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1일, 토요일 흰돌모임에서 북한산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부터 이 남편을 위해 정성껏 산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아내의
손길이 분주하다. 검정 찹쌀, 하얀 찹쌀, 현미 찹쌀, 수수, 콩이 섞인 잡곡밥과
일구농장에서 솎은 알타리로 만든 국물김치를 곁들인 다섯 가지의 반찬과, 거기다가
뽀너~스로 보온병에 뜨거운 물과 과일까지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아내 동백이의 손길에서
사랑을 느낀다.
배낭을 메고 나서는 나를 뒤따라 나와 아내는 앵무새처럼 언제나 하는 말을 또 한다.
산길에 조심하고 뒷풀이에 술을 적당히 하라는 사랑이 담긴 잔소리를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혀 내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아내에게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함을
느낀다. 요즘 아내는 다니고 있는 공장이 제일 바쁠 때라 늦은 10시 이후에야 집에 온다.
힘든 내색 없이 자기가 "진정한 공순이"라 칭하고 즐기며 일하는 동백이...
약속을 중요시하는 나는 오늘도 30분 먼저 나와 책을 보며, 여유로움 속에 내가 터득한
기다림의 철학으로 설렘과 행복을 느낀다. 자칭 화백(화려한 백수)이라 말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이화를 떠난 졸업생 선배 넷 (김문갑, 김형두, 송기용, 송원용) 재학생 엉아 둘
(김용완, 라광식) 그리고 귀염둥이 만보가 모여 오늘의 추억을 만든다.
산사나이 선배님들의 뒤를 따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 다니면 되는 나는, 선배가 만들어준
자리가 넘~ 편하고 좋다. 흰돌모임의 막내인 나도 언젠가는 선배들의 뒤를 따라 저렇게(화백)
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저 높고 푸른 가을하늘에 실려 보내며, 점 찍어둔 후배 한명을
영입하기 위해 물밑 작업중이다. 완이 형님은 그 후배를 "껄떡이"라 부른다.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 부산하지만, 자기를 희생할 줄 알며 항상 바쁘게 사는 인간성 좋고 성실한 후배다.
내일 아들의 혼사 날인데도 산행에 참석한 30년 전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흰돌모임의
회장이며, 이화산우회를 잘 가꾸어 후배에게 물려주신 김형두 선생님께 어떻게 이런 큰일을
앞두고도 산에 올 여유가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니 "집에 없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새벽 2시
까지 난생 처음으로 사모님을 도와 전을 부쳤다고 하시며 멋쩍게 웃으신다.
문갭이(김문갑 선생님) 큰 형님 얼굴이 안보여 물어보니 벌써 비산(砒山) 약수터에 먼저 가
있을 거라고 하며 하는 말이 재밌다. 아마 지금쯤 아주머니들을 상대로 작업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하시며 HD 선배님은 갭이 큰 형님의 넉살좋은 성격이 은근히 부러운 눈치인 것 같다.
연신내역 3번 출구로 나와 불광중학교를 지나자 얼마 후, 산길이 나오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40분 정도 올라가니 비산 약수터에 도착하였다. 갭이 큰 형님은 기대와 달리 작업
할 마땅한 상대가 없었는지 벤치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다. 우리를 보고는 늘 그랬던 것 처럼
반갑게 맞아 주시며, 그동안 지리산 종주를 한 자랑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불룩한 배를
만진다.그래도 개구리 배가 올챙이 배로 변해 보기가 좋다.~~
화백들만의 수요 산행과 흰돌, 이화산우회, 기타 모임에서 "자연을 벗삼아 자아(自我)를 찾고,
인격형성에 힘쓰시는 선배님들을 보면 절~로 고개 숙여지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나도 작업(?)하는 것만 빼고^^ 선배님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라형은 어제 먹은 술에 힘들어하며 내가 준비해간 얼음물을 염치 불구하고 벌컥 벌컥 들이킨다.
내가 못 먹어도 기분 좋다.
