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의를 캐는 이종문의 노래
-이종문 시집『정말 꿈틀, 하지 뭐니』(천년의시작,2010)
이종암
이종문 시인이 3시집『정말 꿈틀, 하지 뭐니』(천년의시작,2010)를 펴냈다.
그의 시(정확히는 시조다. 그러나 소설과 극 장르가 아닌 시 장르 속에 현대시와 현대시조는 한자리이다.)는
엄청 재미나고 의미는 깊다.
나는 몇 해 전 그의 2시집『봄날도 환한 봄날』을 ‘소리 내어 웃으면서 도(道)를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서평을 한 적이 있다. 그 시집 속의 “읍내에 신장개업한 윤씨농방 안주인이 엄청 미인이라 소문이 파다하기,/오후에 버스 타고 가 구경하고 왔지요//안주인은 소문보다 훨씬 더 絶景이라, 내일 모레 글피쯤에 다시 갈까 하는데요,//그 누구 같이 갈 사람 요오, 요오, 붙어라”의 「윤씨농방 안주인」이라는 시와 시집 첫머리와 맨 뒤에 실려 있는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그런데, 왜 돌아오나//아마 다시 재나보다”의「봄날도 환한 봄날」이라는 동일 제목의 시는 이종문의 시에 내재되어 있는 재미와 깊이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번에 이종문 시인이 새로 펴낸 3시집『정말 꿈틀, 하지 뭐니』에서
‘재미’의 특성을 한껏 잘 보여주는 작품은 아래의 두 편의 시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효자가 될라 카머-김선굉 시인의 말」전문.
엘피판 걸어놓고 왈츠라도 추나 보지, 천장 속 쥐 두 마리 쿵쿵 쾅쾅 야단이다
아니다, 신랑 신부가 사랑놀이 하는갑다
보자, 보자 하니, 울화통이 그만 터져, 아 냅다 소리쳤다, 야, 거기 좀 조용해라!
그래도 끄덕도 없다, 아예 지랄발광이다
말로는 안 될 놈들, 밀대로다 된통 치니,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그러나 쥐, 안 죽었다.
봄 들자 아기 쥐 콩콩, 왈츠를 시작했다
-「왈츠」전문.
이종문 시인과 아주 친한 대구의 김선굉 시인의 말을 그대로 차용하여 시조로 만든「효자가 될라 카머」는 참으로 재미가 있다. 거친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밴 단시조 2편으로 구성된 이 시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 의미가 얼마나 크고 감동적인가.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몸을 빌려 나온 내 몸의 뿌리가 바로 어머니다.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이종문 시인의 어머니는 필자가 잘 모르긴 해도 팔순에 가까운 노구의 몸일 것이다. 몸의 생기가 점점 찌그러드는 어무이를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그라고 젖 만져뿌라”는 그 행위는 김선굉 시인의 말처럼 “그라머 효자 된다”가 분명할 것이다. 효도가 뭐 별건가. 용돈 많이 주고 비싼 집에 가만히 모셔두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효도일 것이다. 부모와 함께 눈 맞추고 말 상대하며 같이 사는 것이 효도이리라. 나도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한테 가서 84세 손순연 씨 우리 어머니를 다짜고짜 안아뿌고 젖 만져뿌야 되겠다. 필자는 얼마 전에 읽은 이정록 시인의「엄니의 남자」와 이종문의「효자가 될라 카머」라는 시를 우리 시대 어머니를 제재로 한 가장 아름다운 시로 손꼽는다.
우리가 어린시절 시골집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천장 속 쥐가 내달리는 소리를 ‘왈츠’라고 명명(命名)한 시「왈츠」는 또 얼마나 재미난 것인가. 시골집 천장 속 쥐들의 소란을 순간 포착 묘사한 이 시는 세 편 시조가 한 데 묶여진 것인데, 이 시를 단순한 재미로만 읽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훌륭한 독후감이 될 수 없다. 첫째 수 “사랑놀이”→둘째 수 “지랄발광” → 셋째 수 “아기 쥐 콩콩, 왈츠”로 전개되는 이 시는 ‘쥐’라는 대상을 빌려 생명(生命)이 펼쳐지고 이어지는 엄숙한 잔치 마당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셋째 수 중장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그러나 쥐, 안 죽었다.”의 해학적이고 기발한 반전과 종장의 “봄 들자 아기 쥐 콩콩, 왈츠를 시작했다”에서 시인이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생명의 열림은 통쾌하고도 감동적이다.
부고가 날아왔다, 아지매가 가셨다는,
그냥 리어카에 투욱, 받혔는데 여든 해 쉬던 숨결을 멈췄다는 것이다
영안실 안내판을 찬찬히 살펴봐도 누가 아지맨지 도무지 모르겠다
상주의 이름을 보니 김끝남 씨인가 보다
아내에 맏며느리, 어머니에 아지매라
가슴에 단 한번도 제 이름을 못 달다가 처음사 영안실에다 이름을 단 김끝남씨.
살아 몰랐던 것 가시고사 겨우 알고 향불을 피워놓고 두 번 절을 하는 것을
아지매 김끝남 씨가 말없이…굽어본다
-「아지매 김끝남 씨」전문.
