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내] 내 평생 소원이 양반놈 하나 비오는날 먼지날 때 까지 작신나게 패버리는거였다, 나좀 줘라 그양반
[네사내] 좋은 일은 같이 하면 더 신나지
[사공] 이러지들 말고 말로 하시게. 이 젊은이는 내 배 탈 손님이네
[두사내] 이럴땐 비키는게 몸보신하는거요, 왜냐 열나면 우리도 저놈 처럼 위아래가 없거든[사공] 이 사람 사정도 들어봐야지, 자기 부친이 김삿갓이라고 그러니
[두사내] 비켜!
[주모] 그만들해! 말썽나면 이집 영업정지야
[익균] 힘없는 노인을 함부로 대한 건 내 불찰이오. 하지만 저 늙은이가 삿갓을 쓰고 아버님의 이름을 더럽히는거는 참을수 없는 일이요. 분명히 내 아버님이 진짜 김삿갓 어른이시오[주모] 김삿갓이 무슨 홍길동인가, 저쪽도 김삿갓 이쪽도 김삿갓
[사공] 아버님이 김삿갓이라니 도대체 어디 있는 어던 아버지요?
[익균] <노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내 어머니와 우리 형제를 낳으신 나의 하늘태생은 한양 문벌 높은 장동 김씨 문중의 병字 항렬의 자손 字는 성심 號는 난고 병字 연字하여 이름은 김병연 살아계실때는 이 강토 누비시고 다니신 방랑의 시인 김삿갓 돌아가셔서는 이 불효자의 품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 (흐느낀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山紫水明한 고향땅 영월로 가시셔 死後福樂을 누리소서 (유골 단지를 꺼내며) 보시오. 전라도 땅 동복에 묻히셨던 아버님의 유골이오
[사공] 어허 효자로세
[주모] 아니 그래, 그 먼데서 이렇게 모셔 가는 길이란 말이요
[익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삼년을 수소문해서 겨우 알아냈지요
[한사내] 양반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이지, 허지만 이양반이 진짜 김삿갓이란 물증이 있소[네사내] 내 말이 그말이지
(방에 누워있던 주삿갓, 나온다)
[주삿갓] 뭔일이 있었는가?
[사공] 삿갓 어른! 本名이 뭐시요?
[주삿갓] 떽끼놈! 천하를 주유하는 이 삿갓이 어찌 본이름을 달고 다닐소냐 나는 그저 김삿갓이다
[주모] 진짜 김삿갓은 죽었다고 이러는데, 그 아들이래요
[주삿갓] 나 너같은 아들 둔적 없다
[한사내] 고향이 어디요
[페이지] 007
[주삿갓] 하늘
[한사내] 어디서 태어낳느냐 말이오
[주삿갓] 엄마 뱃속에서
[한사내] 시 한수 지어보시오, 지금 당장
[주삿갓] 어허, 밥을 먹어야 밭을갈고 술이 있어야 술술 시가 나오지
[세사내] 허긴 그래, 나도 술을 마셔야 노래가 나오더라
[두사내] 이 어른이 김삿갓이라고봐 나는, 왜냐 뭔가 다르잖아
[세사내] 우리하고 통하구
[네사내] 맞어, 그냥 좋잖아 그게 김삿갓 아닌가
[한사내] 김삿갓이 저렇게 양반이라고 뻐겨대는 아들을 뒀을리 없어
[익균] 당신이 김삿갓이라는 증거를 대보시오
[주삿갓] <노래>
내가, 여기계신 나 김삿갓이 김삿갓이라는 이유는
나는 그냥 김삿갓, 자나깨나 김삿갓, 앉으나 서나 김삿갓산을 가도 강을 가도 김삿갓, 달을 봐도 별을 봐도 김삿갓걸어가도 김삿갓 배를 타도 김삿갓 어딜 가도 김삿갓
술한잔에 김삿갓 시한수에 김삿갓 떠나가는 김삿갓
내가, 여기계신 나 김삿갓이 김삿갓이라는 증거는 딱 하나보다시피 알다시피 삿갓을 냵으니
내가 바로 김삿갓
(숨어서 지켜보던 조포교 나선다, 삿갓을 냵다)
[조포교] 하하하, 삿갓을 냵다고 다 김삿갓이라면 나도 김삿갓이 아닌가 여기, 진짜 김삿갓이 썼던 삿갓이 있다, 받게 자네 부친의 유품일세
[익균] 뉘시온지?
[조포교] 나는 대원군 대감으로부터 김삿갓의 행적을 조사하라는 특명을 받은 기찰포교이다.
김삿갓을 흉내내면서 민심을 교란한 대역죄인 가짜 김삿갓 주생원은 엄벌을 받겠느냐, 아니면 저 부인네를 따라가겠느냐 (부른다) 이리 나서시요
[마누라] 여보! 아이고 지겨워. 하라는 훈장질은 안하고 허구헌 날 술풍류에 비럭질이 웬일이요, 웬수여 웬수. 가요 가. 내일이 아버님 제삿날인거 몰라요
[주삿갓] 어흠! (노래) 그래도 나는 김삿갓, 죽어도 김삿갓간다 간다 간다만은 꼭 다시 와야하는 김삿갓
시절이 하 수상하고 마누라 또한 끈질기니
올똥말똥 하노메라 걱정하며 가는 나는 김삿갓
[주모] 가짜가 더 진짜 같으니 참 요상시러분 세상이네요 아참, 저 영감태기 거기 서라! 술값 내고 가 (좇아 나간다)
[사공] 술값 챙기는 거 보니 진짜 주모가 맞구만
[두사네] 혹시 그쪽도 가짜 포교 아니요?
[조포교] 하하, 그건 두고보면 알일이고, 옛소! (돈꾸러미를 사공에게 던진다) 진짜 돈이 분명하렷다
[사공] 물론이지요
[조포교] 지금 당장 배를대서 떠나도록 해주시게
[사공] 이 밤중에요
[페이지] 008
[조포교] 삿갓어른, 고향 가시는 길에 낮밤이 따로 있을수 없고, 휘엉청 든 저 달이 옛이야기 나누기에는 안성맞춤 아닌가, 가세!
[익균] 아버님을 어찌 잘 아시는지요?
[조포교] 알다 뿐인가, 밤을 새며 나누어도 못다할 사연과 인연일세
<노래>
이배 타고 흘러가면 다가올 날들의 파도 몰아치는 역동의 바다이배 타고 올라가면 아득한 시인의 발자취 펼쳐진 격정의 세월萬古中天 높이 뜬 저 달빛에 어른대는 삿갓 쓴 시인의 방랑의 혼
[장] 3장
영월 都護符
백일장이 열리는 관아의 뜰
젊은 병연이 형 병하와 함께 유생들과 도열해 앉아있다
[기생들] <노래>
고개 고개 넘는고개 아흔 아홉번 넘는 고개
구름도 쉬어 머무는 땅 우리 고장 영월이라네
회계산 봉래산 둘러친 신선이 사는 도읍
단종의 한이 서린 충절의 고장
고개 고개 넘는고개 아흔 아홉번 넘고 넘어
구름같이 모여든 선비님들 앞날은 구만리 할일은 태산같은가문의 효자 나라의 기둥
[병하] 좋다, 오늘 장원하면 저 꽃같은 기생들이 너한테 술을 따를 것이다, 잘해봐, 이까짓 백일장의 장원이야 네 실력이면 따놓은 당상이다
[병연] 형님, 글 읽은 선비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는데요
[병하] 재미 반 구경 반 으로 나온 허풍선이가 태반이야 저기 저 어린놈은 천자문도 못뗏는데 작년에 이등을 했지
[병연] 어떻게
[병하] 그 애비가 돈주고 문제를 미리 빼내서 답안지를 미리 적어준거야 올해도 분명 그랬을거다
[병연] 그럼 이 시험 쳐보나 마나내
[병하] 아니야, 답안지 작성해준 읍내 서당훈장 실력도 너만 못하니 걱정마 저기 저자는 재작년에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포목장사
[병연] 전부 그런 자들이라면 장원은 우리꺼네요
[병하] 방심과 오만은 금물, 저기 저 중늙은이 있지, 올해가 삼십년째 도전이란다. 저런 재수 삼사오륙십수생들이 쌔고 샜어 그리고 오늘은 소문 듣고 충청도 경상도에서 온 쟁쟁한 선비들도 많단다
[병연] 그러나 내 경쟁 상대는 딱 한사람
[병하] 누구
[병연] 형
[병하] 하하하, 누가 된든 기뻐하실 우리 어머니
[페이지] 009
[사또] 오늘의 詩題!
