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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자걷기] 후기 스크랩 윤종영의 U자 걷기 제11구간 참가기(3) (13/6/14/금)
함수곤 추천 0 조회 344 13.06.13 18:3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한밤의 사진편지    제1941호  (13/6/14/금)    

 

   

   함수곤의 블로그 '한밤의 사진편지'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ham60/> 

 

'한사모' 카페 'romantic walking'으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cafe.daum.net/hansamo9988 >

cafe.daum.net/hansamo9988

 

 

 

대한민국 U자 걷기 제11구간 참가기(3)

 

 

 

 

글 : 윤 종 영(한사모 고문, yooncy1936@hanmail.net

 

 

 

다음날(45일, 금)

 

새벽에 눈을 뜨니 만감(萬感)이 교차(交叉)된다.

오늘 하루만 무사히 걸으면 지난 오년동안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니.

 

숙소인 위즈 호텔 11층 식당에 모인 회원 모두의

표정에도 임진각 꼴인 전날의 기대감 넘치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 걷기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린듯 모두들

자신만만(自信滿滿) 여유작작(餘裕綽綽)하다.

 

오늘 걷는 것도 80여리 가까운데.

아침 8. 회원 모두는 버스에 승차, 자유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일산호수공원에 도착, 한울광장에 모여 체조도 하고

오늘 새로 참여한 박해평, 홍은혜회원과 반가운 인사도 나누었다.

 

특히 홍은혜회원은 해외여행으로 불참한 부군인 김성기회원을

대신하여 참석,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여

회원모두를 감격시키기도 하고. 우리일행은 지휘부의 간단한

유의사항을 듣고 호수공원에 첫발을 내딛었다.

 

호수공원은 주말걷기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몇 번 찾았던

곳이어서 낯설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이번 호수공원 첫발은 이번걷기에서는

김포시계를 넘어 고양시에 첫발걸음을 내딛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고양시에 첫발을 내딛으며 고양시에서 찾지 못하고 지나는

 몇 곳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벽제관과 행주산성이다.

두 곳이 모두 임진왜란과 중요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벽제관(碧蹄館)은 원래 중국으로 내왕하는 사신들이

숙박과 휴식을 위한 역관(驛館)으로 조선조 성종년대 준공한 건물로

 당시 의주로(義州路) 길목에 위치했었다(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지금은 전부 유실되고 터만 남아 있다.

그런데 이곳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임진왜란때

우리를 도우러 왔던 명나라의 이여송(李如松)장군이

평양성을 수복하고 퇴각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며 이곳까지 왔다

 

이곳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대패를 당한 곳이다.

일본은 이전투를 임진왜란때 최대의 승첩으로 역사에 기록하고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 대규모의 전승탑을 조성하고

한국에 부임하는 일본총독의 첫 방문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나와도 작은 인연이 있다.

 1946년경, 집안 당숙어른이 나이 어린 나를 데리고 이곳을 찾아

당시에 건재했던 탑과 전적지를 찾아 보며 임진왜란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던 일이 있어 지금도 간혹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당시에 유적지흔적이 거의 없어졌지만.

행주산성(幸州山城)은 임진왜란때

충장공 권율(忠莊公 權慄:1537-1599)장군이 대첩를 이룬 곳으로

임진왜란에 승패의 전기를 이룬 곳이기도 하다.

 

권율장군은 조선에 출병한 명군에게 패퇴하여 남으로 도망해 오는

왜군을 명군과 협격하여 한양을 수복하려는 뜻을 갖고

이곳 행주산성에 진을 쳤다.

 

그러나 명군이 벽제관에서 대패 당하자 의기양양(意氣揚揚)해진

일본군은 대군을 동원 행주산성을 공략하였으나

권율장군이 이끈 조선군의 결사항전으로 조선군이 대승,

일본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패퇴 하였다.

 

이 승첩으로 일본군의 재기를 막을 수 있었고

또 명군이 왜군에 당한 벽제관의 패퇴를 되갚아주어

조선군을 우습게 보던 명군에게 조선군의 진가를 보여주어

임란초전 패전으로 잃었던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곳이도 하다.

 

우리 일행은 잘 다듬어진 봄향기가 가득한

일산호수공원을 비교적 한가한 마음으로 대오를 지어 걸었다.

 

걷는 길가 나무들이 계절에 비해 꽃들이 피지 않아

서운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기분이 상큼해 걷기에는 최적이다.

 

호수공원 뒷길에는 개나리꽃 망우리가 싹트고 있어

그래도 노란 꽃색갈을 보여 주고 있어 기분이 행결 가벼웠다.

 

도심구간을 지나 밥갈이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걸음을 재촉하였다.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나에게 옆에 회원이 고려말 최영장군묘가

고양시에 있지 않느냐고 물어 이를 화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최영(崔塋:1316-1388)장군은 고려를 지탱해온 무장으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실각, 고봉(高峯:고양)으로 귀양갔다

뒤에 참형을 당하였고 묘가 이곳 덕양구에 있다.

 

그는 평생을 견금여석(見金如石)을 좌우명을 삼았다든지,

그가 죽은후 묘에 풀이 나지 않아 적묘(赤墓)라 불리어졌다든지.

그가 죽은후 무속신앙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개성 근교의 덕물산(德物山) 정상에 있었던 그의 신당과 무당마을 등

 그와 얽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한참 걷다 보니, 저 멀리 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니 오전 걷기의 종착지인 송산네거리라,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무사히 꼴인, 버스에 승차,

점심식사장소인 파주 출판도시에 스킨차이니스로 이동,

오랜만에 맛깔스러운 중국 음식맛을 즐기며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오후걷기는 출판도시에서 통일동산까지 30여리길,

모든 회원들 원기를 완전 회복한듯 지휘부의

인도에 따라 활기찬 걸음을 옮긴다.

