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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5일 주일메시지(아산UBF 마가복음 제 22 강)
언약의 피
말씀 / 마가복음 14:1~26
요절 / 마가복음 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오늘 말씀은 우리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가장 뚜렷하게 정의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왜 그리스도이신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셨는지 기록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고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임박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할 때,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아홉가지 재앙을 당하고도 파라오는 내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죽음의 사자가 온 이집트를 덮어 모든 장자들을 죽일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지나가고 넘어갔습니다. 이 구원을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간 지키는 것인데, 누룩없는 빵을 먹습니다. 대제사장 그룹은 사두개파들이었고 서기관들에는 바리새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기들의 이익에 큰 장애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영향력이 큰 것에 대하여 심각한 도전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들은 은밀하게 아주 교활한 방법으로 죽일 궁리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대의 여러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법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총독의 승인 없이는 공식적으로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할 수 없었기에 비정상적이고 간교한 방안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이들은 유월절에는 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역사기록을 기초로 추산해볼 때,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보내고자 하는 원근각지 유대인들이 최소 250만명 이상 모여들었고 그 중에는 예수님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유월절에 예수님을 체포, 사형 시키면 지지자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보았습니다. 소요사태를 유발하면 로마당국이 가장 예민해 하는 것으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월절은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죽으십니다. 십자가 죽음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예수님께 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류구속 역사를 위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께 대하여 성전을 중시한다는 사람들, 안식일에 철저하다는 사람들은 죽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대우 이런 대접을 받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베다니의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마을입니다. 이곳에 전에 나병을 앓았다가 나은 시몬이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비싼 향유인 나드를 옥합째 가져와서 깨뜨리고 옥합에 담긴 향유 전체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께 부어드린 비싼 향유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제일 비싼 향유를 다 부어드려도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렇지만 사람들 중에는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식사자리였기 때문에 화를 낸 사람은 제자중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유다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화 낸 이유는 허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자가 부어드린 한 옥합의 나드 시세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듯한 말을 하였지만 여자의 행동을 ‘허비한 것’이라 비난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돈이 아까웠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향유 부은 여인을 변호해주십니다. 그녀가 한 일은 ‘좋은 일’임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을 인정하시면서도 지금은 대단히 특별한 때임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와 항상 하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곧 죽으실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단순하게 향유를 부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헌신이 깊은 영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하십니다.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향유 부은 것은 허비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 그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 하시고 여인의 행동은 복음과 함께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 또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무엇을 드린다고 한들 예수님의 은혜에 다 보답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드려 예수님께 드린 것을 다 받아주시고 그 가치를 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대제사장들에게 갔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자 하였지만, 유다로 인하여 예수님 죽이는 일을 보류하지 않고 다시 실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돌아가십니다. 일찍이 세례요한이 증언 하였던 대로(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새로운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예수님께서 그 고귀한 피를 유월절에 뿌리십니다.