신미년 홍경래 난때 역적에게 투항하여 목숨을 구걸한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를 논하고, 목숨바쳐 싸운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술하라
[병연] 형님! 됐어요 이건 내가 예상했던 문제야
[병하] 안돼, 오늘은 그냥 가야겠다
[병연] 왜그래
[병하] 어서 빨리 일어서지 못해, 가자니깐
[병연] 오늘을 위해 우리가 쌓은 공력이 얼만데 그냥 가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어[병하] (소리친다) 일어나 여길 빨리 나가자구 (사이) 어머니
[유생들] 조용히 합시다
[병연] 갈테면 형이나 가
[병하] 넌 이 詩題로 글을 지으면 않데
[병연] 갑자기 왜 그래, 이유가 뭔데
[사또] 왠 소란들인가, 갈 사람은 썩 나가 다른 이들을 방해마라!
[병하] (나가며) 아! 할아버님
<음악으로 이어지면서>
(반란군들의 모습 보인다)
[홍경래] 단군의 옛터전 평양에서도령이 나온다
[모두] 관서 대원수 홍경래
[홍경래] 차별없는 세상을 말들자
[모두] 만들자
[홍경래] 썩어빠진 이씨조선 갈아엎자
[모두] 뒤엎자
[홍경래] 왔다 왔다 때가 왔다
[모두] 일떠서라 일떠서라
[홍경래] 하늘의 뜻을 알고 투항한 선천부자 김익순은 우리의 동지
[모두] 김익순, 우리의 동지 우리의 장군
(반란과 토벌의 춤)
[토벌관] 반란의 주모 홍경래, 참수하라
[모두] 목을 베어 내걸어라
[토벌관] 반란의 무리들 삼족을 멸하라
[모두] 역적의 씨를 말려라
[토벌관] 선천부사 김익순, 참수하라
[모두] 저 낮짝에 침 뱉어라
[토벌관] 김익순, 너의 삼족을 멸함은 당연한 조선의 국법 다만 너의 가문이 국가조정에 끼친 공이 지대하니 네 자손들의 목숨만은 부지하게 될 것이다(무대 뒤켠으로 김익순과 반란군들의 목이 매달린다)
[페이지] 010
[문중어른] 가거라! 어디로든 가 목숨을 연명하되 절대 세상에 나와서 또다시 문중을 욕되(김대감)게 하지마라 너희들은 이제 우리 안동 김씨가 아니다, 파문이다 (어린 자식을 업고 안은 병연의 아비와 어미 모습 보인다 아비가 쓰러진다, 어머니 목놓아 운다)
[병하] 어머니
[병연] (붓을 든다)
조정의 신하 너 김익순은 듣거라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더냐 문벌높은 장안의 명문 장동 김씨요 항렬은 소문난 순자 돌림이 아니드냐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번 죽기 아깝다 만번을 죽어라 춘추의 필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너는 치욕의 이름으로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붓을 던진다)
[사또] 장원! 김 병연
[장] 4장
집
[병연] 어머니! 장원을 했습니다
[어머니] 그래 네가 내 아들이다. 네 형은 백일장을 박차고 나왔다며 겨우 맘 잡고 살려는가 했더니,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
[병연]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사또께서 지금 당장 한양가서 과거를 봐도 장원을 할거라며 칭찬 하셨어요.
[어머니] 그래, 장하다 내 아들
[병연] 절 받으세요, 장차 육판서 삼정승이 될 둘째 아들의 절입니다
[어머니] 아니다, 나보다 먼저 절을 받아야 분들이 있다 (보자기에서 위패 두개를 꺼내 상위에 놓는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위패다
[병연] 우리 집에도 조상님들 위패가 있었나요
[어머니] 그럼 우리가 어떤 집안인데---
[페이지] 011
[병연] 근데 어째 할아버님께에는 이름이 없고 「金公神位」라고만 되있지요?
[어머니] 나도 잘 모른다, 하루 오래돼서, 차후에 알 날이 있을게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그냥 절이나 올려라
[병연] 예!
[병하] (나타나며) 나는 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너도 알아야 한다, 조상의 이름을
[어머니] 아직 안되
[병하] <노래> 前 선천부사 김 익字 순字 김익순이 우리의 할애비이다 하하하 과거를 보겠다고대역죄인 김익순의 손자 김병연이 학문으로 출세를 하겠다고 웃기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일이라고는 그저 이 저주스런 땅에서 숨쉬는 일뿐인 우리는 역적의 자손[병연] 아! 아! 이 손으로 이 더러운 손으로 날 있게한 조상을 욕하여 칭찬을 받고 이 혓바닦으로 자랑을 하였다, 아 하하! 더럽다 나의 육신 역적의 피가 돌고 있음이다. (뛰어나가 도끼를 집어들고 오른손을 찍을려한다)
[어머니] 안된다! 네가 이러면 난 누굴 믿고 산단 말이냐
[병연] 어머니, 왜 여태 말씀 해주시지 않으셧어요
[어머니] 난, 너 하나 만은 역적의 자손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병연] 놓으세요, 이 손으로 할아버지를 꾸짖는 시를 지어 장원을 했읍니다 이 손을 자르지 않으면 난 글 배운 선비가 아닙니다 구천에 사무치는 불효를 저지르고 어찌 군자의 길을 가겠으며 저 하늘을 바라볼수있으리요
[병하] (도끼를 뺏어들고)
죄가 있다면 널 그 자리에서 끌어내지 못한 이 손에게 불효의 죄가 있다 (손을 찍는다)
[어머니] (기함한다)
[장] 5장
낙동강의 배
[익균] <노래>
강물은 소리없이 흘러도 천리를 가고
시간은 고통속에 흘러도 내일을 향해 간다
來日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지난 날이 되어 저 만큼 멀어져 간다
[조포교] 그날 이후 시름시름 앓던 형님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고,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던 자네 부친의 樂은 오직 한가지
[페이지] 012
[장] 6장
집
어린네 우는 소리, 만삭이 된 부인 황씨가 물레를 돌리고 있다 조촐한 젯상이 마련되 있다[병연] (들어오며) 이판사판 투전판 알 수 없는 요지경 이책저책 읽어본들 뭐하냐 대역죄인의 자손이
이당저땅 파본들 뭐하냐 목구멍 풀칠도 어렵다
이돈저돈 벌어볼수 있겠냐 장사밑천도 없단다
이판사판 투전판 확실한 개판 너도나도 먹을판
속이고 뛸판 끝나면 술판 엉기면 쌈판
밤에는 계집 엉덩판 한몫 잡으면 살판
미친 밤도깨비들의 신나는 굿판
하하하--- 어머니 저 왔읍니다
[아내] 이제 오세요
[병연] 왠 제사상이오?
[아내] 어제가 아주버님 忌日인거 모르셨어요
[병연] 어머님은?
[아내] 친정에 가셨어요. 당신 정신 차리기 전에는 절대 안 돌아오시겠대요
[병연] 형님은 저승을 가고 어머니는 친정을 가시고 난 어디로 가나
[아내] 사람이 왔다 갔어요 (사이)
정선 아라리골에 새로 생긴 서당에서 훈장님을 구하고 있대요
[병연] (버럭) 조상을 욕한 글재주로 이제는 천자문이나 팔러 다니는 장사꾼이 되라고!
