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의학 이야기] 논스톱
4만 피트 상공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긴박한 테러
군중 속 제노비스 신드롬“기내에 나 말고도 의사가 또 있겠지…"
비행중 의료인 찾는 상황 많지만, 심폐소생술 후 갈비뼈 골절 등
조치 후 법적 소송으로 곤혹 겪어, 응급 환자 발생시 나서기 망설여
의사들이 병원 외 장소에서 응급환자 구조 조치를 한 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종종 법적 책임 소재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진은 영화 ‘논스톱’의 한 장면 |
1964년, 미국 뉴욕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퀸즈라는 주택가에서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강간, 살해당한 것입니다. 문제는 희생되는 30여 분 동안 비명을 지르며 구조를 요청했지만 38명이 창가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도 구조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른바 방관자 효과라고 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즉 연관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개입의 여지가 적어진다는 것이고 집단적 오해나 무시로 개입할 상황이 아니라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각박할수록 사람들과의 관계가 메말라가고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기가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행 중인 항공기 내부 같은 특정한 공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높은 고도로 운항 중인 항공기의 기내는 응급 환자가 발생할 시 대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기내에 탑승하고 있는 의사들의 도움을 호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노비스 신드롬과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 말고도 의사가 또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내 응급 상황 때 의사들이 선뜻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응급 처치에 따르는 법적 문제 때문입니다. 비단 기내 상황이 아니어도 응급조치 후에 예기치 않은 법적 소송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 후 갈비뼈에 골절이 생겼다고 고소당하는 등의 일입니다.
영화 ‘논스톱’은 고도 4만 피트의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긴박한 테러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탑승객 전원이 용의자로 지목받게 되는데, 그중에 의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영화 ‘논스톱’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4만 피트 상공, 뉴욕발 런던행 비행기 안. 미 항공 수사관 빌(리암 니슨)의 휴대전화로 ‘1억5000만 달러를 입금하지 않으면, 20분마다 한 명씩 죽이고 항공기를 폭파시키겠다’는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범인의 메시지대로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범인을 찾기 위한 빌의 행동이 시작되지만 사건은 점점 꼬입니다. 입금 계좌가 빌의 것으로 알려지고, 매스컴에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빌이 테러리스트로 지목받게 됩니다.
평온하던 기내는 곧 아수라장이 되고 몇몇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됩니다.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의문의 부인(줄리안 무어), 승무원 낸시(미셀 도커리), 뉴욕 경찰, 아랍인 의사, 심지어 기장과 부기장까지 범인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하는 스릴러의 냄새는 좋습니다. 그러나 액션에 대한 미련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고 극의 긴장도를 풀어버립니다.
폭탄을 발견한 빌은 해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폭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범인도 찾아야 하고 폭탄도 해결해야 하는 빌, 영화 ‘논스톱’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테이큰’ 향수는 리암 니슨에 대한 액션의 기대로 비슷한 영화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영화 ‘논스톱’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치밀한 서스펜스 스릴러로 만들어졌으면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입니다.
영화 ‘논스톱’에 등장하는 의사도 용의선상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기내에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내 방송으로 의사를 찾게 됩니다. 실제로도 비행 중에 의사를 찾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헌신적인 노력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하게 비행도 마치게 하는 활약이 보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법적인 문제로 선의의 봉사가 되레 소송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응급 상황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최선의 노력에 대한 책임을 과연 물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5조 2항에 보면 선의의 응급의료에 관한 면책 조항이 나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 등을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해당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물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아니지만 응급 상황에서 구조를 독려하기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례에서 보면 물에서 건져준 사람에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특히 법적인 부문에 민감한 의사들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루프트한자 항공 같은 경우에는 ‘닥터스 온 보드’(Doctors on Board)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아예 비행기를 탈 때 의사로 등록을 해서 기내 응급 상황에 콜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치료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응급의료에 대한 추후의 법적 문제는 항공사가 지는 것입니다.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볼 만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 아픈 사람을 돕는 데는 이유가 없겠습니다. 대가를 바라며 돕는 것은 더욱 아니겠지요. 하지만 선의의 도움으로 인해 욕을 먹는 일은 없도록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야야 하겠습니다.
척추전문 나누리서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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