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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의 새로운 동향과 전망에 관한 연구
-대학서예와 진로를 중심으로-
캘리그라퍼, 캘리존대표 장운식
1. 머리말
지난 달 10월에 전라북도 예향 전주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었다. <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개최된 서예포럼이 바로 그 특별한 행사였다. 필자가 특별히 지난 서예포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이번포럼의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학서예교육의 새로운 화두인 ‘실용서예’와, 서예의 ‘인문학적 특성’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설정해 두고, 그에 대한 논의와 발전방향을 토론하는,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포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을 기획한 전북대의 김병기 교수는 기조발표에서 한국서예의 불안한 현주소와 그 원인을 다각도로 언급하면서 교육정책과 방법의 개선, 서단의 내부개혁, 서예의 영역확대 등을 지적하였다. 경기대의 박영진 교수는 발표문에서 “취미와 직업, 학술과 예술, 전통과 현대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하며, 전통서예와 실용서예의 연구와 개발을 병행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원광대의 여태명 교수는 “서예가 보편적인 시각예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대학서예의 새로운 출발을 역설하였다.
포럼에서 발표 했던 각 대학 서예과 교수들의 논지는 여태명 교수의 주장과 대체로 대동소이하였으며 특히, 전북대의 김병기 교수는 “한국서단은 세대의 전환, 교육방법과 사승관계 및 서예의 진로에 대한 전환과 혁신이 절실하다” 고 주장하였다.
그동안 한국 서단에서 ‘실용서예’를 입에 담는 것은, 정통이 아닌, 마치 ‘이단’처럼 여겨져 온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통서예만을 신성시하며, 순수서예의 일방통행 속에서 이유 없이 홀대를 당했던 것이 그동안의 ‘실용서예’였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서, 한국서예의 상아탑을 자부하는 각 대학의 서예과 교수들이 한목소리로 ‘실용서예’를 미래 서예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역설하고 있다는 점은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포럼의 좌장을 맡았던 김수천 교수는 모임을 뒷마무리 지으면서 “이번 포럼에 참석한 대학교수들이 인문서예와 실용서예가 균형 있게 발전되어야 한다는 공통적인 견해를 내놓은 것은 대학서예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전북의 주요 일간지에서도 머릿기사로 ‘대학서예의 교육정책 방향전환’을 대서특필 했다.
필자는 본고에서, 한국서예의 현재를 주체자의 경제활동적인 측면에 기준을 두고, 대학서예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실용’이란 화두가 거론되고, 대학의 서예과가 다투어 교육 방향의 전환을 언급하는가에 대해 한국서예의 과거와 현재에 비추어 간략하게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한국서예의 새로운 트렌드인 ‘실용서예’의 전반적인 상황과 전망을 살피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실용서예’에 대한 의미부여를 통해, 한국서예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일면의 미래상을 결론으로 삼고자 한다.
2. 오늘의 한국서예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쓰거나, 아름답게 쓰는 것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이 있지만, 서예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며, 창의성과 정신수양에 이르기까지 한사람이 평생 공부해도 도달하지 못할 방대한 분량의 대주제이다. 또한, 여기에 당연히 추가 되어야 할 것이, 그동안 금기시 여겨져 왔던 서예의 실용적 측면이다.
앞서 머리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순수’와 ‘실용’은 분리 된 것이 아니다. 서예사적 견지에서 본다면 ‘순수’와 ‘실용’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이 분명하다. 더욱이 21세기 서예의 활로를 위해서는 서예가 ‘예술’이기 이전에 먼저 ‘실용’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수천은 그의 논고에서,
오늘날은 과거와는 달리 서사의 요구가 옛날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개방되어있다. 따라서 이에 맞는 서예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서예를 개발해야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생활의 도처에 ‘문자’가 산재해 있으며, 문화인에게 ‘문자’가 없어서는 단 하루도 살기 어려울 것이다. ‘문자’는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화적 산물이면서 하나의 예술임에 틀림없다. 한국서예의 과거와 오늘에 있어서, 서예주체자의 경제활동과 그 배경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서예의 과거와 현재를 점찍어 구분 할 수는 없지만, 본고에서는 본격적인 상업적인 성격의 실용서예가 싹트기 시작한 21세기 이후 현재까지를 ‘현재’로, 그 이전을 ‘과거’라 정하고자 한다.