[아내] 하늘이 내린 재주를 거역하면 못쓰는 법이라고 저희 아버님이 말씀 하셨어요 (배를 쓰다듬는다) 저에게는 얘기를 잉태하고 낳고 기르는 재주가 있지요. 이 애도 아들이 분명해요, 발길질하는 것이. 이름을 뭐라고 할까, 지어 주세요 당신이
[병연] 돌린字가 고를 均이니 날개翼字를 써서 익균이라고 하시오
[아내] 왜 하필 날개 익이지요
[병연] 그건 내 마음 날개요
[아내] 그것 보세요, 당신한테는 속마음을 읖어내는 뛰어난 글재주를 갖고 계시잖아요
<노래>
당신 마음에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야 하겠지요
저 알수없는 하늘 끝까지라도 날아올라가세요
날개짤린 봉황의 울음소리로 메아리치는 텅빈
당신의 가슴을 메워줄 그 무엇은 무엇인가요
[병연] 나 떠나가리라 날개없는 새들의 발자국 따라
저 바라볼수없는 하늘아래 펼쳐진 온누기 끝까지 나 떠나가리라
[아내] (새옷과 갓을 내온다)
[병연] (갓을 치우며) 죄인 중의 중죄인이 어지 하늘을 보겠소
[아내] 어디로 가세요?
[병연] 나도 모르오. 삿갓이 가는 곳에 내가 있을 것이오
[페이지] 013
[장] 7장
한양의 거리, 남산
<노래와 춤으로 이어지면서>
[정현덕] 여보게들,우리가 본디 서울장안의 내노라하는 풍류객들이 아닌가
[선비들] 그러하지
[정현덕] 그러하면, 천하의 기괴한 풍류남자가 왔으니 아니만나지 못하리라
[선비들] 삿갓 삿갓 김삿갓
[김삿갓] 그대는 금강산을 보았는가
[황오] 꿈속에서만 그려보고 아직 보지 못햇소그려
[김삿갓] 조선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못보다니 그대 죄를 그대가 알렸다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누어 보고도 또 보고 싶은 산[선비들] 금강산만 산이냐 구월산도 산이다
[김삿갓] 작년 구월에 지낸 구월 금년 구월에 또 간 구월 년년 구월 가는 구월 九月山光長九月
[선비들] 구월산만 산이냐 묘향산도 산이다
[김삿갓] 평생소원 무엇이뇨 묘향산 한번 유람일세 山??千峰萬인 路層層十步九休
[선비들] 묘향산만 산이냐 남산도 산이다
[김삿갓] 남산이 산이라면 미꾸락지도 용이다
[선비들] 삿갓 삿갓 김삿갓
[한선비] 콩 콩 콩
[김삿갓] 콩 콩 먹는 콩, 곡시궁의 왕콩 큰콩 백이숙제 먹는 콩콩 콩 뒤는 콩, 가슴속에 염통 콩 콩 뛰는 콩
콩 팥 콩 팥, 콩을 팥으로 만드는 양반들 양심 콩콩콩
[선비들] 콩콩콩
[김대감] 삿갓 삿갓 김삿갓, 본색이 무엇이냐
[조포교] 반역죄인 김익순의 손자로 본명이 김병연이오
[김대감] 헛튼 수작으로 우리 김씨 문중에게 화를 미칠 놈, 당장 잡아 드려라
[조포교] 잡아드릴 뚜렷한 죄목이 없소이다
[김대감] 이현령 비현령이다, 콩을 팥으로 만들어라
[조포교] 삿갓 삿갓 김삿갓
(기생들과 선비들)
[모두] 삿갓 삿갓 김삿갓
[한선비] 돌 위에 풀이 나기 어렵고 방 한가운데 구름이 일지 못하는데 산속에 놀던 새 한 마리 어찌 봉황의 무리 속에 날아들었는가
[기생들] 훠이 훠이! (삿갓을 향해)
[김삿갓] 내 본디 오색빛 구름속에 휩싸인 하늘나라의 새 오늘 마침 비바람 험악하여 잡새들 무리속으로 떨어졌도다
[페이지] 014
[기생들] 훠이 훠이 (한선비를 향해)
[선비들] 삿갓 삿갓 김삿갓, 장안 제일의풍류시인
[조포교] (들어오며) 김삿갓을 잡아드리라는 분부받잡고 왔소이다
[정현덕] 무슨 잘못으로?
[조포교] 오라를 질러 잡혀가지 않을려거든 이대로 하시오 안국동 김대감님의 서찰이오
[한선비] 뭐라고 냵는지 네가 한번 읽어봐라 (기생에게 준다)
[김삿갓] 안된다
[한기생] 천하의 김삿갓이 째째하오
[정현덕] 그 뭐 어떻소, 들어봅시다
[한기생] (읽는다) 삿갓을 쓴다고 어지 청천 하늘을 가리겠느냐 역적 김익순의 자손이 서울 장안을 활보하는것이 가당치 않음은 너의 할애비가 뿌린 반역의 피가 아직 마르지 않음이다 지금 당장 서울을 떠나지 않으면 너에게는 죄가 되고 우리 문중에는 화가 된다
[한선비] 어흠, 어쩐지 좀 께름칙하다 했소
[두선비] 역적의 자손이라니--- 참, 너 소금 갈고 있느냐(모두 자리를 밖차고 나간다)
[김삿갓] 갔는가, 모두들 어디로 갔는가. 나는 여기 있는데
[정현덕] 이제 어찌 할텐가
[김삿갓] 떠나야지, 저들도 나를 떠났는데. 자네도 가게, 어서!
[정현덕] 언제든 찾아오게, 자네 스스로가 죄인이 아니라고 여겨지거든 (나간다)
[김삿갓] <노래>
으아 으하하하 으아
한발 두발 올르고 올라 남산 산마루 꼭대기 올라
서울 장안 굽어보며 우르릉 킁킁 똥을 싼다
아 하하 이 향네 억만가에 진동하니
썩어진 서울바닦에 썩이나 어울린다
으아 하하 우르릉 킁킁
[조포교] 그 시원하시겠소이다
[김삿갓] 부러우면 한번 해보시오
(둘이 웃는다)
[페이지] 015
[장] 8장
주막
김삿갓 술상앞에 쓰러져 있다
술 취한 주인이 혼자 신난다
[주막주인] <노래>
술 술 술은 이태백이만 먹으라는 술이냐
한잔먹고 하늘보고 두잔먹고 님을보고 석잔먹고 땅을보니세상은 팽팽팽 아이고나 어지럼증
달 달 달은 저태백이만 쳐다보라는 달이냐
어리석은 선비놈들 나물먹고 물 마시네
나는야 술을먹고 안주를 먹지롱
한잔에 두잔에 석잔에 세상은 팽팽팽
한잔에 두잔에 석잔에 나는야 바로 나
(두러누워 잠든다)
[삿갓] 주인장! 여기 술 더 주시오
[마누라] 여보! 술 더 달라잖아요
[주인] (코곤다)
[마누라] 저게 서방이냐 웬수지(머리 긁으면서) 그만 하시지
[삿갓] 왜 무엇 대문에 그만인가, 술 더 먹는데도 자격이 필요한다 누구의 자손은 술 더 먹으면 국법에 저촉이 되나[마누라] 술, 저기 독안에 얼마든지 있으니 떠다가 드셔
[병연] 난 이 집의 어엿한 손님이오
[마누라] (하품하며) 누가 아니래요. 바빠서 그러니 알아서 챙겨드셔(이를 잡으며) 아이고 이놈의 이가 병자년 청나라 오랑캐 마냥 새카맣게 몰려나오네. 아참 내가 이러고 있을대가 아니지 여보 일어나서 술값 받아요, 나 건너말 굿구경 가요
[주인] (잠결에) 뭘 받어, 그냥 가라고 그래 이 천하에 게을러 빠진 여편네야!
