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참법문(小參法門)
-2020.5.27.화엄전. 無比스님-
열 가지 두려움 없음[無畏]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한단락 공부하겠습니다.
일련번호는 96번입니다.
‘보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 있다’
무외(無畏) 두려울 외(畏)자. 두려움 없음이 있다 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참 많습니다.
특히 요즘 같으면 코로나 때문에 아주 두렵죠.
두려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가 않고 상당히 오래 갑니다.
그게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또는 전세계적으로 다 대유행병이 횡행을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 신세를 지고 고생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하고,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매일매일 특집뉴스, 특별뉴스가 벌써 몇 개월째입니까? 5개월째 특별뉴스가 계속됩니다.
특별뉴스가 5개월째나 그렇게 계속되는데 그게 무슨 특별뉴스입니까? 이제 일반뉴스가 되어 버렸어요.
그런 위중한 사태가 일반뉴스가 될 정도로까지 돼버렸으니 참 이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두려워하고 마음이 위축되어 있고 특히 노약자들에게는 아주 더 두려운 마음이 더 많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실능문지일체언설(悉能聞持一切言說)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말을 다 들어 지니고 이와 같이 생각 하느니라.”
모든 말, 일체 언설을 다 듣고, 그것을 지녀가지고 이러한 생각을 한다. 그런 이야기인데
설유중생(設有衆生) 무량무변(無量無邊) 종시방래(從十方來) 이백천대법(以百千大法) 이문어아(而問於我)아어피문(我於彼問)불견미소난가답상(不見微少難可答相)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구경도피대무외안(究竟到彼大無畏岸) 수기소문(隨其所問) 실능수대(悉能酬對) 단기의혹(斷其疑惑) 무유겁약(無有怯弱) 시위보살제일무외(是爲菩薩第一無畏)
“‘설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있어서 시방으로부터 와서 백천 가지 큰 법으로써 내게 묻더라도 나는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나니,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없고 구경에는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대답하여 의심을 끊고 겁약함이 없게 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첫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보살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당당한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시방에서 많은 중생들이 와서 나에게 큰 법, 아주 깊고 무상심심미묘한 법을 나에게 묻더라도 그들에게 답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대답하기 어려운 사실이 없다. 그런 것을 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나는 두려움이 있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득여래관정무애변재(得如來灌頂無礙辯才) 도어일체문자언음(到於一切文字言音) 개시비밀구경피안(開示秘密究竟彼岸)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가 정수리에 물 붓는 걸림 없는 변재를 얻고는 온갖 문자와 말로 비밀을 열어 보이는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관정의 지위에, 여래께서 ‘그대도 부처로서의 역할을 해야 된다. 할 수 있다. 할 자격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관정, 정수리에 물을 붓는 인가고 보증입니다.
그런 인가를 얻게 되면 결국은 걸림 없는 변재를 얻게 되는 거죠. 걸림 없는 변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문자와 말로써 진리의 알기 어려운 비밀한 이치를 열어 보이는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른다.
그래서 어떤 미묘한 이치, 불가사의한 진리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어려움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설유중생(設有衆生) 무량무변(無量無邊) 종시방래(從十方來) 이무량법(以無量法) 이문어아(而問於我) 아어피문(我於彼問) 불견미소난가답상(不見微少難可答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구경도피대무외안(究竟到彼大無畏岸) 수기소문(隨其所問) 실능수대(悉能酬對)단기의혹(斷其疑惑) 무유공구(無有恐懼) 시위보살제이무외(是爲菩薩第二無畏)
“‘설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한량없는 법으로 내게 묻더라도 나는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나니’”
그렇죠.
보살마하살은 진리에 대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정도로 수행이 되어 있고, 깨달음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시방세계에서 다 와서, 한량없는 법으로써 나에게 묻더라도 그들의 물음에 조금도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대답하여 의심을 끊고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둘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참 세상의 지도자, 세상 사람들을 선도하고, 특히 진리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선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치도 막힘이 없어야 되고, 또 어떤 진리의 문제를 들고 와서 이야기 하더라도 두려움이 없어야 됩니다.
