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농촌, 좋은 자연환경으로서의 농촌은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직업이 농업(農業)인 분들이 자연사하고, 성장기를 농촌에서 보낸 도시 촌놈들이 자연사하는 50년 100년 후에도 말이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둘러싸인 일상의 환경은 비슷할 것이다. 사무실, 컴퓨터, 책상, 전화, 책, 서류더미. 비교적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방송쟁이도 여기에 TV, 편집기, 카메라 등의 기계, 방송용 테이프들 정도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좀더 자주 대하는 것일 테다. 자연이 주는 심적 정화(淨化)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넥타이 안 매고 사는 재미를 구가하고, 마음만 먹으면 공간 이동이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가 이러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는 사람들은 오죽 할까.
*일 바쁘답시고 홀로 계신 시골의 어머니를 자주 찾지도 못하니 <우동소>가 아니면 정서 순화의 계기는 거의 없는 셈이다. 첨단지구 시내버스 종점에서 장성 진원동초등학교를 따라가는 들길 차창으로 펼쳐진 자연풍경이 싱그럽다. 황토색 농지를 덮은 논의 초록 물결, 생명의 색깔이다. 도시에서 쌓아가는 뿌연 회색을 일거에 뒤덮어버린다.“우리 인간들 정서 순화를 위해서라도 농촌은 영원해야 되겄지이”한마디가 절로 나온다.
*마을에 들어서니‘이장님이 매우 적극적’이라고 귀띔을 해준 작가의 말마따나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냄새가 난다. 수령이 455년이라고 적혀있는 높이 20m 둘레 6m짜리 느티나무 옆에서 젊은 아낙들이 돼지고기, 떡, 수박, 방울 토마토를 장만하고 있고 마을 정자에서는 상이 휘어지게 차려져 있다.“이장님이 얼마나 멕였는가 코가 삐뚜러져 부렀어”“NG 나분께 안되야 언능 해”기분이 좋아보이는 어머니들이 와글와글하는 초등학교 교실처럼 한마디씩 해댄다.
*온통 초록빛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마을 풍광. 불대산, 안마산이 뒤에서 마을을 감싸안고 있고, 뜸직한 느티나무 옆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고, 숲 옆에 자리잡은 마을 정자도 시원스럽다. 27가구 60 여명. 마을분들의 주업은 물론 벼농사고 세 가구는 딸기 하우스까지 겸하고 있단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농업 말고 직업군의 스펙트럼이 퍽 넓다. 대학교수, 시인, 화가, 약사, 교사들이 산다.“산수 좋고 공기 맑은 우리 상림마을엔/나무도 많고 꽃도 많고 시인도 있다네/서울 손님 부산 손님 상림마을로 여행 오세요~”젊은 부녀회장 봉춘자씨는 <감수광>에 상림마을을 자랑하는 노랫말을 붙여부르고 <상림골>이라는 시를 썼다는 시인 남편은 제작진을 붙들고 마을 홍보에 열을 올린다. 광주 세광학교 교사라는 김은경씨는 광주에서 이사할 곳을 찾다가 이 마을을 와보고는 ‘3일만에 결정’했다고 자랑이다.
*“지금 이 양반들이 짜고 고스톱을 친다냐”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을 자랑이 일사불란하다. 듣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광주까지 차로 10-20분이면 닿는 거리, 푸근한 마을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도시 사람들을 텃새없이 맞아주는 마을 인심. 이런 조건이 상림마을을 청장년(靑壯年)이 공존하는 마을로 변모시킨 것이다. 김은경씨의 말이다.“저기 노래하시는 분 있죠? 저 분이 제 노년의 체력적 모델이거든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시면서도 양동시장에 가서 채소팔고 오시고 그래요. 존경스럽더라구요.”한 마을에 사는 할머니를 향한 말이다. 일터는 도시에 있고 거주지는 자연친화적인 광주 인근을 택한 젊은 세대가 마을분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며 산다는 얘기를 듣고 하는데, 이 마을은 달라보인다. 그래서 참 좋아보인다.
*아무래도 마을의 고령자들 중심으로 판이 벌어지게 마련인 <우동소>에서도 그렇다. 물론 젊어서 한량 선생들에게 판소리를 배워 심청가 가운데 <심청이 인당수까지 가는 대목>을 부른 이재석 어르신(80)이나 옛날 모심을 때 불렀던 <들노래>를 하는 유재선(73) 어르신의 구성진 맛에 댈까만, 봉춘자 부녀회장도, 김은경씨도 마이크를 피하지 않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선다. 이런 광경을 대하는 임동화 이장(53)의 표정도 퍽 상기된 듯하다.“시골이라 해도 이제 노는 판이 없어졌어요. 각자 살다보니 옛날같은 정취가 사라져가고, 누가 모심고 그러먼 못밥 얻어묵고 하는 맛이 있었잖아요. 세상이 현대식으로 가면서 정이 메말라가지만 우리는 부자촌은 아니지만 마음은 부자로 살라고요.”
*삶의 방식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고 정답일까 하는 생각은 해보게 된다. 이장님의 의지처럼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마을 정자에서 재미진 굿판을 벌이는 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 상림마을처럼 젊은 이주민이나 마을 토박이 어르신들이 서로를 고운 눈으로 보아준다면 말이다.
*음식 장만하는 젊은 아낙들
*촬영을 마치고 기념사진. 정답다.
*광주에서 이 마을로 이사하기까지 '3일 만에 결정'했다는 김은경씨(가운데).
*마을 들노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재석 어르신(73).
*이런 마당에 목말라있는 임동화 이장님(53).
*제대로 된 판소리를 갖고 있는 이재석 할아버지(80).
*엄니들 오늘 발동 걸렸다!
첫댓글 여지껏 다녀 본 마을중에서 제일 멋있는 마을....자연환경이 정말 좋았어요 상림 가서 살고 싶더랑께
사진보는것만으로도 공기까지 맑게 느껴지네요.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