[마누라] <노래>
게으르면 어떻고 지저분하면 어떤가, 나는야 병없고 근심없는 여자 세수 목욕은 왜 해, 냄새 맡아주는 남자도 없는데 양치질은 더더욱 할일이 없단다. 십년을 하루같이 입은 옷, 낮잠 한숨에 하품은 하루종일. 치마 벌려 이을 잡고 손을 놀려 그릇을 깬다그래도 나는 여자, 재주많은 여자, 굿구경 가서 엉덩이 씰룩실룩 초가지붕 다 무너뜨리는 여자, 그래도 나는 여자 샘도 많은 여자 이웃집 땅사면 배아픈 여자, 옆집 총각 코크면 잠 안오는 여자 그래도 나는 여자 말도 많은 여자 (궁둥이 흔들며 나간다)
[주인] 시끄럽다 이 개구락지 같은 여편네야, 하루 종일 觢 觢 觢 칠팔월 율메기 삼모사는 다 어디 갔나 저놈의 여편네 안 잡아 먹고!
[페이지] 016
[삿갓] (지필묵 꺼내며) 개구리라 개구리!
풀 속에서 뱀 만나면 날지 못함을 한탄하고
연못 가운데서 비 맞으면 비옷 없다 원망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아 입들 다물어라
너희들 입방아에 백이숙제 먹을 고사리 마저 시든다
[주인] (일어나며) 좋다 좋아, 그 어디서 배운 문장인지 그만한 재주면 어디가도 술 굶지는 않겠다, 어디 가는 뉘시오?
[삿갓] 글쎄올습니다, 갈곳 몰라 헤메는 발길이오
[주인] 출세를 하려거든 서울로, 말을 타려거든 제주도로 춘향이를 볼거면는 남원으로, 기생을 볼거면 평양으로 양반이 되려거든 안동으로, 신선이 될려거든 금강산으로 가라고 합디다[삿갓] 하늘 보기 부끄러운 놈이 출세는 할수없고 양반은 썩어 냄새가 나고 말을 타면 어지럽고 춘향이는 임자가 있어 안되고 기생하고 금강산은 언제 봐도 좋터라 (삿갓을 쓴다)
[주인] 그 삿갓은 왜 쓰고 다니시오?
[삿갓] 저놈의 하늘을 가릴려구 쓴다오 옛소 술값이오
[주인] 그 시 적은 종이나 몇장 놓고 가시오
[삿갓] 문장을 아시오?
[주인] 모르지, 방에 도배나 할려고
[삿갓] 그 좋은 생각이오, 그럼
[주인] 어디로 가시오
[삿갓] 나 하나만의 하늘로
[주인] 삿갓을 냵는데 하늘이 보이나
[삿갓] 이 삿갓안이 나의 하늘이라네 (나간다)
[주인] 하늘을 지고 다니니 힘께나 들겠소그려, 잘 가시오
[조포교]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 (삿갓이 쓴 詩 뭉치를 내주며) 제대로 된 삿갓만 하나 있으면 나도 따라나서고 싶네요, 않그렇소 조포교 나리!
[조포교] 내 말이 그 말일세, 어디보자 (시를 읽는다)
<노래, 김삿갓의 詩 「삿갓을 읊음」>
떠도는 이내 삿갓 빈배와 같은데, 한번 쓰니 어느덧 사십 평생일러라 갈매기 벗삼는 고기잡이 늙은이와, 소치는 목동들에게 어울리는 삿갓술취하면 벗어 나무에 걸고 꽃구경하고
흥이나면 손에 들고 달뜨는 누각에 오른다
걸치레로 둘러싸인 세상속의 인간들아
저 하늘 가득 비바람 몰아쳐도 홀로 근심없는
이내 삿갓은 오늘도 떠 흐르는 저 세월속의 빈배
(끝없이 걷는 김삿갓의 모습이 보인다)
(조포교와 익균이 탄 낙동강의 배가 떠간다)
[페이지] 017
[장] 9장
금강산
무대 배경막에 금강산의 實物映像이 흐른다
김삿갓이 사람들과 금강산을 노래한다
[사람들] 일봉 이봉 삼봉 사봉 오봉 육봉 칠팔봉
순식간에 펼쳐지는 일만이천봉
금강이라네 금강
구름도 부끄러워 숨어드는 하늘아래 금강산
파도도 샘을내며 안겨드는 동해바다 해금강
[삿갓] 松松栢栢 岩岩廻 水水山山 處處奇
[사람들] 솔나무 솔나무 잦나무 잦나무 바위 바위 돌고 돌아물에는 물 산에는 산 곳 곳이 기이하도다
[삿갓] 봄
[사람들] 봄이오는 금강산
[삿갓] 여름
[사람들] 신선사는 봉래산
[삿갓] 가을
[사람들] 단풍좋은 풍악산
[삿갓] 겨울
[사람들] 눈녹은 개골산
[삿갓]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람들] 모두가 금강산
[삿갓] 청산아 나는 너를 향해 가는데, 녹수야 너는 어디로부터 오느냐
[스님] 허허허 이러다 금강산이 김삿갓의 금강산이 되겠다. 허구한 시인묵객들이 금강예찬을 했지만 삿갓 네놈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오 수박 겉핥기다. 그만 떠나거라 금강산은 네놈만의 산이 아니다. 부처가 어디 누구 한사람만의 것이더냐
[삿갓] 하늘이 안보이는데 어딜 가란 말이오
[스님] 삿갓이 네놈 하늘이라며
[삿갓] 삿갓은 그저 마음을 가리는 껍질일 뿐. 저기있는 하늘이 어디 가겠소
[스님] 알긴 안다, 이놈아
[삿갓] 허나 저기 저 하늘은 내가 찾는 하늘이 아니오
[스님] 네놈이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구나, 하늘이 저기 저것만 있는줄 알았더냐. 금강산 일만 오천봉 봉오리마다 제각각의 하늘이 있고 사람들마다 짐승들마다 파리 모기 깨진 사기 쪼가리에도 다 나름대로의 하늘이 있는걸 몰랐구나, 네놈이
[삿갓] 사람들마다 하늘이 있다, 내 그걸 여태 몰랐소. 노장은 그걸 어떻게 아셨소?
[스님] 저 하늘이 가르켜 줬지 (잠시) 가, 찾져봐!
[삿갓] 갑니다
[스님] 어디로!
[삿갓] 이 강산 모든 사람들의 하늘로!
(둘이 흔쾌히 웃어제낀다)
[페이지] 018
[장] 10장
부잣집, 회갑연
壽宴床을 받은 노인 내외와 가족들, 마을사람들
기생들의 춤가락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다.
떠돌이 시인 노진이 으시렁거리며 노래한다
[노진] 받으시오 받으시오
[모두] 받으시오 받으시오
[노진] 이잔 명잔 복잔 이니 명을 받고 복받으시오
[모두] 받으시오 받으시오
[노진] 육십갑자 살았으니 인생칠십고래희가 가깝구나
[모두] 받으시오 받으시오
[노진] 아들 사위 떡뚜거비 딸 며누리 옥토끼일세
[모두] 받으시오 받으시오
[노진] 절하며는 웃고 받고 복일랑은 넘치게 받소
[모두] 받으시오 받으시오
[노진] 젊어서는 자식농사 늙어서는 풍류농사
[모두] 얼씨구 받으시오 절씨구 받으시오
(김삿갓이 들어오며)
[삿갓] 젊어서 보니 푸룻푸룻 청산이오 늙어서 보니 누릿누릿 황산이라 산천도 변하거든 낸들 아니 늙을소냐
[환갑노인네] (일어서며) 맞다 맞어, 내 심정을 딱 맞춘 기막힌 구절이다 어서 일리와 한잔 하시오
[노진] 어이, 삿갓! 뭐하는 누구요?
[삿갓] 보이는대로 삿갓 쓴 객꾼이오
[노진] 여기가 喪家집이오, 삿갓 쓰고 나타나서 재수 팍 무너뜨리게
[삿갓] 조선팔도가 다 상가집인가 하오
[작은아들] 아니 뭐야!
