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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맑은물흐르는곳 원문보기 글쓴이: 들풀처럼
이명범(레마선교회)의 이단성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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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경대 (서울가락제일교회 목사, 기성 사이비 이단대책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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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레스 디아스(T.D) 문제는 한국교회의 현안 중 핵심이다. 몇몇 교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교회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아직 상당수의 단체에서 행하여지는 T.D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 호남지역( 군산, 이리, 전주 등)에서는 T.D로 인해 교회가 갈라지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렇듯 T.D를 이용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주된 인물은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씨다. 이 씨는 92년 예장통합측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면서 한동안 위축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최근들어 다시금 위세를 떨치는 형국이다.
1. 이명범 레마선교회의 유래
이명범의 "레마선교회"는 "레마복음선교회"(Rhema Evangelical Mission)가 공식 명칭이지만 통칭 "레마선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칭할 때 "이명범의 레마선교회"라고 엄격히 구분지어 불러야 "레마선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선의의 다른 단체와 구분이 용이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비교될 다른 단체가 없기 때문에 "레마선교회"라고 하겠다.
이명범은 1938년 9월 22일생으로 1995년 현재 57세이다. 1963년도에 연세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그후 뒤늦게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레마선교회를 시작하기 전, 모 침례교회를 다니다가 그 교회에 김기동 씨(베뢰아 아카데미)가 몇차례 집회 차 다녀간 이후 1970년 말경 신길동에 있는 성락침례교회(김기동)에 등록하여 2년여간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명범 자신의 말에 의하면 김기동 씨의 '귀신론' 때문에 성락침례교회를 떠나 '새문안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후에 김기동 씨가 원장으로 있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1980년 5월 10일 제 1기생으로 졸업했다(졸업자 39명 중 19번으로 졸업). 이것은 이명범 씨 자신이 말했던 '베뢰아 김기동 씨와 관계를 끊었다'는 말이 거짓말 임을 입증해 준 것이다('베뢰아 소식'지에 게재된 베뢰아 아카데미 1기생 명단 참조).
이명범은 베뢰아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계속해서 '베뢰아 아카데미' 김기동 씨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며 활동하는 중, 1981년 7월 중앙대학교 전 이사장 부인 이의영 씨가 여자 교수들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시켜달라는 요청을 받고 매주 월요일 오전에 약 2시간씩 모인 것이 시초가 되어 드디어 1981년 7월 20일 '중앙대학교 레마선교회'를 창립, 제1대 회장으로 이의영씨를 선출하게 된 것이 레마선교회의 발생유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기에 의해 이명범은 당시 중앙대학교에서 '현대사회와 기독교'라는 강좌를 맡아 시간 강사를 하게 되면서 '교수'라는 명칭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1983년에 접어들면서 중급반 성경공부를 개설, 1월에 제 1기생 53명을 배출했으며 9월에는 목요성경공부반을 개강하는 등 급성장을 했다. 강사는 물론 이명범 자신이었다. 1984년 7월 한국 뜨레스 디아스(Tres Dias:스페인 어로 3일이란 뜻)를 이용하여 남자 1기 훈련을 시작했고 다음 해 3월에는 한국 뜨레스 디아스 여자 1기생을 훈련시키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4년 후인 1989년 9월에는 국제 뜨레스 디아스(Tres Dias International)를 조직, 회장에 이명범, 의장에 윤원영 장로(성암교회, 당시 일동제약 부사장)를 임명, 세계로 발을 넓히기까지 했다. 현재는 뜨레스 디아스를 이용하는 렘(REM)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목회자 평신도를 나누어서 교육하고 있다. 또한 비다 뉴바(Vida Nueva;스페인어로 '새생명'이란 뜻)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소년들로 하여금 2일에 걸쳐 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레마선교회의 렘(REM)교육은 주로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202에 소재한 '서울 교육 문화회관'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본부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41-26 한일빌딩 3층에 두고 국내 및 해외에 지부를 두고 있다. 88년 9월에는 레마선교회 내에 '레마성서연구원'을 분리 설립하여 성경공부 전담과 교사 양성을 하고 있으며, 그 전에 '레마 영상실'(88년 3월)을 확장, 최신 영상장비를 갖추고 이명범의 강의 카세트, 비디오 테이프를 대량으로 제작하여 공급하고 있다. 또한 '레마(ρημα)'라는 소식지 및 소책자(발행인 이명범, 편집인 권대식)를 발간하여 교도소, 병원, 군부대, 학교 등에 배포하고 있다. 또 감사헌금 및 스폰서헌금 등 각종 헌금을 비롯해서 회원등록금, 월회비를 받고있다. 모임은 월요일 오전 10:30 성경공부, 화요일 오전 10:30 비디오 성경공부, 수요일 오후 2:00 회원기도회, 목요일 오후 8:00 성경공부, 금요일 오후 7:30 비디오 성경공부 등이 있으며 지방 각 지부에서는 주로 목요일에 교회 밖에서 따로 모여 비디오를 통해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있음이 파악되었다.