산행은 계속되고 송전탑과 470봉을 지나 전망이 아주 좋은 바위에 이르러 우리 일행은
산자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가을단풍을 배경 삼아 사진을 박는다. 앞으로도 박고 옆으로도 박고..

<앞으로 박은 사진>
홈페이지 사진 설명에 뭐라고 쓰여있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컴맹인 동백이도 흰돌 홈페이지는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며, 친구까지 데리고 와 공짜로 성인 만화를 즐긴다.
북한산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 공원으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도 극찬을 하며 부러워하는 북한산
봉우리에서의 사방을 내려다 보는 감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예술이었다. HD 선배님의 손짓
을 따라 내 눈은 어느새 자동으로 변한다. 저건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이건 등등...
자상하게 설명 해 주시는 선배님의 가르침에 감사 할 뿐이다. 한~박자 쉬며 숨을 고르고 올라가는
산기슭에 바위 틈새를 비집고 쓰러질 듯 피어난 이름 모를 꽃나무를 보니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의 소리가 나온다. 살아있는 생명인 것이다.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위치하고 있었다던 "비봉" 근처에 이르리 여러 코스를 통해 올라온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다. 지금 비봉에 서있는 순수비는 진품이 아니며 진품 순수비를
현장에 그대로 뒀더니 훼손이 워낙 심하여 지난 72년 8월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사적 제288호 신라진흥왕순수비유지(史蹟弟二八八號 新蘿眞興王巡狩碑遺址)라고 새긴
화강암 비석을 대신 세워놓았다고 한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함이었다.
진흥왕 순수비로 국보 제3호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비봉의 모습>
산에 사람이 많으면 불경기라 하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자연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순수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갭이 큰형님이 안 보인다며 걱정하는 완이 형님의 말에 HD 선배님은 점심 먹을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먼저 갔을 거라고 하시며 신경도 안쓴다. 나도 신경 안 쓴다.(큰 형님 죄송!)
조금 지나다 보니 갭이 큰형님은 우리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비봉능선 헬기장에서
미모의 여인에게 북한산 설명을 빙자한 작업에 한창이시다. HD 선배님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놀리면서도 응원을 보낸다.
비봉능선의 기암인 '사모바위' 근처에 숨겨둔 명당자리에서 송기용 선생님이 가지고 온 돗자리를 펼치고 모두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선배님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다음부터는 내가 도시락을 빠뜨려 얻어먹을 망정 돗자리는 꼭 가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담어린 얘기 속에 점심을 먹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야 정치인들의 행보에 노무지 알 수 없다는 요즘 정치 현실"을 풍자한 "이화의 유~머 일번지 라형"의 말에 씁쓸함이 베인 웃음을 머금고 배낭을 짊어진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자연의 오묘함을 간직한 사모바위를 뒤로하고 하산한다.
HD 선배님도 원칙을 무시 할 때가 있나보다. 원래는 사모바위 - 승가봉 - 문수봉 - 대남문을
거치는 산행 계획이었는데, 무리가 따른다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신다. 아마 내일 아들 혼사를
앞두고 약간 흥분돼서 그러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술에 쩔어 헤매는 라형은 속으로 "심봤
다, 땡잡았다" 했을 것이다. 만보는 이제야 몸이 풀렸는데...
하산은 시작되고 올해 유난히 잦았던 비로 단풍이 밉다며 아쉬워하는 갭이 큰 형님의 말에 산꾼
의 길로 들어선 초보로써 감이 오질 않는다. 자연의 섭리 속에 찾아오는 단풍이 그저 아름답게만보일 뿐이다.

<하산길의 단풍>
물이 메마른 계곡을 내려오며 완이 형님, 저속에 있던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나
하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화백의 커트라인을 대폭 낮추는데 일조한 '럭키 송' 형님 하는 말. 땅속에 숨었지...