[노인네] 괜찮다 괜찮어, 맞다 맞어 누군들 늙어 죽지않으리. 어서 안으로 모셔라
[노진] 잠깐, 보아하니 글줄이나 읽은 되지도않는 詩 나부랭이로 밥빌어먹는 꾼인가 본데, 오늘 이 어른, 수연잔치에 대해 시 한수 청해봅시다
[노인네] 좋지 좋아
[노진] 만약 시가 시원찮으면 뺨다구 석대 맞고 당장 여길 나가고, 시가 좋다면 (잠시) 맘대로 하시오[노인네] 좋지 좋아
[삿갓] (노래) 저기 앉어계신 저 노인, 사람이 아니로다
[노진] 아하, 사람이 아니면 짐승이라구
[아들들] 아니 뭐야 저놈이
[삿갓]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선이 분명구나
[아들들] 그래 맞다 맞어
[삿갓] 저 아들 일곱 놈은 도적놈들이 당연하다
[아들들] 아니 뭐야 저놈이
[페이지] 019
[삿갓] 하늘의 천도 복숭아 훔쳐 갖다 드렸구나
[아들들] 그래 맞다 맞어
[삿갓] 여기계신 모든사람들 머리카락 수를 합한 만큼 오래오래 사실 저기 저 노인, 신선이 분명하다
[노인네] 모셔라, 오늘 하늘에서 진짜 시인 내려 오셨다 함자가 뭐오?
[삿갓] 그저 김삿갓이라 불러 주십시오
[노진] (혼자서) 김삿갓! 저자 때문에 앞으로 힘들어지겠다, 인기 절정의 시인 이 노진이가 한순간에 팍 찌그러지네 다른 지방으로 내 활동무대를 옮겨야겠구만 (잠시) 나도 삿갓이나 써볼까? 길비켜라 노삿갓 나가신다 아니야, 나도 그냥 김삿갓이다
[장] 11장
팔도 김삿갓
<노래와 춤으로 이어지면서>
[김대감] 삿갓 삿갓 김삿갓이란 놈, 팔도를 누비고 다닌다는데 객적은 문장을 내갈려 시를 쓰고 술 빌러먹는다는데
[조포교] 어디를 다녀봐도 만날수 없고 사방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고 물어봐도 불러봐도 알 수 없고 대답 없는 진짜 김삿갓!
[팔도 김삿갓] 내가 바로 김삿갓, 자나깨나 김삿갓, 앉으나 서나 김삿갓산을 가도 강을 가도 김삿갓, 달을 봐도 별을 봐도 김삿갓 걸어가도 김삿갓 배를 타도 김삿갓 어딜 가도 김삿갓 술 한 잔에 김삿갓 시 한 수에 김삿갓 떠나가는 김삿갓 내가, 여기계신 나 김삿갓이 김삿갓이라는 증거는 딱 하나보다시피 알다시피 삿갓을 썼으니 내가 바로 김삿갓
[조포교] 너도나도 김삿갓 삿갓 쓰고 김삿갓
삿갓 하나 지팡이 하나 술 한 잔 시 한 수 너도나도 김삿갓 떠돌다 머물다 한순간 털고 일어나 떠나가는 김삿갓
삿갓 풍년에 다리만 아픈 내 신세
나도 그만 삿갓 쓰고 김삿갓이나 될까보다
나도 나도 부러운 김삿갓!
그러나 저러나 여게가 어디메와?
[팔도 김삿갓] 평양에서 안주!
[조포교] 평안도!
[페이지] 021
[장] 12장
평양
저멀리 대동강 위를 떠가는 놀이배
삿갓이 기생들에게 둘러싸여 춤추며 논다
<노래>
[삿갓] 구비구비 휘감아돌아 흐르는 대동강에 떠 노는 놀잇배들, 피리소리 노래소리 새소리 모란꽃 피는소리 나비가 나는 소리 사랑의 한숨소리 꽃망울 터지는 소리 늘어진 버들가지 허리에 착 달라 붙는 소리 몰아쉬는 달콤한 콧소리 땀방울 맺치는 소리 갑사치마 여미는 소리 꽃버선 신는 소리 돌아서서 찡긋 웃는 소리 멀어지는 그 소리, 바람결에 들려 오면 떠도는 길손은 말 멈추어 시름에 잠기고 모란봉 상상봉에 흩어진 저녁안개 타는 저녁놀 이내가슴에 스며든다
[기생들] (자지러진다)
[춘월이] 임자래 진짜 김삿갓이 확실하구만 기래
[하월이] 끝내주는만
[추월이] 아주 녹여준다 야
[동월이] 이 내 맘 은근슬쩍 화끈하게 감싸안는구만요
[야월이] 뭐하고 있네! 한번 더 외쳐보라우 내가 대귀하갓시오
[삿갓] <노래로 이어지며>
너희 평양기생 무엇을 잘 하는가
[야월이]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시 또한 잘한다요
[삿갓] 잘하고 잘하고 잘하지만 별로 잘하는게 없네라
[야월이] 달빛아래 이불아래에서 서방님 부르기 잘하지요
[모두] (코먹은 소리로) 서방님!
[삿갓] 그러면 그렇지 그 누가 날 부르나
[춘월이] 춘월이라요
[삿갓] 가냘푼 봄달은 제비가 차고가니 내것이 아니로다
[기생들]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하월이] 하월이입네다
[삿갓] 늘어진 여름달 소나기 구름속으로나 가려무나
[기생들]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추월이] 추월이라 하오
[삿갓] 서리맞은 가을달 처량맞은 공방살 누가갖나
[기생들]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동월이] 동월이라고 아시는지
[삿갓] 눈내린 밤의 겨울달은 개가 보고 짖는다 멍 멍
[기생들]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야월이] 야월이 밖에 없지요
[삿갓] 밤에 뜬 저 달이야 누구든지 다 품는다
[기생들]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삿갓] 짧은 인생인데 어찌 무정할소냐
오늘밤 네 옷벗기를 망설이지 마라
[페이지] 022
[기생들] 아 아 오라바니!
[삿갓]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가련] (대답 안하고 외면한다)
[기생들]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가련이라고 해요
[삿갓] 이름도 가련이고 얼굴도가련한데
가련이의 마음 또한 가련하도다
(느리고 박자와 음색을 바꾸며)
가련한 내 심사 가련한 너 가련이와 함께라면
가련한 이 세월의 나날들 가련치 않으련만
아 가련의 저 눈망울 바라볼수록 아련하다
[기생들] (여운으로) -예야디어라 흥이로구나 아-
[가련] 김삿갓 김삿갓 하길래 제대로 된 풍류시인인줄 알았더니 싼 값에 시를 팔어 주색이나 탐하는 떠돌뱅이에 지나지 않는구나
[삿갓] 가련이가 아니라 인제보니 꼬챙이로구나 가련이만 가자하면 지옥 불속이라도 같이 가련이와 가련다 이리와서 우리 한잔 나누며 흥건이 취해보자
[가련] 그술 같이 먹었다간 취하는게 아니라 체하겠소
[삿갓] 네가 이 천하의 김삿갓을 가련하게 하는구나 그만 둬라, 이 김삿갓 앞에 늘어선게 꽃밭의 꽃이 너하나 뿐이더냐 (다른 기생들과 술을 나눈다)
[야월이] 왜 그러네, 팅기는거도 적당히 하라야 저 작자 시 한수, 이 치마에 받아노면 쌀이 한가마야
[가련] 넌 쌀한가마에 아무한테나 치마를 벗니
[야월이] 기럼, 저고리까지 다 벗는다 (삿갓에게 가며) 삿갓어른, 나 술 한 잔만(한구석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노진이 나선다)
[노진] 봅시다, 당신이 김삿갓이오?
