻.
이인동심기리단금 (二人同心其利斷金) :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으로 쇠도 자를 수 있다. 마음을 합하면 강해진다는 말.
이지측해(以指測海) :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 양(量)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책인지심책기(以責人之心責己) :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어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로 쓰인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
익자삼우(益者三友) : 사귀어 이롭고 보탬이 되는 세 벗으로 정직한 사람, 신의 있는 사람, 학식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름.
인명재천(人命在天) :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매여 있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 : 사람이 멀리까지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생긴다.
인비목석(人非木石) : 사람은 생명과 감정을 지닌 동물로 나무나 돌과는 다르다.
인사유명(人死留名) :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김. 【참조】표사유피(豹死留皮).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 인생은 아침 해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존재이다.
【유사어】인생초로(人生草露). 【참조】안서(雁書), 구우일모(九牛一毛).
[출전] ‘한서(漢書)’의 ‘소무전(蘇武專)’.
전한 무제(武帝) 때,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는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들의 내란에 휘말려 잡히고 말았다.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는 한사코 항복을 거부하는 소무(蘇武)를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을 허락하겠다’며 북해(北海) 변으로 추방했다. 소무가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어느 날 고국의 친구인 이릉(李陵) 장군이 찾아왔다. 이릉(李陵)은 소무(蘇武)가 고국을 떠난 그 이듬해 ,5000여의 보병으로 5만이 넘는 훙노의 기병과 혈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참패한 뒤 부상, 혼절(昏絶)중에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릉은 선우(單于)의 빈객으로 후대를 받았으나 항장(降將)이 된 것이 부끄러워 감히 소무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선우의 특청으로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릉은 주연을 베풀어 소무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우는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알고, 꼭 데려오라며 나를 보냈네. 그러니 자네도 이제 고생 그만하고 나와 함께 가도록 하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고 하지 않는가.” 이릉은 끝내 소무의 절조를 꺾지 못하고 혼자 돌아갔다. 그러나 소무는 그 후 소제(昭帝)가 파견한 특사의 기지(機智)로 풀려나 19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인순고식(因循姑息) : 구습을 고치지 아니하고 눈앞의 편안함을 취함.
인인성사(因人成事) :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룸. 자기의 힘으로는 일을 해내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성취함을 가리키는 말.
전국시대 말기 조(趙)나라가 진(秦)나라의 침략을 받아 정세가 급박하게 되자, 조(趙)나라 혜문왕은 평원군(平原君)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게 했다. 평원군(平原君)은 수행원 20명을 거느리고 초나라에 가서 초나라 고열왕과 교섭(交涉)을 벌였다. 그러나 평원군(平原君) 일행을 맞은 초왕(楚王)은 그리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평원군(平原君)과 초왕(楚王)의 회담은 아침부터 낮이 기울도록 계속됐지만 아무런 결론(結論)이 나지 않았다.
섬돌 아래에서 회담(會談)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평원군(平原君)의 수행원 모수(毛遂)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칼자루를 움켜쥔 채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회담 참석자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게 어찌 우리 조(趙)나라만을 위해서이겠소. 그런데도 어찌하여 여태까지 결말을 짓지 못하고 꾸물대고 있단 말이오.” 모수(毛遂)는 칼자루를 더욱 힘주어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초(楚)나라가 아무리 대국이라 해도 지금 열 걸음 안에 있는 대왕(大王)의 목숨은 저의 손에 달려 있소이다. 제 말을 들어 보시오. 초(楚)나라의 일부 영토도 이미 진(秦)나라의 손에 들어갔고, 조상들의 무덤까지 훼손당하지 않았습니까? 대왕은 어찌 이런 일들에 분개하지 않습니까? 두 나라의 연합(聯合)은 초(楚)나라의 원수까지도 갚는 일입니다.” 모수(毛遂)의 설득에 마침내 초왕(楚王)도 꺾이게 되었다.