2. 유월절 만찬
일주일간의 무교절의 첫 날,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었습니다. 무교절은 유대달력으로 니산월 14일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만찬을 어떻게 준비할지 여쭤봅니다. 13절에서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 제자에게 성내로 들어가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서 따라가 그가 들어가는 집 주인에게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고 하면 그가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여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성내에 가보니 물 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을 만났고 말씀하신대로 따라가 보니 그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을 팔기로 한 가룟 유다에 의하여 유월절 만찬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유다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많은 사람들과 떠나 예수님께서 제자들하고만 있는 때와 장소를 알려주기로 하였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만찬을 시작하시며 먼저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러자 각 사람들이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며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 2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란 같은 그릇에서 음식을 먹는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하신 말씀이 응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찬에서 먼저 예수님 파는 사람을 언급하는 것은 끝까지 그의 영혼을 사랑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또한 그의 배반과 예수님의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죽음이 주변 환경이나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길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주신 길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만찬 중에 떡을 떼어 주심으로써 이제 예수님의 몸도 떡과 같이 찢어질 것을 상징적으로 예고하십니다. 또한, 떡이 우리 몸의 에너지원이 되고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이 되듯이 예수님의 고난 받으심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23절과 2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이스라엘 각 집들에게 내리는 죽음의 사자를 피하기 위하여 어린 양의 피를 흘리게 하여 죽음의 사자가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지나가게 하였던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유월절 규례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모든 인간, 모든 인류에게 임한 죽음! 그것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결과가 아니라 죄로 인한 결과로써 죄 지은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저주와 형벌 그리고 멸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애굽을 뒤 덮었던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듯이 예수님의 피를 믿고 그 마음에 영접한 사람에게는 죽음의 형벌, 영원한 멸망의 저주가 사라지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사람이 왜 불행한가? 모든 아름다운 것을 죽음 때문에 잃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슬픈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음 때문에 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왜 허무한가? 그 어떤 중요한 가치를 가졌든지 간에 모든 소중한 것들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잊혀지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9:22) 우리 인생은 창조주에 의하여 지음 받았으면서도 창조주를 기억하지 아니하였고, 창조주를 찾지도 아니하였으며 창조주를 거슬러 살았습니다. 마음의 원하는대로 살고 세상풍조를 따라하며 살아갑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상처주고 부담주며 살고 지나온 인생길에는 실수, 무례함, 잘못됨, 무책임함, 무기력함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모든 과오와 실책들은 영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영벌을 불러옵니다. 어떤 누구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인생의 과오와 그 심각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보려고 깨끗하게 살며 모든 욕심을 버리고자 무한한 애를 써보았던 사람은 인생을 마치며 끝내 고백하였습니다. ‘내 죄가 수지산과 같다. 나는 이제 아골 골짜기로 들어간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과오로 점철된 인생, 근본적인 죄에 대한 심판 영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도록 문설주에 피뿌림을 위하여 죽임 당하는 유월절 어린 양같이 우리 모든 인생들이 인생의 종말에 기다리는 무서운 심판을 피하도록 대신 피흘리십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모세가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 피는 제단에 바쳐진 번제와 화목제물의 피였습니다. 피의 절반은 이미 제단에 뿌려졌고 그 나머지를 모세는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는 언약이 대단히 중대하고 신성한 것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에서 뿌려진 이 피를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언약의 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만, 출애굽기의 피는 앞으로 일어날 영원한 속죄를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흘리시는 피는 모든 제사제도가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됨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이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시며 피흘리는 것은 인류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사함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비슷하지만 효력과 범위가 완전히 확대됩니다. 불완전한 속죄제사에서 완전한 속죄제사가 되게 합니다. 매년 반복하여야 하는 속죄를 단 한 번으로 속죄가 영원히 완성됩니다. 이 피를 보고 믿을 때,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다 사하시고 죄 사함받은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보고 어떤 죄든지 깨끗하게 씻어주고 거룩한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해주십니다. 새 언약의 피는 더 이상 여러번 짐승을 대신 죽여가며 속죄를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 언약의 피는 하나님과 우리 인생이 연합하게 해주는 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의 시대를 열고자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 피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리십니다. 십자가의 저주,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죽음은 모두 우리를 하나님과 맺는 영원한 새 언약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피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친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25절,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을 말씀하시는 것은 이제 십자가 고난을 거쳐서 장차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새 것’은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것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지만 이 고난은 그 뒤에 있는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완수하십니다. 그런 후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장차 왕의 왕 주의 주로써 새로운 땅과 새로운 하늘의 새 시대를 열어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인 금요일날 죽으시는데, 그 직전 목요일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과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 심지어 제자들 조차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임박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 그 의미와 가치와 비중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새롭게 기억하고 기념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1년치 식사를 하루 날 잡아서 한꺼번에 해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1년 동안 마실 물을 한꺼번에 마셔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의 생명을 위하여 물을 마시고 밥을 먹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날마다 때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나는 거룩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나의 저주는 사라졌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마음껏 나의 아버지로 부르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 모든 죄를 도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마음껏 감사하고 찬양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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