예장 통합측 자료에 의하면 이명범은 86년 2월 28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레마의 핵심인사와 간통 사건으로 고소되었다가 취하된 적이 있으며, 그후 1988년 3월 '레마선교회'를 '레마복음선교회'로 개명하여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이명범 자신이 제2대 회장으로 취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명범의 활동은 90년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그의 속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홍콩 한인교회, 미국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속의 교회'로 물밑 확산을 시작 교포 사회에서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2년 예장 통합측 교단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단으로 정죄되었으며, 계속해서 예장 고신측과 성결교단(기성)에서도 이단으로 규정되었다(92년도). 또한 월간 <현대종교>에서 92년 특집 기사에 이어, 94년 12월 호부터 '레마선교회 헌금 강요하고 있다'란 고발기사에 의하면 저들의 관심이 물질획득에 기울어져 있음이 여실이 증명되고 있음을 볼 때 이명범 씨는 김기동 계열의 이단임이 분명하므로 매우 경계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 신론에 나타난 이단성
삼위일체 신관에서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은 동일본체의 세 형태를 말하는 사벨리우스의 사역적 양태론이다. 직접 이명범 씨의 말을 인용해 보자.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며 인간을 구원하려 할 때 하나님께 붙여지는 이름이 예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다는 말입니다...성경에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에 우리는 여호와, 야훼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지로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정확히 가르쳐 준 것은 예수라는 이름인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즉 예수의 이름, 구원하시며 나타나신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예수라 부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이 여러 분 계셔서 예수라는 하나님 따로, 여호와라는 하나님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축복하고자 인간에게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 분을 불러서 예수라고 일컫는 것입니다."(이명범,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209)
"성령께서 오실 때도 예수라는 구원의 이름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오실 때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것입니다...그래서 성령의 이름도 예수라고 부르고 아들의 이름, 성자의 이름도 예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그 분이 구원하고자 하실 때의 이름은 예수인 것입니다. 성령도 구원과 다 관련되어 일하실땐 예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이명범, 상게서 P.214) "이렇게 예수 이름이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똑같다는 것을 성경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마28:19)" (이명범, 상게서 P.214)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누구의 이름으로 왔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니 아버지의 이름이나 아들의 이름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도 예수입니다. 이름, 같은 이름, 예수 이름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명범, 예수의 이름, P.8)
또한 이미 이단으로 규정받은 베뢰아의 김기동 씨의 용어와 사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살펴보자.
+-성부하나님 =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하나님 = 하나님의 본체요 +-성령하나님 = 하나님의 본영인데 (이명범, 강의테이프, 81.8.24/85.5.31) +-성부하나님(본질) = 우주 밖에 거하시는 하나님 - 귀로만 듣는 하나님 +-성자하나님(본체) = 눈으로 보는 하나님 +-성령하나님(본영) = 성역 내에 역사하는 하나님이라 하고 있다.(92년 목회자 Rem에서)
위의 말은 이미 사역적 양태론으로 규정된 김기동 씨만이 사용하는 전문용어이다('베뢰아사람' 제 7권 88년 7월호 P.40을 참고). 그런데 이명범 씨는 김기동 씨와의 관계는 부정하면서도 김 씨의 이단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말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 진다.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입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요, 본체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 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이명범의 강의 테이프 84.5.31)
이명범 씨의 이단성 주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아들과 아버지는 그 이름에 있어서 완전 동일이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가 수난당했다는 성부수난설(Patripassionism)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성부수난설을 직접 살펴보자.
"예수를 확실히 믿고 나니까 예수의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이 나에게도 아버지가 되어서 저절로 입에서 아버지라고 나오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이것은 경험을 해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낳는 것을 내가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낳았는지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어 이 땅 위에서 사람들의 침 뱉음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의 그 무거운 고초를 당하시면서 가시관까지 쓰시면서 창으로 찔려 피를 다 쏟고 물을 다 쏟을 만한 고통을 통해서, 무덤 속에 들어가서 무덤을 봉해 놓을 만큼 한 고통을 통해서 나를 낳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분, 그 완전한 경험으로 그 분이 나의 아버지시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이명범, 이것이 복음이다. P.14)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신 사실은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추악한 인간은 매일매일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용서하시기 의해서는 말씀을 사용하신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중한 고초를 당하시는 그 엄청난 피흘림까지 행하시므로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피흘림은 하나님이 자신을 세상에 내 놓으시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희생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이명범, 하나님의 일, P.27)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이 땅 위에 구원자로 육체의 몸을 입고 어셔서 피흘려 이미 용서하기를 정하고 우리를 기다리시니 받아들이라고 하십이다. "(이명범,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74)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죽으실 것이 예고되었습니다."(이명범, 상게서 p124 상)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말로만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직접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이명범, 하나님의 일, p28)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독특한 사상이다. 성경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본질상 한분이시나 이 한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우는 삼위가 존재한다. 여기서 삼위일체 신관이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반듯이 삼위의 통일성(Unity)과 삼위의 독자성(Particularily)이 확립되어야 한다.성경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는 서로 독립된 인격으로 나타나시며(마 28:19, 엡4:4-6,행7:55, 마3:16-17)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신6:4, 창3:22)고 했다.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를 들어 보자. 먼저 구약에는 하나님에게 한 위 이상이 존재함을 지적해 주는 귀절들이 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을 복수로 나타내시기도 했으며(창1:26, 11:7) 여호와의 천사는 한 신적 '위'로 나타났으며(창16:7-13, 18:1-21, 19:1-22) 여호와의 영도 또 다른 하나님의 위로 표현되었다(사48:16, 63:10). 이외에도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다른 두 인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귀절들이 있다(사48:16, 61:1, 63:9,10).
