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거가 유교문화권이었든 일상에서도 체면과 위신에 민감한 때문이었든 좀체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쓴 좋은 글들이 많지 않고 더구나 산악인들 중에서도 그런 글을 쓰는 이들이 드문 실정이죠.
제가 생각하는 국내 산악인들 중에 자신의 산과 인생에 대해 제대로 글을 쓰는 두 사람을 꼽으라면 김영도 선생님과 남난희 님입니다.
두 분 다 저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한 인생 경험과 산행 경험들을 하셨기에 자신의 산과 인생을 논하더라도 과장이 없고 자연스러우며 공감 가는 성찰과 글쓰기로 이어지나 봅니다.
이번에는 김 선생님의 수필집이 나왔더군요.
<서재의 등산가>, 근래에 썼거나 몇 년 전 지면에 발표한 글들을 새롭게 손본 것들로서 적어도 90대에 들어선 다음에 쓰신 건 확실한 내용들이라, 여전히 왕성한 번역작업과 집필활동을 이어가는 노익장의 면면들을 엿볼 수 있어 저를 포함해 자꾸만 게을러 가는 후배들에겐 더없이 좋은 지침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1990년대 중반이었을 겁니다.
당시까지 산악서적들이 귀해 그랬던, 산서에 관심 있는 사람들 또한 산악계에서 빤했던 간에 어찌어찌 알게 되어 몇 번 만나게 된, (모 등산학교에서 산서에 대해 강의도 하신) 선배 한 분과 하루는 김영도 선생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서울시는 분명했지만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인지 기억조차 없는데, 여하튼 멀리 도봉산이나 수락산 등이 멀지 않았던 것 같고, 반갑게 맞아주신 선생님께선 깔끔하게 정돈된 서재를 보여주시면서 손수 커피까지 끓여주셨습니다.
산악서적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큰 책장과 너른 책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이 책 <서재의 등산가>에 언급된 북향의 서재가 바로 제가 그때 본 그 서재가 아닐까 싶군요.
(이 책 속의 내용으로 보아 북한산 자락 우이동 주택에서 수락산 가까이 이사 후 더는 이사한 이야기가 없기는 하지만) 그후 선생님께서 이사를 하셨다면 그 서재는 아닐 테지만 아무렴 어떨까요.
책상까지 바꾸진 않았을 테니 바로 그 책상에서 선생님의 숱한 주옥같은 글들이 나왔을 건 분명하겠기에....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제가 김 선생님을 만나 뵌 기억들을 떠올려봅니다.
그후 몇 번 산악행사장이나 산서회 모임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뵌 적들이 있는데, 개인적인 만남이 아니라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후 새천년에 접어들어 제가 알프스에 본격적으로 가 지내면서 일년에 한두 번 비시즌에 한국에 잠시 왔을 때, 아마 제가 무슨 책인가를 낸 후여서 그랬던 간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광화문 근처 어디에서 밥을 한 끼 사주셔셔 맛있게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1년 전 여름에는 몇몇 선배님들과 함께 알프스를 찾아 샤모니에서 며칠 머무시면서 잠시 저의 자그마한 숙소를 방문해주셨죠. 사실 제가 제대로 대접도 못한 미안함이 들곤 합니다.
구수한 커피 내음이 아닌 케케묵은 등산장비들의 손때묻은 땀 냄새가 온방에 진동한, 원룸 모서리에는 작은 책꽂이에 못다 꽂고 쌓아둔 책들이 역시 곰팡내 나게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북향의 좁은 방에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선배님들께서 무릎을 맞대고 앉아 마치 저를 응원이라도 하듯 도란도란 즐거운 대화를 나눈 추억이 있습니다.
그후 제가 비시즌에는 좀 더 오래 고향에 돌아와 있게 되면서 좀체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지만 딱 두 번, 산서회의 젊은 회원이 고향에서 결혼식을 하면서 선생님께 주례를 부탁한 때와 그 몇 년 후 역시 산서회 주관으로 대구에서 산서 전시회를 할 때 선생님께서 자리를 빛내주셨죠.
