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 샬롬 가톨릭] 배봉한 부장님과 함께!
책읽남 지디, 시읊남 봉부장님, 두 남남과 함께 하는 토요일 아침!
우리의 시읊남께선 이 시를 떠올리시더라고요.
네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했다
그 기쁨이었으면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닌
슬픔이라든지,
고통이라든지,
번뇌라든지,
일상의 그 아픔을
맑게 닦아낼 수 있는
네 그 음악이었으면 했다
조병화 시인의 '남남' 이란 시, 인데요.
저와 이분은 여러분께 어떤 존재일까요?
토요일 아침의 또 한 남자!
우리들의 봉부장님! 한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나눈 샬롬 가톨릭입니다!
* 원고에 나온 플로피디스크! 봉부장님이 보내주셨어요 🙂 행복가족들의 사진도 함께 나눕니다!
샬롬, 가톨릭 2018.9.29.(43회)
이번 한가위는 주말과 맞물려 여느 때보다 길고 여유 있는 명절이었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셨나요?
▶ 네. 어머님이 연로하시고 몸이 안 좋으셔서 이번에는 고향에 가지 않고 아내가 시골에서 올라오는 바람에, 저는 넉넉하고 여유 있게 명절 연휴를 즐겼습니다. 특집 방송으로 명절이 더 바쁜 방송사 관계자나 운전기사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 걱정한 대로 명절에 삼가면 좋을 화제를 끄집어내어 가족끼리 다투거나 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장님은 화기애애하게 지내신 거죠?
▶ 네. 우리 가족은 정치색이 같고 연예가에 관심이 없어서 조용히 지냈습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오신 김희중 대주교님은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간 화해와 관련해서 정치적·정략적 이해득실을 따져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밝히셨던데요. 남북한 정상이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사진을 두고 섬뜩했다는 이들도 있으니, 명절에 정치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겠더군요.
주일 미사에 이어 월요일 한가위 미사가 이어져 성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은 힘드셨을 텐데요. 추석 합동 위령미사를 드리며 차례상을 차리는 본당들이 늘어나는 듯합니다.
▶ 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분들이 줄어드는지 우리 본당은 성당이 교우들로 꽉 찼습니다. 저는 남북한 평화 회담 소식이 명절 선물처럼 여겨져, 주일미사때 화답송 시편 한 구절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시편 126편인데요. 순교 선열들도 천상에서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추석날엔 미사 끝나고 차례상 음식으로 교우들과 막걸리 한잔을 나눴는데요. 입만 즐거워도 “매일이 오늘만 같아라.” 소리가 나오더군요.
요즘은 여행지 숙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분들도 있다고 하고, 명절 때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로 공항이 붐비는 것을 보면,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예전 같지 않은가 봅니다.
▶ 네. 조상귀신들의 명절 유머란 재미난 글이 있던데요. 명절을 지내고 귀신들이 모여 한탄을 하는데요. 장소를 옮겨 다니며 제사를 지내거나 해외로 나가 제사를 지내는 바람에 못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물론, 플라스틱 모형 음식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바람에 이빨만 다쳤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진짜 열 받은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하더랍니다.
후손들이 제사를 안 지내서 아무것도 못 얻어먹었다는 건가요?
▶ 아뇨. 조상귀신들의 대화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편하겠다 싶어 근처 P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에이 망할 놈들! 쯧쯧.”
인터넷 시대를 풍자한 명절 유머 같군요. 시대가 바뀌면서 풍습들이 변해가고 잊혀가는 듯한데, 명절에 보름달을 바라보는 일은 계속될 듯합니다.
▶ 돈 들지 않고 간편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겠죠. ‘책읽남’은 우리 지디 몫이지만,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글 가운데 보름달에 관한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한 깊은 사람들은 그믐달을 좋아하고, 꿈 많은 사람들은 초승달을 사랑하지만, 보름달은 뭐 싱겁고 평범한 사람들이 좋아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좋은 시간은 짧을수록 값지며, 덜 찬 것은 더 차기를 앞에 두었으니 더욱 귀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필경 이것은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행운이 비운을 낳고 비운이 행운을 낳는다고 해서, 행운보다 비운을 원할 사람이 있을까?”
이런 글 끝에 김동리 작가는 보름달처럼 둥근 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고 썼던데, 보름달처럼 눈이 큰 지디가 생각나더군요.
고맙습니다. 요즘은 초승달처럼 생긴 눈도 좋아한다던데요. ‘시읊남’은 부장님이지만 저도 유하 시인의 ‘달의 몰락’이란 소설 같은 시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래서 나는 명절이 싫다는 분들이 공감할 듯합니다.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젠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
▶ 지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이런 잔소리가 싫어 집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달을 바라본 이들도 꽤 있었겠죠. 우리 집에서도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우리 딸의 혼사를 거론했는데, 내년에는 아마 좋은 일이 생길 듯합니다.