과거 서예의 향유계층은 대체로 선비나 양반으로 비교적 경제생활이 안정된 사람들로써, 서예를 하나의 교양과 취미로 정진했던 계층이 많았으며, 특별하게 심취한 일명 마니아계층도 물론 존재하고 있었다. 그 특별한 사람들도 온전히 서예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대부분 학자나 정치가가 대부분이었다. 직업서예가로 말하자면, 조정의 서사관이나, 소설 등을 베껴 쓰던 전문 서사인이나 사경사 등의 극소수를 제외하면, 딱히 직업서예가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학자나 정치가들이 서예를 즐기는 예는 많으며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경우도 종종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에는 학문적, 예술적으로 전문서예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메카인 ‘서예과’가 있으며,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이 매년 100여명이 넘게 배출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서예가의 길이 지금까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한국서예의 질적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학의 서예가 졸업생 진로라는 언덕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물론,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한국 대학교육의 현실이지만, 서예과와 같은 특수과의 진로문제와 전공에 연계된 경제활동은 대학은 물론 한국서단의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에 대하여, 그동안 대학에서는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고 여겨진다. 그 결론이 이번 포럼을 통해 일각을 드러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전통적 교육 방식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요원한일일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서예 향유계층과, 현재의 상황과는 경제적 배경 면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서예의 주체자가 경제적으로 대체로 안정적이었다면, 현재 서예를 전공한 대학생들의 졸업 후 전공과 연계된 경제적 자립도는 과거에 비해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서예가 대부분 안정적인 경제능력을 갖춘 지식인들에 의한 ‘취미’ 혹은, 마니아층에 의한 전문적인 향유가 있었다면, 현재의 대학 전공인들의 서예선택은 궁극적으로 취업과 직업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학전공자의 수요와 일자리의 공급이 균형적이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대학의 졸업생이 약 15년 이상 배출되어 왔으며, 졸업 후 선택 할 수 있는 직업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첫째, 서예학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년 100여 명씩 배출되는 인원들이 전부 서예학원을 꾸릴 수는 없다.
둘째, 전업 작가이다. 하지만 한국에 서예작품의 유통시장은 거의 없다.
셋째, 공모전을 통한 작가등용이다. 그러나 역시 공모전으로 작가가 된다고 해서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넷째, 교수나 연구원이다. 하지만 매년 100여명정도 배출되는 졸업생들이 10년에 한두 번 올지도 모르는 기회를 위해 인생을 담보로 모험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에서 4년간 전통서예를 연마한 후, 나아갈 진로가 이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면 누구도 그 어려운 길을 선뜻 선택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선 서예포럼에서 서예과 교수들이 한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서예교육의 다양성을 찾고, 일방적인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전통과 현대와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연결해 나갈 때 비로소 차츰 문제가 풀리게 될 것이다.
그동안 대학서예가 현실과 발을 맞추지 못한 것은 입버릇처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외우면서도 진정한 ‘창신’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옛사람들 흉내 내기가 서예의 전신인 듯, 그것이 진정한 정통인 듯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흔히 실용서예를 한다고 하면, 기술과 기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옛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만큼 단순기능적인 것도 없다. 반면, 실용서예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모범이다. 이제 한국서예는 21세기의 첨단에서 고급문화의 주체자로 거듭나야 한다.
21세기의 서두를 장식하는 단어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와 컨버전스(convergence), 학제간(學際間)의 영역교류와 디지털 콘텐츠를 비롯한 퓨전문화로 이른바, 문화의 융합과 쾌속의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예컨데, 서예교육이 일방적으로 당나라 장회관(張懷瓘)의 이론에 묶여, 마인드의 틀을 고정시키고 있다면, 현실과의 괴리와 벽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이 한국서예의 현주소이다. 일부에서는 희소성이 경쟁력이라는 점을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서예과 학생도 한두명만 선발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경제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시대이다. 이제는 경제인이 문화인인 시대이다. 기업이 문화를 주도한다. 그들은 더 높은 이윤창출을 위해 인문학을 연구한다. 철학을 통해 상품마다 의미부여를 하고, 차별화된 디자인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순수인문학의 본령을 살려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경제활동이 용이한 실용서예나 상업서예가, 차츰 빛을 잃어가는 서예의 전통과 철학정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새롭게 부각되는 ‘실용서예’의 적극적인 육성과 아울러 전통서예와 인문학을 공존시키고, 연관되는 학문과 연결고리를 형성하여 자양분을 원활히 소통시킨다면 서예의 생명력은 더욱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3. 한국서예의 new trend
요즘 TV를 보면 10여 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문자비쥬얼에서 많이 변화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막이나 타이틀문자의 다양성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딱딱하고 틀에 박힌 폰트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때론 거칠고, 귀엽고, 앙증맞기도 하고, 위엄 있어 보이기도 하는 여러 형태의 글씨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디자인계에서 주목받는, 이른바 감성글씨로 대변되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이다. 비단 TV뿐만이 아니다. 길거리의 간판에서도 업종의 컨셉에 맞게 디자인 된, 일명 캘리그라피의 매력적인 조형미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디자인업계에서 캘리그라피를 모르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캘리그라피가 주목받고 있다. ‘캘리그라피’는 다름 아닌 ‘서예’이다. 한국적인 표현으로 ‘손글씨’라고도 한다. 본고에서는 네티즌 검색 1위인 ‘캘리그라피’ 로 통일 하고자 한다. 이렇듯 캘리그라피의 열풍에는 몇 가지 원인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시대의 조류이다.
