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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清河
- 박목월
유월 하루 버스에 흔들리며
동해로 갔다.
선을 보러가는 길에
날리는 머리카락.
청하清河라는 마을에 천희千姫.
뭍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인간사人間事.
지금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
칠빛 머리카락이 설레는 밤바다에는 피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금도 유월 바람에 날리는 나의 백발에 천희가 헤엄친다.
인연의 수심水深 속에 흔들리는 해초海草 잎사귀.
오라베 / 박목월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透明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새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기계杞溪 장날
박목월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쿵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앙 그렁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쳐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힌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재미있는 시평>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
<시평>
시가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형상화나 이미지화에 대해 종종이야기 하곤 합니다. 형상화란 글이 가진 상징적 기호체계를 그림이 만들어내는 구상, 즉 모양이 있는 실재의 세계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노력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렵게 표현해서 죄송하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도 머리가 복잡해지거든요. 쉽게 말하면 시를 읽으면 어떤 상상력이 마구 발동해야 되는 거라고 하는 편이 훨씬 좋겠네요. 시를 읽는 것은 쉬운데 설명하라고 하면 난감해지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시평을 읽지 않나봅니다. 재미가 없거든요. 시보다 몇 배 어렵기도 하지만 무슨 말인지 헷갈리거든요. 시가 이성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감성을 자극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지요.
아마 한국의 시인 중에서 형상화에 대해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면 어쩌면 박목월 시인이 아닌가 싶네요. 요즘 말하는 형상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냐 하면 요즘의 형상화라는 말에는 상징적 기호를 언어학적으로 얼마나 사물 즉, 실재의 모양을 연상하게 하는가인데 목월의 시에서는 방법이 다르거든요.
목월의 시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징검다리 하나씩을 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송홧가루 날리는 /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 꾀꼬리 울면>이라는 시의 한 부분을 볼까요. 일반적인 어법으로 풀면 <송홧가루가 날리는 / 외딴 봉우리에 // 윤사월의 해가 길다고 / 꾀꼬리가 울면>으로 되어있어야 하는 게지요. 목월의 시구는 연결되는 부분을 생략해서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물이 흐르는 냇가에 징검다리를 놓으면 건너기 위해서 폴짝 뛰어야 하지요. 건너뛰는 순간의 여백이 주는 공간성과 시간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지요. 아득하면서도 그리움의 정서를 이끌어옵니다. 다시 읽어보세요. 눈을 감고 가만히 읽어보세요. 목월의 언어가 가진 그 절묘한 징검다리의 효과는 한 편의 화면을 만들어내지요. 구체화되기 직전의 아득하면서도 가물거리는 느낌의 그림을 만들어내거든요.
특히 목월의 초기시 『청록집』에 실린 시들을 대상으로 하고 목월시가 보이는 공간과 시간이 동양화의 산수화에서 보이는 여백이 텅 비어있는 여백이 아니라 그림 전체와 조화로운 화합의 여백이듯이 목월시에서 보이는 공간과 시간이 산수화의 여백과 어떻게 만나는가를 찾아보려합니다.
먼저 『청록집』이 간행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을유문화사에서 1946년 6월 발행하였으니 올해 6월이 만 60년이 되는 해가 되는군요. 사람으로 치면 회갑의 나이에 다시 을유문화사에서 재발간하였습니다. 좋은 시는 회갑이 되어서도 다시 젊어지는 경사를 맞이한 셈이지요. 을유문화사에서는 2006년 6월 26일자로 '제2판 1쇄'를 발행하여 책의 갑년을 기념했거든요. 표지에 뿔이 돋은 푸른 사슴 그림을 그대로 재현한 이 시집은 오늘의 독자들을 위해 가로쓰기에 낱말풀이를 덧붙인 현대식 조판본을 앞에 붙이고 뒤에는 1946년의 원본을 영인해서 실었습니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의 합동 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이 갑년을 맞이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이번 책은 초간본과 현행 맞춤법에 맞춰 고친 새 판본을 합본해 만들었다. 초간본을 실은 부분은 원래의 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도록 글자 한 자 고치지 않았으며 종이도 60년 전의 것과 같은 지질을 사용했다.
