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경은 아주 특별한 변신을 감행했다. 그동안의 신세경은 항상 어딘가 얼굴에 힘을 주고 편안하지 못한 인상을 주었다. 40화에서 보면 준혁의 친구들이 2층에서 놀다가, 세경을 보자 ‘미소천사 신세경. 청순미녀 신세경’이라 구호를 외치며 열렬히 환호한다. 그러자 세경은 ‘이제 그런 거 안했으면 좋겠는데’라고 작게 말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세경의 팬들이 외쳐대자 결국 화를 낸다. “하지 마시라니까요!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세요! 창피하잖아요.”라고 말이다.
세경이 청소하는 방으로 온 준혁은 “누나도 참. 애들 장난 친건데 좀 받아주지”라는 식으로 말한다. “별것도 아닌데 너무 정색하신다고요. 항상 너무 심각한 게 문제죠. 누난”라고 충고를 던진다.
삼겹살 파티를 한다고 오라는 줄리엔의 전화를 받은 세경은 잠시 망설이지만, 순간 현경이 해리를 데리고 나가면서 갈 수 있게 된다. 근데 하필이면, 그 순간 중요한 서류를 잊고 나간 지훈이 전화를 해서 부탁하는 통에 할 수 없이 USB메모리를 들고 병원까지 뛰어나간다.
세경이 건넨 메모리를 받은 지훈은 ‘가지 말고 좀만 기다려’라고 말한 뒤, 옷을 갈아입고 와서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한다. 세경은 줄리엔의 집에서 삼겹살 파티가 있다고 가겠다고 하지만, 지훈은 ‘가지마라’고 한다. 물론 핑계를 대긴 하지만, 어딘가 진심이 담긴 대사였다.
세경을 위해 고기집으로 간 지훈은 너무 심각하게 고기를 굽고 자르는 세경을 대신해 자신이 고기를 자른다. 하필 그 순간 황정음이 창문에 붙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이블에 합류한 황정음은 소주를 시키고, 세경에게 권한다. 세경은 놀랍게도 여태껏 술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정음은 강권하고 한잔만 마시기로 한 세경은 맛보더니 ‘먹을 만 하다’면서 과음을 하게 된다. 화면이 바뀌면 황정음은 늘 그랬듯이 떡실신이 되어서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다. 세경 역시 대취해서는 마구 웃으면서 평상시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을 연출해낸다. 그녀는 너무 많이 웃어서 보는 내가 다소 무서울 정도였다.
세경은 조개를 보고 웃고, 길거리를 갑자기 뛰다가 표지판을 보고 웃는다. 게다가 지훈이 운전하는 차의 썬루프에 올라가 마구 웃어댄다. 하필 그때 황정음은 마스카라가 번져 팬더가 된 얼굴로 울어대서 아주 묘한 대비를 이뤄낸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좀 무서웠다. 한 여자는 계속 울어대고, 한 여자는 계속 미친 듯이 웃어대니 말이다. 나만 그런가?
그동안 세경은 심하다싶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동안 보여준 미소도 살짝 미소를 지은 정도지, 폭소를 터트린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동생 신애를 돌봐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이 하는 탓일 것이다. 게다가 남의 집의 식모를 하면서 눈치를 보는 것도 부족해, 해리같은 악동의 무시와 정보석의 견제를 당하는 입장에서 그녀가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40화에 인상적인 부분은 그동안 안개 속에 있었던 네 남녀의 러브라인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는 것이다. 40화의 마지막에 보면 준혁은 떡실신이 된 정음을 업고 가서 침대에 눕혀준다. 지훈은 역시 떡실신이 된 세경을 업고 가서 옷방에 곱게 뉘인다. 지훈과 준혁은 각자 마음에 있는 사람을 아마도 업고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행동한 게 아닐까? 물론 지훈이 차를 운전한 탓에 그럴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만약 정음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이 업어서 데려다 놓고 집에 와선 준혁에게 시켜도 될일 이었다.
아! 드라마가 아닌 시트콤을 보면서 이토록 감동을 받을 줄은 몰랐다. 46화에서 신세경-신신애 자매는 오랜 기다림의 보답을 받았다. 신세경은 자신에게 걸려오는 장난전화를 일일이 받는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준혁은 답답한 나머지 전화기를 빼앗아 대신 화를 내준다. ‘장난전화는 받지 말라’는 식으로 준혁이 얘기하자, 세경은 “아빠한테 전화가 올까봐..‘로 말을 흐린다.
그런데 빚쟁이들에게 잡혀 어부로 지내던 아빠 신달호는 잠시 휴가를 얻어 서울로 올라온다. 신달호는 딸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남산에 올라가 전화번호를 찾아 일일이 수많은 자물쇠를 찾아보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거의 포기할 무렵, 장난 전화를 거는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신세경의 번호를 찾게 된다.