여기는 주로 그러한 내용을 이야기 합니다.
진리를 깨달아서 세상을 진리로써 선도하는 보살마하살이 그런 문제에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어서 두려움이 있다면 그건 보살마하살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것이 보살의 둘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지일체법공(知一切法空) 이아이아소(離我離我所) 무작무작자(無作無作者) 무지자(無知者) 무명자(無命者) 무양육자(無養育者) 무보가라(無補伽羅) 이온계처(離蘊界處) 영출제견(永出諸見) 심여허공(心如虛空)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이 공한 줄을 알고 나를 떠나고 나의 것에서 떠났으며, 지음도 없고 짓는 이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고, 생명이라는 것도 없으며, 양육하는 이도 없고 보가라(補伽羅)도 없으며, 오온과 십팔계와 십이처도 떠났으며, 모든 소견을 아주 벗어나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의 경지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락에서의 보살의 깨달음의 경지는 주로 아와 아소를 떠났고, 지음과 짓는 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목숨도 없고, 양육하는 사람도 없고, 보가라 보특가라, 삭삭취(數數趣)라고 하죠. 이것도 어떤 중생의 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온 12처 18계 이런 모든 것을 다 떠났다.
제법공상의 경지에 이르렀다.
오온개공하고 12처 18계도 다 공한 그런 경지, 물론 보살의 경지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특히 이러한 것이 제법개공의 이치 이것은 기본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영원히 모든 소견에서 벗어나고 마음은 허공과 같도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 무슨 생각인고 하면
불견중생(不見衆生) 유미소상(有微少相) 능손뇌아신어의업(能損惱我身語意業) 하이고(何以故)보살(菩薩) 원리아아소고(遠離我我所故) 불견제법(不見諸法) 유소성상(有少性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구경도피대무외안(究竟到彼大無畏岸) 견고용맹(堅固勇猛) 불가저괴(不可沮壞) 시위보살제삼무외(是爲菩薩第三無畏)
“‘중생이 조그만 상도 나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손상할 것이 있음을 보지 않나니’ ”
조그마한 모습도 나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손상할 것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중생이 뭐 보살의 그런 신구의 삼업에 대해서 조금도 다칠 일이 없죠.
“‘왜냐하면 보살은 나와 나의 것을 멀리 떠난 연고며’”
나도 없고 나의 것도 없는 사람에게서 무슨 신구의 삼업이 손상될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텅 비었으면요 나에 대해서 막대기로 때린다 한들, 갖은 욕을 다 퍼붓고 갖은 음모를 다하고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있는 말 없는 말 가지고 다 나를 모함한다 하더라도 이미 그런 문제에 대해서 다 떠났다.
“‘모든 법이 조그만 성품이나 모양이 있음을 보지 않나니’”
어떤 성품도 어떤 모양도 있음을 보지 않는다.
“‘그러한 것을 보지 않음으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며’”
결국 가서는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 생사 문제, 해탈의 문제, 깨달음의 문제 그 어떤 문제도 다 초월한 그런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견고하고 용맹하여 깨뜨리지 못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셋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불력소호(佛力所護) 불력소지(佛力所持) 주불위의(住佛威儀) 소행진실(所行眞實) 무유변역(無有變易)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 힘으로 보호되고 부처님 힘으로 유지되며, 부처님의 위의에 머물러 행하는 바가 진실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고 하니
아불견유소분위의(我不見有少分威儀) 영제중생(令諸衆生) 생가책상(生訶責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어대중중(於大衆中) 안은설법(安隱說法) 시위보살제사무외(是爲菩薩第四無畏)
“‘나는 조그만 행동도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책망할 것을 보게 하지 않으며, 책망할 것을 보게 하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대중 가운데서 편안하게 법을 말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넷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이것은 부처님의 위의에 머물렀다. 소행이 진실하다. 그래서 조금도 변하거나 뒤바뀜이 없다.
