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은 오미자의 땅
대구에서 가깝고 벌재에서 이화령 구간 44km는 자가용 차량 이용이 가능한 구간이라
초저녁에 문경읍으로 가서 생수 작은것 6개.음료수2개.우유2.자두 6개를 사서 배낭에 넣고 (물,음료수 4리터)
차안에 이불 깔고 일찍 잠을 청한다.
새벽 3시쯤 문경 택시로 벌재에 도착을 하니 04시 무렵이다
택시 기사분께 오후 7시 무렵에 이화령에 도착하니 와줄것을 부탁하고 산행옷 갈아 입고 04시에 황장산으로 오른다.
도심에는 열대야가 심하지만 산정으로는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는 좋으나
짙은 안개로 한치 앞도 안보인다.
날이 뿌옇게 밝아올 무렵의 황장산 방향의 암릉길
들어오지 마라며 펜스를 한건지 나가지 마라며 펜스를 설치한건지 알길 없지만
펜스를 지나
황장산 정상
이곳에서 일출을 보려는 당초의 계획은 사라지고
오늘도 얼마나 뜨거운 하루가 될지
뜨거운 하루가 되기전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움직인다.
황장산 하산길에 그 많던 자일은 어디가고 철계단으로 중무장 하고있어 좀 더 편안하게 진행한다.
지나온 황장산 자락과 안생달 마을
작은 차갓재에도 국립공원 안이라며 들어오지마란 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잣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니
단양과 문경 사람들이 넘나들던 차갓재의 비석이 외롭게 서있다.
백두대간 남한구간 절반을 알리는 비석을 지나니 이제 대간길도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시작을 알린다.
월악의 최고봉 대미산(1145) 이지만 찾는이라고 대간꾼들 뿐이다.
뭐하나 딱히 내세울것도 없는 대미산 대간길과 운달 지맥길 등곡지맥의 분기점이다.
아침에 신선한 우유 하나 마시고 잠시 등로가 좋아 속도를 내보지만 후덥지근한 날씨에 얼마 못가서
접시위에 해삼 퍼지듯 퍼지고 만다. 생수 뚜껑하나 따면 그대로 입으로 다 들어가니 물먹는 하마가 따로 없고
눈물샘에 물보충 갈까하였지만 하늘재에서 보충하기로 하고
꼭두바위봉 지나며 멀리 하늘재와 포암산이 지척이지만
벌재에서 하늘재까지 28km 오르막 내리막길의 연속이라 속도가 안나는 곳이다.
등로마다 온통 독사들이 득실거려 이곳까지 오는동안 각각 다른종류의 독사 5마리를 보고나니
속도고 뭐고 조망도 모르겠고 땅바닥만 뚫어지게 보고 지난다.
마골치 가기전의 문경 관음리와 단양 음지말 사람들이 넘나들던 성황당 고갯 마루
작은돌이 많은데 작은돌은 용도는?
옛날에 고개를 넘나들때 뭇짐승들의 피해가 많아 급히 돌을 찾으면 없는곳이 많아 평소에 고개를 지날때마다 하나, 둘
돌을들고 고개를 오르거나 내려갔다고 한다.
짐승들로 부터 자신을 방어했던 용도지만 지금은 돌하나 언져놓고 로또 1등 당첨이나 빌뿐 ^^
가지고 온 식수는 거의 거덜나고 500ml 반병 남았다.
이곳에 앉아 잠시 목마른 갈증을 달래려고 운기조식을 해봐도 ...그래도 목마르니 빨리 하늘재에 가야겠다.
만수봉(포암산) 2,1 하늘재 4
식수는 반병 남은 상태라
그늘하나 없는 포함산
완전 후라이판의 계란 익는듯 뜨거워 못있겠다.
사진 한장 담고 얼른 그늘속으로 내려간다.
포함산에서 본 월악 영봉
월악산은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러졌고 백제와 고구려 신라순으로 차례로 주인이 바뀌어 온산이다.
지형적인 요새 덕분에 백제 400년. 고구려 70년. 그리고 신라가 390년을 주인노릇을 했다고 한다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삼한의 주인이 되기 때문일까 중원(충주)은 삼국이 자주 충돌한 전장이고 조선 임진란때는
신립장군이 주흘산의 험준한 지형적인 고지를 포기하고 남한강 탄금대에서 배수의진을 친곳으로 유명한곳이다.
문경 관음리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좌측은 문경의 관음리 우측은 충주의 미륵리
충주의 미륵리 미륵은 후세에 오는 보살이고
문경의 관음리는 현재의 부처
올라오는 등산객분께 부탁 드려서 철계단에 자리잡고 다소곳하게 한장 담아 본다.