혈맹(血盟)하는 자리에 같이 온 19명의 수행원들에게 모수는 말했다. “그대들은 쓸모가 없었소. 그저 일행으로 따라와서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룩한 사람들일 뿐이오(공등녹록 소위인인성사자야(公等碌碌 所謂因人成事者也)).”
인자무적(仁者無敵) : 어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므로 적이 없음.
인지장사기언야선(人之將死其言也善) : 새는 죽을 때가 되면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착하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뜻으로 초조하게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반의어】일일삼추(一日三秋).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 사소한 데 이르기까지의 하나하나의 동작.
일거양득(一擧兩得) :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의 이득을 봄.
【동의어】일거양획(一擧兩獲), 일석이조(一石二鳥), 일전쌍조(一箭雙鳥). 【반의어】일거양실(一擧兩失).
[출전] ‘춘추후어(春秋後語)’의 ‘전국책(戰國策)’.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때의 일이다. 연횡책(連橫策)으로 유명한 재상 장의(張儀)와 중신 사마조(司馬錯)가 촉(蜀) 원정문제를 놓고 어전에서 불꽃 튀는 논쟁(論爭)을 벌이고 있었다. 장의(張儀)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위(魏)와 초(楚) 두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주(周)를 공격합니다. 그러면 주(周)나라는 당황해서 강화를 청해 올 것입니다. 그때 천자(天子)를 옹립하고 천하게 우뚝 서십시오. 촉(蜀)은 멀리 떨어진 변방일 뿐만 아니라 척박한 땅이어서 그런 곳을 빼앗기 보다는 중원(中原)을 공략하는 것이 천하를 통일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조(司馬錯)도 지지 않고 진언했다. “신이 듣기로는 부국(富國)을 원하는 군주(君主)는 먼저 국토를 넓히는 데 힘써야 하고, 강병(强兵)을 원하는 군주(君主)는 먼저 백성의 부(富)에 힘써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원하는 군주(君主)는 먼저 덕(德을) 쌓는 데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패업(覇業)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원래 촉(蜀)은 융적(戎狄)의 나라입니다. 공격해서 얻게 되면 진(秦)나라는 넓어지고, 또 부유해집니다. 그리고 중원의 제후들도 융적(戎狄)을 치는데 반대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진(秦)나라는 땅이 좁고, 백성은 빈곤합니다. 때문에 촉(蜀)을 취하는 것은 땅을 넓히고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야말로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거두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묘책입니다. 반대로 지금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를 공격하면 천자(天子)를 위협했다는 오명만 얻을 뿐 이득(利得)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에 혜문왕(惠文王)은 사마조(司馬錯)의 진언을 옳게 여기고 촉(蜀)을 공략해 영토를 넓히게 되었다.
일견패형백견패성(一犬吠形百犬吠聲) : 한 마리의 개가 짖는 시늉을 하면 백 마리의 개가 소리 내어 짖는다. 한 사람이 거짓으로 한 말이 퍼지고 퍼지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와전(訛傳)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일기당천(一騎當千) :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당해 냄.
일기지욕(一己之慾) : 제 한 몸의 욕심.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 한주먹 도시락밥과 표주박 한 바가지의 물. 변변치 못한 음식. 매우 가난한 살림을 의미한다.
일도양단(一刀兩斷) : 한 칼에 둘로 나누듯이 일이나 행동을 선뜻 결정함을 가리킨다.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히 처리함’을 이르는 말.
일망타진(一網打盡) : 한 그물에 모두 다 두드려 잡음. 곧, 한꺼번에 모조리 잡아들임.
일맥상통(一脈相通) : 생각, 처지, 상태 등이 한 줄기 서로 통함.