…중략…
그런데 ‘청록집’의 초기 반응이 의외로 괜찮다. 별다른 마케팅을 전개하지 않았음에도 초판 4000부가 1주일 만에 다 팔려 나가 벌써 2쇄 3000부를 추가로 발행했다는 소식이다. 시집이 초판 1000∼2000부도 팔리지 않아 ‘시의 죽음’마저 논의되는 작금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록집’은 일제강점기 이래 이 땅의 중요한 문학적 자산이 그랬던 것처럼 ‘골방문화’의 소산이다. 이 시집이 출현했던 해방공간에서는 문학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가 분출했다. 내면의 침잠과 울림을 잔잔하게 보여 주고자 하는 세 시인의 진정한 마음이 청록집을 우리 서정시의 한 ‘정점’에 올라설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박목월 시인은 1916년생으로 탄생 9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박목월시인은 여러 가지로 올해가 의미 있는 해인 셈이지요. 탄생 90주년과 그를 오늘날의 한국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청록집』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니 말입니다. 그들 삼인시집의 의미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새로이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좋은 시에 대한 향수를 다수의 독자들이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반가워하면서 여기서 삼인의 시인 중에서 가장 언어를 절제하고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살린 박목월시인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청록집』표지에 보이는 청노루의 그림이 표징하고 있는 바처럼 시가 언어로 만든 그림이란 도식을 이미 형상화나 사물화라는 말로 적용하고, 시를 배우는 사람에게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는 게지요. 시를 그림으로 이야기 한다면 한국의 시들을 이야기할 때 한국화, 특히 동양화에 보이는 그림의 여백이 서양화와 구별되는 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도 그러한 한국적인 미를 생각할 때 단연 떠오르는 시인이 박목월시인이지요.
한국화에서 보여주는 여백에 색이나 구름 또는 다른 것으로 채워 넣는다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겝니다. 그 여백은 빈 것이 아니라 그려진 것들은 돋보이기 하는 하나의 방법이지요. 또한 서양화와 달리 흑백이 주조가 되어있지만 동양화는 색을 넣어 그린 채색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여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여백도 흑백으로 그려낸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으로서의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찬가지로 또 다른 그림의 표현방식이지요.
목월시에서 보이는 여백과 공간에 드리운 시간성, 다시 말해 단어와 단어 사이에 비워둔 그 공간이 이끌어내는 연상 작용은 다른 시인이나 시에서는 보기 힘든 목월만의 독특한 기법이지요. 그의 이러한 독특한 방법은 초기시에서부터 후기시까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동양적인 공간과 시간의 도입은 초기시에서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목월시의 시적 평가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큰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목월시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축에서 논의되었지요. 하나는 그의 시세계가 시종 자연에서 출발하여 자연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띠었다는 관점과 실험과 변모가 목월시의 주류를 이룬다는 견해입니다.
목월시의 『청록집』에서 실린 시는 모두 15편이지요. 이 15편에서 보여주는 자연공간은 일상적인 자연으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닌 그 공간이 가지는 특성상 동양화에서의 여백이 주는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문학사의 기점을 1910년으로 보면 우리의 현대문학사는 첫발을 내딛는 일부터 버거운 시대적 절벽 앞에 서게 됩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커다란 벽으로 작용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혈기 넘치는 젊은 시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목가적으로 숨어들었다는 지탄을 듣게 되지만 그는 다른 측면에서 밝힐 일이고, 이 번 글에서는 시 자체가 가지는 특성과 박목월시인이 가진 특성 중 동양적 미학을 밝혀내고 그 공간성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시로 표현해 낸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먼저 목월시를 생활과 떨어진 동양산수화의 화폭처럼 그의 시가 가지는 특별한 면을 찾아보면 목월시가 가지는 특성 중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밝혀질 것입니다.
