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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사랑하는 천부중앙교회 박호철 목사님과 장로님들,그리고 성도님들께
그동안 주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추석 명절은 잘 보냈셨는지요. 조국의 추석명절 소식에 마음속 깊이 뭍혀있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금 물밀듯 일어납니다. 보고싶고 가고싶은 마음을 추스리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또 다시 두번째 소식을 전합니다. 벌써 또 3개월이 지났습니다. 한 이틀동안 쉬지않고 내리던 비로 인해 그토록 뜨겁고 습했던 일본열도도 이제는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리없이 달리는 빠른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쉬지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다시금 깊이 묵상해 봅니다. 사랑하는 조국교회와 후원자님들의 사역과 삶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해 더욱 빛나는 보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1. 계속되는 리하비리(물리치료)
지난 6월초에 있었던 교통사고 이후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몸이 많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국교회와 후원자님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몸전체에 대한 재검진을 아내와 함께 받았습니다. 사고 이후 지금까지 3개월정도 치료를 받았는데, 전체적으로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물리치료가 계속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습니다(아내의 경우). 저의 경우도 어깨 관절(염증)과 어깨관절부위를 둘러싸고 있는 4개의 근육중 2개가 손상되어 있다는 결과가 나와 앞으로 완치될때까지 리하비리를 지속적으로 받으라는 진단이 다시 나왔습니다. 걱정은 되지만 회복될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일 병원에 가서 1시간 정도의 리하비리(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때때로 팔을 움직일때 느껴지는 어깨 통증때문에 마음이 무거울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기회로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있을때 마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여 이 험난한 선교지에서 육체의 리하비리를 넘어 영혼의 리하비리(물리치료) 가 날마다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1. 언어의 진보와 복음의 진보
역시 일본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날마다 새롭게 일본어를 배워가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여전히 잘 들리지 않고 유창하게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늘 있지만 하루하루 새롭게 들리는 단어와 말의 흐름에 장단을 맞추다 보면 때때로 흥이 날때가 많이 있습니다. 단순히 들려오는 말의 뜻 그 자체를 넘어 그 언어속에 담겨있는 그 사람의 기분과 느낌을 가질 때면 물밀듯 밀려오는 행복감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합니다. 이제 일본어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지도 50일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레벨 테스트를 우수한(?)성적으로 통과했습니다. 아내는 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 했습니다. 모든 분들의 기도덕분입니다. 이제 저는 중급과정으로 들어가게 되고 아내는 한단계 아래인 초급3 과정을 공부하게 됩니다. 언어공부는 날마다 성실하게 반복의 반복을 거듭해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저와 아내에게 성실함과 열심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들려오는 일본어에 대한 느낌이 좋습니다. 곧 한 단계 점퍼할 시점에 온것 같습니다. 언어에 더 빠른 적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기대해 봅니다.
1. 역시 지진은 대단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예로부터 무서워하는 있습니다. 그것은 벼락,불,지진, 오야지(아버지)입니다. 그 중에서 지진에 대한 공포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1995년에 일어났던 고베대지진은 세계역사에도 길이남을 지진이었다고 합니다. 수직으로 흔든 지진으로 단 몇 분사이에 순식간에 56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버린 대재앙이었습니다. 요즘 일본은 강한 지진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내 지질학자들 사이에는 벌써 80년 주기설과 150년 주기설을 들고 공공연하게 언론을 통해 대지진을 경고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강타할 지진은 동경을 중심으로한 태평양 연안이 될것이라하는데 실은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은 일본에 온후 지금까지 진도 4에 해당하는 제법 센 지진을 3번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낮시간에 두번은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 온 지진이었는데, 정말 두렵더군요.얼마전 지진을 또 만났습니다. 아기들 전기 요람이 앞뒤로 흔들리듯이 집이 흔들리는데, 순간 책상 밑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밖으로 뛰쳐나가 공원으로 가야하느냐? 하며 좌충우돌하다 지진이 잠시 멈춘사이 아내와 아이들 모두 공원으로 뛰어나간 적이 있습니다. 몇번씩 반복해서 흔들리는 11층 짜리 건물을 바라보면서 두려운 마음과 아울러 나와 가족들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지진이 일본인들에게 깨닫음의 귀한 선물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진때문에 진자(신사)로 달려가기 보다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일본인들, 영적으로 깊이 잠자는 그들의 영혼이 깨어나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는 그날을 꿈꾸어 봅니다.