일명경인(一鳴驚人) : 글자풀이를 하면 ‘한번 울어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대사업을 이룩한다는 뜻이다. 【참조】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중신(重臣) 순우곤은 학자(學者)이면서도 익살과 변설(辯舌)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학문은 잡학(雜學)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맹자(孟子)와 논전(論戰)을 벌일 만큼 상당한 실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몸집도 보잘 것 없고, 천한 신분출신이지만 출세를 할 수 있었다. 그가 섬긴 위왕(威王)은 주색에 빠져 정사(政事)는 돌보지 않고, 나라 일은 모두 신하들에게 맡겨놓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웃 나라의 허점(虛點)이 엿보이면 가차 없이 침략을 일삼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당시 사정에 미루어 본다면 이런 군주(君主)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순우곤이 위왕(威王)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 왕궁(王宮)에 날아와 머물고 있는 큰 새 한 마리는 3년이 되었는데도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위왕(威王)은 이 물음이 자신을 빗댄 것인 줄 알아차리고 “그 새는 그렇게 있다가도 한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한번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하오.”라고 대답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이 저물고 길이 멀다.
일목요연(一目瞭然) : 한눈에도 똑똑하게 알 수 있음.
일벌백계(一罰百戒) : 다른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본보기로 중한 처벌을 하는 일.
일사불란(一絲不亂) : 질서나 체계가 정연하여 조금도 어지러운 데가 없음.
일사천리(一瀉千里) : 문장이나 변론이 거침없이 명쾌하게 진행됨.
일수백확(一樹百穫) :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백 개의 열매를 수확한다. 인물을 양성하는 보람을 말함. 인재 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사회에는 막대한 이익을 준다는 뜻이다.
일시동인(一視同仁) :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한다.
일어탁수(一漁濁水) : 물고기 한 마리가 큰물을 흐리게 한다. 한 사람의 악행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그 해를 받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유사어】수어혼수(數魚混水).
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 : 한 마리 물고기가 온 시냇물을 흐려 놓는다. 【참고】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물을 흐린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 한 마디의 말로 전체의 뜻을 다 말함.
일언지하(一言之下) :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함.
일엽지추(一葉知秋) : 하나의 낙엽이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해준다. 한 가지 일을 보고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안다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쇠망(衰亡)의 조짐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일엽편주(一葉片舟) : 한 조각 작은 배.
일의대수(一衣帶水) : 한 줄기의 띠와 같은 좁은 냇물이나 바닷물. 곧, ①간격이 매우 좁음. ②강이나 해협을 격한 대안(對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 【유사어】일우명지(一牛鳴地), 일우후지(一牛吼地), 지호지간(指呼之間).
[출전] ‘남사(南史)’의 ‘진후주기(陳後主紀)’.
서진(西晉)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져 이른바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다. 북방에서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일컫는 흉노(匈奴)와 갈(厘), 선비(鮮卑), 강(羌), 저 등 5개의 이민족이 세운 열 세 나라와 세 개의 한족국(漢族國)이 흥망을 되풀이했고, 남방에서는 송(宋)과 제(齊), 양(梁), 진(陳) 등 네 나라가 교체되었다. 북방의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를 물려받아 수(隋)나라를 세운 문제(文帝)는 마침내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왕(陳王)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도다. 이제 짐(朕)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일의대수(一衣帶水))’ 따위를 겁내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으랴?” 문제(文帝)의 명에 따라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단숨에 양자강을 건너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일이관지(一以貫之) : 하나의 이치로서 모든 일을 꿰뚫다.
[출전]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
공자(孔子)께서 증자(曾子)에게 “삼(參)아, 나의 도(道)는 하나로서 꿰었느니라(삼호오도일이관지(參乎吾道一以貫之)).” 증자(曾子)는 알아듣고 “네”하고 대답했다. 공자(孔子)께서 나가시자 문인(門人)들이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하자, 증자(曾子)는 “선생님의 말씀은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도 공자(孔子)께서 자공(子貢)에게 “나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었느니라(자일이관지(子一以貫之)).”라고 말씀하신 것이 나온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子貢)이 대답해 말했다.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를 가지고 관철(貫徹)하고 있는 것이다.”
