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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분신_인간이기를 포기한 정권
창세기 1:26-30
26.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28.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29. 하느님께서 다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30.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지난주 월요일, 5월 1일은 메이데이였습니다.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고 안정된 삶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로 많은 나라가 이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의 날을 최초로 기념한 것은 일제 치하였던 1923년이었습니다. 5월 1일 조선노동총연맹은 2천여 명의 노동자를 모아놓고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는 메이데이 행사를 열었습니다.
국가적으로 노동절을 지킨 것은 1958년부터입니다. 1993년까지 한국에서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라 3월 10일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우익 노동단체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의 재발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쿠데타 이후 1963년에 노동절이 ‘근로자의 날’로 바뀝니다. ‘노동절’이란 의미가 자주적이며 북한에서 쓰고 있다는 이유였죠. 일반적으로 ‘근로자’는 말 그대로 ‘근면 성실하게 국가나 회사를 위해 시키는 대로 순종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는 ‘스스로 힘써 주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노동조합 등, 노동자 단체들이 계속된 문제 제기로 1994년 문민정부 시절, 결국 3월 10일이던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름은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을 고집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존중받고 치하받아야 할 이날 노동조합 간부인 양회동 지대장(50)이 법원 앞에서 분신하였습니다. 양 지대장은 화상 전문병원인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다음날 오후 1시 9분께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양 지대장은 속초와 강릉 등의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 노조 전임비 지급을 강요한 혐의(공동 공갈) 등으로 지난 2월부터 경찰 수사를 받아왔습니다. 이날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한 실질심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양 지대장과 함께 영장이 신청된 동료 2명에 대한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습니다.
양 지대장은 분신에 앞서 건설노조 간부들이 모인 SNS에 올린 글에서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적용된 혐의가)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라며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적어 정부와 검찰의 마녀사냥에 대해 항의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양 지대장 사망 이후 자필로 쓴 3장의 유서가 더 발견되면서 유가족들은 열사의 장례를 노동조합장으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건설노조와 야당 앞으로 쓰여진 해당 유서에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주세요"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 독재 정치에 제물이 되어 자기 지지율 숫자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제(6일) 오후 7시에는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양회동 열사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열사의 형인 양회선 씨가 참석하여 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양회동 열사의 형입니다. 제가 오늘 제 동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동생은 두 아이의 아빠로서 한평생 양심있고 진실되게 살아온 한 노동자였습니다. 제 동생은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을 뿐, 개인적인 이득은 결코 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으면서 함께 일하는 세상을 꿈꿔왔습니다. 제 동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면서 제 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워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비극은 어쩌면 필연이라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윤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노골적으로 기업 편을 들며 노동조합을 범죄 집단화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여기에 언론이 가세하고 검찰이 말도 안 되는 강압 수사를 자행한 거죠.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윤 정부는 노동조합을 파렴치한 범죄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불법적인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건설노조를 지목하여 전쟁을 선포하였죠. 이에 발맞춰 검찰은 15번의 압수수색, 1,000여 명에 대한 수사, 15명 구속이라는 탄압에 나섰습니다.
윤 대통령은 “건폭 같은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 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습니다(2023.2.2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자 노동자 빨대”라고 했으며, 정진석 전 국민의힘 비생대책위원장은 “건폭들이 독버섯처럼 자랐다”고 막말을 해댔습니다.
이들이 건설노조를 타깃으로 정한 것은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다목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한국 경제와 정치에서 부동산과 건설산업이 차지하는 구조적 위치입니다. ‘건설산업은 정부 정책과 경기부양 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지금 부동산 거품이 빠지며 건설산업이 위기로 치달으며 우리 경제 침체에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100조 원이 넘는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건설업체들의 연쇄 도산을 낳으면, 금융기관도 타격을 위험에 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은폐할 희생제물이 필요하단 것입니다.
노조를 싫어하는 재벌 건설사들이 주요 언론사들의 오너거나 대주주라는 점도 한몫합니다. 대다수의 언론들이 앞장서서 건설노조를 무슨 ‘조폭 집단’으로 매도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또 건설노조는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이 정부와 언론의 집중적인 탄압을 당할 때 함께 연대 파업으로 행동에 나섰던 거의 유일한 산별노조였습니다. 그때 이미 윤 정부는 ‘건설 현장의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대적 단속을 하겠다’고 보복 의지를 밝힌바 습니다.
언론 중 특히 조선일보는 해방 이래 ‘노조=부패 집단’이며 ‘약자=교화의 대상’이란 프레임을 생산·유통하는 역할을 자임해 왔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핼러윈 참사’로, 유가족들을 ‘핼러윈 참사 유가족’ 혹은 ‘핼러윈 유가족’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왜곡했죠.