그의 시의 본질을 자연으로 본 것은 김동리지요. 이들 세 시인은 자연을 중심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그 차이점을 보면 박목월은 향토성이 짙은 토속어를 구사하면서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서정적 자아의 애틋하고 섬세한 내면을 형상화한 점에서 그 변별적 특징을 갖게 됩니다.
그는 목월의 추천자인 정지용 이후 목월시의 최초의 평자로서 청록집이 삼인시인을 논하는 「자연의 발견」에서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세 시인에게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자연으로 보고, 박목월 성격에 대하여 “박목월이 발견하는 자연의 육체는 향토성에서 온다. …중략…향토의 세계는 그에게 자연의 비밀과 신비를 속삭인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시는 모두 향토적 정서에서 발견된 자연의 빛깔이요, 자연의 냄새이며 자연의 소리가 아닌 것이 없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목월의 시세계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단연 단순미와 공간이 주는 여백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찾기는 어렵지 않지요.
목월의 시는 아주 깔끔합니다. 산에서 들에서 뛰어놀다 들어온 아이를 말끔히 우물가에서 씻긴 엄마가 사랑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런 느낌이거든요. 풀냄새가 느껴질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맑아집니다. 소나기 지나간 들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정말로 어디에 보태거나 뺄 수 없는 절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미의 극치는 우선은 언어의 절제에서 옵니다. 위시에서 보듯 2줄을 넘는 연이 없지요. 『청록집』에 실린 목월의 시는 15편입니다. 그 중 「연륜」은 산문형식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14편의 시는 운율을 최대한 살렸을 뿐더러 모두 짧습니다.
「윤사월」시 전체 글자수가 47자로, 시조의 43자가 가지는 정형성을 허물면서 빚어낸 한 폭의 그림이 떠오르지요. 줄당 글자수가 8자도 되지 않습니다. 이는 시조의 14자에 비해 훨씬 적은 수치지요.
「삼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총 58자로 이루어진 「삼월」은 10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으며 줄당 평균 글자수는 5.8자입니다. 역시 시조보다 적으며 줄은 10줄로 시조의 3줄보다는 3배에 가까우나 전체 글자수로는 2배가 되지 않는 것만 봐도 박목월 시인이 얼마나 절제에 역점을 두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청록집』에 보이는 시들을 분석해 보면 얼마나 단순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단순미를 만들어내는 절제의 미학은 『청록집』에 실린 시들의 길이를 분석해 보면 더욱 뚜렷해지더군요. 『청록집』에는 총 목월의 시가 15편인데 그 중 「연륜」은 산문시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제외하면 14편의 시를 분석해 볼까요.
목월의 시가 얼마나 단어의 절제와 운율에 단어를 실어 시적 미학을 살리는데 열심이었나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단어의 절제에 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표1> 『청록집』에 실린 15편 중 14편을 분석한 <연/줄/총글자수/줄당 평균글자수>
구분 |
연 |
줄 |
총글자수 |
줄당 평균글자수 | |
1 |
임 |
4 |
9 |
71 |
7.8 |
2 |
윤사월 |
4 |
8 |
47 |
5.8 |
3 |
삼월 |
5 |
10 |
58 |
5.8 |
4 |
청노루 |
4 |
10 |
47 |
4.7 |
5 |
갑사댕기 |
5 |
10 |
59 |
5.9 |
6 |
나그네 |
5 |
10 |
56 |
5.6 |
7 |
달무리 |
2 |
12 |
79 |
6.5 |
8 |
박꽃 |
1 |
10 |
64 |
6.4 |
9 |
길처럼 |
3 |
9 |
73 |
8.1 |
10 |
가을 어스름 |
3 |
14 |
119 |
8.5 |
11 |
귀밑 사마귀 |
3 |
15 |
89 |
5.9 |
12 |
춘일 |
3 |
11 |
65 |
5.9 |
13 |
산이 날 에워싸고 |
3 |
12 |
115 |
9.5 |
14 |
산그늘 |
4 |
21 |
158 |
7.5 |
총수 |
- |
49 |
161 |
1100 |
- |
평균 |
- |
3.5 |
11.5 |
78.5 |
6.8 |
저는 시간이 남아서 심심한 마음으로 했으니 참고삼아 보시면 은근히 재미있거든요. 순전히 재미로 보셔야 합니다.
