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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기찬여행- 푸른길 공원 오감길 |
입력시간 : 2014. 06.13. 00:00 |
"칙칙폭폭" 아직도 귀에 맴도는 그 시절 기찻소리
이웃들과 정겹게 살던 옛 흔적 아직도 곳곳에 남아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맞으며 일상의 힐링 만끽
'기차길옆~오막살이~ 아기아기~잘도 잔다~ / 칙~폭~칙칙~폭폭~칙칙폭폭~칙칙폭폭 / 기적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초등학교 음악책에 나온 윤극영 작곡, 윤석중 작사의 동요로 40대 후반 이후들이 가장 애창되어 온 동요다.
남자 아이들은 새끼줄로 너댓 명이 기차놀이를 하며 이 골목 저 골목 쏘아다니고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로 골목 공간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필자도 진월동과 철길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새벽 4~5시 사이면 어김없이 육중한 무개의 화물열차가 지가나면서 흔들리는 진동과 소음에 잠이 깨곤했다.
鐵馬의 역사를 살펴보자, 1897년 3월 29일 인천 우각현(牛角峴-지금의 도원고개)에서 경인선 기공식을 했으나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했다가, 1899년 4월 공사를 재개, 그해 9월18일 인천 제물포∼노량진 사이의 33.2㎞를 개통,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인 ‘칙칙폭폭’ ‘모갈1호’가 시속 20~30㎞로 운행을 했다.
또 호남선 1910년 1월에 대전에서 시작해 1914년 1월 목포에서 호남선구간이 완성됐었다.
이어 몇년 후 광주선은 1921년 4월에 착공했다. 1922년 7월에는 광주역이 조성됐고 광주 동구 대인동에는 현재의 동구 소방서 건물이 완공됐다.
(광주송정)송정리-극락강-운암역-광주간에는 열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1922년 12월에는 광주-망월-장산-마항-담양까지 전남선(담양선)이 개통됐다.
그 후, 1936년 광주선(송정리-여수)이 개통되고 근 30여년 후인 1968년 진주-순천 개통되면서 비로소 경전선이 완공됐다.
광주 동구 대인동 광주역을 출발한 기차는 현재는 대인시장통을 거쳐 계림오거리 속칭 나무전거리에서 갈라졌다. 왼쪽은 망월-장산-마항-담양으로 가는 담양선이며 또 하나는 계림동 지금의 나무전길을 지나 농장다리쪽을 지나, 남광주-벽도-효천-남평-화순을 경유 여수방면의 철길이엇으나 1969년 광주역은 대인동 시대를 마감하고 북구 중흥동 현 역사로 옮겨진다.
광주의 도심권을 반 바퀴 정도 휘감아도는 철길이 있었다. 그것은 경전선 철길로 광주송정-극락강-광주-남광주-효천으로의 철길이다.
근대화 시대에서 이어져 온 철길은 1922년부터 2000년까지 78년 동안 서민의 애환을 실고 다녔으나 도심의 팽창과 철도시설의 이용증가로 열차소음, 사고 등으로 인한 기찻길 옆 동네로의 기피현상으로 철로주변이 슬럼화됐다.
주민들은 철도 이설을 꾸준히 요구하며 그 결과, 광주송정-서광주역-효천으로의 이설이 실현됐다.
이제 광주도심에는 길이 10.8㎞, 너비 8~26m, 면적 16만5천㎡인 띠 모양의 기찻길 터만 남았다.
이 기찻길 터를 이용해 광주시는 ‘푸른길 공원’조성에 착수했다. 2002년 5월 광주역~동성중 7.9㎞의 폐 기찻길이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푸른길 공원은 크게 4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1구간이 '오감(五感)'길로 명명된 구간으로 광주역에서 길 건너 동구 계림동에서 산수동 굴다리까지 1.7㎞ 이어졌다.
광주역에서 무등로와 독립로가 교차되는 큰길 방향이나 광주역 샛길로 구시청(계림동)방면 사거리(계림동)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푸른길 공원의 출발점이자 종점이 나온다.
시멘트 구조물로 장식된 입구에 들어서면 동네 고샅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주변에 집들이 함께 촘촘히 들어서 있는 작은 꽃밭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철이 지나긴 했지만 곳곳에는 봄철의 꽃이 피는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더욱이 공원길은 발목이나, 무릎에 충격을 덜 주는 우레탄 소재로 처리해 걷기도 편하다. 어른이며 아이들도 안심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처음 들어서면서 만나는 곳은 철길이엇음을 알리는 철로가 짧게 놓여 있다.
주변에는 어릴 적 살곤했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사이로 좁은 골목이 이어지며 예전에 이웃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갔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창문을 열면 철길이 한 발짝 정도의 거리도 안 돼는 곳에서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살았던 곳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이웃들과 정겹게 살아가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갔다.
필자도 학교를 다닐 때는 철길을 많이 걸었다. 그 시절에는 간선도로 사정이 대부분 흙길이어서, 비만 오면 온통 진흙탕길이라 운동화를 깨끗하게 신으려고 별수 없이 위험해도 철길을 이용했다. 열차가 통행하려고 기적을 울리면 잽싸게 피하곤 했다.
철길 위에 큰 못이나, 동전, 작은 쇠붙이를 놔두면 납작하게 변형돼 이를 가지고 극성스럽게 장난치며 놀던 시절이 기억난다.
200~300m 쯤 지나면 시골의 간이역처럼 장식된 골목의 입구가 나온다.
'푸른마을 기차여행'의 골목인데 계림동 주민들이 직접 테라코트 벽화작업을 통해 전시장을 꾸며놨다.
옛 골목에는 마을 주민의 추억이 서려있는 공간으로 작품이 전시돼 있다. 도심주택과 철도부지의 공간을 조화롭게 꾸며 생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소나무 숲길과 메타세콰이어가 함께 어우러져 도열하듯 서 있고 곳곳에 운동시설물과 쉴 수 있는 공간과 벤치, 누정 등이 도심 속 자연과 잘 어우러져 생태 학습관으로는 그만이다.
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심 속의 자연친화적인 숲길이 존재하고 있어 작은 숲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동화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을 느끼고 내면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일깨우고 일상의 힐링(Heeling)을 할 수도 있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굳이 멀리 있는 유명한 수목원이나, 무등산으로 가지 않더라도 푸른길 숲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나무에는 안내문이 소개돼 있어 나무 이름과 생태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서방로타리 근교쯤 오면 큰 도로를 횡단해야 한다. 이곳은 도심 구역이다. 이곳은 오래 전 광주상고가 있었으며 상고 이전에는 鏡湖臺(경호대)라는 언덕이 있어 광주읍성과 경양방죽이 한눈에 조망됐었다.
지금은 1937년 일제강점기 경양방죽이 매립되면서 경호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숲길을 걷다보면 한 아파트 앞의 철도건널목의 교차로 구간이 나온다.
이곳은 담양선으로 불리었던 옛 철길구간으로 1944년에 폐선됐었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작은 골목길이 도동고개까지 연결되는 길이 있다. 도심 속 시골길같은 아기자기한 풍경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이 길을 지나면 경사진 언덕배기를 힘겹게 올라가는 증기열차 모습이 그려지는 작은 협곡이 나온다. 바로 이 길만 넘으면 오감길 마지막 구간 굴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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