신약에서는 계시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더욱 명백한 증거들을 볼 수 있다. 가장 뚜렷한 증거는 구속의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의 명령(마28:19)과 사도의 축복(고후13:13) 외에도 눅3:21,22, 1:35, 고전12:4-6, 벧전1:2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위는 서로 독립된 인격으로 나타나시며(마3:16-17, 고후13:13) "우리 중의 하나"라고 자신에 대하여 직접 말씀하셨다(창3:32). 뿐만 아니라 통일성에 대해 말씀도 하셨다(엡4:4-6).
삼위일체에 관한 대표적인 이단은 양태론이다. 이 양태론은 사벨리우스(Sabellius-Sabellianism)에 의해 제창된 모나르키니아주의의 일종이다. 사벨리우스의 하나님은 단일실체(monas, monad)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 안에는 구별이 없고,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단일한 하나님의 세가지 현현양식(προσωηα)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를 창조주로 나타내신 것은 아버지요, 구속자로 나타내신 것은 아들이며, 정결케하는 자로 나타내신 것은 성령이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실체가 아니라, 한 인격에 의해서 행해진 세가지 역할"이라고 했다. "하나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가지 명칭(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오직 한 인격이 있을 뿐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하다. 모나스(실체)로서의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계시한다.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창조자로, 아들에게 있어서는 구속자로, 성령에 있어서는 성화자로 계시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세가지의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단일한 실체, 단일한 인격이다.
성부로 나타난 하나님의 형태는 율법을 수여하는 일을 마친 후에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것은 성육을 통하여 아들로 나타났으니 승천하므로써 절대적 실체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성경으로 다시 나타나 교회의 온전한 성화를 확보한 후에 다시 구별없는 단일 실체로 돌아간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조하여 정통교리 발전에 공헌한 면도 있지만, 한편 성서적 진리를 이탈한 이단적 사설을 주장케 되었다." (그리스도교대백과사전 p.470)
양태론은 사벨리우스에 의한 이단인데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며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삼위는 한 하나님이 역사하는 세가지 다른 모양일 뿐, 하나님 자신은 한 분이라고 한다. 종속설(Subordinationism, Arianism)은 통일성(Unity)을 부인하는 이단 인 반면에, 양태론은 삼위의 독자성(Particularity)과 구별성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그렇다면 정통 기독교의 삼위일체론(Doctrine of the Trinity)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 신관은 삼위일체론이다. 이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독특한 사상이다. 성서에 "삼위일체"란 용어는 없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정통교회의 오랜 신학논쟁을 통하여 성서의 하나님을 보다 효과적으로 잘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통 교회의 신학의 산물이다. 물론 성서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삼위일체 하 나님은 창세 전부터 계신 정통 기독교의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론(Doctrine of the Trinity)은 교회의 산물이다. 따라서 신학적인 논쟁과정에서 수많은 이단들이 발생하였다. 삼위일체론이란 창조자 성부, 구원자 성자, 그리고 성화자 성령 등 이 세분이 본질적으로는 하나요, 인격에서는 셋이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말은 터툴리안이 가장 먼저 사용하기도 했다. 삼위일체론은 반드시 두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가 삼위의 통일성(Unity)이다. 삼위 하나님은 세가지 모습으로 각각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것은 서로 상관없는 별개의 세분 하나님이 아니라 이 셋은 본질적으로 한분 하나님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났던 유일신 바로 그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의 동일본질, 즉 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삼위의 독자성(Particulirity)이 확보되어야 한다. 양태론은 이 것을 부인한다.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분이지만 구별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계신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서 ?아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기도할 때 그때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서 기도의 대상이 되신다. 만약 삼위의 구별성과 상호 간의 대상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무덤에 계신 성자를 누가 살려 낼 수 있겠는가? 이러므로 삼위일체론은 통일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된다. 지난 2000년 동안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확보되었고 성령이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이라는 성서적 진리를 수호하는 신학적 도구가 되어왔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가장 독특한 사상으로서 계속 연구 발전되어야 할 과제이다'(전선용, 기독교신학개론 p.p.54-57).
그러면 이명범 씨가 주장한 성부수난설(聖父受難說 : Patripassionism)이란 무엇인가.