산업사회의 분수령인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온 21세기는 문화와 정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장의 굴뚝경제가 아닌, 문화와 원천소스, 컨텐츠(contents) 비즈니스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특히, 해체적 개념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어울린 현대인의 미감은 기계적인 정확성에 대한 인공적인 미감에서 벗어나, 점차 자연성과 결부된 비정형적 질박한 아름다움으로 자리를 대부분 옮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글씨체에 있어서도 그 변화의 양상은 매우 잘 일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조선의 금속활자는 놀라울 정도의 정교함이 있었다. 지금의 활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완벽함이 있었다. 그 시대는 그것이 조류였다. 더욱 깔끔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극사실주의 시대에 발명된 카메라가 미술계에 던진 문화적 충격은 미술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꾸기에 이르렀다. 당시, 사실 그대로를 그리던 초상화의 수요가 줄어들었으며, 새로운 화파인 인상파의 그림은 빛의 변화를 화폭에 담아 사실적인 묘사에서 탈피하고 있다.
1960년 이후 등장한 퍼지이론(fuzzy logic)은 절대적 가치 사이의 가변적 상황을 대변하고, 일종의 예술의 성격과도 같은 애매모호함과 자연성에 대한 의미를 찾고 있다. 실제로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제품들은 우리생활에 이미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자제품이나 게임의 소프트웨어 등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자연미에 대한 갈망은 폭 넓고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현재는 대체로 인공미보다는 자연미가 대세임을 알 수 있다.
글씨의 예를 들어보아도 그 유사성을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잘 정돈된 폰트(font)가 세상의 지면과 온라인을 지배하였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자연에 가까운 불규칙한 느낌의 폰트가 개발되고, 붓으로 쓴 듯 거친 표현이 살아있는 폰트가 유행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비롯한 모든 장르에서 폰트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은 한발 더 나아가 폰트의 제한된 표현을 넘어 서려 하고 있다.
대중들의 눈높이는 이미 첨단을 달리고 있다. 쓸 때 마다 다른 유일한 글씨, 사람이 직접 쓰는 캘리그라피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대중의 눈높이가 서예를 갈망하고 있지만, 한국서예의 전문가 집단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21세기 현실 속에 진입해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용감한 서예인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실 속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마치 파계라도 한 것처럼 쉽게 주홍글씨를 새기려하기 때문에, 무거운 갓과 도포를 벗기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포럼에서 확인 된 것처럼 이젠 더 이상 ‘실용서예’나 현실성 있는 서예가들에게 ‘묻지마!’ 식의 돌팔매를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 정보와 문화컨텐츠시대의 서예
국내외의 경제석학들은 한결 같은 목소리로 문화 마케팅과 문화컨텐츠가 미래를 주도할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화컨텐츠가 이루어낸 성공담에 대해 우리는 이미 익히 알고 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원천소스로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스타를 만들어내고 관광수입을 창출해 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길러낸 대형 가수, 일명 스타컨텐츠는 움직이는 기업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문화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원자재비가 들지 않는 산업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이 한 해 동안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한 총 수익금보다 앞설 수 있다는 얘기는 문화 산업의 저력을 대변하고 있다. 미래의 서예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문화컨텐츠 시장에서 하나의 중요한 미시컨텐츠(micro contents)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꽃을 흔히 ‘디자인(design)’이라고 한다. 우수한 디자인은 상품을 차별화 시키고, 소비자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 구매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문자’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명쾌한 메시지 전달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자’인 것이다.
따라서, 경제의 프로집단은 ‘문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기업의 상품이 어떤 문자로 포장되는가에 매출이 좌지우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는 전통과 현대적 미감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는 최고의 서예가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예도 일종의 컨텐츠이다. 영화나 mp3와 같은 일종의 컨텐츠 상품이 될 수 있다. 디지털화된 문자는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전달되며,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나. 한국의 서예문화컨텐츠 현황
2006년 12월 10일, MBC 9시 뉴스데스크에서는 ‘한국직업연구센터’의 보고를 인용하여 10년 후에 각광받을 직업으로, 아트워크매니져 · 유전자감식원 · 학습메니져 · 개인자산관리사 · 산업보안전문가 등과 함께 ‘캘리그라퍼’가 비중 있게 소개 되었다.
