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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강 - 손자병법과 핵심 리더십
먼저 26강에서 손자의 다섯가지 위기를 언급했는데 그 내용부터 설명하는 것으로 손자의 리더십을 풀어가겠다. 손자병법에는 이 다섯가지 위기를 5위(五危)라고 한다. 곧 전투시 야전지휘관의 위기를 일컫는다.
첫째, '필사가살야(必死可殺也)' 즉 '필사적으로 싸우는 자는 죽는다' 는 문장도 그실 중국인의 해석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필사' 라는 말은 무모하다는 뜻으로도 중국인은 이해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기를 바라는 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5위에서 뜻하는 필사는 무모하게 죽음에 뛰어드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오자병법에서 나오는 오자의 필사즉생(必死卽生)과 반대되는 듯한 내용이지만 손자의 해석은 보다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투중에 어려운 국면에서 '필사가살야' 를 생각하게 하면 싸우지 않고 도망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그 까닭은 손자와 같은 깊은 뜻을 가진 병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 경우 구 일본군의 죽음의 개념과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구 일본군은 이른바 천황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이 군인의 본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6.25전쟁시 중공군은 인해전술(人海戰術) 로 공격하면서 죽음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자병법의 '필살가살야'를 따랐다.
한편 군대가 아닌 경제분야 리더에게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근간 삼성경제연구소가 CEO 535명을 대상으로 손자병법의 5위를 제시 '리더로서 조직에 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가' 를 설문한 결과 이 첫째 항목에 28%의 CEO가 제일 많이 위험요인으로 지적했다. 그 이유는 싸움에 임해서 비겁해진다는 이유일 것이다.
둘째, '필생가려야(必生可慮也)'. '기어코 살겠다는 자는 포로가 된다' 는 것도 오자병법 핵심 사생관의 하나인 오자의 행생즉사(倖生卽死)와 대조된다. 그러나 이 경우는 넓게 해석하면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전장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분명히 죽거나 포로가 되는 두가지 경우 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째, '분속모야(忿速侮也)'. '성미가 급한 자는 기만을 당한다' 는뜻은 졸속으로 생기는 위험을 지적한 것이니 재론할 필요가 없다. 다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저하다가 호기를 놓치거나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적의 역대책에 말려 들어가는 경우가 현대전에서는 당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옛날 전투는 현대전 보다 덜 위험하므로 죽음에 대한 위협이 한결 적었다는 면에서 성미 급한 행동이 자주 있어 왔지만 현대전에서는 위험의 정도가 커짐에 따라 주저하는 경우가 위험을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넷째, '염결가욕야(廉潔可辱也)' '청렴하고 결백하면 모함을 당한다' 는 말은 역시 원죄와 관계되는 것으로 지나치게 청렴함을 스스로 내세우는 경우를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래 인간은 욕망이 있는 법이고 주위에서 시기 모함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유별나게 청렴결백을 스스로 자랑 할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은 현대에도 교훈이 됨직하다.
다섯째, '애민가번야(愛民可煩也)'. '인간을 사랑하면 번민을 하게 된다' 는 말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야전에서 전투를 할 때 부하를 못믿고 미워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하를 너무 사랑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이 곱고 착한 지휘관일 수록 부하도 자기 마음처럼 곱고 착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경우 그 부하들은 방종하게 되고 지나친 의타심으로 피동적인 인간이 되는 단점이 생긴다.
또한 어떤 결정적인 국면에서 부하를 격전장에 투입하고자 할때 너무나 사랑하므로 생기는 번민 때문에 포착한 기회를 놓쳐 버린 예는 흔히 있었다.
이상으로 손자의 핵심 사상의 중요 부분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중국인과 우리나라 사람의 사상 면에서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을 해설한 기록은 약 2500여 년 전의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로 해서 현재의 중국인의 사상과 비교 분석해 보면 재미 있는 결과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우리에게도 필요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는 면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글이 안되기를 바란다.
손자병법의 총론격인 시계(始計)에서는 경제 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싸우기 전에 먼저 경제적 계산을 면밀하게 하여 승산이 있을 때만이 전쟁을 개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과 상대가 안되는 약세이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 원칙의 위반으로 볼 수 있다. 명치유신 이후 급격히 비대해진 군부의 오만이 경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해군과는 달리 육군의 상층부에서는 광란의 오만이 넘치고 있었다.
손자는 전쟁은 한 국가의 대사이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를 필요로 하고 다섯가지 기본조건을 강조하면서 일곱가지 기준을 비교 계산할 것을 병법 서두에서 내세우고 있다.
전력의 다섯가지 조건이란, 즉 5사(五事)라 하여 도. 천. 지. 장. 법( 道.天.地.將.法 ) 을 말하고 있다.
첫째, 도는 국민과 지도자의 일치된 도리로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으며 어떤 위협에도 두려워 하지 않는 올바른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둘째, 천은 음양의 이치이며, 자연 조건 즉 기상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말한다. 옛날 전쟁에서는 기상조건의 영향을 현대전 보다 더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지는 지리적인 특성 즉 지형이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전쟁은 땅을 빼앗는데 승패가 좌우되므로 지형지물(地形地物) 에 대한 중요성은 옛날 전쟁이나 현대전 다 같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
넷째, 장이다. 장은 장군 또는 장수 즉 병졸을 거느리는 지휘관을 말한다. 강한 장수 밑에 약한 병졸이 없다는 이치를 강조하며 장수의 구비조건으로 지. 신. 인. 용. 엄( 智. 信. 仁. 勇. 嚴 )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법은 법으로서 조직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이치이다. 손자는 특히 규율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군의 편성, 장비까지 포함하는 군사 조직의 질서 정연함을 강조한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늘 강조한 군율 (軍律) 과 같은 뜻이며 오늘날의 군기(軍紀) 를 말한다.
