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7(명종 2)∼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 자는 영보(榮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팽숙(膨叔)의 증손이며, 사운(思雲)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홍문관정자
로 등용되어 국가문서를 맡아서 처리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호종(扈從)보다
달려가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와 함께 다시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그해 8월, 지난 번 그곳에서 참패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총병력으로 공격해오는 왜군과 처절한 혈전을 벌이다가
동료 고종후
와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뒤에 병조참의
에 증직되고,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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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우리 함양오씨 조상님 자료등 어디서 구할수 있을까 검색도 하고 하지만 참 어렵네요 없어서요 족보나 사료 자료등 보고 연구 하여 새로이 올리기 전에는 없는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알아두면 좋겠어요
휼룡한 조상님에 얼을이어 바다야 할테더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