[삿갓] 그렇소
[노진] 나도, 이 지방에서는 알아주는 김삿갓인데
[야월이] 저 짜가 삿갓! 술맛 낙하하누만
[삿갓] 허, 그래. 저기 술 한 잔 먹여서 보내라
[노진] 술은 댁이나 드시고, 내가 온 사연인 즉슨 나라마다 국경이 있고 집집마다 담장이 있듯이 장사에도 구역이 있는 것. 허나, 여기가 내 구역이라고 무조건 당신을 나가라고는 않겠소. 내가 시 한 수를 그대에게 읊어볼테니 듣고 내게, 여기 모두 앞에서 대귀를 할수있다면 그쪽이 당연한 김삿갓이니 응당 내가 물러나고, 못한다면 너는 가짜 김삿갓이 분명할테니 당장 여기를 떠나시오
[삿갓] 그러지 말고 이리와 술이나 한잔 받어먹고 가시게
[노진] 왜, 자신이 없나?
[삿갓] 하하하, 좋다. 지면 이기는 사람한테 절을 해주기로 하지
[노진] 내가 바라던 바이오.
[페이지] 023
[가련] 그절 우리들도 받고 싶소이다
[삿갓] 어떤가, 이 아이들 한테 절을 할수 있겠나?
[노진]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
[삿갓] 빨리 불러보시게, 감히 이 조선의 이태백 김삿갓을 이겨 보겼다고!(기생하나가 시를 적은 종이를 갖다준다. 김삿갓이 펴보자 노진이 시의 내용을 노래한다.
김삿갓이 백일장에서 지은 시다)
[노진] 조정의 신하 너 김익순은 듣거라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더냐
문벌높은 장안의 명문 장동 김씨요
항렬은 소문난 순자 돌림이 아니드냐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번 죽기 아깝다 만번을 죽어라
춘추의 필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너는 치욕의 이름으로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삿갓] 그만 (쥐어짜듯 몸부림치다 겨우 웃는다)
참 잘 지은 시로구려, 내 다시는 그대 앞에 나타나지 않겠소
[노진] 모름지기 시인은 제 근본을 알아야 올바른 시가 나오는 법. 자, 절을 해라
[삿갓] (겨우 몸추스려 절한다)
[야월이] 애들아 우리도 저 짜가 한테 절 받자
[삿갓] (절하다 울컥 피를 토한다)
[가련이] 안돼요!
[기생들] 옴마, 감짝이야 김삿갓이 아니라 이거이 피삿갓이야 오늘 재수 삼태기로 무너지누만 오라바니는 언제 봐도 멋지누만 (모두 나간다) (피를 토하다 늘어지는 삿갓의 입을 가련이가 치마를 벗어 닦아준다. 언제 부터인가 이들을 지켜 보고있던 조포교가, 삿갓을 줄러엎고 나선다) [가련] 제가 모시겠습니다, 뉘신지 모르겠지만 저희 집 까지만
[조포교] 자네 집이라면 평양의 명기 가련이네 집 말인가?
[가련] 저를 어떻게 아시는지요?
[조포교] (잠시) 가세!
[페이지] 024
[장] 13장
가련이의 집
한달 후 아침이 밝아온다
[가련] <노래>
지난밤 봄바람에 살랑이던 베겟머리 촛불
구름같은 비단이불 노릴던 원앙새의 날개짓
바람이 되어 비가 되어 다가오신 님의 뜰앞에
피어난 꽃 한송이 밤새 나린 찬서리에 꽃잎 질까
이슬맺혀 애태우건만 무정히도 떠올라 펼쳐지는 아침의 햇살
[삿갓] <노래>
해떠오는 창문가에 가는허리 껴안고 뒤척인 밤
반쯤 뜬 내눈길 앞에 애처럽도록 수줍운 한떨기 꽃
술과 벗하며 찾던 친구 만나보니 글잘하는 여장부
술잔에 비친 그 자태에 달빛마져 새롭던 지난 밤
매화꽃 떨어지는 봄빛에 취해 쓰러진 그대와 나
[가련] 오늘은 저하고 가실때가 있습니다
[삿갓] 어딜 갈려고 이토록 행장을 단단히 꾸렸나, 대동강?
[가련]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면 어디가 나오지요?
[삿갓] 청천강과 묘항산 가는 길이 나오지
[가련] 청천강을 넘어가면 안주 박천 평야가 나오고 선천이 나오지요
[삿갓] 선천!
[가련] 홍경래 난이 일어났던 개복동을 뵈시고 갈까 합니다
[삿갓] 거긴 왜?
[가련] 제 고향입니다
[삿갓] 난 가고 싶지않네
[가련] 가셔야 합니다, 가서 보셔야 합니다. 왜 그곳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켰는지, 두눈으로 똑똑히 보고 온몸으로 느끼셔야합니다
[삿갓] 혁명! 말조심하게, 혁명이 아니라 바란일세 (잠시) 그래 혁명과 반란은 손바닦과 손등의 차이, 그냥 나두면 반란이요 뒤집으면 혁명이지
[가련] 사백년 계속된 서북인들에 대한 차별이 그날의 그일이 있게 했지요
[삿갓] 그 차별의 업보를 언제가는 이 나라가 당하게 될꺼야 차별 받느니 차라리 나라를 두동강 내자고 들지도 모르지
[가련] 그 일로 서방님의 조부님과 저의 일가친척들이 죽으을 당했습니다 저하고 가세요, 가 그 죽엄의 넋을 달래세요. 그들에게 기원해요. 다시는 그런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 살지않게 해달라고.서로 마음을 터 하나 같이 손잡고 살게 해달라고 시를 쓰시고 노래를 부르세요, 이땅에 시인으로 난 삿갓어른이 하실 일입니다
[삿갓] (쥐어짜듯) <노래>
용서할수없다 난, 그 반란의 역사를, 할아버지의 비겁을, 날 옭아맨 내 운명을, 날 차별하는 저 세속의 인심과 양반들을,
[페이지] 025
날 가둔 이 세상을, 날 내려다 보는 저 하늘 마저도, 이 모든걸 용서할수 없는 내 자신을 난 용서할수 없다
[가련] <노래> 용서하세요, 온마음 열어져쳐 운명의 먹구름 헤쳐버려요 꽃은 웃어도 소리 들리지않고, 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들리지 않는 그 웃음소리, 떨구지 않는 그 눈물방울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용서 하세요. 이 손 잡고 용서하세요. 함께 걸어요[삿갓] 가자!
[조포교] (뛰어든다) 가련이!
[가련] 왠 일이세요, 아침부터, 조반은 드셨어요
[삿갓] 한양에 가신다더니 언제 오셨소
[조포교] 가다가 급한 일이 있어 달려오는 길이오, 나 물 좀 한사발만! (사이) 빨리 여길 뜨시는게 좋겠소
[삿갓] 그러지 않아도 여딜 가려든 참이오
[조포교] 그새 어느 놈이 김삿갓이 가련이의 집에 숨어지내면서 이상한 일을 꾸민다고 밀고를 했소, 조금 있으면 포졸들이 들어닥칠거요, 나하고 갑시다
[가련] 저도 가겠어요
[조포교] 자네까지 없어지면 더 큰 의심을 받아, 그냥 남아 있게
[가련] 안되요, 그럴수 없어요
[조포교] 쉿!
(문 두드리는 소리)
[조포교] 어서, 이리로!
[삿갓] (삿갓을 쓴다)
[가련] 서방님!
[조포교] 삿갓을 이리 주시오 (삿갓을 쓰고 지팽이를 뺏어든다) 이게 안전할꺼요
[삿갓] 허 허, 썩 어울리시오 조삿갓
[조포교] 이리로!
[삿갓] 가련아!
[가련] 가세요, 가!
(둘이 사라진다)
(부셔지듯 문이 열리며, 포졸들과 노진이 쏟아져 들어온다)
[포졸] 뒤지라우!