소행이 진실하고 그리고 부처님의 위의에 머물렀다.
행동거지가 어떤 중생이 그 사람의 허물을 보고 틈을 보려고 해도 조그마한 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죠.
그리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는 허물이 또한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보살들은 그런 것이 추호도 없습니다.
추호도 없어도요 세상은 워낙 험해서, 없는 것을 만들어서 모함을 하고 내려갈 것도 없고, 올라갈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질투심 때문에 배 아파하는 중생의 어떤 고질병 때문에 그러한 것을 만들어서 좋지 않게 험담을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보살은 그런 것이 전혀 없고, 또 없다면 무슨 마음에 두려워 할 것이 있습니까?
그래서 대중 가운데 법을 설하되 아주 편안한 자세로써 법을 말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넷째 두려움 없음이다 라고 했습니다.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신어의업(身語意業) 개실청정(皆悉淸淨) 선백유화(鮮白柔和) 원리중악(遠離衆惡)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청정하고 곱고 깨끗하고 부드러워 모든 나쁜 것을 멀리 여의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이건 이제 신구의 삼업이 아주 청정하고 곱고 깨끗하고 부드럽고 모든 나쁜 것을 멀리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아불자견신어의업(我不自見身語意業) 이유소분(而有少分) 가가책상(可訶責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능령중생(能令衆生) 주어불법(住於佛法) 시위보살제오무외(是爲菩薩第五無畏)
“‘나는 스스로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이 조금도 책망받을 만한 것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그러한 것을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능히 중생들을 부처님 법에 머물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다섯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경허스님에 대해서 한국불교를 크게 중흥시킨 분이라고 그렇게 하죠. 그런데 그 분의 상수제자인 만공스님은 스스로 경허어록에다가 경허스님을 평하기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과어불(善過於佛)이다’ 아주 좋은 입장으로, 불교계에 보탬이 되는 입장으로는 경허스님이 부처님을 지나간다 그랬어요. 선과어불, 선한 입장으로 좋은 입장으로는 부처님을 지나간다. 부처님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만치 경허스님은 한국불교를 되살리고 한국불교를 중흥시키는데 가장 큰 공훈이 있고 큰 공덕이 있습니다.
또 뒷말이 그렇습니다.
‘선과어불(善過於佛)이지만 악과어호(惡過於虎)라’
나쁜 입장으로는 호랑이를 지나간다. 그렇습니다.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라는 뜻인데, 악한 입장으로는 호랑이를 더 지나간다.
그러니까 경허스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좋은 점과 나쁜 면 이것을 아주 상수제자(常隨弟子)로서 냉정하게 표현한 명언입니다.
아주 명언이예요.
경허스님께서 당신이 발심하시고 깨닫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하는 좋은 점이 있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불교가 크게 흥하기는 했지만, 또 그분의 부정적인 입장을 우리가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상수제자로서는 낱낱이 스승의 긍정적인 면도 보고 부정적인 면도 다 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면만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부정적인 입장에 있어서는 악과어호(惡過於虎)라.
부정적인 입장, 안좋은 입장, 좋지 아니한 영향을 끼친 입장으로는 호랑이 보다 더 지나간다.
그런 아주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게 경허스님 어록에 뒤에 만공스님께서 평한 글이 있습니다.
있는 말을 제가 하는 거죠.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지어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물론 사람으로서는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할 수가 없어요.
완벽할 수가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남의 스승이 되고 남을 선도하는 자리에 있다면 조그마한 허물도 있어서는 안되고, 그 허물이 없어야 되는 것은 사실인데, 그나마 또 그렇게 크게 불교를 펼칠 수 있는 법력이 있다고 하는 것, 그것만 우리가 본다 하더라도 좋은 일이죠.
