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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나이 76세의 노인들이 좌충우돌 유럽여행에 나섰다. 선글라스를 쓰고 배낭을 짊어진 노인들은 베르사이유궁전등 관광지 구경에 나서고 지하철도 타보고 뒷골목을 다니며 유럽의 속살도 엿본다. 허름한 모텔의 비좁은 방에서 2∼3명이 잠을 자고 밤에는 모텔 한구석에서 이것저것 대충 섞어 만든 잡탕찌게를 끓여놓고 소주한잔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요즘 모 케이블방송에서 히트친 '꽃보다 할배' 얘기다. 누구는 칠순을 훨씬 넘긴 노인네들이 외국여행하는게 볼게 뭐 있겠느냐는 얘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5%대로 동시간대 1위다. 꽃미남 청춘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 프로그램 제목도 우습지만 노인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탤런트 이서진이 아버지뻘인 이순재(80), 신구(76), 박근형(74), 백일섭(70)등 네명의 노인배우를 모시고 함께 배낭여행하며 겪는 디테일한 에피소드가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네명의 노장배우가 유럽여행을 하는것을 보면 나이를 떠나 우리나라도 '젊은 노인'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기준 한국남자의 평균 수명은 77.2세다. 할배의 약자인 'H4'중 가장 젊은 백일섭은 칠순이 됐지만 '막둥이' 대접을 받는다. 적어도 화면으로 봐서는 나이가 무색해 보인다. 하긴 팔순을 넘긴 이순재도 세련된 옷차림으로 파리와 스트라스부르그의 번화가를 성큼성큼 걷는것을 보면 '고령'을 실감할 수 없다.
이들이 연예인이라서 젊어보이는 걸까. 필자가 보기엔 현역으로 뛰고 있기 때문에 젊은 것이다. 이들중 일부는 여행중에도 귀국후 드라마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대본을 외웠다. 직업이 있다면 나이가 많아도 자기관리는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난 7월말 현재 충북이 사상처음으로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노인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충북의 도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년 전보다 4천382명 증가한 21만9천627명으로, 전체 인구(156만9348명)의 14.0%였다. 이는 인구 100명당 14명이 노인으로 충북도 점점 늙어가고 있다.
벌써 몇곳은 노인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다. 보은군은 28.7%로 12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고 괴산군(28.4%), 영동군(25.5%), 단양군(23.8%), 옥천군(23.0%)이 뒤를 잇고 있다.
고령인구 증가는 지구촌 거의 모든국가의 과제다. 향후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고령인구는 2~3배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오는 2017년 104.1명으로 유소년인구보다 고령인구가 더 많아진다. 2040년에는 288.6명으로 노인 3명당 유소년 1명꼴이 된다.
충북대 이만형 교수(도시공학과)가 지난해 'Issue & Trend' 6월호에 발표한 '충북 고령화의 현실'은 지방이 얼마나 빠른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지 말해준다. 이교수는 오는 2060년에는 충북인구의 절반 가량(48.6%)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게 된다고 밝혔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우리사회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생산인구의 부족으로 청소년들이 그만큼 부모세대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자란다는 얘기다. 하지만 고령인구의 생활능력이 떨어지지만 노인들을 부양하는 자녀는 드물다. 고령자 가운데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비율이 44.8%로 자녀에게 의존하는 경우(41.7%) 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1∼2인 가구의 70%가 60대 이상의 가난한 노인들이다. 그나마 예전엔 부모부양이라는 안전망이 있었으나 이젠 급격히 해체되면서 억척같이 일해 경제적 풍요를 이룬 부모세대의 삶은 더없이 고단해 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국가중 노인빈곤률 1위 그리고 자살률 1위다. 노인 45%가 빈곤에 허덕이고 10만명당 77명이 자살한다. 지금이 이럴진데 5년후 10년뒤가 되면 더 심해질 것이 틀림없다.
노인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면 노인빈곤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대책은 두가지다. 아직은 힘있는 70세 이하의 젊은노인들에게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일할수 있는 다양하고 현실적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처럼 '무연(無緣)사회'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70-80대 노인들을 위한 문화공동체와 사회안전망을 가동해 말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대비하는 것이다. 고령인구가 늘어난다면 정부의 복지시스템도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 젊은시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지 않는다면 '황혼의 빈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일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기르는 것은 정부와 본인 스스로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다. 일하는 노인은 아름답다.
/ 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