그 외에도 대구MBC나, 전주MBC에서도 실용서예와 캘리그라피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바 있으며, EBS나 케이블 등에서도 다투어 ‘캘리그라피’에 대한 방송을 기획하려는 계획이 잇따르고 있다.
패션계에서는 의상에 한글디자인을 접목한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한글패션쇼가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pont개발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연간 폰트시장이 300억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상업용 폰트는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 전통글씨에서 일명 스타폰트로 불리는 인기스타의 글씨체, 웹디자인에서 모바일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씨체가 있으며, 앞으로의 개발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몇몇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업성향에 맞는 자사 브랜드글자 pont 개발에 나서고 있다. 기업에서 프로구단을 이끄는 것처럼 이제 문자도 문화마케팅의 영역으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는 것이다.
7~8여 년 전부터 서예과를 졸업한 졸업생들이 설립한 서예컨텐츠와 캘리그라피 전문회사는 전통서예와 능숙한 컴퓨터 활용능력을 겸비하고, 신개념의 서예아카데미를 만들어 각종 세미나, 전시 등을 해오고 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디지털과 아나로그를 넘나들며 첨단 문화 컨텐츠 시장에서 ‘서예문화컨텐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일부 대학 서예과 에서도 이미 5~6년 전부터, 실용서예에 대한 다각적인 개발을 인문학적 영역과 병행해서 연구해 오고 있으며, 서예를 통한 서예치료, 문자디자인 등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 맺음말
요즘 공중파를 장식하는 대통령 후보의 연단이나 뒷 배경을 보면, 요란한 장식대신 간결하고 친근한 필치의 캘리그라피로 표현된 캐치플레이즈(catchphrase)를 쉽게 볼 수 있다. ‘캘리그라피’가 이미 디자인의 첨단 트렌드로 자리매김 했다는 하나의 실례(實例)를 보여주는 듯하다.
현재 한국서예계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다수의 서예학원이나 일선 지도자층에서는 많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 일면에서는 ‘캘리그라피’가 디자인의 대세이며, 서예의 새로운 출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야흐로 지금은 서예의 문화적 혼돈과 전환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한국서예가 이렇게 전반적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특히, 공모전을 통한 감상위주의 순수서예를 일방적인 지향점으로 삼게 된 것을 가장 주된 이유로 지적하고 싶다. 공모전에 소모한 정력이나 시간을 실용서예와 기초역량 개발에 나누었다면 지금의 한국서예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분명 지금 실용서예는 부흥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현대 문화의 변화주기는 매우 짧다. 어제의 첨단이 오늘의 구물로 변한다. ‘실용서예’의 부흥이 한국서예사에서 만나기 어려운 호재라면 빠른 변화의 시대에 스쳐가는 유행으로 남지 않기 위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선 ‘실용서예’에 대한 개념정리가 시급하다. 무분별한 상업적 글씨의 남발은 서예전반적인 질적 하락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 물론, 대중의 눈높이에서 어느 정도 선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대중일 뿐 이다. 대중의 눈높이를 업그레이드해야하는 책임은 전공자들에게 있다. 독감을 예방하듯 전통서예의 유전자를 하루빨리 투여해야할 시기이다.
우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예문화의 상아탑인 서예과부터 변해야 한다. 서예과를 졸업하고도 공모전에 일제히 줄을 서게 해서는 안 된다. 학술대회용 멘트로 ‘실용서예’를 언급하는 차원을 넘어서 학생들이 졸업 한 후에 할 일이 있게 만드는 것이 한국서예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참고문헌>
<논문류>
김병기,《서예,「術」인가,「學」인가?》, BK21 中(漢)文 고전적 번역대학원 추진사업단, 2007.
김수천,《서예학연구》,「서예의 실용화에 대한 의미부여」, 한국서예학회 제9호, 2006.
<단행본류>
갈로저 강관식역,《중국회화 이론사》, 미진사, 1990.
김원제외, 《문화콘텐츠 블루오션》,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백승국,《문화기호학과 문화콘텐츠》, 다할미디어, 2006.
최연구,《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 살림, 2006.
최혜실,《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을 만나다》, 삼성경제연구소, 2006.
첫댓글 좋은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예술인들의 앞날과 우리 나라의 문화적 예술에 대한 개혁의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동감합니다...좋은글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