진짜 그런가 석준이 엉아! 이글 보면 빨랑 답장 좀 줘~잉
진관사 근처의 계곡에 이르러서야 숨어있던 물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부른다. 부르는 물에
얼굴을 담그니 세상에 부러울게 없다. 아~ 기분 짱이다.
제법 크게 자리잡은 계곡에는 생김새로 봐서는 국적이 궁금한 외국인 가족 '어른 셋, 여자 아이
둘' 합이 다섯이서 한가로이 자연을 즐긴다. 나보다 쬠 작은 '원조 SONG' 선배님은 외국인들과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건지 선배님이 English를 하는 건지는 모르
겠지만, 화백이 되려면 간단한 인삿말 정도의 영어 회화를 해야 되나 보다.
아뿔싸! 내 마지막 꿈이 화백인데... 큰일이다!

<외국인 어린이와 원조 SONG>
눈앞에 진관사가 보이자 완이 형님 발걸음이 빨라진다. '미주알'이 또 빠진게 틀림없다.
추석 연휴 때, 우리들의 속을 그렇게도 썩였으면 빨리 청소를 하던가... 불~가리스를 꾸준히
잡숩던가... 얼굴의 상처를 비밀을 지키기로 철석같이 약속 해 놓고, 본인이 '미주알 고주알'
병은 소문내야 된다면서 동네방네 얘기 해버리면,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달래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태연하게 말한 만보는 어찌하라고... 그것까지는 좋은데 뭐~ 통계를 낸다며, 형님과
같은 증상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여자 동료가 있었다고 알려주니, 미주알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니... 이거야 원... 그걸 또 알아봐 준 난...
그건 그렇고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진단 내린 의사 선생 처방은?
(처방전) : 마음 편히 가지세요! @#$%^//.... 세상에 나도 의사 하겠다. 신이 아닌 이상 그게
마음대로 되야 말이지!!! 행님! 럭키 송 형님이 넓혀놓은 화백의 길로 진로를 바꾸심이 어떠
하실런지...

<진관사>
현재시간 오후 2시 40분, 45분에 출발하는 구파발행 마을버스를 우리 일행은 미주알 때문에
포기 해야만 했다. 덕분에 "고려 현종 때인 1101년에 처음 세워진 사찰로 한국동란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64년에 다시 세운 진관사 (비구니 도량으로서 정갈한 모습이 인상적)에서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목탁소리에 박자를 맞춰가며 사색을 즐길 수 있었다."
막걸리를 사먹으면 우리 일행을 연시내까지 태워주는 음식점이 있다며, 막걸리 먹었을 때
비용과 마을버스비와 전철비를 합한 금액을 비교 계산하고, 나이 들면 어린애가 된다고
한사코 때를 쓰는 갭이 큰 형님을 간신히 달래 마을버스를 타고 구파발을 거쳐 연신내에 도착,
목욕(덕수탕)과 뒷풀이로(춘천 닭갈비) 못다한 회포를 푼다. 분위기로 봐서 잘하면 오늘 자리는
여기서 끝날 것 같은데, 문제는 갭이 큰형님이 마음에 걸린다.
라형은 산행중에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아 뒷풀이에 참석하지 못하고, HD 선배님은
아들 혼사로 1차로 끝내실 테고, 완이 형님은 미주알 때문에, 원조 송 선배님과 럭키 송 형님은
술하고 거리가 멀어 가실텐데... 아니나 다를까 갭이 큰형님의 간단히 한잔~ 더 해야지 하는 말
에 동백이가 눈에 아른거리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만보 지남철처럼 큰형님을 따라 붙는다.
완이 형님은 미주알도 잊은 채 정에 이끌리고 만다.
전철을 타고 종로3가로 방향을 잡고 가는데, 느닷없이 큰형님은 소화도 시킬 겸 "인사동에
구경을 가자고 하신다." 오늘은 시간상 여기까지다. 인사동의 재밌는 얘기는 다음으로......
* 자료에 도움을 주신 (김형두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흰돌"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부족한 만보 인사드립니다. ~ 흰돌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