늘 그렇지만 많은 청중들 앞에서 (1924년생으로서 당시 90세가 넘으신 연세의 자그마한 체구에도 어찌 그토록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특히 산과 인생에 대해 논하시는 말씀은 마치 고승들이 설파하는 사자후 같은 큰 울림의 가르침인지라 감동적이곤 했습니다.
그후 통 선생님을 뵐 기회는 없었으며 바쁘지도 않은 저의 일상에서도 좀체 서울에 갈 일이라곤 없었고 (피치 못할 일로) 한두 번 가더라도 지인들에게 혹 선생님께선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 정도만 묻곤 했습니다.
그러다 얼핏 풍문으로 이 책 <서재의 등산가>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던 겁니다.
주문한 책 포장지를 뜯고 책 표지를 보며 첫눈에 들어온 글귀가 가슴을 철렁이게 하더군요.
“나는 드디어 산에서 멀어졌다. 마음과 달리 몸이 따르지 않는다. 한때 뛰놀던 산을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몸이 따르지 않아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 가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면 산악인으로선 불행일 수밖에 없겠기에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싶은, 더구나 이제 1,000미터 고지에선 한창 가을인지라 가을을 탄 저의 먹먹한 가슴을 안고 페이지들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들을 넘길수록 저의 걱정은 기우였으며 페이지마다 적확하고 정갈한 논리와 문체로 산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생각들을 접하면서, 그리고 비록 몸은 서재에 있지만 산서의 세계를 통해 오지의 숱한 고봉들을 열정적으로 탐험하며 즐기고 있는 모습을 엿보면서 ‘산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여기서 한국산악계의 기둥이신 김 선생님에 대한 설명은 더는 사족일 터이기에 생략합니다.
이제껏 개인적으로 만나뵐 때마다 사실 제가 막내아들뻘인 까마득한 후배였던 지라 (평소에도 말이 없기로 유명한) 제가 선생님께 말인들 제대로 붙일 사이는 아니었죠.
한창 몸으로만 부대끼며 산을 접한 투박한 저로서는 달변인 선생님과 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누기에는 큰 격차가 있었던 셈이죠.
아마 제가 여성 산악인이었으면 선생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즐겁게 다정하게 나눌 수 있었진 않을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해봅니다. ㅎㅎ
물론 선생님 또한 딱히 저에게 무슨 말이든 해주신 건 없었습니다.
그저 지켜보는 관계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대목들을 접하면서 이제는 얼마든 선생님과 대화할, 재미나게 산의 역사와 산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싶은 자신감이 들곤 합니다.
페이지마다 이 대목에선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 하는, 사실 그전 몇몇 글들에선 공허하게만 들렸지만 이번 책 속에서야 제대로 몇몇 젊은이들의 무지를 탓하는 듯한 대목도 엿볼 수 있어 그런 변화에 대해 물어도 보고 싶은 등....
이제는 저 또한 나이가 들어 말주변이 좀 늘어 선생님과 참 재미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질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제보다 십 여 년 선배 몇 분들이 서울시의 한 오랜 커피솝에서 선생님과 무척 재미난 산에 대한 환담을 나눴다는 책 속의 내용에 그 선배들이 부럽기까지 했으니....
오래 전 알프스에서 산서들을 배낭에 넣어다니며 읽던 책들 중에 월터 보나티와 리오넬 테레이, 리카르도 캐신의 책이 있는데, 김 선생님은 그들이 남긴 유일한 책들인 그것들을 자신이 번역한데 대한 자부심을 피력한 대목에서 아차 싶은, 제가 그걸 먼저 번역할 걸 하는 아쉬움도 들더군요.
게으른 자에겐 기쁨도 덜한 셈이죠.
알프스에서 원서로만 읽은 그것들도 조만간 번역서도 읽어보고 싶은 건 김 선생님의 손길을 느껴보고 싶기에...