내려가는길에 하늘재에서 만수봉으로 가는 일반 등산객을 만나는데 그중에 가장 늦게 올라오시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분이 막걸리를 드셨는지 길가에 앉아 더이상 못올라가겠다며 쉬고 계신다.
몸이 어떻냐 물어보니 호흡도 가쁘고 어지럼증 까지 있다고 해서
더이상 올라가면 큰사고 나니 여기서 잠시 쉬시다가 하늘재로 내려가라고 전하고, 혹시 몰라 아저씨 옆에 잠시 앉아 본다.
몇마디 나누다가 몸이 괜찮으신것 같아 하산을 하시라고 한마디 하고 하늘재로 내려온다.
일단 한 바가지 마시고 오르거나 내리는 산객이 없으니
등산복이 곧 수영복이고 수영복이 곧 등산복이니 신발만 옆에 벗어두고
고무통 들고 머리부터 쭉 부어 본다.
으따 시원하다.땀에 찌든 옷 세탁도 좀하고 잠시 휴식겸 식수도 다시 보충을 하니 4리더 든든하다.
석성산성
삼국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신라의 성
이곳 하늘재는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했던곳이다.
하늘재(계립령) 도착
벌재에서 이곳까지 28km 7시간 30분 잡고 진행 했지만 샘터에서 샤워하고 빨래 하느라 30분 소모하고 8시간 걸려 도착
하늘재는 문경과 충주의 경계이며 해발552m이다
신라시대 제 8대왕 아달라왕 3년 백두대간 너머 북진을 위해 이 길을 개척했으며,
고구려 온달과 후삼국 궁예도 이 길을 밟았다
신라가 개척했으되,각기 다른 군사적 야심을 가진 이가 하늘재를 눈독 들인곳이다.낮고 짧은 곳이지만 이 고개가 품은
역사는 길고 높다.삼국사기에 아달라왕 3년(서기 156년) 4월에 계립령을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계립령은 하늘재의 다른이름이다.하늘재는 올해로1860년된 그당시의 계획도로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하고 있는 재는 대간길의 만항재 1340m 이다
하지만 그모든것도 하늘아래 뫼 이기에 하늘재가 가장 높다는 뜻이라 ...
저 넘어 걸어걸어 가면 새 세상의 하늘이 열릴 것만 같은 하늘재는 조선초 문경새재가 열리기 전까지
영남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서울로 가는 주요 길로 문헌에 기록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다.
미륵리로 가는 임도
삼국시대때 만들어진 군사도로
좋은세상으로 가길 원했던 그길이며 이길로 불교문화가 전파 되고 충청과 경상이 서로 만나던 그길이다 .
물만 주야장천 마셔 댓더니 헌기증 날판이다.
지금 필요한건 당분과 염분이라 산장 주인분께 파전 하나 시키고
켄 음료수 4개 달라고 해서 한꺼번에 뚜껑 따놓고 입으로 들이 부어본다.
파전 나올때 까지 평상마룽에 누워 젖은 옷을 말리니 잠은 솔솔 오고
잠시 누워서 기다리니 큼지막한 파전이 접시에 곱게 올려져 간장과 함께 나온다.
젓가락으로 파전 두어점 간장에 콕찍어 먹어보니 목구멍으로 쉽게 넘어가지 안아
옆에 있던 등산객분께 드리고 주인 아주머니께 냉장고에 얼음 있으면 좀 달라고 해서 비닐 봉투에 넣고
켄음료 3개, 생수 한병을 사서 얼음봉투에 담아 일어선다. 이곳에서 물종류 2,5리터 보충겸 마심
지나온 포암산
하늘재에서 마패봉 지나 3관문까지 10km쯤 되니
오후 3시쯤 도착할것 같다
간간이 불어주는 바람이 고마울뿐이고 등산객 하나없는 적막강산길이 이어진다.
요런곳은 바람이 지나기 마련
억지로 기어 올라 바람을 느낀다.
에어컨 바람이 따로 없네
탄항산
더워서 페스
동암문
조선시대때 허구헌날 부역 한다고 사람 불러내어 주흘산성 만들어 놓고
정작 전쟁이 일어났을때는 신립장군이 주흘산과 조령산의 험준한 지형적인 고지를 포기하고
이곳에 허수아비만 남겨두고 남한강 탄금대에서 배수의진을 친곳으로 유명한곳이다.
파죽지세로 몰려오던 일본병사들이 이곳 주흘산 아래 도착해서 보니 과연 천연의 요새라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산정으로 까마귀란 놈들이 하는짓을 보고
일본군 장군:야 몇놈 데리고 주흘산으로 올라가봐
부하:알겠으므니다
일본군 병사가 주흘산으로 몰래 올라보니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에 병사들 옷만 입혀 놓은지라
까마귀란놈들이 그 허수아비가 마음에 안들었던지 허수아비 머리 위에 앉아서 야단이다.