이 주장은 '아들과 아버지는 완전 동일이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가 수난당했다.'라고 하는 삼위일체론적 이단설이다(Beryllus, Dionysiyus of Aiexandria가 주장함, 이종성삼위일체론 P.205). 비평해 보자. 레마선교회 이명범 씨는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양태이며, 그는 아버지에 대하여 종속적이다"라고 하는 '양태론적, 종속적군주신론'(Modalism Sabellianism)를 취하면서 아울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아버지)이 수난 당하고 피를 흘려 죽었다고 하는 성부수난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상은 "강력한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곧 아버지의 수난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다른 모든 인간적 경험은 아버지가 했다.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였다면 그는 아버지와 하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했다면 아버지가 고난당한 것이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결국 이 사상은 양태론과 함께 이단으로 규정되었다(이종성, 상게서 P.P.205-20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지 하나님(아버지)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사 53:3-6, 신 21:23, 갈 3:13, 막 10:45, 벧전 2:24, 요일 2:2). 요한복음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성경에도 '유월절 양'(고전 5:7),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라고 했으며,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막 10:45).
3. 인간론(죄론, 창조론, 타락설)에 나타난 이단성
이명범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로 창조 되었다하여 인간 기원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불완전한 것, 즉 '죄지을 인간'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들은 가끔 아담이 죄짓지 않았다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선악과를 먹는 바람에 우리가 고통 당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인간의 모습은 미완성의 모습이요"(이명범, 복음전달 새소망서의 인물이하)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했을 때 그 인간을 우리는 쉽게 '인간'이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바싸(basar)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좀더 성경을 구체적으로,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고 이렇게 말해서 데무트(demut)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림자, 겉옷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만드실 때부터 어떤 존재로 만드셨는가 하면 겉옷과 같은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짓기 전의 얘기이며 선악과 사건 이전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애초에 겉옷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겉옷이 있다면 옷을 입어야 될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 즉 알맹이를 말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15절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살펴보면 결국 하나님의 뜻은 겉옷이 알맹이를 만나도록 창조하신 것이라는 많은 결론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왜 죄지을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이 죄지은 다음에 왜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복잡한 질문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애초에 겉모양으로 만드시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알맹이로, 하나님 자신이 모양을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분으로 예수님을 존재케 하셨습니다."(이명범, 상게서p.p.13-14)
이명범의 인간 창조는 이미 이단으로 정죄받은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 씨의 '이중 아담론'을 그대로 답습하여 주장하고 있다. 즉, 창 1장의 인간은 영이 없는 물질로 창조되었고 창 2장의 인간에게 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창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는 '물질'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도 물질의 일부분이라 했으며, 창 1:26의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티끌에 불과했으나 창 2:7에 영혼을 넣어 영적인 존재가 되었으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돼 창조해 놓으신 물질을 관리하게 했노라 말하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물질을 창조하셨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과 2장 전 반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물질을 하나 하나 모양을 갖추어 만들어 가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 씌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본다면 인간도 물질의 일부분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2장 7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은 바로 티끌로 만드셨다는 뜻으로서 우리 인간이 티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도 물질의 일부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에게 영적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티끌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적 존재가 되도록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그때부터 이 사람을 '사는 영, 인간'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을 만들어 놓으셨을 때에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다른 어떤 우주와도 다르게 티끌로 만들어 놓으신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내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이명범, 상게서p.8)
"우리 인간이 피조물계에서는 물질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물질들을 관리하게 된 것입니다.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이명범, 상게서p.9)
"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인간을 '흙'이라고 했습니다. 흙이라는 것은 곧 먼지(dust)를 말합니다. 인간은 먼지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천년 역사 속에서 일점일획도 변치 않을 말씀을 통해서, 그분이 친히 만드신 사람이므로 확실하게 그 재료를 밝히고 계십니다. 히브리어 그대로 '야마다'(adamah), 곧 '먼지, 흙'으로 만드셨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말씀만으로 만드셨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으나,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이 먼저 만드신 우주 속의 한 지구의 흙, 먼지를 가지고 인간을 만드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그리고는 그 만들어 놓은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했습니다. 생기란 '네카마'(nechamah), 즉 '생명'이란 뜻이 있고, '영'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영을 불어넣었더니 인간이 '사는 영, 즉 성령'(living soul)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이며, 그 코에 영을 불어넣으심으로써 그때부터 사는 영(living soul), 곧 사는 존재(living being)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주 보잘 것 없는 흙의 일부분이면서도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들인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의 것(a part of heaven)과 땅의 것(a part of earth)이 같이 만난 존재는 인간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영'이 되었으니 이 사는 영에게는 살려 주는 영이 필요하며, 그 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p.P.45 - 46)