그래서 한마디로 잘라서 평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런 면들도 또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좋은 점만 보지말고 또 안좋은 점만도 보지 말고, 좋은 점도 있고 안좋은 점도 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잘 이해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하는 것입니다.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금강역사(金剛力士) 천룡야차(天龍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제석범왕(帝釋梵王) 사천왕등(四天王等) 상수시위(常隨侍衛) 일체여래(一切如來) 호념불사(護念不捨) 보사마하살(菩薩摩訶薩)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을 금강역사와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제석천과 범왕과 사천왕들이 항상 시위하고 모든 여래께서 보호하여 버리지 않거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쯤 되면요 금강역사 천신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제석천 심지어 모든 여래께서도 보호하고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까지 된 보살마하살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큰 빽이 있는데 무슨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세상의 빽치고는 참 이보다 더 훌륭한 빽이 없습니다.
금강역사 천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그런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천신들까지도 그렇고, 나아가서 일체 여래까지도 호렴하고 잘 보호하고 생각해서 버리지 않는다.
참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런 정도로 큰 빽을 가지신 보살입니다.
아불견유중마외도(我不見有衆魔外道) 유견중생(有見衆生)능래장아행보살도(能來障我行菩薩道) 소분지상(少分之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구경도피대무외안(究竟到彼大無畏岸) 발환희심(發歡喜心) 행보살행(行菩薩行) 시위보살제육무외(是爲菩薩第六無畏)
“‘나는 여러 마(魔)와 외도와 다른 소견 가진 중생들이 나의 보살의 도를 행함을 장애할 수 있는 조그만 모양도 보지 않으며, 그러한 것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는 저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러 환희한 마음을 내어 보살의 행을 행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여섯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그 정도 빽이 있는 보살마하살인데, 그런 빽이 있을 정도로 본인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마구니와 외도들, 그리고 딴 소견을 가진 다른 이교도 타종교 그런 이들이 나의 보살도 행함을 장애할 수 있겠습니까?
보살도(菩薩道) 행하는 것을 장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이득성취제일념근(已得成就第一念根) 심무망실(心無忘失) 불소열가(佛所悅可)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제일가는 생각하는 근본을 성취하여 마음에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부처님이 좋아하시거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염근, 제일염근(第一念根)이라고 해서 제일가는 생각하는 근본을 성취해서, 마음에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부처님이 좋아하신다.
그럴 경우 이런 생각을 하신다는 겁니다.
여래소설성보시도문자구법(如來所說成菩提道文字句法) 아불어중(我不於中)견유소분망실지상(見有少分忘失之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수지일체여래정법(受持一切如來正法) 행보살행(行菩薩行) 시위보살제칠무외(是爲菩薩第七無畏)
“‘여래께서 말씀하신 보리도(菩提道)를 이루는 문자와 구절의 법을 나는 그 가운데에 조금도 잊어버리는 모양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그러한 것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모든 여래의 바른 법을 받들어 지니어 보살의 행을 행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일곱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참 보살은요, 보살마하살은 정말 가장 이상적인 인격자를 그렸을 때 우리 불교에서는 보살마하살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보다도 부처님의 경지를 다 마스터하고 중생을 위해서 다시 보살의 경지에 머물러서 중생을 교화성숙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꿈이고 불교의 꿈이고 모든 불자의 꿈이고 모든 선지식의 꿈입니다.
그러한 인품이 되는 것, 그래서 세상사람들을 전부 보살로 만들자고 하는 것이 불교의 꿈이다. 이런 말을 제가 하는 거죠.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지혜방편(智慧方便) 실이통달(悉已通達) 보살제력(菩薩諸力) 개득구경(皆得究竟) 상근교화일체중생(常勤敎化一切衆生) 항이원심(恒以願心) 계불보리(繫佛菩提) 이위비민중생고(而爲悲愍衆生故) 성취중생고(成就衆生故) 어번뇌탁세(於煩惱濁世) 시현수생(示現受生) 종족존귀(種族尊貴) 권속원만(眷屬圓滿) 소욕종심(所欲從心) 환오쾌락(歡娛快樂) 이작시념(而作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지혜와 방편을 모두 이미 통달하여 보살의 모든 힘을 성취[究竟〕하였고, 항상 일체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하며, 항상 서원하는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음에 매어 두었지마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중생을 성취시키려 하는 까닭에 번뇌가 혼탁한 세상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되 종족과 가문이 존귀하고 권속이 원만하여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어 기뻐하고 즐기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이것도 또 아주 참 좋은 내용인데요.