현 정부에서 건폭 발언이 나온 이후 조선일보는 제목과 기사에 이 용어를 적극 사용하였습니다. ‘건폭 2,800여명 적발… 77%가 민노총·한노총 소속이었다’(3월 9일) ‘건설현장 ‘건폭’ 잡고 보니 진짜 조폭‘(3월 9일) ‘진짜 ‘건폭’들이었네… 건설현장서 돈 뜯은 노조원의 정체’(4월 5일) ‘건폭 피의자 수백 명, 경찰청 앞에서 적반하장 집회’(4월 12일) 등의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과학적 가치를 잃었지만 한동안 서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우생학(Eugenics)이란 학문이 있습니다. 우수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를 증가시키고, 열악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의 감소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우생학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으로 시작됩니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핵심은, 생명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따라 서서히 변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특정환경에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더 잘 생존하고 생식하는 과정을 의미하죠. 보통 양육강식, 적자생존이라 알려져 있죠. 그런데 이런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을 왜곡하여 '인류가 생존하려면 열등한 인간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위험한 발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생학은 <종의 기원>을 읽고 영향을 받은 다윈의 사촌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인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처음으로 창시(1883년)했는데, 인간도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들어낸 우생학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난, 인종, 범죄, 장애 등을 차별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우생학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19세기 말 영국은 빈부격차와 인종차별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통제방법으로 우생학이 인기를 끈 것입니다.
이 우생학은 미국에서 꽃을 피웁니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과 경기침체 등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고, 사회 현상을 우생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주장들이 잇달아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사회적 기준 미달자로 분류된 이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자행하는 '단종법'이라는 악법이 제정됩니다. 이 법은 전국 28개 주로 확산되었고, 강력 범죄자와 성매매 여성, 심지어는 지역에 따라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까지 불임 수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 백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흑인, 유색인종, 아시아인들의 이민을 제한하는 이민금지법도 시행되었습니다.
우생학의 절정은 독일에서 일어납니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인위적인 인종교배로 우월한 혈통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죠.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악마 의사' 요제프 맹겔레는 20여 개월 동안 약 1,600쌍의 쌍둥이로 인체실험을 합니다. 나치는 우생학적 이유로 병자와 장애인 학살에 이어 잔혹한 인종청소인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김행하죠. 이 작전으로 600여만 명이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개스실 등에서 살해당합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꽃피우고 독일에서 최악의 사태를 일으킨 우생학은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1950년대에 이르면 DNA가 이중 나선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유전형질은 스스로 발현되는 것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죠. 유전학 발달의 초기에 유행했던 우생학은,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비 과학으로 드러나며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우생학은 당시에는 기술, 과학의 미비한 발달로 인해 학문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일종의 사회 이데올로기 또는 유전자 차별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즉 우생학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라졌어도, 능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능력만능주의나, 경제적 격차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는 현상들은 여전히 우생학적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우열을 나누어 열등한 종을 세상에서 퇴출시키려는 위험한 사고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이 끝판왕을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 대한 모독입니다. 또 하나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노동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죠.
창세기 1-2장을 보면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노동이란 창조 질서에 있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성서가 말하는 인간은 적어도 3개의 특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먼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동역자란 것입니다. 창세기 2:7에 보면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창조주에 의존하는 존재이며 창조주가 만든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연과 죽음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죠.
창세기 1:27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와 닮은 존엄성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인간관은 '신의 노예'인 바벨론의 창조신화와 달리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죠. 때문에 빈부귀천, 인종, 성별, 장애 유무 등 어떤 이유로든 인간은 차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로는 인간은 주체적으로 일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 1:28)"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창 1:29-30)."
땅을 정복하고 모든 동물을 부리고, 동식물을 먹이로 준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노예처럼 부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동역자로서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더 풍요롭게 하는데 주체적인 존재로서 사명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생명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임무도 부여받은 것이죠.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 사역을 다하신 것처럼 인간 역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주체적으로 일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죽도록 일만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엿새를 일하시고 하루 쉬셨듯이 일에는 안식이 따라야 합니다(창 2:2).
마지막으로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6-7에 보면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자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1장과 달리 2장에서는 창조의 순서가 다르게 쓰여있죠. 다른 피조물을 만들기 전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부어 넣어 숨을 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개역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인간은 흙과 생기가 결합되어 생령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여기서 흙은 인간의 육체를 이루는 요소이며 생기는 인간의 정신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흙’은 인간이 가지는 한계이지만 ‘생기’는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여기서 ‘생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니쉬마’는 성경의 다른 곳(욥 27:, 33:4)에서 하나님의 영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죠 그러니 흙으로 빚어진 인간 형상의 내면을 채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돈 좀 있다고, 학벌이 좋다고, 권력을 잡았다고 백성들을 개, 돼지로 여기고, 거룩한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조폭으로, 범죄자로 모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뻔뻔하게 행하는 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쥐고 흔드는 권력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정권인 것이죠.
이들은 과거에는 마녀사냥으로, 근세에는 우생학을 이용하여 전쟁과 인종청소 등 대학살을 자행했으며, 현재는 자신들의 죄를 덮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악마화하여 말살하려고 합니다.
윤 정권은 자신들의 무능, 무지, 무책임을 감추기 위해 사사건건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자신들이 만든 안보 위기를 전 정부에 뒤집어 씌운다거나, 정치적 무능을 감추려고 야당에 대한 공작과 탄압을 일삼습니다. 최근의 경제 위기는 내적으로는 화물연대나 건설노조에, 외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정권의 만행으로 지난 100여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온갖 탐욕을 채워 왔던 기득권의 실상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악의 집단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제 1년 남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우리 국민 또한 우리 사회를 53년 전 전태일 열사 시대로 되돌리려는 모든 악한 시도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인도하심이 잘못된 노동 현실을 바로잡으려 자신을 내어준 고 양희동 열사와 그의 가족들, 이 세상을 지탱하고 만들어 온 노동자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3.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