이명범에게 있어서 '죄의 저작자는 마귀요', 죄의 기원은 '창 3장에 나오는 뱀과 하와가 대화할 때'로 보았으며 '사단이 범죄 함으로 인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계획이 이루어 진 것이라' 했으며 심지어는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예수가 오게 되었고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순간에 이미 인간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히 2:14에 보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는 죄를 우리에게 갖다주는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이명범, 사단의 반역,p.32)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가야할 길은 자명합니다. 성경은 마귀의 속성을 '죄의 저작자'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서 우리는 죄에 동조하여 죄를 짓게 되는 인간의 상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에 동조했기 때문에 용서받는 길이 열리지만 마귀는 저작자이기 때문에 구원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귀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정해진 길뿐입니다. 회개할 길이 없습니다".(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 p.120)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마귀와 인간의 대화는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함인데 뱀과 대화는 이미 주종관계로 하나님의 질서를 깨트린 것. 질서파괴=혼돈=결국 죄와 인격이 타락한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마귀와 대화할 때 인격이 타락했다.'는 말은 대화라는 것은 동등한 대우함을 인정함인데, 인간과 뱀은 주종관계이므로 뱀과 대화할 때 인간과 뱀이 동등관계가 되었으니 인간 편에서는 타락이요, 뱀의 편에서는 지위상승이니 이는 질서의 파괴이다. 그런데 질서파괴는 죄이다. 그 이유는 '혼돈'이기 때문이다." (이명범, 84. 6. 11. 강의테이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고 난 뒤부터 죄를 범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었다는 것은 이미 속기 시작한 것이요.(뱀이 하와에게 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속임에 넘어가, 그만 범죄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명범,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172)
"그 다음 네 번째, 사단의 반역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안식을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하고 계셨는데 사단이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해야 했으며, 인간을 사랑해야 했고, 사단을 멸하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안식을 깨버린 것입니다. 사실은 사단이 범죄 함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계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이명범, 사단의 반역, p.17)
"예수가 죽었던 이유는 이 사망 권세를 깨기 위해 죽은 것이니까, 겉으로 볼 때는 마귀가 이긴 것같이 되었습니다. 즉 마귀가 속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배반할 때 이미 속은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우주 안에서 언제 속았느냐 하면 하와를 꾀여서 선악과를 먹일 때부터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마귀는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했고, 인간을 자기의 종으로 만들었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누가 오게 되어 있습니까? 예수가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가 와서 죽었다 부활했고 그래서 마귀는 스스로 망한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마귀는 자기가 망하는 일을 자기가 벌려 놓은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스스로 속은 자인 것입니다. 인간을 자기 종 만드는 것만 쾌재를 불렀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다는 사실에는 속아버린 것입니다. 사실은 선악과의 사실만 없었어도 마귀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인간으로 인간으로 오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의 사실은 그 때부터 인간의 구원은 구체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이 먹으면 누가 죽으리라고 되어 있습니까? 둘째 아담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죄가 없어지고 인간은 구원되고, 마귀는 사망 권세를 빼앗기니까 결국 누가 망한 것입니까? 마귀가 망했습니다. 제 꾀에 자기가 빠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이미 인간의 구원은 완성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굉장한 얘기가 쓰여 있는 것입니다. 이미 선악과 때 인간의 구원과 마귀의 멸망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명범, 상게서, p.p.35-36)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구원은 완성되었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때 완성된 구원을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 속에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구원을 가진 자로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고, 명령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소망 가운데서 사시기를 바랍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용서요, 하나님의 완전성입니다."(이명범, 상게서, p.37)
이 내용은 1983년 8월 29일 레마성서연구원 월요성경공부 시간 중앙대학교 교회에서 강의한 내용이다. 내용이 카세트 테이프로도 제작되어 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예수까지 죽게 했다고 말합니다. 선과 악을 경험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만일 정년 따먹는 날에는 인간의 영혼이 힘을 잃고 영의 권리를 잃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이명범, 하나님의 일, p.22)
이명범에게 있어서 '창 1장에 창조된 인간은 타락하기 전에도 하나님의 형상'(Imagodei)은 없었고 인간은 겉껍데기요 그림자요 옷의 역할일 뿐이며 하나님의 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요 인간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을 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을 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으로 표시되고 계신가를 열심히 찾아보아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공허하고 흑암이 있었다고 말하면, 그리고 빛이 있었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 중에서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셨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볼 때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그림자요, 하나님의 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의 역할을 한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연합되었을 때에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이명범, 상게서, p.p.20-21)