부하가 산을 내려와 보고를 한다. "허수아비에 까마귀만 가득하므니다.
결국 신립은 이곳을 버리고 탄금에서 배수진을 쳤지만...조총을 앞세운 일본군에 의해서 몰살 당한다.
주흘 산성
조선 영조때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 놓고 잠시 쉬었다는 곳인데...
문경 새재를 지나 가면서 봉우리가 마음에 들어서 올라오신건지
아무튼 올라오는길도 내려가는길도 마음에 안드는곳 이지만 조망은 좋다.
마패봉에서 본 조령산
주흘산 방향
멀리 지나온 포암산이 보이고
마패봉에서 이어지는 신선지맥길의 신선봉도 지척이고
사진 몇장 찍고나니 뜨거워서 머리 한움큼은 빠진듯
하늘재에서 이곳까지 오는동안 샘터에서 보충한 4리터의 물은 모두 배속으로 들어 가니 움직일때 마다 배속에서
출렁 거린다.
제3관문
벌재에서 38km지점 이곳까지 오는동안 10리터 물 마심
날씨는 덥고 파김치가 되어 문경 새재 3관문에 오후 3시 무렵 도착해서
매점에 들러 라면 하나 시키면서 콜라하나 탄산음료 하나 털어 넣고,하늘재에서 가지고 온 얼음은 모두 녹았지만
시원함은 그대로다 불난 발바닥을 비닐봉투속에 넣어 발바닥 식혀보니 좀 살것 같다.
발을 식히며 라면을 먹어 보지만 두 젓가락 먹고 남긴다.
그리고 물과 음료수(탄산수.포카리.물 3리터) 아이스크림을 사서 일어서니 3시30분 무렵
주인 내외분이 지금 가면 늦다고 가지 말라고 권하지만 안가면 안된다고 ...
조령산으로 가는길 1키로 지났을 무렵 남학생 한명과 남여 부부가 새재 방향으로 넘어 오신다
오늘 이화령에서 꼬마들 30명 어른 30명 합 60명이 출발 했다고 한다.
조심해서 가라고 권하고 신선 암봉 인근에 도착했을 무렵
꼬마 여학생들이 시끌 벅적하게 나타나는데
"니네들 대단하다" 배낭에 먹을거 라도 있으면 하나씩 주고 싶다만 "어디서 몇시에 출발했는데...
-"새벽 4시에 이화령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3관문 아직 멀었나요 ..."
오후 4시30분 무렵이니 이곳까지 12시간을 뜨거운 산에서 버틴듯... 하지만 얼굴에 지친 기색하나 없이 모두가 밝은 표정이다
산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는데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꼬마 산꾼들이 너무 대견해서 안아 주고 싶다만
-"아저씨 타잔 같아요! 3관문까지 얼마나 가야되요"
내 발걸음으로 한시간이지만... 아직 2시간은 더가야 한다고 ㅎㅎㅎ 어른들은 어디 계시고
-"아직 뒤에 많아요"
"백두대간 잘 이어가고 힘들어도 꼭 대간 마쳐"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지난다.
한참 가다보니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애가 엄마 등산화 신고
배낭은 없이 맨몸으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오는데
너무 귀여워 마음속으로 요것 봐라 싶어" 아가씨 힘 안들어"하니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앙징 맞은 목소리로 "아저씨 우리 알바 했어요"한다
알바라는 말에 웃음이 나온다.
"아이고 그랬쪄요"너무 이뻐서 그러는데 사진 한장 찍어도 되니...
-"안되요 "하며 큰 모자를 더욱더 눌러 쓴다.
"누가 알바를 시켰쪄요"
-"우리 대장님이 3시간이나 알바 시켰어요"
그러면서 앞을 지나가는데 조령의 험한 산길을 사뿐사뿐 지나가는 꼬마의 발걸음 "그래 니가 바로 진정한 고수다"
사실 조령의 암릉 구간은 어른들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암릉구간인데
특히 신선암봉 인근 밧줄구간을 오르거나 내리거나 초등학교 1학년의 여자애가 지나기에는 쉬운 길이 아니다
한참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진짜 고수가 아닐까
-"아저씨 이런 발줄 몇개나 남았어요"
"아직 20개 정도 남았는데 지나온것 보다는 다 쉬운거야"
학생들은 저녁에 3관문 인근 산장에서 자고 일요일 하늘재까지 이어간다고 한다.
앞에 학생들은 중학교 1학년생들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산꾼의 냄새가 물씬나는것 같고
밧줄 구간을 먼져 내려와 부모님들을 도와주는것을 보고 대단하고 대견하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것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을텐데 각자 자기 역활을 충분히 하며 대간길을 걷는것 같다
학생들과 잠시 스치는 인연이 되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많은걸 느꼈다
백두대간과 산자분수령
그걸 알고 모르고 중요하지 않다
이길을 걸으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배려하거나 양보하는 마음
그리고 휴대폰 게임대신 부모님과 함께 걷는다는게 훨신 더 중요하니...