[노진] 나와라! 김삿갓
[포졸] 어디 있네? 김삿갓. 말하라우
[가련] (노진을 가르킨다)
[노진] 난 아니야
[가련] 내가 알고 있는 김삿갓은 이 사람뿐인데요
[포졸] 이거이 어떻게 된기야, 이 작자라도 끌고 가자우
[노진] (끌려 나가며) 내가 아니요, 난 그 김삿갓이 아니라니깐
[페이지] 026
[장] 14장
대동강의 배
배를 타고 대동강을 건너는 두 사람의 모습 보인다
[가련] <노래>
비 개인 강뚝에 빛을 발하는 풀빛
님 떠나 보내는 나룻터에 구슬픈 노래 소리
아 - 대동강 저 물은 언제 다하여 마를려는가
이별의 눈물로 해마다 더해가는 깊푸른 물결
[장] 15장
꿈속의 고향
정처없이 걸어가는 길
어머니(魂) 와 아내 아들 익균의 모습 보인다
[삿갓] 셀수없는 나날들 헤아릴 수 없는 산과 들 거쳐지나 왔건만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는 이마음 아득히 떠오르는 고향의 밤하늘
[아내와 아들] 돌아와요 돌아와요
[삿갓] 이 산과 강, 천년을 걷는 나그네 지난날 들추어 한탄하지말라
[어머니] 한탄마라 한탄마라
[삿갓] 영웅호걸 그누구도 백발향해 걷는길
외로운 등불아래 홀로 보내는 하루 또 일년
[아내와 아들] 돌아와요 돌아와요
[삿갓] 셀수없는 나날들 헤아릴수없는 산과 들 거쳐지나 왔건만 이밤도 갈곳없이 걷고 또 걷는 이 발길
꿈속에나 밟아보는 고향의 뒷동산
[아내와 아들] 돌아와요. 돌아와요
[페이지] 027
(은하수가 쏟아지는 들길)
[익균] 아버님
[삿갓] 허허허! 오냐
[익균] 아버지
[삿갓] 오냐
[익균] 아버지
[삿갓] 그래 왜?
[익균] 그냥 불러보고 싶어서요, 이번에는 꼭 집으로 들어가시는 겁니다.
[삿갓] 어흠, 그렇게 해보도록 할까하고 생각이 들려고 하는구나
[익균] 어머니 소원이 생전에 아버님 얼굴 한번 보시는겁니다 이젠 그만 집에 가셔서 쉬도록 하세요
[삿갓] 그래, 좀 쉬었다 가자, 내가 뒤가 좀 급하구나
[익균] 이번에는 절대 아버님을 놓치지 않는다니까요
[삿갓] 허허허, 알았다. 진짜 급하다니깐
[익균] 처음 만나뵌 안동 주막에서는 제가 잠든 사이에 야반도주하셨고, 두번째 부여에서는 심부름 시켜 놓으시고는 달아나셨죠 이젠 안 속습니다
[삿갓] 아까 먹은 보리 개떡이 뱃속에서 용트림을 한다니깐
[익균] 여기서 그냥 보세요
[삿갓] 떼끼놈! 너 그래 천자문은 다 뗏느냐?
[익균] 그럼요, 늦게 배운 도독질이 무섭다고 훈장님도 놀리시는데요 지금은 대학을 읽고 있어요
[삿갓] 장한 내 아들이다, 나하고 천자문 한번 읽어보자 너는 여기서 난 저 수수밭 안에서 일를 보면서 서로 대귀를 부르는 거다. 그럼 내가 도망 못갈거 아니냐
[익균] 그렇다면, 삿갓을 맡겨놓고 가세요
[삿갓] (삿갓을 벗어주고 수수밭으로 들어가며) 좋다, 먼저 하거라
[익균] 하눌 天 따 地 검을 玄 누루 黃
[삿갓] 집 字 집 宙 클 洪 거칠 荒
[익균] 날 日 달 月 찰 盈 기울 仄
[삿갓] 별 辰 잘 宿 벌 列 베풀 張
[익균] 찰 寒 올 來 더울 署 갈 住
[삿갓] 가을 秋 거둘 收 겨울 冬 길 長
[익균] 헤헤헤, 틀리셨어요. 길 장이 아니라 감출 欌이잖아요 (갑자기) 감출 장! 아버지 (사이) 어디 계세요, 아버지!
(아무리 찾아봐도 불러봐도 사라지고 없는 김삿갓)
[익균] (삿갓을 부여잡으며 터벌리고 운다) 아버지! 어머니!
[페이지] 028
[장] 16장
전라도, 장터
사고 팔고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속이고 속고 꼬시고 놀고 구경하는 떠들썩한 장터각설이 패의 품바타령 - (랩 풍의 새로운 해석)
품 품 품 품품품 들어간다 들어간다 일자가 한번 들어간다일 일 일 일리리 따지들마 일생 한번나고 한번죽네
이 이 이 이팔청춘 이내청춘 이상한 이모양 이팔자
삼 삼 삼 삼삼한 저 새색시 산삼 세뿌리에 내색시
사 사 사 사고사고 또사고 사방각지 사해바다 다사고
오 오 오 오고오고 또오고 오늘와서 오자마자 옷벗고
육 육 육 육간대청에 고대광실 누워봐야 썩어질 이내육신칠 칠 칠 칠칠맞은 칠공주 칠보단장하고보니 날샛다
팔 팔 팔 팔팔끊는 팥죽을 팔고보니 뜨겁다고 팔짝팔짝구 구 구 구구절절 사연들 구구하게 붙은구실 구질구질열 열 열 열열한 열애가 열매맺어 열두대문 열고나오게열나게 열심히 살아보자
품 품 품 품품품 나온다 나온다 열자가 한번 나왔다
(각설이패 광대패 야바위패 순라패 장사꾼 구경꾼들이 어우러지는 난쟁이 벌어진다)
[사령] 물렀거라!
(사냥 갔다 돌아오는 고을 원님의 행렬이 들어온다)
[원님] 네 이놈들! 이번 사냥에서 잡았다 놓친 보라매를 당장 잡아드리지 못하면 모두다 살아남지 못하리라
[포수들] 저 깊은 산속으로 사라진 날짐승을 무슨 수로 지금 당장 잡아들이란 말이오
[아전들] 말도 안되는 소리
[원님] 당장 그 새를 잡아드리지 못할까! 어서 빨리 당장 지금 즉시
[모두] 아이고 우린 죽었다, 뭔 방도가 없을가
[삿갓] 靑山에서 얻었다가 청산에서 잃었으니
청산에게 물어보고 청산이 대답 없거든
그놈의 청산을 즉시 잡아 드려라
[모두] 청산을 즉시 잡아드려라
[원님] 청산을 즉시 잡아드려라
[모두] (조롱하며 웃는다)
[원님] (황급히 사라진다)
[똘만이] 김삿갓이다!
[페이지] 029
[삿갓] <노래/이대로 저대로>
이대로 저대로 되는대로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살아가는 이대로
옳으면 옳은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손님접대 형편대로 사고 팔기 시세대로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는대로
그렇고 저렇고 이런세상 그런대로 지나가자
[무지랭이] 삿갓어른,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부고를 좀 써주시면 좋겄는디요
[삿갓] 옛다 (휘갈겨준다)
[무지랭이] 뭐라구 냵대요 이것이?
[삿갓] 버들柳 꽃花해서 유유화화라, 버들버들 하다가 꽂꽂해륵다는 뜻일세
[무지랭이] 참 깊은 뜻이 있네요
[노인] 저번에 써주신 글로 우리 애가 생원 초시가 陖소이다 (돈 꾸러미를 내논다)
[아낙네] 저번에 써주신 솟장 땜시 서방님이 무죄로 풀려나구만요
[노처녀] 어르신, 저 핀지 한 장 써주시오
[삿갓] 누구한테 뭐라고?
[노처녀] 그건 아무한테도 말할수 없어요
[삿갓] 연애편지인가
[노처녀] 어떻게 아셨대요?
[삿갓] 이리 와, 나한테만 살짝 애기해!
[에미] 저 지난번에 써주신 동몽선습을 우리 애가 착실히 읽고 있읍니다 (곱게 지은 바지 저고리를 내논다)
[삿갓] 이런건 내게 안 어울려, 옛다! 너 입거라
[똘만이] 어, 이러면 안되는디요. 저번에도 주셨는디 (옷을 받는다)
[삿갓] 이건 네가 갖고 이건 할멈이 갖고--- (댓가로 받은 돈과 곡식, 물품들을 나눠준다)
[할멈] 나같이 늙은게 연지분 동백기름이 먼 소용이 있다요, 일업소
[삿갓] 그래도 갖고 있으면 십년은 젊어진다우
[할멈] 오매 좋은거 그럼 여기서 나하고살아버립시다
[모두] 우리하고 살아버립시다!
