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2

[홍긍표]

꽃이야기 2

15년 정도 선배이신 김선생님은 인품이 훌륭하시어 따르는 후배가 많았다.
술도 점잖게 드셨는데, 어느 날 다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당신 아내의 결혼반지 다이아몬드는 진품이 아니고 모조품이란다.
결혼할 때 가진 돈이 없어 그랬는데, 아내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단다.

미안한 마음에 은혼식 때 더 큰 진품 다이아반지를 해주면서도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 이유는 반지가 아니라 꽃이라고 하셨다.
꽃 싫어하는 여자 보았냐며 오늘같이 거나하게 취한 날도 꽃을 챙긴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꽃집을 찾아 두 다발을 사서 한 다발은 내게 주셨다. “사랑받고 싶으면 이렇게 해!”

결혼 3,4년차나 되었을까 싶은데 그때까지 내손으로 꽃을 산 적이 없었다.
딸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던 아내가 꽃을 받더니 상당히 기뻐했다.
졸린 모습으로도 행복한 표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것으로 끝, 우둔한 나는 꽃다발의 위력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총각 때 사귀었던 여친들에게도 꽃선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가뜩이나 부족한 나에게서 무슨 매력을 느꼈겠나?
마음을 사지 못했고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당연하지 싶다.
그녀들에게 참 부끄럽다. 김선생님이 모든 마음은 꽃으로 통한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하지만, 중국손님이 오면 매번 호텔방에 만개한 분홍빛 호접란을 넣어드린다.
그들 역시 꽃선물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효과가 상상 이상이다.
한국 올 때 현지인 전화번호 하나만 알아도 든든할 터인데,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라는 리본이 달린 난을 받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중국에 가면 7만원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산해진미의 식사대접을 받는다.
몇몇 지역에서는 한국의 洪哥와 사귀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한번은 70이 가까운 노부부의 아내가 남자에게서 처음 받아보는 꽃이라고 흥분하셔서,
총장을 지내셨던 남편과 박장대소를 한 적도 있다. 실로 꽃의 위력은 대단하다.

밴드나 단톡에 오늘은 누구의 생일이라고 문자가 뜨면
그림이라도 꽃다발을 전하고 진수성찬 생일상을 올리기도 한다. 편리한 세상이다.
부모님 산소에는 조화(造花)가 2개월 정도 지나면 색이 바래서 바꿔드린다.
하물며 함께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꽃선물에 인색해서 되겠냐고 생각을 바꿨다.

오늘 이른 아침에 내일이 생일인 아내에게 애들 이름으로 직장에 서양란을 보냈다.
지난해에도 애들 이름으로 보냈더니 즐거워하는 얼굴이 여러 날 지속되었다.
벌써 다 컸다며 효도 받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는데,
생각이 깊으니 남편에게서 받은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난해 리본은 현관거울에 걸어두었다. 아래는 아침에 배달된 것이다)

“꽃 받으면 웃음꽃 핀다. 왜? 꽃은 마음이니까.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전한다.”
꽃배달 서비스 업체인 꽃집청년들 카피라이터가 존경스럽다.
꽃 한 송이도 건네지 못해서 미안한 사람에게 이제라도 배달서비스를 넣고 싶다.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