한편 역시 오래 전에 제가 당뒤 제앙을 오르며 알피니즘 최고의 화두인 머메리의 “정당한 방식으로”를 생각한 사실을 선생님께서 어디서 아셨든 비록 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서너 번 언급해주셨는데, 산과 산서를 매개로 살아가는 산악인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더군요.
더구나 알피니즘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언급하셨는데, 노 산악인의 진단과 당부가 더 큰 무게로 느껴집니다.
언제 또 선생님을 만나 뵈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요즘 종종 100세의 김형석 선생님 칼럼을 즐겨 읽는지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100세까지 선생님께서 남기실 좋은 글들을 계속해서 접하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이 책 대목에서 밝히셨듯 선생님은 산악계 일이나 인물 동향을 접하면 그에 따른 관련서적을 뒤적이곤 하신다는데, 북향 서재에서 책을 들고 따뜻한 남향 베란다로 나와 독서하는 모습이 서정적으로 저의 뇌리에 그려집니다.
사실 저 또한 한동안 자일을 묶지 않은 터라 서재의 등산가가 되고 말았는데, 역설적으로 팔다리 멀쩡한 제가 오히려 더 절름발이 산악인이 된 건 아니냐 하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겁습니다.
생의 모든 에너지를 산에 대한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그 의지와 열정만은 후배 산악인들에게 좋은 본보기이기에 앞으로도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십사하는 주제넘고 어리광 섞인 부탁을 또 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번역하실 다음 책, 다음 글들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첫댓글 김영도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산서들은 많이 읽었는데... 직접 지은신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네요.
허선생님의 신뢰감 높고 재미난 독후감을 대하니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저도 한 번 뵙고 싶기는 한데... 허선생님 서울 나들이 때 기회 한 번 만드시죠. 저도 곁다리로...ㅎㅎ
요즘 인생 후반을 생각하면서 김형석 교수나 김영도 선생님 같은 분들의 노년이 저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는 듯합니다.
예, 어느덧 저희도 반백년을 훨씬 더 살아 그런지 인생 후반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럴수록 앞서 열심히 사신 어르신들의 모범들이 그나마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조그마한 등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울 나들이에서 김선생님을 함께 뵈올 그날을 희망합니다.
그 전에 책으로 먼저 만나보시면 저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실듯 합니다.
김선생님께선 철학을 전공하셨지만 아마 논리적 사고 등은 버들치님과 비슷할듯도 싶네요. ㅎㅎ
김영도(金永棹, 1924년 10월 18일 평북 정주 ~ )는
대한민국의 등산가 겸 정치인이다.
학도지원병 입대 하여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대위 로 예편 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제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77년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이었으며 ,
1978년 북극탐험대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나의 에베레스트》,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산의 사상》 등이 있다.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김영도” 선생님 에 대한 허 대장님의 회한(悔恨) 에 가까운 글을 읽다보니
그분의 삶의 궤적이 매우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선생님의 약력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 와 같은
동갑인 갑자년 쥐띠 에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대위 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혹시, 저의 아버지 성함과 사진을 보여드리면 전우(戰友)로
지내 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흥분이 되는군요
(그 당시 육군장교 가 많치 않았던 시절이었고, 설령 아니어도
산악인 대 선배님 으로 존경심을 갖는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침 수락산 근방 에 사신다니 당장 <서재의 등산가> 책을 구입하여
이번 추석 귀경에 찿아 뵈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해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이 힘들다면 먼발치에서라도... )
steve님께서 아버님을 무척 많이 닮으셨습니다. 주연급 영화배우 같으십니다.
김영도 선생님과의 조우가 누구보다 간절하실 것 같습니다. 언젠가 꼭 만나시길 응원합니다.