보살이 지혜와 방편을 이미 모두 통달하고 보살의 모든 힘을 다 성취하였고 그래서 항상 일체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한다. 그리고 서원하는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음에 매어 두고 있어요.
그런데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중생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까닭에 번뇌가 혼탁한 세상에 나타내 보인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할 일이고 보살마하살이 할 일입니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중생을 성취시키려는 까닭에 번뇌가 혼탁한 세상에 태어남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우정 태어나는 거예요.
원력수생(願力受生)입니다. 원력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게 보살의 할 일이예요.
어차피 우리는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윤회하고, 윤회를 해야 되고, 윤회하면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숙시키고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보살의 의무입니다. 보살이 하는 일입니다.보살의 삶입니다.
그런데 종족과 가문이 존귀하고 권속이 원만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뜻대로 하게 되면 그건 더욱 좋죠.
가난한 집안 천한 집안 또 사회적으로 크게 알아주지도 않는 입장이면 보살마하살이 된다 하더라도 훨씬 그것이 힘이 되질 않습니다. 힘을 받쳐주지가 않습니다.
이왕이면 아주 좋은 가문에 좋은 머리, 건강하고, 세상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학교 그런 경력, 그런 모든 것들을 다 갖춘 상태에서, 거기서 더하여 보살행을 열심히 하고 중생을 교화하고 정말 자나깨나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보살행을 한다면 그 영향력은 훨씬 큽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으면 그 일을 하기가 훨씬 쉽다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일을 하면 일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그 자리가 아닌 입장에서 자기 신분이 그렇게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입장이 아닌 상태에서, 평범한 자리에서 아등바등 보살행을 하고 남을 가르치려고 하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그 효과가 반감합니다. 반도 안됩니다.
곤하게 힘은 들지만 그 효과는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이런 말이 있는 거예요.
종족과 가문이 존귀하고 권속이 원만하여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어 기뻐하고 즐기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아수여차권속취회(我雖與此眷屬聚會) 불견소상(不見少相) 이가탐착(而可貪着) 폐아수행선정해탈(廢我修行禪定解脫) 급제삼매(及諸三昧)총지변재(總持辯才)보살도법(菩薩道法)
“‘내가 비록 이 권속들과 모여 있지마는 조금이라도 탐착하여 내가 수행하는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와 총지와 변재와 보살도의 법을 그만두는 것을 보지 않노라.’”
세상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합시다. 그렇더라도 조금도 그 갖춘 것에 대해서 탐착하여 내가 수행하는 선정 해탈 삼매 총지 변재 또 보살도의 법 이것을 그만둘 수는 없는 거죠.
그것을 그만두는 것을 보지 않는다.
참 정말 자나깨나 바라는 바고 꿈꾸는 바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우러러 보고 찬탄하고 그렇게 닮아가려고 하는 그런 조건들을,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조건들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는 자기가 갖춘 것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탐착하거나 그걸 가지고 생색을 내거나 그걸 가지고 세속말로 뻐기거나 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고, 그리고 자기가 수행하는 선정, 해탈, 삼매 총지 변재 보살도의 법 이런 것을 조금도 그만두지 않고 그대로 그것을 위해서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이고(何以故)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어일체법(於一切法) 이득자재(已得自在) 도어피안(到於彼岸) 수보살행(修菩薩行) 서부단절(誓不斷絶) 불견세간(不見世間) 유일경계(有一境界) 이능혹란보살도자(而能惑亂菩薩道者)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구경도피대무외안( 究竟到彼大無畏岸) 이대원력(以大願力) 어일체세계(於一切世界) 시현수생(示現受生) 시위보살제팔무외(是爲菩薩第八無畏)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이미 자유자재하여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보살행을 닦되 서원을 끊지 않아서 세간에서 한 가지 경계도 보살의 도를 의혹케 하거나 어지럽게 함을 보지 않나니 그러한 것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고 큰 서원의 힘으로 모든 세계에 태어남을 보이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여덟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 다시 모든 세계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인다.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꿈꾸고 바라는 바를 다 갖춘 입장에서 그러면서 어떤 신분의 사람, 어떤 수준의 사람들에게도 다 가서 함께 하고 그들을 자비와 지혜로써 가르치고 어루만지면서 하는 것, 그것이 세계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는 거죠.