<노래>
삿갓 삿갓 김삿갓 우리 어르신 김삿갓
오늘 오면 내일 가는 아쉬운 김삿갓
이일 저일 척척 쿵 만물박사 김삿갓
해가 뜨면 나타나 시한수에 웃음을 던져주고
해지는 석양놀 등지고 떠나가는
삿갓 삿갓 김삿갓 우리 시인 김삿갓
[페이지] 030
[장] 17장
시골 서당
[학동] <노래>
흩날리는 눈송이는 춘삼월 나비들의 날개짖
뽀도독 뽀도독 눈 밟히는 소리는 오뉴월 개구리 소리
눈 핑게대고 누워 창호지 문구멍으로 바라보면
저 강산에 펼쳐지는 내 인생의 봄날은 어디에
[익균] 얘야!
[학동] 얘라니 누구 말이오
[익균] 너지 누구겠니
[학동] 허어, 얘라니 이래뵈도 새신랑이오
[익균] 방금 부른 그 노래, 누가 지은 것이냐
[학동] 우리 선생님이오
[익균] 지금 계시냐?
[학동] 출타 중이신디오
[익균] 너희 훈장님이 혹시 김삿갓 어르신이 아니냐
[학동] 나는 아니라고 봐지는디요
[익균] 그래, 왜?
[학동] 느낌이 그래요, 삿갓도 않쓰는디요
[익균] 그래 (나간다) 살펴 가시오 요즘 들어서 훈장님 찾는 사람들이 왜 자꾸만 많어진대 글공부도 못하게시리
[이필제] (황급히 숨어들 듯 들어오며) 삿갓 어른 어디 계시냐
[학동] 안계시는디요
[필제] 이놈 알고 왔다 썩 비켜라!
[학동] 안되요, 지금 병환 중이세요
[필제] 미리 약조가 돼있었다, 삿갓 어른!
[삿갓] (문을 열며) 찾아올것 없다고 했는데 (잠시) 명석아, 가 술 한되 받아오너라!
[학동] 의원님이 약주 드시면 안된다고 했는디요
[삿갓] 괜찮다, 평생을 마셔온 술이다
[학동] 다녀 오는만요 (나간다)
[삿갓] 춘설이 만분분하니 매화가 피겠구나
[필제] 시절이 수상하니 새시대가 도래 하겠구나
[삿갓] 새것이 와서는 곧 헌것이 될것이니 서두를 것 없것구나
[필제] <노래>
썩어빠진 헌것이 버티고 있는데 새것이 어찌올까
오백년 묵은 이씨 조선을 허기져서 주져앉은 이무기
[무리들] (쏟아져 나오며)
왓다 왔다 때는 왔다 천년을 기다린 새날이 오고 있다
[페이지] 031
[필제] 서양 오랑캐들 왜양선 타고 우리 바다 덜버힌다 무섭게 변하는 저 동쪽 섬나라 칼날을 세운다 늙어빠진 청나라 이빨 빠진 종이 호랑이
[무리들] 왓다 왔다 때는 왔다 천년을 기다린 새날이 오고 있다
[필제] 이 강토 곳곳에 불 같이 번지는 동학과 서학의 氣運과 氣勢 아직도 울안에 돼지처럼 꿀꿀대는 공자왈 이태백왈 천지의 운세는 저만치 가는데 주저앉아 뭉개는 백성들아
[무리들] 왓다 왓다 때는 왔다 천년을 기다린 새날이 오고 있다
[필제] 일어서라 깨어나라 눈부신 새날을 열자 오백년 웅크려 때를 기다린 ?龍에게 날개를 달자 오색 구름 사이에 빛나는 여의주 내눈 앞에 있다
[무리들] 왓다 왔다 때는 왔다 천년을 기다린 새날이 오고 있다
[필제] 우리가 거사할 채비는 완결 되었읍니다 이제 만백성이 우러러 따르는 천하의 김삿갓 어르신이 써주신 금강석같은 문장과 시만 있다면 만사형통입니다
[삿갓] 의기는 좋다만은 우주의 순리를 거역함은 옳지않다
[필제] 무엇이 우주의 순리입니까?
[삿갓] 저 백성들의 마음
[필제] 그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시오
[삿갓] <노래>
천지간에 집없이 떠도는 나그네 생애에
뜻새긴 글한조각 무슨 소용있으랴
세상사 이미 정해져 있는 것
떠돌다 빈 하늘로 사라지는 것
[필제] (칼을 뽐는다) 뜻이 없다면 죽음 뿐!
[삿갓] 나를 죽임이 정해진 일이라면 어쩔수 없는 일
[필제] (칼을 걷우며 읖조리며)
다시 한번 청하오니 부디 저의 듯을 받아 주시오
[삿갓] 날 살려줄거라면 술이나 한잔 하고 가게!
[필제] 할수없는 늙은이, 세상이 어찌 변하고 있는줄도 모르면서 그저 우물안 하늘만 바라보며 춤을 추어대는 늙어빠진 개구리 시는 무엇이며 풍류는 무엇이냐 아무 쓸모도 없는 음풍농월로 한세상 삿갓에 지팡이, 몰랐던가 그때 얻어먹은 음식과 인정은 저 백성들의 피와 땀이다. 이제 그 빚을 갚을 때인줄 모르는가
[삿갓] 네 이놈, 백성의 이름을 팔지 말어라!
[필제] 쳐라!
[조포교] (튀어 나오며) 멈춰라!
(필제의 무리들과 조포교 일행이 벌리는 활극, 무리들 붸고 붸기며 사라진다)
[페이지] 032
[조포교] 괜찮으시오, 김삿갓?
[삿갓] 이게 누군고, 여태 나를 붸아다녔소?
[조포교] 아이구 이 짓도 이젠 못해먹겠네, 저런 놈들 서너명은 단숨에 오라를 질러 꿇어않혔는데, 전 같지가 않소 그려, (잠시) 나도 떠나야겠소
[삿갓] 어디로 가시오
[조포교] 나도 이젠 떠나가는 김삿갓이오
[삿갓] (삿갓을 넘겨주며) 쓰고 가시오
[조포교] 그럼, 평안하시오. 눌러 앉을실 때도 되었지
[삿갓] 그 무슨 소리, 끝이 없는 나그네길에 너와 내가 따로 없소이다
[조포교] (함께 웃다가 나간다)
[삿갓] (잠시) 이보시오! 이 지팽이도 갖고 가시오
(사이) 지팽아, 너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
(던지며) 너 갈데로 가거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학동] (들어오며)
선생님! (잠시) 그세를 못 참고 주막에 가셨나?
삿갓 어른, 술 왔어요 (사이) 주무세요?
[페이지] 033
[장] 18장
낙동강의 배
<저멀리 노래하는 삿갓의 모습이 보인다>
[삿갓] 아- 아-
슬프다 천지간에 남아여
내 평생 아는 이 그 누구 있나
부평초 되어 떠돌은 삼천리
시와 더불은 사십년 허사로구나
청운의 꿈은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고
백발은 모든 이들의 길 나 서러워하지 않았건만
깊은 밤 고향 바라보며 우는 낯익은 새 한 마리
[사공] <노래>
해 해 해 해는 가고 끝없이 가고
날 날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고
해가 가고 날은 와서 왔다가 다시 가고
천지운행에 인간만사 이안에서 이루어진다
[조포교] 그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래일세, 누가 지은 노래요
[사공] 김삿갓이오
[익균] 아버님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조포교] 자네 품안에 계시지 않나, 효자로세
[익균] 아버님은 제 품안에 계셔야할 분이 아닙니다 이 강산 모든 이들한테로 가셔야 합니다(유골 단지를 삿갓에 담아 강물에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