네 편의 시조로 짜여진 시「아지매 김끝남 씨」는 읽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아내에 맏며느리, 어머니에 아지매”로 일평생 남을 위해서만 살다가 죽어서야 세상에 제 이름 한 번 내다 거는 우리 세대의 어머니에 대한 슬픈 조사(弔辭)이다. 이종문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돌아가신 ‘아지매 김끝남 씨’에 살뜰한 부의(賻儀)를 한 셈이 되겠다.
앞서 발간한 이종문의 시집들에 비해 이번 시집『정말 꿈틀, 하지 뭐니』가 갖는 차별성은 단시조에서 찾을 수 있겠다. 시집에 수록된 단시조의 편수도 월등히 많고, 시 창작에 들인 공력도 지대해 보인다. 단시조는 표제시「정말 꿈틀, 하지 뭐니」를 비롯하여 25편이나 시집 속에 편재되어 있다. 그 가운데 먼저 시집 첫머리에 놓여 있는「고요」라는 시를 읽는다.
붉은
고추를 먹은
잠자리 한 마리가
억 년 고인돌에 슬그머니 앉는 찰나
바위가 우지끈, 하고
부서질 듯
환한,
고요
-「고요」전문.
지극한 가벼움의 “잠자리 한 마리”와 지극한 무거움의 “억 년 고인돌”이 교직되어 찰나의 ‘고요’를 직조해내고 있다. 이 ‘고요’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둘이 아니고, 영원과 순간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우리 삶의 비의(秘義)를 담고 있는 거울이다. 필자는 시집 맨 앞머리에 편재되어 있는 이 단시조의 조형성(造形性)에 또 주목한다. 중장만 온전히 펼쳐놓고 초장과 종장은 단어와 음보, 구(句)로 잘라 배열해 놓고 있다. 이 시조의 조형에 따라 연필을 그어 보니 방향이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 삼각형의 구조다. 삶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화살이나 창끝의 형상을 하고 있다.
참/오랜/망설임 끝에/결단을 내렸는가//마로니에/잎새/하나//휘이청,//떨어지고//시소의 한쪽 어깨가/슬그머니/기운다(「만추」전문.)
소가 엉덩이의 쉬파리를 쫓으려고 꼬리를 휘두르며 마구 풀쩍 내닫다가//아 냅다 뒷발질하며 희뜩 돌아보는,//대낮(「대낮」전문.)
인용한 위 단시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 이종문 시인은 우리 주변의 사소한 사물이나 풍경의 한 순간, 또는 그 움직임이나 정지에 자신의 마음을 얹어놓는다. 그는 거기서 우리네 삶의 비의(秘義)를 캐내려 한다.「근황」이라는 아래의 시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의 앞과 뒤도 모르고 사랑놀음에 빠져 있는 풀무치라는 대상을 빌려 한계적 존재인 우리네 삶의 모습을 묘파하고 있다. 중장과 종장을 한 행에 길게 겹쳐 놓은 “撞木이 아찔하게 밀려오고 있는데도 머언 산 미친 놀에 취해 흘레붙은” 그러한 상황은 비단 풀무치의 근황만도 아니요, 시인의 근황이고 우리의 근황인 것이다.
그래,
撞座*에 앉은
한 쌍의 풀무치다
撞木**이 아찔하게 밀려오고 있는데도 머언 산 미친 놀에 취해 흘레붙은
저 풀무치.
* 撞座(당좌): 범종을 칠 때 당목이 닿는 자리
**撞木(당목): 범종을 치는 거대한 나무 막대
-「근황」전문.
필자가 이종문의 이번 신작 시집에서 가장 주목한 시는 아래의「산」이라는 단시조이다. 종장의 1구가 서술어가 되고, 초장이 수식어 그리고 중장의 2구와 종장이 목적어 노릇을 하도록 짜여진 이 시는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이채로운 작품이다. 되새김질 하는 산을 어루만져 보고 싶다니, 때때로 구름을 보다 요령소리 내는 산을 어루만져 보고 싶다니, 풀 뜯는 소의 등을 어루만지듯. 먼 곳의 산을 소의 형상으로, 또 소의 목에 걸인 요령소리로 그려내는 거대한 상상력의 놀라운 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악다구니의 세상, 현상적으로 지극히 맑은 하늘에서 소의 가죽을 찢어 가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고 그가 또 노래할 지도 모르겠다, 이종문 시인. 자신의 시적 세계관을 그려놓은 시「詩法」이라는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산」이라는 작품을 이종문 시인 자신의 시적 태도나 포부를 온전히 밝혀놓은 시로 읽는다. 삶과 죽음, 그 사이 생(生)의 비의를 그는 끝내 언어로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아, 앞으로 그가 부를 노래가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그의 다음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풀 뜯는 소의 등을 어루만져 보고 싶듯, 어루만져 보고 싶다, 되새김질 하는 산을,
때때로 구름을 보다
요령소리
내는 산을,
-「산」전문.
<끝>
-[스토리문학] 2010년 7-8월호
첫댓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