이명범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게 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그 증상으로 물질이 인간의 지배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버렸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먹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버리자 곧 물질이 독립을 해 버리고만 것입니다. 이 물질들은 모두가 인간이 다스리면 다스리는 대로, 양육하면 양육하는 대로, 인간이 관리하면 관리하는 대로 번성하기도 하고 사라질 수도 있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셨지만,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깨버리는 순간에 물질도 인간과의 관계를 깨버리고 인간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창세기 3장 17, 18절에서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만물도 인간에게 순종하도록 창조된 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이명범, 복음전달 매체로서의 인물, p.10)
이명범의 인간론은 이원론(영지주의)사상을 띠고 있다. '인간 존재는 -+- a part of heaven(선하고 영원함) -+ +- a part of earth(악하고, 약하고, 허무함)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함(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p.p.45-46, 1984년 6월 18일 강의테이프) 이명범의 인간관은 삼분설을 취하면서 영에는 인격적 직능이 없고 혼에만 지.정.의 인격이 있다고 주장함으로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全人. whole man)인 것을 무시하고 있다. 이 것을 도식화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영 +--- 지 인간 -+-- 혼 ----+--- 정 가 있다 +-- 몸 +--- 의 이 씨는 혼을 인격화하는 능력이라함 →자아의식을 느낀다. 정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라고 한다.(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p.p.9-11, 48-49, 1984년 5월 28일 강의테이프)
"불 신앙자는 바로 흙으로 사는 자, 반쪽으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에 관심이 없이 사는 자. 영에 관심이 없이 사는 자 그런 사람을 가르켜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명범, 경건생활을 위한 출발, p.624)
"원죄(Original Sin)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진 후 인간이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그 자체를 모르는 것이 죄인입니다." (이명범, 상게서, p.64)
즉 이 씨는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고 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자기 행복과 자기 앞날을, 자기 현실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는 것을 원죄(죄의 뿌리)라고 말하며, '죄의 소욕(desire Sin)=죄의 소원=죄의 줄기'라고 보며, 행위죄(자범죄)=죄의 열매 뿌리로부터 죄에 대한 소원이 올라와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명범, 상게서, p.65-66)
이 씨는 "진리는 죄를 망각하는 법입니다" (율법이 죄를 기억하는 법인 반면에 진리는 죄를 망각하는 다른 법,이명범, 상게서 p.88), "죄라는 것은 바로 곧 속은 것을 말합니다. 죄를 교사한 것은 사단입니다."(이명범, 예수는 속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p.p. 24-29)라고 했다.
기독교의 입장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 하실 때 6일간에 완성하셨을 뿐만 아니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창조하셨다.(창 1:31, 창 2:1-3, 출 20:11)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인간이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을 텐데 왜 선악과를 만들어 인간을 시험했는가? 그리고 미리 타락할 줄 알면서도 선악과를 만든 것은 결국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타락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며 따라서 인간타락의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며 결코 인간이 타락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실 뿐만 아니라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따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에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시지 않고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기만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기계나 로보트나 또는 잘 길들여진 짐승과 같이 주인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그런 존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런 저열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나 고귀한 존재로 만드셨는가? 그럼으로써 인간은 얼마나 자신의 존재에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그런 존재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방식을 감사할 수 있을 뿐이다. 비록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타락하게 되기는 했어도 그래도 인간을 그토록 고귀하게 창조해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성용, 기독교 신학개론, 기독교교육협회, p.67)
창세기 1:1에 '천지'를 창조했지 '물질'을 창조했다는 말이 없다. 이중 인간창조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단일창조이며(창 1:27, 창 2:7.19), 창 1장은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했다는 말씀이고 창 2장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 했는가하는 자상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창 2:4-9)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영이 없는 육체만 가진 인간을 먼저 만들고, 영이 있는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은 성경에 없는 이단사상이다.
그렇다면 죄의 기원은 무엇인가? 먼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고(창 2:17, 창 3:1-7), 둘째는 하와가 뱀과 대화할 때가 아니고 선악과를 따먹은 때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창 3:6-12).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것과 인간을 창조한 것은 사단을 박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다(사 40: 26, 45:7-8, 시 119:91, 히 3:4, 느 9:6, 시 19:1, 89:11, 148:4, 사 43:7,21, 말 2:15, 고전 10:31, 롬 8:29, 요 1:12, 롬 5:8).
선악과를 먹는 순간 예수가 오게 되었고 선악과를 먹는 순간 인간구원이 완성됐다는 이씨의 주장은 전혀 성경에 맞지 않는 이단사설이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인간이 타락케 되었고 인간구원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룩된다(요 3:16, 5:24, 19:30).
인간이 선악과를 먹게 된 증상으로 물질이 인간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성경적인 말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장치로 인하여 땅이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낼 것이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게 될 것과 여자에게 해산의 수고를 주었다"라고 했다(창 3:14-19). 이것은 금욕주의적인 이원론으로 설명한 것으로 쿰난 종파의 이원론과 같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 즉 인간의 육체를 비롯한 모든 물질을 말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창 1:1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는데 창 1:31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였다.
사람이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살전 5:23, 히 4:12) 혼에만 영적 능력이 있다고 한 것은 베뢰아 아카데미 김기동 씨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인간은 영 혼 물의 전인(whole man)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경험은 전인적인 경험이다. 원죄란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의 죄로 원죄는 죄책과 죄의 오염을 포함한다. 아담의 부패성을 상속하고 죄를 향한 경향성을 말한다, (롬 5:18, 요일 5:4, 엡 2:3) 그리고 죄의 결과는 위장이 아니라 사망이다(약 11:15).