@*now 어렸을 적 친척에게 많이 들었습니다.(애비 빼다 닮았다고)
그때는 왠지 그 말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 닳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굳이 전우 관계를 확인 하지 않아도 지금쯤 저의 아버지 의 모습을
김도영 선생님 으로 가늠 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사회에는 덕망과 인격이 올곧은 원로 가 많이 계셔야 합니다.
흔히 철학이 밥 먹여 주냐 는 자조석인 말들이 희자 되어
지금 우리나라의 교욱은 문사철 (文史哲) 이 홀대를 받으며
돈 되고 출세 지향적으로 만 치닫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제 100세가 넘으신 “김형석”교수님 과 네 살 젊으신 “김영도”선생님 과 같은
원로께서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끝으로, 허대장님께서 이렇듯 좋은책과 좋은분을 알려주시어 감사드립니다 ^^
다가오는 "한가위"를 맞아 행복함과 풍요로움이 함게 하기를 기원합니다.
스티브님의 아버님께서도 아주 훌륭하시고 본받으실 분이셨군요.
26년생이셨던 저의 아버님 또한 6.25에 참전을....
예, 말씀처럼 올곧은 원로들이 존경받고 그분들의 말씀이 사회에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건강하고 보다 민주적인 사회, 보다 부강한 국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진 않을까 싶습니다.
김영도 선생님께선 동해안 포항 위 ?해변 전투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지인들도 잘 만나지 않으신다는 말도 있는 등... 스티브님께서 만나시도록 주선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예, 스티브님께서도 곧 있을 추석 건강하고 즐겁게 잘 쇠시기 바랍니다.
조만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산에서 또 반갑게 만나뵙길 희망합니다.
@허긍열 저야 6.25전쟁 이 끝난 후 한창 전후복구 중 일 때 태어났지만,
들은 애기로는 아버지는 먼저 가족들을 대구로 피난시키고 작전중 청계천 방향에서 지프를 몰고 가다
괴뢰군에게 총격을 받고 차량과 함께 청계천으로 굴러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
민간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한강철교를 건너 탈출 했다고 하는군요.
그 당시 옆구리에 총상을 입어 목욕탕에 갈 때면 흉터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후일 허 대장님께서 김영도 선생님 과 자리하시게 되어 여담으로
저의 아버지 사진을 보여드리시고 혹, 기억나시는지 여쭈어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ㅎ
상관으로는 김정렬(국방장관)김현옥(부산시장,서울시장)이었습니다
@steve 아... 그러셨군요.
아버님 무용담이 대단하십니다. 무공훈장을 받으신 건 아닐지.... 존경스럽습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혹 김영도 선생님 만나뵈면 엿줘보겠습니다.
한편 저의 아버지 무용담은 후일 만나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ㅎㅎ
김영도 선생님의 신간을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직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선생님께 살짝 삐쳐? 있었는데 저 역시 게으른자가 빼앗긴 기쁨 때문이라 이제 선생님의 책을 보며 치열한 정신세계와 삶의 한켠 이라도 엿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짝 삐친 이유는...몇 년 전 초급 불어 인삿말 겨우 하는 수준으로 리오넬떼레이의 책을 번역해 보겠다고 이년 째 낑낑대고 있을 때(물론 열심히는 못했지만)
김영도 선생님께서 덜컥, 하루재출판사에서 '무상의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을 하셔서 저는 한동안 맥이 풀려버렸다는...물론 제가 여렵사리 번역을 했더라도 출판이 되었을 지도 막연하고...
박스째 발효중인 이전의 제 번역책 헤르만 불의 등반 일지인 '헤르만 불의 일기' 같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선생님께서라도 늦지않게 번역해주셔서 늦게나마 마음 바로잡고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이 가을 마음 곱게먹고 김영도 선생님의 '서재의 등산가' 와 하루재에서 출판한 '무상의 정복자'도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언젠가부터 내 손을 떠난 '리오넬떼레이'의 아래 숙제도 내 자신을 위해 다시 시작해얄지 어떨지...
@*now 봉수아~
지금이라도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now, 시작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