1. 아직 아줌마가 무서워요.
일본문화와 생활에 적응을 한다는 의미의 가장 직접적인 것중에 하나가 목욕탕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분도 계시겠지만 일본의 목욕탕(남탕의 경우)을 들어가면 모든 남자들이 수건을 하나씩 들고 있거나 또는 뭔가(?)를 가리고 다닙니다. 한국의 남탕과는 전혀 다른 진풍경입니다. 그 이유는 아줌마 때문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에 가까운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분은 남탕이든 여탕이든 마음껏 활보하며 다닙니다. 저는 목욕탕에 갈때마다 이 아줌마가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심하게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에 간적이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목욕탕 입구에서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가능하면 아줌마를 피해 옺장이 있는 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가 옷을 벗는 곳에 와서 이래저래 청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빨리 가주었으면 바랬는데 가지 않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옷을 다 벗고 힘들지만 한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한손은 수건으로 그곳을 가리며 아줌마 옆을 지나 탕입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아줌마 옆을 지나는 순간 영상이가 '할머니' 하고 그 아줌마를 붙잡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놀라서 아이를 붙잡는다고 양손을 드는 순간 저는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놓치지 말아야 할 수건을 놓아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그런데 아줌마는 아이가 귀엽다고 하며 저를 흘깃 보며 빙긋이 웃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화끈거리는 온몸의 전율을 견디며 아줌마를 향해 웃으면서 슬거머니 떨어진 수건을 다시 집었습니다. 그리고 얼른 탕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줄행랑치듯이 아이를 안고 뛰어들어갔습니다. 탕안에 들어가서야 비로서 마음이 안정되더군요. 하지만 마음의 또 걱정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아줌마의 움직임 때문입니다. 그녀는 탕 안에도 전혀 게의치 않고 방문하는 분 입니다.
일본의 목욕탕은 한국과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수 있는 넉넉함이 복음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자세이기에 목욕탕에 가는 것이 또 하나의 귀한 훈련입니다. 그래서 실은 저는 아줌마를 만날때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줌마는 일본의 문화와 습관 그 자체입니다.
1.일본교회 수련회의 풍경
제가 속해 있는 일본 개혁파 교단의 교회들은 주로 연합으로 수련회를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은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련회로 모이면 많은시간을 할애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일명 벤쿄(공부)시간입니다. 발제하는 사람이 몇가지 주제로 발제강의를 2-3가지 하면 그것을 두고 각교회의 조로(장로)가 리더가 되고 여러교회 사람들을 섞어 조로 만든뒤 4시간정도의 토론및 나눔을 하는 시간인데 이 시간은 수련회에서 반드시 꼭 넣은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일본와서 느낀것이지만 일본사람들은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일본교회 수련회에서 한국과 다른 몇가지 재미있는 진풍경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장로님은 담배를 자연스럽게 피면서 목사님들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합니다. 한사람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오직 한국사람뿐입니다. 반드시 수련회 프로그램중에는 온센(온천)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은 온센문화가 생활 깊숙이 배어있다는 증거겠죠. 또 한가지는 통계가 정확합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수련회 참석인원은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된다는 것입니다. 수련회참석 대상자는 적어도 장소섭외 일정 이전까지 참여여부를 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수련회는 수련회 당일까지도 파악되지 않은 인원때문에 준비에 여러가지로 힘든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일본에는 적어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인원파악 공고가 나가면 반드시 담당자에 알려주는 것이 예의고 그렇게 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철저합니다. 그리고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절대로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점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참석을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가도 수련회 당일날 마음을 바꿔 가는 경우도 있고 하루나 이틀 지나서 잠깐 들리기도 하고,..또 그렇게라도 오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한국의 수련회 풍경이요 정서인데.. 일본은 모든 준비를 정확한 인원통계에 의해 숙식 및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처럼 행동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됩니다. 한국식 사고로는 이해가 좀 힘든 면도 있지만 이게 일본이고 일본사람들입니다.
