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종교 회의 이야기
1. 황제에 의해 초대된 교회의 감독들
소 아시아의 니케아란 곳에 감독들이 모인것은
서기 325년이었습니다. 참석한 인원은 약 300명으로
일부 역사가들은 318명이라고도 합니다. 이유는
아브라함 시대 할례를 받은 숫자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에서 왔는데요.
서방 교회의 대표들도 있었습니다. 이 대회의 참석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최근까지 투옥당하고, 고문 당하고, 귀양을
갔던 인물들이었으며, 어떤 이들은 자기들 신앙에 대한
간증으로 육체적 상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련들 후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그 감독들이 황제의 융숭한 대접 속에 바로
니케아에 초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2. 니케아 종교회의에 대한 묘사
이곳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소문과 서신 왕래를 통해서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교회의 보편성을 증거하는 사건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곳에 참석했던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그의
[콘스탄틴의 생애] 속에서 당시 장면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럽, 리비아(즉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수많은 교회들로부터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종들이 모여 들었다.
마치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직접 확장된 듯한 단 한 개의 기도 속에
시리아인들과 길리기안인들,
페니키아인들과 아랍인들,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테베와 리이아에서
온 대표들이 메소포타미아 출신들과 함께 거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와 스키티아, 본도, 갈라디아, 밤빌리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등으로
부터 감독들이 왔다. 브리가아 역시 트라케, 마케도니아,
아카이아, 그리고
에피루스와 함께 가장 뛰어난 감독들을 파견하였다.
스페인으로부터도
그 유명한 인물(코르도바의 호시우스)이 직접 와서
이 위대한 회의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
황도(로마)의 감독은 노령 때문에 오지 못하였으나
그의 장로들을 파견하였다.
콘스탄틴이야말로 평화의 유대 속에서
이처럼 찬란한 성좌들을 한데 모아,
자기의 대적들을 다 물리치게 해주신 승리에 대한 감사로
자기 구세주에게 바쳤던 최초의 통치아였다.
3. 니케아 종교회의의 내용
이처럼 히열에 찬 분위기 속에서 감독들은 박해 후에
시급히 처리해야 했던
많은 안건들을 의논하였습니다.
이들은 변절자들을 다시 교회 안에 받아
들이는 절차와, 장로들과 감독들의 선출 및 안수,
그리고 여러 교구들의
우선 순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이 회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아리우스 논쟁이었는데요.
이 안건에 관한여는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집단들이 존재하였습니다.
확신에 찬 소수의 아리우스주의자들과 대결하는
소수의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였는데요. 라틴어 사용권인 서방 교회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대부분은 이 논쟁에
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논쟁이 단지
오리겐의 추종자인 동방 교회 출신들 사이에 발생한 국부적 논쟁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 터툴리안이 선포한 바대로 하나님은
"한 본질에 세 위격(three persons and one substance)"이시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겨우 세 명, 혹은 네명으로 구성된 또 다른 작은 집단이
"성부 고난설(Patripassianism)"을 주장하고 있었으니, 이는 곧 성부와
성자는 동일하므로(?) 성부가 고난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4. 아리우스주의와 동일본질을 삽입한 신경의 합의
당시 참석했던 인사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다름아닌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아리우스의 이론과 동일한 자기의
입장을 명확하게 설명한 행동이었는데요. 그는 아마도 자기의 신념을 명료하게
설명하기만 하면 전체 회의 참석자들이 이에 동의하리라 확신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을 청취한 감독들의 반응은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예측했던
바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말씀, 혹은 성자가 아무리 그 위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수많은 감독들로부터
격렬한 분노를 불러
일르켰습니다. 감독들은 "거짓말장이", "신성모독", "이단"이라고 소리질렀으며
유세비우스는 결국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단상에서 끌어 내려졌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의 연설문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각조각 찢겨져
발에 밟혔다고 합니다.
이로인해 대다수 감독들의 생각은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어느 편의 교리도 정죄함이 없이
화해와 타협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이들은 이제 가능한한 가장 명확한 표현으로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해야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에서는 처음에 성경 귀절들만을 사용하여 그렇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회의 참석자들은 단지 성경 귀절만을 제한하여 사용할 경우에는
보다 명확하게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기 어려움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이에 따라 아리우스주의를 명확하게 배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회의 신앙을 표현할 신경을 작성한다는 데에 합의하였습니다.
그 후 취해진 과정은 확실히 남아 있지 않은데요.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학자들이 아직까지도 논란하고 있는 확실치 않은 이유들 때문에 자기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경을 낭독하였고 콘스탄틴은 그 신경 가운데
호모우시오스,
즉 동일본질이라는 단어를 삽입하도록 종용하였습니다.
마침내 회의는
아리우스주의를 명백하게 배격하였던 신경에 합의하게됩니다.
이 신경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일체의 사물들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성부, 한 하나님을 믿는다.
또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성부의
본질로서 비롯된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오, 빛 중의 빛이시오,
진정한 하나님 중의 진정한 하나님이시니
그는 창조되지 않고 성부와 동일본질로서
잉태되셨으니, 그를 통하여 천상과 지상의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
는 우리 인간들과
우리들의 구원을 의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성육신하셔,
인간이 되심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제 3일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으니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그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
잉태하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무에서 그가 비롯되었다는 자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 서로 다른 본질,
혹은 정수(essence, ousia)라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그가 창조되었거나 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보편 교회는 저주하는 바이다."
결국 보편교회가 저주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나 그후 호모우시오스라는 "동일한 본질"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神性, 동일한 신의 성품)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이 귀절로 인해 그후
니케아 신경에 대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귀절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일체의 구별을 부인함으로서
성부 고난설을
시사하려는 의도적인 생각을 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