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혹의 세계가 연기하는 과정
아뢰야식 가운데는 생멸변화하는 거짓[妄]의 성질과 생멸변화하지 않는 참[眞]의 성질이 화합해 있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런데 그 참이라는 것은 본래 갖추어져 있는 진여의 본체를 인식하는 작용이고, 거짓이라는 것은 미혹하여 진여의 본체를 그릇되게 인식하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전자의 작용을 밝음[明: 覺]이라고 하고 후자의 작용을 어두움[無明: 不覺]이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 어두움 즉 무명이 점차 전개하여 미혹한 범부들의 거짓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명 다시 말해 불각은 원시불교의 근본교설인 십이인연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현상을 연기시키는 근본원인이다.
그런데 이 불각에는 근본불각根本不覺과 지말불각枝末不覺의 두 가지가 있다. 근본불각은 최초에 있어서 진여에 어두운[迷] 것이므로 미진무명迷眞無明이라고도 한다. 지말불각은 근본불각에 의해 거짓된 것을 참으로 여기고 집착하는 것이므로 망집무명妄執無明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구리를 구리인줄 모르는 것은 근본불각 다시 말해 미진무명이고, 그 구리를 다시 금으로 잘못 아는 것은 지말불각 즉 망집무명이다.
이와 같이 무명으로 말미암아 점차 미혹한 세계가 연기되는 과정을 연기론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삼세三細· 육추六麤의 구상차제九相次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삼세란 다음과 같이 그 작용하는 모습이 극히 미세한 것 세 가지를 말한다.
무명업상
무명업상無明業相을 줄여서 그냥 업상業相이라고도 하는데, 맑고 깨끗하며 고요한 진여가 난데없이 무명에 의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는 최초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지지 않는 미혹한 세계의 원시적인 상태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무명이란 불각 또는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진여법이 하나인 이치를 여실히 체득하지 못한 것이며, 일법계一法界의 이치에 체달하지 못했으므로 홀연히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최초로 작용하기 시작하는 한 생각의 가장 미세한 상태이다. 또한 여기에서의 업이란 ‘움직인다[動作]’는 뜻과 ‘원인이 된다[爲因]’는 뜻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전자는 고요하던 진여가 무명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데서 그렇게 일컫는 것이고, 후자는 진여가 무명에 의해 움직이면 그것이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어 반드시 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게 일컫는 것이다.
능견상
능견상能見相이란 전상轉相이라고도 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무명업상이 한번 굴러서 주관적 인식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이 미처 분화되어 있지 않았던 업상이 비로소 주관의 작용을 일으켜 장차 객관경客觀境을 인식하려고 하지만 아직 그 인식할 대상인 객관은 이루어져 있지 않으므로 실제의 인식작용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를 말한다.
경계상
경계상境界相이란 현상現相이라고 한는데, 주관인 능견상에 이끌려 그 인식대상으로서 객관의 세계가 망령되이 나타난 상태를 말한다.
이상의 삼세를 비유로 들어 설명한다면 무명업상은 거울과 같고, 능견상은 거울이 물체를 비추는 능력과 같으며, 경계상은 거울에 비친 대상물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다음에 육추六麤란,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삼세상에 의해 주관과 객관이 나뉘었고 인식한 대상도 나타났으므로, 본격적으로 갖가지 망상분별이 일어나 점차 현격한 모습[추상]을 나타내게 되는 다음과 같은 여섯 과정을 말한다.
지상
지상智相이란 인식의 대상인 경계상이 바로 우리들의 주관적인 마음속에 표상된 그림자[影像]인 줄을 모르고 외계의 사물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여 곱다· 밉다· 더럽다· 깨끗하다· 옳다· 그르다· 바르다· 비뚜르다 등 온갖 분별[智]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즉 거울에 비친 그림자를 실체라고 오인하는 분별심을 말하는 것이다.
상속상
상속상相續相이란 앞에서 언급한 지상에 의해 일단 일어난 선악시비 등의 그릇된 분별이 차차 굳어져서 좋은 일에는 애착을 느끼고 싫은 일에는 거부감을 느끼며 때로는 괴로워하고 때로는 끊임없이 계속해 나가는 상태를 말한다.
집취상
집취상執取相이란 상속상에 의해 일어난 고· 락의 세계에 대하여 언짢은 것은 굳이 배격하고 좋은 것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아집我執 아욕我慾 등이 깊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계명자상
계명자상計名字相이란 집취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아집의 세계에 대하여 사랑이니 미움이니 하는 식으로 제멋대로 이름을 붙이고 다시 그것에 대해 분별사유[分別計度]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상
기업상起業相은 조업상造業相이라고도 하는데, 사랑하고 미워하는 등의 생각이 확립되면 다시 그에 대해 좋으면 탐을 내고 싫으면 성을 내는 등 수 천 수 만 가지의 번뇌를 일으키고, 그 번뇌에 따라 선악을 짓는 것을 말한다.
업계고상
업계고상業繫苦相은 수보상受報相이라고도 하는데, 기업상에 의해 지어진 업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보를 받아 삼계三界· 육도六道에 윤회하면서 업력에 얽매여 고통을 받아 영원히 미혹한 생각을 계속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중생들이 생사고해를 전전하면서 자유 없이 고통에 허덕이는 근본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진여眞如를 알지 못하는 무명[根本不覺]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