꼬마 대간꾼들이 아무런 사고없이 백두대간 끝까지 가길 바라며
나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조령으로 향한다.
신선암봉에서 본 조령
신선봉에서 본 대간길과 부봉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따가운 햇살과 바람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가을햇살과 바람을 느껴보니 신선이 따로 없다
당초 계획은 오늘 여기서 일몰을 볼까 했지만 시간이 조금 남아 진행한다.
조령산 전망 바위에서 본 대간길
앞의 바위산은 신선 암봉
다소 위험한 구간은 나무 테크 작업을 하려고 헬기로 몇몇곳에 공사 자제를 가져다 놓았다.
조령산
이제 하산길 2키로 정도 남은듯
조령산 하산길에 전나무 사이로 나무 계단이 잘 만들어 져있고 운치가 있어 보인다.
가지고 온 물은 거의다 마셨고
조령 샘터
늦은 시간이라 올라올 사람도 내려올 사람도 없는 해질무렵
산신께 두손모아 "발가벗고 씻더라도 노여워 하지 마시라"며 합장과 함께 남겨온 자두 2개를 산신께 드리려고 샘터 위에
두고 홀딱벗고 땀을 씻어 내린다. 아!~살것 같다.
이화령 가는길은 편안한 산길이 이어 지지만 이곳은 1950년 7월 13일부터 17일까지 북한군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북한군은 이곳을 통해서 점촌 상주로 진격 대구로 향한다.
이화령 전투는 한국군이 백두대간 일대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 국군 제6사단 제2연대가 문경 북방의 이화령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의 침공을 지연시킨 방어전투이다.
그리고 이화령 548m 고개길은 1925년 일제 감정기때 삽날로 의해서 끊어진 곳이고
저녁 7시무렵 이화령
일제에 의해 1925년에 끊어진 이화령에는 다시 복원을 해두었다.
이화령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분도 올라오시고 인증 한장 담고 벌재에서 이곳까지 44km산길 15시간이나 걸렸다
백두대간
그 아름다운 산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오늘은 뜻하지 않게 꼬마 대간꾼들을 만나보고
다음 대간길에는 누구를 또 만나게 될지
평생 잊지못할 산꾼들을 산에서 만나는 동안
많은걸 느끼고 배우게 된다.
조령에서 못본 일출 이화령에서 보게되며
다음주에 지나게 될 대간길이 저녁 일몰과 함께 대조가 된다.
이제 집으로 갈일만 남았지만 이번 벌재-이화령 구간과
다음구간 이화령-속리산 아래 밤티재 대간길 속도가 안나는 구간이라 체력소모가 상당히 심하다.
오늘 마셨던 물은 모두 14리터 다음구간은 물보충 할곳도 없는데...
이제 시원한 날들이 오겠지만
날씨가 워낙 가물어서 물 찾는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어려운 구간은 끝나고 쉬운 구간만 이어지는데
지부장님 10월에 꼭 완주 하시기 바랍니다.
벌금 아시죠
타잔에 한표.
저도 첨 뵜을때 저 애기들이랑
생각이 같았어요.
우와~~타잔이다....ㅎㅎㅎ
더운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언제쯤이면 로하스님의 아름다운 사진을 볼 수 있을까요
깊어가는 가을날 단풍이 온산하를 덮을때 함산 할 시간 만들어 보면...
글 감사드리구요
역쉬 방장님 ,,,,, 그래도 잘 드시면서 다니십시요
물무게로 다른건 빼고 다니다 보니 배는 고프지만 그래도 조금더 일찍 마치니 좋습니다.
글 감사드리구요 정기산행때 꼭 한번 오십시요
13차 대간길에도 대야산 지나며 많은 학생들이 진행하는 모습 보았었는데 무덥지만 방학을 이용해서 대간길 체험에 참여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더군요
방장님도 더위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글 감사드리구요
10월에 대간 마치고 정맥길에서 한구간 같이 걸음할께요
물려줄 후계자들 만나니 뿌듯하기도하고
은퇴날짜도 빠르게 다가온다는 묘한기분이
교차되는 구간 이였군요.
후배들이 정도를 배우며 따라올수 있는
성숙된 자세도 한번쯤 짚고 갑니다.
산행하는 어린애들 만나면 왜그리 귀여운지.
더운날 산행시 제일 부러운거...
남정내들 웃빵까고 씻을수 있는거~ㅎ 다행히 전 물을 많이 안마시는편이라~방장님 산행기 보니 어깨가 빠질듯~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