하찮은 듯하지만 명절 끝에 남은 음식 문제로 고민한 집들도 있을 듯합니다.
▶ ‘밥과 쓰레기’라는 이대흠 시인이 쓴 징한 남도 사투리 시가 있던데요.
“날 지난 우유를 보며 머뭇거리는 어머니에게/
버려부씨요! 나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과자를 모으면서/
멤생이 갖다줘사 쓰것다/
갈치 좀 봐라, 갱아지 있으면 잘 묵겄다/
우유는 디아지 줬으면 쓰것다마는/
신 짐치들은 모태갖고 뙤작뙤작 지져사 쓰것다//
어머니의 말 사이사이 내가 했던 말은/
버려부씨요! 단 한 마디//
아이가 남긴 밥과 식은 밥 한 덩이를/
미역국에 말아 후루룩 드시는 어머니//
무다라 버려야. 이녁 식구가 묵던 것인디//
아따 버려불제는, 하다가 문득...//
그래서 나는 어미가 되지 못하는 것.”
우리네 어머니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시군요.
▶ 그렇죠. 추석 때 책상 서랍 정리를 하다가 플로피 디스크 하나를 발견했는데요. “최영미 원고. ‘삶의 자리에서’ 15매. 1999년 12월”이란 필자의 메모가 쓰인 디스크였어요.
최영미라면 혹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알려진 시인 최영미 씨말입니까?
▶ 맞습니다. 최근에는 미투 관련 사건으로 더 알려졌나요? 최영미 씨는 비비안나라는 세례명을 가진 교우인데, 2000년 1월호 경향잡지에 수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시인은 “할머니, 그 그립던 순수의 시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위령미사를 봉헌하려고 미사예물 봉투를 쓰는데, 할머니 이름도 세례명도 기억이 안 나서 어머니께 전화를 하고는 죄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손녀가 할머니 이름을 부를 일이 없었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최영미 시인이 비비안나라는 교우였다니 새삼 반갑게 느껴집니다.
▶ 최 시인의 할머니는 하꼬방 같은 데서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혼자 병마와 싸우며 사셨다는데, “가난이 죄였다고 얼버무릴 수만은 없는 우리 집안의 치부”라고 시인은 고백하더군요. 시인은 모처럼 성당에 가서 위령미사에 참여하며 주보를 뒤적이다가, 기도문 한 구절을 발견했답니다. “주여, 저에게 건강을 주시되, 필요할 때에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건강을 잘 보존케 하여 주소서.” 토마스 모어의 기도였는데요. 할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신부님께 성체를 받아먹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포도주에 적신 하얀 밀떡을 주님의 몸과 피로 알고 거룩하게 받아 넘기던 순수의 시대가 나에게도 있었다.”고 고백했는데, 19년 전을 돌아보며 최영미 시인에게 화살기도를 보냈습니다.
명절이나 대축일 때면 냉담을 하다가도 성당을 다시 찾는 분들이 있는데, 순수의 시대를 일깨우는 그리운 분들의 추억 때문에라도 신앙의 열정을 되찾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네. 지난해 이맘때 내년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구상 시인의 고명딸인 소설가 구자명 임마쿨라타 씨가 펴낸 “망각과 기억 사이”라는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추천의 글을 쓴 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의 박현동 아빠스가 글에서 표현한 대로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인간은 방황합니다. 어쩌면 망각과 기억은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두 극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아픔과 상처들을 끝내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과거와 기억을 애써 지우려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여기 있습니다.”
망각하지 못하는 세월호의 통증으로 이번 명절도 힘들었을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9월을 마감하는 주이고 명절 끝인데, 이야기가 좀 무거워졌나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제와 한국전쟁 등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는데, ‘헬조선’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지금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 저한테는 어려운 질문이고요. 지난해 나온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라는 구상 시인 산문선집 제목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이번 추석에 귀한 술을 선물 받았는데, 지난해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 만찬 때 쓰인 우리 술이었습니다. 소설가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선생이 40년 전인 1978년에 펴낸 “바다로 간 목마”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주인공인 주희에게, 서른한 살 당시엔 노총각이라고 표현한, 민우가 한 말이 술 마실 때면 기억납니다.
“술은 차표와 같아. 내릴 정거장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역시 명절답게 좋은 술로 한잔하셨군요. 인생의 종착역은 죽음이라지만, 내릴 정거장을 잊은 사람처럼 드신 것은 아니죠?
▶ 좋은 술이라 양도 적고 훅 취하고 훅 깨더군요. 중국과 바티칸이 지난 22일 중국 주교 서품에 관해 잠정 합의했다고 발표했던데요. 세상은 휙휙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을볕이 좋아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학생들과 경춘선 기차를 타고 김유정 문학촌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습니다. 머지않아 북한을 지나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기차 여행을 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명절 끝 내일 주일 복음 말씀이 섬뜩하던데요.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잔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정신 바짝 차려 살아가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9월의 마지막 주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CPBC 행복을 여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