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은경 감독의 독립영화 <뉴스페이퍼맨: 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가 상영 되었다고 한다.
<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은 23년간 신문보급에 종사한 어느 신문지국장이 1억5000만원의 빚더미에 올라앉고, 개인파산 신청을 내기 위한 변호사 선임비용 180만원을 구하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실화를 다룬 영화란다.
비록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제목만 보고도 ‘안 봐도 DVD'이었다.
한 마디로 그림이 추상화가 아닌 입체화로 그려졌다.
왜냐하면 나는 생애 최초의 직업인 신문배달을 통해서 세상이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45년 전 고등학교 2 학년 때였다.
인생 대학 부모 박복과 출신답게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보급소에 가서 신문 뭉치를 옆에 끼고 동네를 돌면서 신문을 배달하고 학교 갔다 와서는 영수증을 들고 수금을 하러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확장지이었다.
예를 들어 독자가 100명이면 신문은 110부를 준다. 10부는 알아서 독자를 늘이라고 일정기간 강제로 할당하는 것이다.
배달원은 확장지를 안 받으려고 하고 보급소장은 강제로 떠맡기는 과정에서 오래된 배달원에게는 조금 주고 신입 배달원에게는 많이 주는 불공평이 벌어진다.
3개월 (몇 달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후면 독자를 110명으로 계산해서 돈을 내야하고 또 다시 10부를 확장지를 준다.
결국 실제 수금을 할 수 있는(그나마 신문값 안내고 도망가는 사람이 없다면) 독자는 100명밖에 안되는데 보급소에는 110명의 돈을 내야하니 새벽부터 저녁 까지 일을 해도 손에 남는 것이 없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청춘 스타 신성일과도 신문값 때문에 엄앵란이 앞에서 멱살 잡고 싸운 일이 있었다.
하여간에 보급소에 납부해야할 돈이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보증금 까지 떼이고 더 이상 배달을 할 수 없게 되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나도 6개월 인가를 하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공장에 다닌 누나 월급에서 만들어 준 보증금까지 털리고 그만두었다.
바로 이런 배달구조가 대한민국에서 신문 끊기가 담배 끊기보다 어려운 이유이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사회 최대의 약자인 배달원의 노동을 착취해서 이루어진 것이 오늘의 한국의 족벌신문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가 이제와서 그것도 가난한 영화감독에 의해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는 게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신문사는 신문을 만들어 내고, 신문 지국은 만들어진 신문을 각 가정에 배달한다.
각자 신문이라는 ‘제품’의 생산과 유통을 책임진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노예관계이다.
신문 지국은 할 사람이 많으므로 신문사는 신문 지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신문지국이 신문사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지국에 해당 지역의 관리를 넘기기 때문에,
신문지국은 매년 올려야 할 실적을 정해야 하고 실적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불이익을 감수하며,
무가지 부수에 상관없이 지국에 배달되는 부수만큼의 대금을 신문사에 납입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내 피를 빨아먹던 그 신문사 앞을 지나가기면 하면 침을 밷었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내 대신 침을 뱉어주시라.
"에잇! 더럽다. 퇴 퇴 테." 하고
첫댓글 ㅎㅎ 신문 끊기가 담배끊기보다 어렵다니... ㅎㅎㅎ 그거참 좋은 비유이십니다...그 말씀을 들으니 한국 생각이 나는군요...ㅎㅎ
이런 것을 구조적 모순이라고 그러나요? 그런데 그 구조적인 모순에서 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지요...소위 조선일보 사주들과 같은 사람들...결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왜곡되이 만들어진 착취구조이겠지요...ㅋㅋㅋ
누가 뭐래도 지목사님은 이러한 왜곡된 구조적인 모순을 고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셨으니 그런 삶이 바로 주님을 참으로 쫓는 삶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퇴퇴테.....퉤퉤퉤!!! 조중동 중에 하나였었나부다. 정말로 더러븐 넘들이다.
신문지국은 취재와편집을 거쳐 인쇄를 한다음 최종 독자에게 전달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배달을 하는 사람들과 지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언론인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빨리고 있지요. 언제나 모두가 서로 사람임을 인정하고 계급차별없이 살 수 있을까요.목사님의 건승하심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