이 씨는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피를 흘린 사실은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천지창조는 말씀 한가지로 이루어진 것이나, 피흘린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중한고초를 받으신 것이요 하나님 자신을 희생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피를 흘린 사실은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합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한 것에 놀랍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어떻게 다 창조하셨을까 안 믿어지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말씀으로 하신 일이니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더럽고 추악한 인간을 매일 매일 죄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중한 고초를 당하시는 그 엄청난 피 흘림까지 행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천지창조보다 위대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피흘려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것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은 하나님이 자신을 세상에 내놓으시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희생하심으로서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이명범, 하나님의 일, p.27) 이 씨는 말씀으로 이룩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천지창조는 말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 자신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중한 고초를 당하고 희생하신 것이 더 위대하다 함은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적 기준으로 말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성부수난설을 주장하고자 함이니 잘못된 주장이다.
4.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성
먼저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명범의 기독론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 다르다는 것이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런데 요한복음 6장 63절 후반절을 꼭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했으니 하나님 말씀은 영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의 육신은 흙에 속합니다. 이 표현은 대우를 많이 해주어서 흙인 것이지 정확하게 말하면 먼지입니다. 우리는 티끌로, 즉 먼지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대로 하면 티끌이요, 먼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육체는 무엇이 되어 오셨다고 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왔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은 우리의 영의 저주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명범, 이것이 복음이다 p.21)
"예수님의 육신은 우리와 똑같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지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며 예수님의 육신은 우리의 죄와 비중이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영이 죽은 죄를 담당하신 것 아닙니까? 바로 우리의 원죄를 전부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행위의 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의 육신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고 우리의 육신은 티끌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영의 저주를 대신하니까 우리에게 생명이 있게 된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영의 저주를 해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과 온 인류의 생명이 서로 대등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이 죽으신 것은 온 인류의 영의 저주를 대신하신 것이므로 영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명범, 상게서 p.23)
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우리와 다른 "영의 육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론에 위배된다. 이명범 씨는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인데"(요1:14) "그 말씀은 영"(요6:63 하)이라고 하여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영의 육체"라고 결론짓고 있는데 이것은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씨와 똑같은 사상이며(김기동, 태초에 계신 말씀, pp.40-41상) 이러므로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씨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약화시키거나 부인하는 아볼리나리우스 주의적인 이단으로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 다른 '영의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고 주장하므로 그의 사상은 또한 유티케스주의적 이단임이 명백하다.
이명범 씨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는 "영의 육체"로서 우리의 육체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불완전한(반쪽) 구원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시는 양성(兩性)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양성론은 A.D.451년의 칼케론 회의에서 정통교리로 결정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론은 "신성과 인성의 관계는 서로 혼돈치 않으며(confuse) 바꿀 수 없으며(exchange) 쪼갤 수 없으며(separte) 분리할 수 없다(divide)"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양성론의 확정되었으며 현재까지 이 양성교리는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가 되어 있다(전성용, 기독교신학개론, p.91).
여기서 신인양성론 교리에 관한 오류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초대교회 당시 알로기파와 에비온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다. 개혁시대의 쏘시니안파와 유니테리안파와 오늘의 현대주의 자들도 이러한 사상을 따른다. 초대교회의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부당한 것으로 보았으며, 그리스도를 반신(半神)으로 간주한데 반해 아볼리나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신적 로고스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영을 대신해서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스토리안파는 한 인격 속에서의 두 본질의 결합을 부인했으며, 유티커스파는 두 본질을 완전 분간하지 않았다(루이스벌코프, 기독교교리 요약, pp.103-104). 성경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론은 여러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골 2:9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눅24:39에는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고 하였다. 그외에도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을 증거하고 있다(사9:6, 요1:1, 롬9:5, 요8:40, 마26:38, 히2:14).
다시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씨 주장을 더 살펴보자. 레마선교회 이명범 씨는 기독론에서 "아볼리나리우스 주의(Apollinarism)"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그가 쓴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이명범)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피흘리기 위해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일개의 목수 아들 보잘 것없는, 정말 형편없는 자로 보았습니다. ... 신이 어떻게 이땅에 육체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느냐고 생각했습니다"(p100). "그러나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요1:1, 6:13) 유일하신 이유는 피를 흘리기 위함입니다."(p101)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은 비물질이고 형체가 없기 때문에 피를 흘릴 수가 엇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곧 성육신입니다"(p100). "하나님은 그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위에 오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은 우주 속에서 말씀으로 나타니신 다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육신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p121). "부활하신 그분은 하나님께로 가시고 다시 하나님은 영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분을 성령이라고 부릅니다"(p121).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실제적인 존재로서 오신 그 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초월해 계시는 그 하나님 우주를 초월해 계셔서 무소부재하고 영원히 불변하며 전지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한하셔서 육체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속으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속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부를 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p133).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자 구원자로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을 때 우리는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P134). "(말구유에 탄생했다는 것)...성경이 이를 밝혀둔데는 달리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이땅에 오실 때 그러한 보습으로 오셨다는 것뿐입니다. ... 하나님의 독생자 귀하신이가,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는 그 엄청난 사실은 사라져 버리고 구유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 이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p167-168). "마가복음, 요한복음도 예수께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셨는지에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본질적으로 다를 뿐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르신 하나님께서 죽어 마땅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는 사실만이 공통적으로 다루어져 있을 뿐입니다"(p168). "(가상7언보다)더 중요한 것은 죄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p168). "그래서 고린도전서 15:54이하에서는 생명(Living Soul)인, 즉 사는 영, 인간에게 살리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로 필요하며,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것입니다)"(p183). "('여호와'라는 두려워서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는)... 그 하나님이 이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분이 다시 인간에게 나타나사 인간을 도우실 때에 성령으로 오셨다고 되어있습니다"(p208). "왜 사람들은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메시야 이심을 믿지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를 인간으로만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예수를 인간으로 알기 때문입니다"(p104). "인간이 예수를 볼 때는 하찮은 목수의 아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 사람 정도로밖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이야기를 빼놓습니다"(p147). "기독교의 특징은... 이것을 신학자들은'descending ascending pattern'이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로부터 인간에게로 내려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신 다음,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시고 인간은 그분이 해결하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p147).
