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예술
회화는 기록으로서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한 인간욕망의 산물이다.그래서 캠퍼스에 대한 개념이 성립이 되기전 까지 회화는 동굴벽화부터 시작하여 고대건축물의 벽화까지 건축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회화가 캠퍼스로 옮겨온것은 오랜회화의 역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미술의 역사는 회화의 역사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미술의 주류는 오랜기간 회화였다.
예술은 18세기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술의 개념과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었다.인간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것은 예술의 개념에 속하였다.이러한 예술개념의 역사로 인하여 사진은 발명당시 하나의 산업생산품 이었고 기술로 인식 되었다.
그후 사진술을 이용하여 초상사진과 회화의 보조적 수단으로서의 자료사진으로 부를 축척한 2.3류 화가출신의 영업사진가들이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얻기 위하여 예술지향적 회화주의사진을 추구하였다.
초기사진의 역사는 초상사진 그리고 기록으로서의 사진 그리고 회화모방의 예술사진이 공존하고 있다.
근대사진은 사진가들이 사진독자적인 본질과 미학을 자각하고 회화에서 분리하고자 한 노력의 소산이다.그러나 독자적인 미학을 확립하였다기 보다는 기록성과 사실성을 바탕으로 문학적인요소가 바탕이 된 라이프 지와 루크 지 스타일의 저널리즘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다.
1952년 앙리까르 띠에 브레쏭의 작품집 "결정적 순간의"발간과 1955년 뉴욕근대미술관 기획의 "인간가족"전 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인 요소가 강한 근대사진의 분수령이자 종말을 예고 하였다.
1956년 윌리암 클라인의 작품집 "뉴욕"과 1958년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발간은 사진에서 휴머니즘을 바탕 으로한 문학적인 요소가 제거되는 바탕이 되었다.
1950년대 미국사회는 세계1.2차 대전의 전승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와 더불어 물질적 풍요를 누려서나 인종갈등 ,여성운동,빈부격차의 심화,메카시즘 등으로 많은 사회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다.그러한 미국사회의 부정적인 면이 윌리암 클라인과 로버트 프랭크의 작품에서 날카롭게 표현됨으로 인하여 미국인들을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의 사진의 역사는 객관적이고 공론적인 시각을 바탕으로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다.그러나 텔레비젼,영화등 다른 영상매체의 발달과 보급으로 인하여 사진의 공론적 기능이 옮겨 감에 따라 사진의 내면화 사유화 현상을 가속화 시켰다.
그후 영상언어로서의 사진의 역할이 1970년대 까지 지속되어서나 1980년대부터는 언어로서의 사진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사진이 부각 되었다.
1960년대부터 고도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급속한 서구화 과정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는 의식주 와 그 외 모든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서구사회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그러한 환경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40대이하 젊은세대들은 사고와 감정에 있어서도 서구와 별차이가 없다.따라서 그들이 즐기고 누리고 있는 문화들도 서구적이다.
사진을 비롯한 예술문화환경도 글로벌시대가 본격화와 인터넷환경의 영향으로 서구화 되었다.그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현대사진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다.
21세기 한국문화 환경에서 가장 한국적인 사진은 한국사회의 달라진 일상과 생활환경을 솔직하고 개성적으로 표현 한 작품이다.
전통의 계승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사회문화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개성적이고 독창적으로 창조 하는것이다.
한국사진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현대사진은 서구문화의 무조건적인 수용의 결과가 아니라 달라진 사회문화적인 환경의 산물이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빠른 보급으로 인하여 정보의 공유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사진계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위상을 확립하려면 무조건적인 답습이 필요 한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문화적인 환경을 바탕으로한 새로운미학과 철학을 정립하여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화시대와 새로운 사진시대를 준비하는 사진가의 올바른 자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