14편의 총 글자수가 1,100자로 시 한편에 평균 글자수가 78.5자가 되더군요. 많다고요. 한 번 인생이 심심하시면 현대시 한 편을 찾아 글자수를 세어보세요. 제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하게 될 겝니다. 어느 시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적은 글자수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거든요. 줄당 글자수는 6.8자로 7자를 넘지 않고요. 시조가 3․4․3․4로 이루어진 것을 계산하면 한 줄의 글자수가 14자가 되는데 이는 시조로 생각하면 한 줄의 반에 해당하는 글자수지요.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시진 않겠지요. 그만큼 목월의 시는 글자수를 최소로 하면서 리듬감은 살리고 공간을 만들어, 공명의 울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조가 3줄의 시로 이루어진 짧은 시의 전형을 이루는데 총 글자수는 43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시조 두 편을 합친 것보다 약간 적은 글자수지요. 자유시에서 이보다 짧은 시는 제법 되지만 전체 평균이 이렇게 적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목월은 단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짧아진 글자수에 불어 넣은 것이 공간창조였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언어의 징검다리, 즉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짧은 시이지만 성공한 시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지요.
목월의 시는 우선 줄당 배당하는 글자수를 줄이면서 조사를 배제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윤사월」<송홧가루 날리는>, <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집/눈먼 처녀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정상적인 단어조합은 <송홧가루가 날리는>,<윤사월에 해 길다고/꾀꼬리가 울면>, <산지기가 사는 외딴집에/눈이 먼 처녀사>로 되어져야 하는 것을 우리말이 갖는 조사 생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최대한 살리고 서술어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운율을 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운율을 살리면서도 글자수를 줄이는 이중적인 효과를 살리고 있는 게지요. 진정 이러한 줄임의 미학은 여백을 창조하려는데 있음을 확인하게 되지요.
원경遠景에서 근경近景으로 접근하는 산수화 기법의 활용
다른 시에서 보여 지는 공간과 다른 점이 목월시에서는 동양산수화의 여백이 갖는 비어있되 채워진 것과 같이 목월시가 가지는 공간성의 미덕이 보여지거든요. 그것이 목월시만의 공간이며 작품 전체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목월시에서 문학에 관통하고 있는 핵심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영원’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목월문학의 또 다른 특성을 함축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리움’ 즉 향수와 ‘외로움’도 필연적으로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원이 단어와 단어의 조사가 서술어가 들어가야 할 자리를 비어둠으로써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지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탁월한 공간의 창조를 하고 있는 게지요.
주절과 서술절이 연결되어지지 않은 구조를 가지는 목월의 단어조립의 특성이 그러한 유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조사의 생략과 서술절이 생략되는 과정에서 그 빈 곳으로 자연스레 채워지는 공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상상의 샘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공간적인 비움을 만들어내, 서양화와 달리 동양 산수화에 적용하는 빈 공간을 비움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의 안내와 완성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비어있음을 채우는 것이 시를 읽는 사람의 몫이 되게 함으로서 독자가 가진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누리게 하는 특성이지요. 독자는 저마다의 자라온 환경과 지식으로 재구성하게 하는 것인데, 바로 이러한 점이 목월시의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목월의 시 한 편을 더 감상해볼까요?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노루」
산수화의 공간창조의 비밀의 기법을 확인해 보면 더욱 확연해집니다.
단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구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아주 서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이 이중성의 상호작용에 의해 울림이 커지고 시의 영역확장이 가능해진다는 게지요.
먼저 「청노루」를 살려보기로 할까요.
