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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호 발행일 :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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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봉동읍 성덕리 140. 주변이 온통 논으로 둘러싸인 전형적 농촌 마을에 살고 있는 박미정(42)씨는 요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다. 십여년간 살아오던 삶의 보금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방을 얻어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달라고 집주인에게 사정해 놓았어도 막막하기만 하다. 노환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79)와 네 아이를 둔 가장이지만 가진 것이라곤 빚더미밖에 없다.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한창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겠지만 현실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다. 정말 사면초가다.
남편이 살아 있었을 때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어서 매달 얼마라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떠나고 나니까 그마저도 받을 수 없다. 박씨 나이로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하려 해도 시어머니와 네 아이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기에 쉽지 않다.
여고 1학년인 큰 딸은 새벽 6시30분이면 집을 나선다. 버스 타는 곳까지 30분을 걸어야 한다. 요즘은 등하교 시간이 모두 캄캄한 밤같아서 박씨가 자전거로 큰 길까지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한다. 그 밑으로 각각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인 두 딸과 3학년인 막내 아들, 이렇게 셋이 더 있다.
그러니 일을 하려 해도 걱정, 그냥 있어도 걱정이다. 게다가 그동안 남편 간호와 생계까지 맡아서 하다 보니 몸도 극도로 쇠약해졌고, 허리 디스크까지 생겼다. 남편이 건강했을 땐 가난하긴 해도 화목하게 살았다. 그러나 남편이 친구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지난 2000년에는 유일한 재산인 지금 살고 있는 집마저 차압을 당했다.
그 여파였을까, 소작농을 하던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약해지더니 2003년에는 병석에 누워 버렸다. 간암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남편은 먼저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노모와 아이들과 빚더미만 남긴 채. 농협 대출 3000만원에 사채 빚 2000만원. 돈이 나올 곳은 없어도 아이들 학교에는 보내야 하고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 빚은 더 늘어간다.
당장 급한 것은 방을 구하는 일이다. 여섯식구가 지내려면 방 2칸은 있어야 한다. 박씨는 "전주 큰 애 학교 근처나 하다못해 봉동읍내에라도 방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일거리 찾아보겠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박씨 아이들이 다니는 봉성초등학교에서 재직하던 때부터 박씨네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틈틈이 도와온 박병래(마르코, 전주 송천동본당) 화산초등학교 교장은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가정인데 정말 딱하다"면서 도움의 손길을 호소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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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박병래 교장이 박미정씨를 찾아와 용기를 잃지 말고 힘을 내라고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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