큰 서원의 힘으로 모든 세계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인다.
어떤 신분의 사람에게도 가서 손으로 어루만지고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정신적으로 어떤 이치를 깨우쳐 주고 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참 이렇게 되면 그 포교나 교화가 훨씬 효과가 클 것입니다.
몇 배로 클 거예요.
아니할 말로 제가 예를 들어서 아주 좋은 집안에 태어났고 대대로 신분이 아주 뛰어나고 경제적으로 어디에도 비교할 바가 없고 세속적인 학력이라든지 그 두뇌라든지 여러 가지 갖출 것, 의학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을 다 갖추었고 학위도 몇 개씩이나 되고 그런 상태에서 세속적으로 출세하려고 하지 않고 보살행으로 돌아와서 어떤 경우의 사람들도 다 일일이 정말 보살의 마음으로 보살피고 불교의 높은 가르침을 가지고 설법을 하고 교화를 한다 하면 그 효과가 아마 백 배 천 배는 더 나을 것입니다.
세속적인 배경이라고 하는 게 그게 전혀 필요치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또 그것밖에 안보니까 ‘아 저런 사람이 그러한 일을 한다’고 이렇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참 부러운 그리고 정말 우리 불자들이 꿈꾸고 있는 내용입니다.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항불망실살바야심(恒不忘失薩婆若心) 승어대승(乘於大乘) 행보살행(行菩薩行) 이일체지대심세력(以一切智大心勢力) 시현일체성문독각(示現一切聲聞獨覺) 적정위의(寂靜威儀)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항상 일체 지혜의 마음을 잃지 않으며, 대승에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일체 지혜의 큰 마음 세력으로 모든 성문과 독각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 보이고 이와 같이 생각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일체 지혜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대승에 의지하여 보살행을 행하고 일체 지혜의 큰 마음의 세력으로 모든 성문과 독각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 보인다.
고요한 위의 적정한 위의는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이죠. 그리고는 어떠한 생각을 하느냐?
아불자견당어이승(我不自見當於二乘) 이취출리소분지상(而取出離少分之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도피무상대무외안(到彼無上大無畏岸) 보능시현일체승도(普能示現一切乘道) 구경만족평등대승(究竟滿足平等大乘) 시위보살제구무외(是爲菩薩第九無畏)
“‘나는 스스로 마땅히 이승(二乘)에서 벗어날 만한 조그만 모양도 취함을 보지 않으며, 그러한 것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저 위없고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러 모든 승(乘)의 길을 널리 나타내 보여서 구경에 평등한 대승을 만족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아홉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어떤 이승(二乘)의 경지를 다 소유하고 있으면서 또 그 이승의 모습을 조금도 취함을 보지 않는다.
벗어날 만한 조그만 모양도 취함을 보지 않는다.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문제 대해서 성문 연각을 상대하더라도 거기에 대하여 조금도 두려워 하거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불자(佛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성취일체제백정법(成就一切諸白淨法)구족선근(具足善根) 원만신통(圓滿神通) 구경주어제불보리(究竟住於諸佛菩提) 만족일체제보살행(滿足一切諸菩薩行) 어제불소(於諸佛所) 수일체지관정지기(受一切智灌頂之記) 이상화중생(而常化衆生) 행보살도(行菩薩道) 작여시념(作如是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일체 모든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을 성취하여 선근을 구족하고 신통을 원만히 하였으며, 구경에 모든 부처님의 보리에 머물러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만족하였고,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일체 지혜와 정수리에 물 붓는 수기를 받고도 항상 중생을 교화하고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느니라.”
