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9 (타이페이 - 화련)
새벽 6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식당에 가니 한국 관광객이 많다. 지난여름에 티벳에서 먹은 찌땅과 빠우쩌가
낯익다. 오늘은 화련으로 간단다.
비행기를 탔다. 잔디 옆을 큰소리로 달린다. 곧 발이 뜨는 게 찌리리 느껴진다. 기분이 안 좋다. 불안감이
‘또’ 라는 느낌으로 온다.
비행기는 오르다가도 곤두박질치고 내려가다가도 쳐 박히는 허공의 물체라지.
문득 지금 우리 가족이 함께 있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비행기가 ‘쾅’하여 우리부부가 먼저 떠난다면... 라는 생각이 순간 든다.
‘가만 보자,,, 아이들이 성장기가 끝났으니 눈물 젖은 눈칫밥 먹으며 구박받는 설움의 시기는 지나서 다행이
고, 아빠가 없으니 나쁜 계모 만날 걱정도 없네.
나보다 성격이 좋고 생활력도 있어 보이는 딸은 곧 대학을 졸업해서 어디든 취직할 테고 몸만 오라는 어떤
녀석을 잘 만나면 웬만한 어른으로 잘 살겠다. 소심한 아들은 제 성적에 맞는 대학을 가서는 곧 나라에서
숙식을 제공 해주는 조직으로 데려갈 것이니 2년간은 밥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신랑에게 얘기를 꺼냈더니 ‘비행기 사고로 죽는 게 모두에게 좋다더라. 고통도 못 느끼는 순간의 죽음으로
떠날 수 있고 또 남은 가족은 보험금으로 위안 받으며 살 수 있을 꺼라나‘ 라고 한다.
그래, 항공사 보험금은 많이 준다더라. 그리고 내 퇴직금 받고 또 친척의 권유로 들은 보험금도 좀 될 것이니
취직할 때 까지 밥은 먹고 살겠다. 다 자랐으니 얼만큼 슬퍼하다가 제 배필을 만나면 부모 잃은 외로움도
잊고 살아질 테지.
음. 근데 딸이 당장 밥 할 줄을 모르는데, ,까짓 거 나도 모르고 결혼했는데 닥치면 다 하게 되는 일이라 꼭
가르칠 필요는 없겠다. 우리 아들이 걱정이다. 느리고 태평이라 제 관리를 잘 하고 살 지 .학교에서 종종 보는
거친 말과 거친 동작의 아주 예쁜 여자에게 홀려서 짝으로 선택한다면 어쩌지? 누나랑 서로 의지 하며 잘 살
아야 될 텐데.
참! 간혹 보면 사고 후 보험금을 더 받으려고 장례를 미루는 행동은 하지 말아라고 해야지.
돌아갈 때는 훨훨 가루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엄마의 마음을 평소에 일러두었으니. 근데,참! 장소를 말
안했네. 집에 가면 구체적으로 엄마 고향인 영도 목장원 앞 바다에 뿌려달라고 해야지.
근데 비행기가 바다에 떨어져 못 찾으면 ? 괜찮다. 어차피 바다에 뿌리라 했는데 뭐.’
그렇게 하나씩 챙기다보니 지금 당장 떠난다고 해도 내 숙제에 대한 별 미련은 없겠다.
그래, 비행기야! 니 마음대로 날아 보아라. 난 마음을 비웠단다. '
연꽃이 많아 ‘화련(花蓮)’인가 했더니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화 아 려 어은”이라고 들리는
곳이란다. 우리의 철썩 처얼썩 보다는 감성적인 의성어 인 듯 하다. 우리나라엔 철썩이라는 지명의
바닷가가 어디 없나?
조용하고 느긋해 보이는 화련읍을 지나는데 눈앞에 보이는 아열대의 삼림이 아주 높아 보인다.
대만은 해발 3000M이상의 높은 산이 49개에 이른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가는 태로각 협곡은 남북으로
산맥이 길게 가로막은 지형으로 동서의 소통이 불가능 한 대만을 장개석이 협곡을 연결하는 길을 뚫어
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대륙에서 쫓겨올 때 약 6만명의 군인이 장개석을 따라왔단다.