<머언 산 청운사/낡은 기와집>
<머언 산 청운사에/낡은 기와집이 있다.>
<산은 자하산/봄눈 녹으면>
<산은 자하산이고/봄눈이 녹으면>
<청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
<청노루의/맑은 눈에//도는/구름이 비친다.>
이렇게 풀어서 적으면 주절과 서술어를 제대로 갖춘 문장이 된다. 그러나 받는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도리어 비어놓음으로 해서 시가 살아나는 역설을 가지게 되거든요. 정상적인 문장에서 비워진 자리마다에 고이는 개인적인 경험과 꿈이 녹아들어가면서 단어들은 연결되고 흐르던 물은 구름이 되게 하지요. 현실적인 문장이 꿈이 되게 하는 증발작용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완성되어진 문장이 가지는 무미한 서술이 단 몇 개의 글자를 제거하면 일시에 활력을 가지고 단어들이 독자적인 꿈을 꾸게 되는 것이 큰 시인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된 셈이지요.
전혀 연관성이 없는 단어처럼 배치해 놓았음에도 시전체로 읽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연상작용을 하게 만들어주는 구조를 이루어내고 있는 게지요. 이곳에다 조사나 서술절을 달아놓으면 그만 시가 산문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문장도 마찬가지지요.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시를 만들어낸 주역 중 하나는 분명 여백이 만들어낸 울림의 현장에 독자가 꿈을 꾸게 하는 게지요.
또한 이렇게 쉽게 읽히고 연상작용을 이끌어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독립된 단어를 그냥 배치한 것이 아니라 연관성과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들로 배치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연상되어지는 기법은 또 다른 기법을 창출해낸데서 기인하지요. 목월의 시는 일반적인 어순을 그대로 지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것은 줄을 구분하고 연을 구분하면서, 그 건너뛰는 줄과 연에서 공간성은 확대되어지고 그 공간에 울림의 공명성이 부합된 단어가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읽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단어와 단어가 가지고 단절성을 극복시켜주는 역할을 줄 구분과 연 구분이 일정역할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운율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으로 알려진 김소월이지요.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에 발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요적(謠的)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1940년 정지용이 문예지 ‘문장’에 목월을 추천하면서 한 말입니다.
목월은 소월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소월의 시는 민요적인 요소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다면 목월은 다른 방법을 개발해 냈습니다. 소월의 시와 목월의 시를 읽다보면 다른 특성을 만나게 되지요. 소월시는 한국적인 리듬이 시에 얹혀 있는데 반해 목월시는 그러한 면은 안 느껴지는 반면, 무엇인가 빈 공간에 여운이 깃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이러한 특별한 점이 그의 시어가 가진 유별난 특징이기 때문이지요.
목월시는 여백의 시지요. 그 비어둠의 미학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어둔 그 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도록 단어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수평의 배치에서나 수직의 배치 그리고 비어두어 여백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지요.
목월의 시에서는 그래서 연 구분이나 줄을 달리하는 것이 주요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다른 시인들에게서는 연 구분이나 줄을 나누는 것이 목월시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목월시가 가지는 또 다른 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선은 유난히 시어를 짧고 간략하게 만들어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청록집』에 실린 14편의 시 분석결과 한 편의 시에 쓰인 글자수가 평균 78.5자로 아주 적은 글자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를 구성하는 한 줄의 글자수가 평균 6.8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연결하는 단어가 생략되어 그냥 배치할 경우 자칫하면 단어들의 나열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단어에 조사나 연결해주는 접속절이 생략되어있기 때문에 고도의 배치전략이 없으면 무의미한 단어나열에 그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줄을 바꾸어주어 단어를 배치하면 공간성과 리듬감으로 살아나는 장점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목월시의 특별함은 앞서 설명한 몇 가지 예들이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합적인 울림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목월시의 특질은 동양 산수화의 여백이 가지는 특성을 많이 닮아있어 한국인의 정서를 끌어안을 수 있는 시인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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