늘 나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도 항상 중생을 교화하고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죠.
제대로 사람을 건지려면, 자기는 큰 배가 필요하면 큰 배를 장만하고, 작은 보트를 필요할 때는 작은 보트를 장만하고, 아니면 밧줄이나 아니면 잘하는 수영의 능력이나 이러한 것을 상황에 따라서 건질 수 있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가지고 탁 건져야죠.
자기가 물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그런 상태라면 남을 어떻게 건질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건지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줄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참 어렵습니다.
그러한 내용입니다.
아불자견유일중생(我不自見有一衆生) 응가성숙(應可成熟)이불능현제불자재(而不能現諸佛自在) 이성숙상(而成熟相) 이불견고(以不見故) 심득무외(心得無畏) 구경도피대무외안(究竟到彼大無畏岸) 부단보살행(不斷菩薩行) 불사보살원(不捨菩薩願) 수소응화일체중생(隨所應化一切衆生) 현불경계(現佛境界) 이화도지(而化度之) 시위보살제십무외(是爲菩薩第十無畏)
“'나는 스스로 한 중생이라도 마땅히 성숙시켜야 하나니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심을 나타내지 아니함으로 해서 성숙시키는 것을 스스로 보지 않으며, 그러한 것을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러서 보살의 행을 끊지 않고 보살의 서원을 버리지 않으며, 교화할 만한 모든 중생을 따라서 부처님의 경계를 나타내어 교화하여 제도하리라.'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열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두고 두고 읽고 또 두고 두고 듣고,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 이것이 참으로 필요한 내용입니다.
*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크게 두려움 없음을 얻으며 또한 보살의 두려움 없음을 버리지 않느니라.”
보통 우리들 중생이 두려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여기서 언급한 것이 아니고, 보살의 차원에서 그러한 차원과 유사한 문제들, 그것 때문에 두려워 한다거나 하는 그런 데 대해서 두려움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고, 이것이 우리들 일상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참으로 보살의 경지를 우리가 이렇게 넘겨다 볼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이라서, 읽으면 읽을수록 환희심이 나고 부러운 마음도 나고 신심도 나는 화엄경의 말씀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_()()()_
_()()()_
_()()()_
_()()()_
_()()()_
_()()()_
_()()()_
감사합니다
_()()()_
_()()()_
고맙습니다 _()()()_
ㅡ華嚴經 離世間品 等法界無量廻向ㅡ
*보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 있다.
+一切를 다 통달하여 아는 智慧로써 一切言說을 다 듣고 지니어 진리에 당당하고,
+灌頂無礙辯才를 얻어 어떤 미묘한 이치나 불가사의한 말씀에도 어려움이 없으며,
+모든 法이 空한 줄알고 모든 소견에서 벗어나 마음이 허공과 같아 어떤 문제도 다 초월하였고,
+부처님 힘으로 보호되고 유지되며 위의에 머물러 행하는 바가 진실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三業이 모두 청정하고 곱고 깨끗하고 부드러워 모든 나쁜 것을 멀리 여의어 능히 중생들을 부처님 법에 머물게 하며,
+금강역사,천신,용,야차,건달바,아수라,제석천,범왕,사천왕들이 항상 시위하고 모든 여래께서 보호하고,
+이미 제일가는 생각하는 근본을 성취하여 마음에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부처님이 좋아하시고,
+지혜와 방편을 이미 통달하여 보살의 모든 힘을 성취하였고, 일체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하며, 서원하는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음에 매어 두었고,
+白淨法을 성취하여 선근을 구족하고 신통을 원만히 하였으며, 구경에 모든 부처님의 보리에 머물러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만족하였고,
+일체 지혜의 마음을 잃지 않으며, 대승에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이러한 두려움 없는 힘으로 당당하게 중생 구제를 위해 항상 보살도를 하신다.
고맙습니다.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_()()()_
고맙습니다_()()()_
_()()()_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