이제 기독교 입장을 살펴보자. 아볼리나리우스는 제2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정죄된 자로서 저는 "보통 사람이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가진데 반해 그리스도는 육체와 영혼 및 로고스로 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nous, mind)이 없다고 하는 사상이다. 즉, 아볼리나리우스주의 (Apollinarism)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인격 즉 신성과 인성을 부여한 사실에 따르는 위험을 지적하면서 지나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탓으로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반대위해, 몸을 입으신 하나님(God Incarnate), 육을 가지신 하나님(Fleshbering God), 여자에게서 난 하나님(God born of a woman)이라고 하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인간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아들로 태어났다가 자기의 신성안에 흡수해 버렸다고 보는 설이다. 이것은 가현설(假顯說, Docetism. A.D.70-170)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 되시는 신,인 양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다시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을 살펴보자. 레마선교회 이명범 씨는 '하나님의 주권보다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이 열등하다.'는 견해를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실제적인 존재로서 오신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초월해 계시는 그 하나님 우주를 초월해 계셔서 무소부재하고 영원히 불변하며 전지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한하셔서 육체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속으로, 이간이 살고 있는 세계속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과 예수 스리스도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부를 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 p.133). "하나님의 주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하나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차이가 큽니다"(84년 5월 7일 강의 테이프).
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이다. 하나님의 주권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열등하다는 말은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동격이다. 그러나 성부의 사역이 다르고 성자의 사역이 다르니 아버지는 창조주요, 아들은 구세주이시다. 레마선교회 이명범의 주장을 다시보자. 이명범의 속죄론은 교부배상설(Ranson, Theory) 중 특히 오리겐(Origen)의 대상위마설과 유사하다.그리스도의 신성은 그의 인간성 안에 감추인 채로 이 세상에 왔으며 악마는 그리스도를 속금으로 받고 죄인을 자기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하였지만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여 악마의 장중에서 탈출하였으므로 결국 악마는 하나님의 술책에 빠졌고 그리스도에게 속았다. 이것이 오리겐의 대상위마설(對象僞瑪說)인데 이씨는 그의 속죄관에 있어서 오리겐의 사상과 유사하다.
직접 인용해 보자. "안식일에 속죄되었지만,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속이는 세력'인 마귀에게 속지 않고 오히려 마귀가 속은 것이다." (이명범, 84년 6월 18일 강의 테이프)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속이는 게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사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그 사단이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1절에는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단이라는 것은 속이는 자라는 말입니다."(이명범, 예수는 속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p23)
"인간과 환경을 갈라 버리고 인간과 모든 것을 갈라 버림으로 고통과 어려움과 좌절을 주고 있는 속이는 세력이 분명히 이 땅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성격은 스스로 속은 자이기 때문에 그는 속이기도, 속기도 하는 존재이며 사단의 성격은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끊임없이 속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속이는 일을 합니다. 바로 속이는 세력인 사단은 자기 스스로 속았기 때문에, 자기가 혁명을 일으켜서 성공하리라고 속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적이 가능하다고 속았기 때문에, 그는 만나는 자마다, 그가 대하는 자마다 속이는 것을 그의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이 엄청난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려면 오직 속지 않으시는 유일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속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고 우리의 삶속에서 속지 아니할 그분의 뜻을 따라야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이명범, 상게서, pp.24-25).
"이와 같이 사단이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먼저 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첫째, 속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속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시 시작했다는 것이 이미 속기 시작한 것입니다. 네가 만일에 그 선과 악을 경험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너도 선과 악을 경험하여 지혜가 높아져서 하나님같이 되라라고 속았기 때문에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침투는 언제나 인간에게 속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속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이명범, 상게서, pp.27-28)
기독교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명범은 속죄론에서 마귀는 '속이는 세력'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속지않는 것'이라 했는데 오히려 마귀가 '속았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에 관한 이론이 기독론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했느냐에 관한 이론이 속죄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부배상설에는 인간이 악마의 노예이며 속죄의 대상이 악마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나아가서 그리스도가 악마를 속였다고 하는 등은 허황된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