일인불과이인지(一人不過二人智) :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제 아무리 잘난 사람도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만 못하니 협동하고 협력하라는 가르침이다.
일일삼추(一日三秋) : 몹시 지루하거나 기다리는 때를 형용하는 말이다.
【반의어】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일자사(一字師) : 한 글자를 가르쳐 준 선생님.
정곡(鄭谷)은 당(唐)나라의 시인(詩人)이다. 어느 날 ‘제기(齊己)’라는 스님이 여러 편의 시고(詩稿)를 가져 왔다. 그 중 ‘조매(早梅)’라는 시(詩)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前村深雪裏 昨夜數枝開 [전촌심설리 작야수지개]
앞마을이 깊은 눈 속에 파묻혔는데 어젯밤에 몇 가지에 매화가 피었네.
이를 본 정곡(鄭谷)이 말했다. “‘수지(數枝:몇 가지)’가 ‘조매(早梅:일찍 핀 매화)’라는 시제(詩題)와는 맞지 않으니 ‘일지(一枝:한 가지)’가 좋은 것 같소.” 그렇게 바꾸어 놓고 보니 과연 시(詩) 전체의 느낌이 달라졌다. 이에 스님은 정곡(鄭谷)에게 큰 절로 감사를 표(表)했고, 사람들은 정곡(鄭谷)을 가리켜 ‘일자사(一字師)’라고 했다. 자고(自古)로 공부하는 사람은 한 글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또한 훌륭한 스승은 간단해 보이지만 핵심을 짚어 준다고 했다.
일자천금(一字千金) : 심금을 울리는 아주 빼어난 글. 【유사어】일자백금(一字百金).
[출전] ‘사기(史記)’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전국시대 말기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각 수천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 또한 각 3,000여 명의 식객을 거느리며 저마다 유능한 식객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편 이들에게 질세라 식객을 모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일개 상인 출신으로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어, 어린(13세) 왕 정(政:훗날의 시황제)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가 바로 그 사람이다. 여불위(呂不韋)는 정(政)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로 책봉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끌려가 있을 때, ‘기화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오늘날의 영화를 거둔 사람이었다. 그는 막대한 사재(私財)를 풀어 3,000여 명의 식객을 모아들였다. 당시 열국(列國)들 사이에는 저술(著述)사업이 한창 유행이었다. 여불위(呂不韋) 또한 식객(食客)들을 총동원하여 고금(古今)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역사 등 모두를 망라(網羅)한 백과사전을 저술하고 있었는데, 마치 이 책을 자기가 편찬한 것인양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수도인 함양(咸陽) 성문에 걸어놓고 “누구든지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뺀다면 천금을 주겠다(유능증생일자자여천금(有能增省一字者予千金)).”고 호언(豪言)하였다.
【주】여불위(呂不韋)는 자기 과시(誇示)겸 우수인사 유치(誘致)의 목적에서 ‘일자천금(一字千金)’이란 말을 했지만, 지금은 ‘일자천금(一字千金)’이 ‘심금을 울리는 아주 빼어난 글’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일장춘몽(一場春夢) : 인생의 영화(榮華)는 한바탕의 봄날의 꿈과 같이 헛됨을 비유하는 말.
일조일석(一朝一夕) : 짧은 시간의 비유.
일진일퇴(一進一退) : 한 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뒤로 물러남. 좋아졌다 나빠졌다 함.
일촉즉발(一觸卽發) : 사소한 것으로도 그것이 동기가 되어 크게 터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형세를 이르는 말이다.
일취월장(日就月將) : 계속 발전해 감. 나날이 발전하고 다달이 진보함.
일침견혈(一針見血) : ‘침(針) 한 방에 피를 본다’는 뜻으로, 간단한 요령으로 본질을 잡아낸다는 비유이다.