1. 10-20-30-40-50%
일본에 와서 생활에 한가지 큰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곱하기 10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처음 한달 동안 비싼 물가에 저와 아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이래서 우리가 살겠나? 라는 푸념섞인 대화를 이어간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그래서 저희 가정의 기도제목중에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필요한 식료품을 가능하면 할인된 가격에 사는 기도제목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해오면서 한번도 못했봤던 기도제목 입니다. 할인된 가격의 물건을 사야만이 생활이 가능하게 되는 현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주기도문의 기도가 저희 가정에는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비싼 물가에 대한 적응입니다. 아내는 가능하면 매일매일 장을 보러갑니다. 왜냐하면 그때그때마다 할인된 가격으로 내놓는 상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는 우유를 사기 위해 자주가는 식품점에 갔습니다. 그 식품점은 매일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는 가격을 할인해서 내놓는 상품들이 있습니다. 역시 우유를 파는 코너에 도착했을때 30% 할인된 우유가 3통 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50%할인된 우유를 산 경험이 있는 터라 '어떻게 할까? 살까? 조금 더기다릴까? 생각하는 사이에 여기저기로부터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50%가 되기를 기다렸다가는 30%할인된 가격의 우유마저 사갈수 없다는 불안감에 일단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보니깐 할인된 우유는 3통이 전부였고 또 코너에 앉아있는 우유들의 날짜를 보니 더이상 할인될만한 우유가 없을 것라 생각되어 아내를 설득해서 계산을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다시 우유코너에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고 물으니? 지난번 어떤 사람이 30%된 우유를 들고 어떤사람에게 가더니 다시 50%할인 스티커를 찍어 오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우유코너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왠일입니까? 잠시후 유유히 걸어오는 아내의 얼굴이 온통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장바구니를 보니 우유에 붙어 있었던 딱지가 30%에서 50%로 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뿌듯해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제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아내의 마음과 행동을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50%의 스티커는 기도의 응답의 위한 아내의 열심과 하나님의 열심이 만든 100%의 걸작품입니다.
1. 앞서가는 니홍고 뒤처지는 칸코쿠고(한국어)
일본생활의 가장 빠른 적응맨은 바로 두 아들 영욱이 영상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국교회와 후원자님들의 기도덕분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매일 가는 보육원에서도 친구들이많이 생겨난것 같습니다. 가까운 할인점이나 백화점에 가더라도 영욱이 영상이 친구들을 자주 만납니다. 서로 좋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엄마 아빠보다도 휠씬 더 빠르게 적응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두 아이의 입에서 일본말이 많아졌습니다. 간단한 표현을 넘어서 문장을 말할때도 있습니다. 드디어 언어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든 한국말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하는 저와 아내로선 아이들 머리속으로 포맷되어져 오는 일본어에 맞서 한국어가 동일하게 작용하도록 하기 위한 비책을 준비해야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제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가나다라... 글자 공부를 마쳤는데, 잘 기억하는 조건으로 먹고 싶은 초코렛을 하나 사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원칙을 습관적으로 말합니다. '집에서는 반드시 한국말 한다. 알겠지? 라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가면서도 한국말을 잊지않고 말할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되도록 복주시기를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고 김선일씨의 소식을 일본언론이 비중있게 다룬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다니는 교회의 일본인 야쿠인(교회 회원을 부르는 말)중 한분이 TV화면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함과 동시에 일본인들과는 다르다고 느낀 한가지 한국사람들의 특이한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그것은 다름아닌 아들의 참수소식에 오열하는 부모님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오열하는 등의 극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앞에서는 극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어떻게해서든 참는 듯한 절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혼자 실컷 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본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땅과 이땅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때때로 힘들때가 있습니다.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속상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극복해 내고 이겨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때문입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것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제 두번째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직접 문안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 편지로 대신합니다. 늘 주안에서 성령충만하시고 영육간에 강건하십시요.
일본의 젊은이들이 복음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헌신한 모든 조국교회와 후원자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넘쳐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004년 10월 10일 주일 늦은 저녁에
일본에서 SFC 손만석(김영숙)간사 드림.
첫댓글 복음음의 눈으로 일본을 볼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