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 서약 청원서
김대건 베드로 신부
(대전교구, 복수동 성당)
2005년 1월 25일에 사제품을 받은 저는 2010년 11월 22일 봉헌된 프라도 사제회 설립 150주년 기념 미사 때 첫 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11년 만에 본당으로 발령을 받아 사목활동을 시작하면서 종신 서약 준비 피정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제 본당 사목의 첫발을 내딛는 제가 프라도 사제로 종신 서약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과 교구장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섭리라고 여겨집니다. 저는 사제품을 받자마자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병으로 약물 치료를 하다가 흉선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36번 받던 중 중환자실에서 보름동안 기계호흡에 의지하고 콧줄로 영양분을 공급받고 간호사들이 대소변을 다 받아주며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성대 결절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사목활동을 전혀 펼칠 수 없었지만 본당 공동체가 저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사제직의 첫발을 내딛는 상황에서 얻은 이 체험은 저로 하여금 사제는 사목 활동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써 활동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입원한지 4개월 만에 퇴원하여 18개월을 요양하는 동안 아무런 활동도 할 수는 없었지만 제 육신의 고통과 힘겨움을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맡겨드리면서 제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부터 2007-2008년은 교구 60년사를 편찬하는 신부님을 도와드렸는데요. 선종하신 교구 신부님들의 약력을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편 2009-2011년은 솔뫼 성지 보좌 신부로 생활했습니다. 매일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하면서 미사와 고해성사의 은총이 얼마나 풍요로운지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깊이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2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직장직종 전담사제로 사목하면서 직장인들의 현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는 사제”로의 삶을 꿈꿔왔던 제게 프라도 사제회는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신학과 2학년 겨울 방학 때 당시 제 출신 본당인 조치원 보좌였던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권유로 “프라도 관심 신학생 연수”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신부님들을 통해서 막연하게 그려왔던 사제직을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프라도 사제로의 삶을 또 다른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며 제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아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생퐁의 도표에 나타난 프라도 영성은 제2의 그리스도인 사제로 사는 제 자신이 헐벗은 사람,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맛있는 빵으로 먹히는 사람이 되도록 투신하게 해주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모든 염원이요 우리의 생명이다.”라고 한 근본 목적(회헌 12항)을 충실하게 살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특히 프라도의 복음 연구는 미사 강론을 준비하는 데 유익하게 활용됩니다. 회헌 37항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잘 알기 위하여 우리는 복음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그 복음을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를 서약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처럼 먼저 제 자신에게 복음의 기쁨이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묵상하면서 제 체험을 바탕으로 강론을 준비하여 설교를 하면 성령께서 교우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심을 느낍니다. 더불어 고해성사 때도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자주 체험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지혜를 얻은 제 입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고해자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또한 매월 프라도 형제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각자가 묵상한 복음연구를 나누고, 사도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사목활동을 식별하는 시간들은 제 사제 생활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 막 본당 생활을 시작한 제게 그동안 프라도 형제들과 함께 나누면서 얻은 다양한 사목 체험들은 폭넓은 시선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라고 하신 성 다블뤼 주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전부이다.”라고 하신 복자 슈브리에 신부님의 말씀은 그동안의 사제생활을 통해 얻은 제 신앙 고백인 ‘십자가=부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일깨워줍니다.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이 보여준 신앙의 모범은 십자가와 부활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래서 제 십자가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과거에는 물적, 정신적,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이 십자가를 짊어진 것처럼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동안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면서 누리는 기쁨보다 그로 인해 겪는 힘겨움이 더 컸기에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야만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그 순간이 부활의 순간, 기쁨의 순간이었음을 이제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저도 바오로 사도처럼 당당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싶습니다(1코린 1,26-2,5 참조).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이 ‘신앙의 기쁨’임을 잘 알기에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프라도 사제회 종신 서약을 시작으로 제 삶을 통해 드러내고 싶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공동체와 함께 할 때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이 프라도가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라도 형제들은 혼자서는 ‘참다운 제자’의 삶을 잘 살 수 없기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다.”라고 하셨던 선배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는 삶을 새로운 삶의 자리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필요한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 저 김대건 베드로는 프라도 사제회에 종신 서약할 것을 청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