장개석을 비롯한 그들은 곧 본토를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 갈 날 만을 기다리다 결국에는 포기하고 작은 섬에
정착하여 대만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 고산을 뚫는 대공사를 건설할 때 수많은 원주민과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그 중 많은 이가 공사 중 희생
되었다고 미스 유가 위패를 모신 사당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고산과 깍아지른 대리석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 그 아래를 흐르는 뿌우연 석회수
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
좁은 계곡사이에는 수만년 바닷속에 살던 바위들이 지상으로 올라온 흔적을 층층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고
지진이 만들어준 바위틈 구멍에는 수많은 대만제비들이 살고 있어 이곳을 연자구 라고 한단다.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강남사는 제비야! 참 오랜만이구나!
급경사를 이룬 고산들 사이를 자세히 보니 원주민들이 만들어 둔 위태로워 보이는 구름다리들이 허공에 보인
다. 아직도 이곳은 얼굴에 문신을 한 고산족과 야생동물들과 그리고 이방인을 반기지 않는 돌들이 간혹 환영
인사를 보내온다며 절벽아래를 지나며 일러준다.
버스에서 내려 드라마에서 송윤아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낯선 나라의 절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학교에 여행
원을 제출할 때 여행사유를 묻는 칸에 내 식대로 '드라마 온에어 촬영지 견학'이라고 적었다가 빠꾸되엇다.ㅋ)
산 꼭대기 전망대에서 한잔의 생맥주를 마시며 기대하지 않았던 이번 여행을 만족해 한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리석 공장에 가서 여러 옥들을 눈요기하고 원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원주민 쇼를 보고는
기차역으로 갔다. 올때는 비행기, 갈때는 기차여행.
‘현대’에서 만들었다는 기차의 실내는 우리의 K기차보다 넓었고 들리는 소리들이 귀에 익다. 일본 관광객
들이 떠난 자리에 요즘 한국에서 많이들 온단다. 멕시코까지 뻥 뚫린 태평양이 깊이 멀리 보인다.
터널, 터널, 터널이 이어져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터널 안에서 창문에 있는 내 얼굴을 쳐다보니 예뻐 보인다.
여자들이 밤기차를 타는 이유는 창에 보이는 제 모습에 반하기 때문이라던 대학때 어떤 녀석이 하던 말이
생각나 다시 창을 들여다보며 혼자 예쁜 가? 웃는다.
논밭사이에 건물 3,4층 높이의 야자들이 우뚝 솟아있고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소나무 한그루 없는 원시림
의 산들이 보인다. 계속되는 백사장에 태고적부터 있은 듯한 뼈대만 남은 나무들이 죽은 척하고 서 있다.
건물들이 모두 우중충하다. 습한기후에 페인트가 소용이 없다나.그래서 맨 몸으로 서 있든지 아니면 타일을
입고 있다. 대만인은 이처럼 사람이고 건물이고 외형에는 신경을 안 쓴단다.
그러나 먹는 것에는 돈을 안 아낀다네. 만주와 한나라의 왕실음식인 만한전석을 최소 250만원에 8시간 동안
먹고는 그 증서를 액자로 만들어 거실에 붙여 놓고 자랑을 한단다.
어둠이 내리자 대만제 빗물이 차창을 대각선으로 장식한다.
우리 오기 전 8일동안 연속비가 내렸다더니 지금 이곳은 장마철에 접어 들었단다. 북회귀선이 지나는 이나라
의 북부는 아열대이고 남부는 열대지역으로 연중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라 이곳의 건물들은 비올 때도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1층은 거의 모두 회랑으로 지어져 있단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웃나라 대만에 대해 그동안 관심도 노력도 없이 참 무지했던 것 같다.
2시간 40분간의 기차여행을 마치고 다시 수도 타이페이로 돌아와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최 고층 101건물의
초고속 엘리베이트를 타고 단 37초 만에 89 층 전망대에 올라가 촌 스럽게 구경하고는 하루를 마감했다.
놀토에서 초파일까지 연결된 연휴를 이용해 한국에서 전세기를 띄워 오늘 밤에 약 2500명의 여행객이 대만
에 도착한다고 한다.
지금도 내내 마주치는데 내일은 떼로 만나겠구나. -계속
(석회수 계곡)
( 제비집)
(바위산을 뚫어 길을 만들다)
(드라마 온에어 촬영지)
( 협곡 )
(기분좋은 강남 제비들)
첫댓글 10여년전에 대만 갔을때가 기억나네요..이제는...어디어디 갔었는지 가물가물^^ 한가지 선명한건..큰 호수에 배타고 갈때 강산에의 "라구요"를 어르신들 앞에서 불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