기쁨에 겨워 전화를 걸지만, 하필이면 그때 해리가 전화기를 빼앗아 가지고 있는 바람에 통화가 되질 않는다. 핸드폰을 찾던 세경은 해리의 방에 와서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듣고 빼앗으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지면서 망가진다.
하염없이 신달호는 전화를 걸지만, 계속 전화가 되질 않아 메시지를 남긴다. 한편 옷방에 양복을 찾으러 온 지훈은 세경의 핸드폰이 단순히 배터리가 잘못 꽂힌 것을 알아내고는 다시 작동하게끔 만들어준다. 세경은 핸드폰에 녹음된 메시지를 듣고는 자던 신애를 깨워 함께 남산을 향해 뛰어간다.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찾는 두 자매 앞에 놀랍게도 목소리를 녹음하고 내려간 줄 알았던 아빠 신달호가 등장한다. 세 사람은 재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때부터 달호의 개그가 발동한다. ‘청순한 글래머’고 최근 각광을 받는 신세경에게 감히(?) “못생겨졌네”라고 놀리고, 신애는 “많이 예뻐졌네”라고 칭찬해준다. 신애가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 100점 짜리 시험지를 보고는 “짜장면 두 그릇 사줄려고 했는데, 백점을 맞았으니 얼마나 사줘야 하는 거지?”라고 한다. 그러자 신애는 신이 나서 “많이”라고 외친다.
세 사람은 짜장면을 먹기 위해 나서지만 이미 한밤중이라 중국집은 연 데가 없다. 결국 세 사람은 편의점에서 즉석짜장면으로 이를 대신한다.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는 아빠의 행동을 보며 헤어질 것을 예감한 신세경은 “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신달호는 가야 된다면서 “신애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신달호는 신애에게 “숨바꼭질할까?”라고 한다. 그리곤 신애에게 숫자를 세게 한 다음, 자신은 택시를 잡아타고 간다. 딸과 헤어지고 신애의 시험지를 다시 보던 그는 세경이 넣어둔 돈에 눈물을 흘린다. 거기엔 “아빠. 어디있든 항상 건강해야돼 파이팅! -사랑하는 딸 세경, 신애가”라고 적혀 있었다.
반대로 세경은 신애의 가방에 돈봉투와 편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딸 세경아 신애야
다시 만날때까지 울지 말고 힘내자
멀리 있어도 아빠가 니들 지키고 있는 거 알지?
사랑한다 신애야 세경아!
적혀있었다. 참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빠와 두 자매의 이별도 비슷했다. 빚쟁이에게 쫓겨 잡히게 된 달호는 두 자매가 운좋게 탄 트럭위에 양말을 던지면서, “아빠가 잡혔네”라면서 남산에서 보자고 했었다. 이번에도 어린 신애를 배려해 숨바꼭질을 하자면서 차마 떼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일하러 갔다.
아마 달호는 기왕 어부일을 하게 된 것, 몇 년간 피해다녔던 빚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모양인 듯 싶었다. 비록 몇화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달호는 세경-신애자매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다. 딸들에게 장난도 치고, 함께 흉허물 없이 웃으면서 어울리는 모습은 정말 멋진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세경-신애 자매가 없는 살림에 엄마가 없음에도, 이렇듯 반듯하게 자란 것은 그런 따뜻한 아빠의 보살핌이 아니었을까 싶다. 46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악동 해리의 말도 안되는 ‘내꺼’라는 우격다짐으로 세경의 핸드폰을 빼앗아 망가트린 탓이었다. 만약 세경-신애 자매가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면, 시청자들은 <하이킥> 게시판에 항의성 댓글이 폭주했을 거라 여겨진다.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가족이 다시 만났건만 불과 반나절도 함께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게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서도 서로를 생각해 그동안 어렵게 번 돈을 넣어둔 딸과 아빠의 마음씀씀이는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애가 50까지 숫자를 세기를 마치고 해맑게 웃는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순재 집안은 대가족에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소기업 사장집이라 돈도 제법 있고, 잘생긴 사위에 예쁜 부인에 잘난 삼촌과 조카들까지. 그러나 그들의 삶은 퍽퍽하고 가족들간의 관계도 뭔가 문제가 있어 항상 삐거덕거리고 있다.
반면 신세경-신신애 가족은 비록 없이 살지만,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가족에겐 ‘사채빚’이란 무거운 짐 때문에 떨어져서 살 수밖에 없다.
간만에 티없이 밝은 세경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그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던 세 가족이 잠시나마 서로 만나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지금은 비록 헤어졌지만 언젠가 그 가족이 다시 만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꺼라 여겨진다.
신애-세경이 아빠를 만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46화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 할만큼 잘 만들어진 방송분이었다고 여겨진다. 김병욱 PD의 천재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에피소드였다! 어떻게 시트콤에서 감동어린 눈물을 줄 수 있는지 그저 놀랍다! 거기에 본연의 임무와 웃음 폭탄과 현실 풍자까지 곁들이니.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 할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