이상 다섯가지의 조건은 장수된 자가 항상 알고 있어야만 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손자는 이 이치를 아는 장수는 승리할 수 있으며 알지 못하는 장수는 승리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의 병서에 나타나는 장 또는 장수는 꼭 장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개념으로서의 지휘관 또는 리더로 이해하기 바란다.
손자는 적과 아군, 즉 피아간을 비교 분석하기 위한 일곱가지 기준을 병법 머리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일곱가지를 7계(七計)라 한다.
첫째, 어느 편의 정치 지도자가 더 정치를 잘 하는가.
둘째, 장수 즉 지휘관은 어느 편이 더 유능한가.
셋째, 기후와 지형 조건은 어느 편이 더 유리한가.
넷째, 군법 및 법규가 어느 편이 더 잘 시행되는가.
다섯째, 병력이 많고 적은 것과 어느편이 잘 편성 되었는가.
여섯째, 병졸 즉 사병의 훈련은 어느 편이 잘 되었는가.
일곱째, 신상필벌의 이행 상태는 어느 편이 더 엄정한가.
등이며 손자는 이 7계를 승패 예측 기준으로 삼았다.
2500여 년전 병서 내용이지만 현대에 있어서의 필요한 사항들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음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손자병법이 병학의 원조로 불리울 정도의 유명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다섯가지의 조건과 일곱가지의 기준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 예측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으나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섯가지의 조건 가운데 네번째의 '장' 에서 장수 즉 장군이나 지휘관의 구비조건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자가 설파한 장수의 특성은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지. 신.인. 용. 엄 다섯가지 특성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있어서 하나도 손색없는 이상적 지휘관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육군사관학교 교훈도 '지. 인. 용' 이다. '신'과 '엄' 이 빠졌지만 널리 해석하면 지. 인. 용에 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지( 智 )는 슬기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슬기롭지 못한 자는 지휘관의 자격이 없다. 슬기는 사물의 도리와 시비, 선악 등을 가리어 잘 판단하고 처리하는 능력이다.
신( 信 )은 믿음이다. 상관을 믿고 자기 자신의 실력을 믿으며 부하를 믿는다는 것은 단결과 협동의 원천이다. 힘의 총화를 의미한다.
인( 仁 )인애로서 표시되며 상관에 대한 투철한 복종심, 동료간의 전우애. 부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전투시 사기의 원천이 된다.
용( 勇 )은 용감함을 말함이니 무인으로서 씩씩하고 겁이 없으며 기운찬 기개를 의미한다. 용감하지 않고 전투에 승리할 수 있겠는가. 바로 도전정신의 근원이다.
엄( 嚴 )은 엄격함을 말함이니 부하를 다스릴 때 차별함이 없이 신상필벌을 집행하는 준엄한 자세를 의미한다. 엄정한 지휘관의 태도는 부하의 존경을 받는 근원이다.
손자병법 원문에는 '장자(將者)' '지신인용엄야( 智信仁勇嚴也)' 로 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장'( 將)의 개념을 병졸을 거느리는 한 무리의 책임자 즉, 넓은 의미에서 장교 또는 리더로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옛 문헌을 볼 것 같으면 '장' 의 개념이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해설에서 '장'을 장군으로 해석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손자는 '장' 의 특성 가운데 세번째의 '인' 의 적용을 추격 전술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도주하는 적을 섬멸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보내는 것을 전술의 한 방편에서 역 포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한편 '인' 으로서 도주하는 적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6.25한국전쟁시 중공군은 이 원칙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고 국군 포로에 대해 관대하였다. 국군이나 유엔군처럼 제네바협정이 정한대로 엄격한 절차에 의해 포로수용소에 보내지 않고 중공군은 국군포로를 그대로 방임했다. 비무장이고 조직도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그 덕택에 많은 국군포로가 원대복귀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제9사단 제30연대 제3대대 10중대 소대장으로 전투중 중상을 입고 인민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 후 도피과정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매우 관대했다. 그리고 내가 '고향에 돌아가고싶다' 고 말하니 그대로 돌려보내 주었다. 당시 나는 육군소위 계급장을 붙이고 있었으나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에 있어서 섬멸적 타격이 전세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인' 에 의해 관용을 베푼다는 점은 현대의 군사사상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내가 예편 후 군사평론가협회 회장직에 있을 때 중국을 방문 중국군 예비역 장군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당시 내가 의문을 품었던 중공군의 관용에 대해서 질문하니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었다.
"당시 중공군의 이 관용의 연원은 손자병법의 리더십 가운데 인(仁) 이다. 중국의 내전 당시 중공군이 장개석 국부군 (國府軍 - 국민정부군) 과 싸워 이겨 국부군을 대만으로 축출할 수 있었던 것도 관용으로 국부군을 포용함으로써 이룰 수 있었다. 포로에게 인을 베풀면 그 포로의 숫자보다 더 많은 적군을 잡을 수 있다"
놀라운 해답이다. 이 경우만 보아도 중국인의 대륙성 기질을 이해하는데 충분하였다.
손자병법은 이 외에도 한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자병법을 옛 고리타분한 문서로 평가절하한다면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모든 지휘관에게 정독을 권한다. 물론 손자병법 가운데는 허망한 내용도 있고 현대에 적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각자가 취사선택(取捨選擇)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