일파만파(一波萬波) : 한 사건이 그 사건으로만 그치지 않고, 잇달아 많은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일패도지(一敗塗地) : 단 한 번의 싸움에 패하여 전사자(戰死者)의 으깨진 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어 땅을 도배한다는 뜻. 여지없이 패하여 재기불능(再起不能)이 된 상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나자 견고할 것 같았던 진(秦)나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2세 황제(皇帝) 원년에 진승(陳勝)이 진(秦)나라에 반항하는 군사를 일으켰고, 이것이 도화선(導火線)이 되어 곳곳에서는 반란(叛亂)이 일어났다.
이 때 패현(沛縣)의 현령은 세력이 막강해진 진승(陳勝)편에 붙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측근에게 의견을 물었다. 측근이 명망 높은 유방(劉邦)을 끌어들이는 게 낫다는 의견을 내놓자 현령은 이를 받아들여 유방(劉邦)을 성으로 불렀다.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 밖에 다다른 유방(劉邦)을 보고 나니 현령은 갑자기 유방(劉邦)에게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성문을 열지 않고 유방(劉邦)일행을 그대로 되돌려 보냈다. 이렇게 되자 유방은 성 안의 유지(有志)들에게 봉기(蜂起)할 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화살에 매달아 보냈다. 그러자 유지(有志)들은 이에 호응해서 현령을 죽이고 유방(劉邦)을 맞이하고는 그에게 새 현령이 되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유방은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천하는 혼란에 빠져 있고, 제후(諸侯)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소. 이때 훌륭한 인물을 가려 장수로 삼지 않는다면 ‘일패도지(一敗塗地)’하고 말 것이오. 나는 내 몸의 안전(安全)만을 생각해서 이러는 게 아니오. 내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해 줄 수 있을지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이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더 신중하게 생각해서 적임자(適任者)를 뽑도록 하시오.” 그래도 유지(有志)들이 적극 추대하여 유방(劉邦)이 마침내 현령이 되었는데, 이것이 훗날 난세(亂世)를 평정하고,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되기까지의 유방(劉邦)의 파란만장한 역정(驛程)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편단심(一片丹心) : 한 조각 붉은 마음, 즉 진정, 진심, 충성심.
일필휘지(一筆揮之) : 한 숨에 흥취 있고 줄기차게 글씨를 써나감.
일하무혜경(日下無蹊徑) : 해가 비치고 있는 곳에는 눈을 피해 갈 수 있는 좁은 지름길이 없다. 나쁜 일이 행해지지 아니한 것을 탄미하는 말이다.
일확천금(一攫千金) : 힘 안 들이고 한꺼번에 많은 재물을 얻음.
임갈굴정(臨渴掘井) : 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있다가 급해서 일을 허둥지둥 서두름.
【참고】목말라서 샘을 판다.
임기응변(臨機應變) : 일을 당하여 그때그때 맞도록 처리함.
임농탈경(臨農奪耕) : 땅을 다 다듬고 이제 농사를 지으려 하니 농사지을 땅을 빼앗아 간다. 오랫동안 애써 준비한 일을 못하게 빼앗는다는 말이다.
임전무퇴(臨戰無退) : 싸움터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음.
임중불매신(林中不賣薪) : 산 속에는 땔나무가 충분히 있어서 살 사람도 없으니 땔나무를 팔지 않는다. 물건은 그 쓰임이 유용한 곳에서 써야 함을 말한다.
임현물이(任賢勿貳) : 어진 사람에게 일을 맡겼으면 끝까지 밀어주라.
입산기호(入山忌虎) : 정작 목적한 바를 당하면 꽁무니를 뺀다는 말.
입신양명(立身揚名) : 입신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림.
입추지지(立錐之地) : 사람이 많이 모여 조금도 빈 곳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입향순속(入鄕循俗) : 그 고장에 가서는 그 고장의 풍속에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