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글씨,맛있는 글씨를 꿈꾸다! - 캘리그래피 작가, 붓쟁이 진성영
사람들은 그를‘캘리그래피 작가’라고 부른다. 가수 김건모와독도 지킴이 정광태의 앨범에서, 각종 드라마와 영화, CF에서자주 보아온 손글씨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PD’란이름으로도 불린다. 방송PD 경력 21년차로, P화장품 사내방송국책임PD 국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석산(石山)진성영 씨를 경기도 광주시 회덕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났다.그는 작품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의 멋진 사람이었다.
글자에 감성을 입히다
# 30대 예비신랑 이성수 씨는 결혼을 앞두고 어떤 청첩장을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씨는 심플하면서도 특별한 청첩장을 찾던 중, 글씨 자체로도 빛이 나는 캘리그래피(손글씨) 청첩장을 선택했다. 나만의 특별한 청첩장을 주문한그는 하객들에게 보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글자가 살아서 움직인다.‘ 무엇으로 쓰느냐’,‘ 붓의 굵기를 어떻게 하느냐’,‘ 획 모양을 어떻게 꺾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된다. 때로는 화사하게, 때로는 수줍고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등 글자의 표정은 수천, 아니 수만 가지다. 이렇듯 글자에감정과 표정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캘리그래피’이다.
“캘리그래피는 우리나라 말로‘손글씨’라고 합니다. 글씨가그림이 되는 형국이라고 할까요. 즉, 이것은 손으로 하는 모든 기술을 말하며, 아름다운 문자그림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캘리그래피의 매력은 글씨 하나로 어떤 직업군 과도 협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글씨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주는 전도사 역할도 합니다. 그동안 문화예술 부분에만국한되었지만, 최근에는 영화와 방송, 출판, 조형, 건축, 디자인 등 모든 영역에서 캘리그래피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붓쟁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캘리그래피 진성영 작가. 그는 캘리그래피가 단순히‘글자를 잘 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캘리그래피는 한 글자를 쓰더라도 글자가 갖고 있는 고유의이미지를 극대화하고, 나아가 그 글자가 쓰인 상황과 맞는 글꼴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꽃’이란 한 글자를 쓰는 방법에 따라 때로는 풀꽃이 되고, 때로는 꽃잎을 활짝 펼친 화려한 꽃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진 작가는 가수 김건모 20주년‘스페셜앨범 아트북’ 의 표지를 장식했으며, 2011년 정광태 30주년 기념‘독도는 우리땅’싱글앨범 타이틀을 맡았다. 이보다앞서 2009 년에는 독도 고지도전 관련 캘리그래피 특별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현재 독도사랑회 자문위원도 맡고있다. 최근에는 오는 9월 방송예정인 KBS새 수목 드라마‘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타이틀(2012)을 준비 중이다.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말하는 글씨,맛있는 글씨’입니다. 즉, 글씨도 살아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글씨를 표방해, 꾸밈없고 사람 냄새나는 글씨를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위대한 우리 한글을 세계 속에 보급시켜 세종대왕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저는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글씨를 씁니다. 그리고 항상 저의 글씨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위해‘어떤 메시지를 담아서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할까’를 항상 연구합니다.”
남자의 이중생활
“전남 진도 조도(새섬)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버려진 섬에서 거친 파도와세찬 바람을 맞으며 고3까지 보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어느 여름날, 바닷가근처에서 가족을 위해 촬영하던 아버지의모습을 보고, 사진사를 꿈꿨 습니다. 저는희망을 버리지 않았죠. 그 후 MBC방송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방송인의 꿈을 이뤘고, 그 방송일이 캘리그래피 작가로서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진 작가는 문학 시인을 꿈꿨다. “고 2때 청소년 잡지 <주니어> 에뜨랑제 시인상에서 우수상을 받고 잠시 시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배고픔의 설움을 겪은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꿈을 잠시접고 전문대학 전기과에 진학했죠. 그러던중 1996년 케이블 TV의 출현으로 목포의한 지역케이블에서 카메라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전남 무안에 위치한 초당대학교 동종학과 정보통신공학과에 편입했습니다. 그후 방송인으로 자리를 굳혔고, 지금까지 방송일과 작가를 겸하고 있습니다.” 방송PD 경력 21년차인 그는 지난 2008년H화장품 사내위성방송 책임PD 시절, 다큐프로그램 제작 중‘다큐프로 그램과 맞는 서체가 뭐 없을까?’를 고민하다 무작정 필방으로 달려가 붓과 먹을 사가지고 사무실에서 타이틀을 쓰기 시작했다. “평일 낮에는 P화장품 사내방송국 책임PD국장으로 방송제작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인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작업에 집중하고 주말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글씨 쓰는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캘리그래피에 입문한 그만의 독특한 이력이다. 그 후캘리그래피가 서예에 기본을 두고 하는 작업임을 알고, 대한민국 대 서예가인 권창륜 선생에게 사사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이 일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2010년 SBS 드라마 스페셜‘나쁜남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캘리그래피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껍질만 보고 포기하지 말라
과연 진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글씨란 무엇일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글씨, 사랑스런글씨라는 게 분명 있습니다. 요즘에 캘리그래피가 급부상하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이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선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너도하니깐 나도 한다’는 생각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혼이 담긴 글씨, 글씨에 기가 흐르는 글씨, 그것이 가장 좋은 글씨입니다. 그런 글씨는 전문가보다 대중들이 먼저 알아볼것입니다. 또 하나, 상업적으로 의뢰받은 작품은 작가의 의도보다는 오너의 취향에 이끌려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캘리그래피가 친숙해진 만큼 귀하게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는 캘리그래피가 너무 상업적으로 치중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캘리그래피의 기본을 배우기 위해 대 서예가의 사사 받은 사람으로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지금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울 때 철저하게배우고 익히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캘리그래피 작가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얘기했다. “혼을 담는 노력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보잘 것 없이 태어난 섬 소년이 험난한 세상을 상대로 도박을 걸때는 오직 노력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내일도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끼와끈기, 인내, 식지 않는 열정,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는 글씨연습과 끊임없는 노력만이 캘리그 래피 작가로서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쯤 그는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박의 껍질만 보고 쉽게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꺼운 수박의 겉은 딱딱 하고 맛없는 껍질에 불과하지만, 그 껍질을 벗기고 난 다음에는 달콤하고 시원한 빨간 알맹이가 기다리고 있습 니다. 또한‘너무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캘리그래피가 뜨는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해서‘그냥 나도 한번 해봐’란 단순한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글씨의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글씨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얼마나 산고를 겪으며 나왔는지 그 과정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와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앞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농업인들을 위한상품브랜드 캘리그래피 재능기부와 독도글씨를 쓰는 독도지킴이 역할을 계속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글씨가 필요한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아름다운 한글을 알리고, 널리 보급하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현재는 한지공예업체와 함께 캘리그래피 한지 예단함을 명품브랜드로 만드는 샘플링을 작업 중입니다. 마지막으로‘고정관념을 깨라’, ‘캘리그래피를 있는 그대로 느껴라’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글씨에서 희망을 찾고, 용기를 갖고,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혼이 담긴글씨. 여기에는 우리들이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한글을 사랑하고애국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좋겠습니다.”
글 정수지 기자 | 사진 윤군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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