 

출판도시를 떠나며 건물에 붙여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글귀가 의미 있게 머릿속에 남겨진다.

 

우리일행은 파주평화누리길 첫째길을 따라

자유로 옆길을 한참 걸어 인공습지를 지나며

 전원마을길로 들어선다.

 

뚝위에 철책선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벌판에 논가운데로 난길을 걷기도 하였다.

 

또 나무하나 없는 밭가은데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고.

우리일행은 송천대교를 건너 자유로 방향으로

논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한참 걸으면서 보니

장준하 공원 표시석이 서 있다.

 

은 적이 없는 곳이기에 잠시 들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공원 옆길을 걸으며

장준하(張俊河:1918-1975)선생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몇몇 회원들과 주고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자서전인 돌베게를 중심으로 일본 강점기에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가 일본군을 탈출,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갔던 일,

 

뒤에 서안에 이범석 장군이 이끈 광복군제2지대에 합류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광복후 귀국하여

건국운동에 참여했던 일, 자유당 시절 사상계를 통한 민주화 운동 ,

 

또 그의 등산사고사에 관한 이야기 등을 주고 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생애 자체가 다사다난하였고 나름대로 우리 건국사에 족

적을 남긴 인물로 생각되여 몇 번 공원을 되돌아 보며 걸었다.

 

 걸으면서 보니 통일동산 중앙공원내에 큰 한옥건물로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이 서있다.

 

이전에 본적이 없는 건물이기에 파주시 문화과에 전화로

 문의해보니 고려역대왕 34위와 고려 충신. 공신 355위 도합 389위의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라고

한번 찾고 싶었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곳을 떠나면서 조선조에서 만들어(문종때 賜額) 지금까지

고려역대왕의 위패를 봉안(奉安) 봉사(奉祀)하고 있는

 숭의전(崇義殿:경기도 연천군)과는 어떤 관계인지

여러 가지 궁금하여 집에 와 왕씨대종회에 문의해보니

자기들은 숭의전만을 인정한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기분이 착찹하고 씁쓸하다.

 

이것 하나 제대로 정리가 않되었다니,

우리 일행은 오후 420, 전회원 모두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오늘 종착지인 호텔위즈에

꼴인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이곳에는 새로 박동진회원이 기다리고 있어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회원들은 각자의 방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버스에 승차,

오늘 저녁식당인 반구정나루터집으로 이동,

장어구이정식으로 저녁식사 치르면서 내일의

감격스러운 행사에 전야제로 즐거움을 나누었다.

 

전야제행사는 이영균 위원장의 사회로 허필수회장과

장정자여사의 노래와 춤, 이흥주고문, 손귀연회원의 노래,

송군자회원과 김동식 고문, 노래와 춤, 함수곤 대표의 노래와

김용만 고문의 유머 등으로 밤 늦게까지 회원모두의 흥을 돋꾸어 주었고

이것이 잠자리까지 연결되어 모든회원들이 숙면할 수 있었다..

 

 

 

 

다음날(46일  토)

 

새벽에 눈을 뜨며 오늘 까지 무사히 걸어 걷기에

최종일을 맞게 해주신 높은곳에 계신 높은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창문을 열고 새벽공기를 마시며 가슴 뿌듯하고

설레임속에 새날을 맞이하였다.

 

 얼마나 고대하던 날인지. 나는 서들러 밖으로 나와 보니

여러회원들이 나와 걷기 마지막 날을 맞이한 기쁨을 서로 주고 받고 있었다.

 

오늘 걷기는 파주평화누리길 둘째길 일부로 내포리에서 출발,

임진각에 꼴인하는 30여리길, 걸을만한 거리이다.

 

아침에 한상진 고문, 나병숙, 윤혜선, 방규명, 윤봉수 회원이

합류해 한 것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에 복장 뿐 아니라 모자까지 베레모로 통일 착용하였다.

830, 우리 일행은 호텔을 출발 내포리 체육공원 삼거리에 모여 간

단한 체조와 지휘부의 안내의 말을 듣고 대망의 마지막 날 첫걸음을 띄었다.

 

 걷기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기예보를 듣고

걱정하던 부슬비가 내린다.

 

회원들 모두 예상하였던 바이였기에 별로 당황하지 않고

비옷과 우산을 쓰고 대오의 흐트러짐 없이 여유롭게 걸음을 옮긴다.

 

뚝방길 따라 걷기도 하고 길가에 철조망을 따라 걷기도 하고

걷는 길가에 초병을만나기도 하며

전방마을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느껴본다.

 

 임월교를 건너 논들길, 밥들길을 따라 한참 걷다보니

오늘 점심을 예약한 반구정 만해치식당에 도착,

이른 점심식사로 별미인 꿩만두로 입맛을 즐겼다.

 

 이곳에 반구정이라는 음식점이 여러군데 있는 것은

 이곳에 있는 유명한 반구정이라는 정자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반구정(伴鷗亭)은 임진강하구(파주시문산읍)에 위치한 정자로

예로부터 이곳은 갈매기가 모여 놀던 절승지로

갈매기를 벗삼은 정자라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이 특히 유명한 것은 방촌 황희(?村 黃喜:1363-1452)선생이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며(90) 시문을 즐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이런 연유로 이곳에 황희재상의 동상, 기념관등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자 아래 바로 철책선이 쳐저있고 이정자는

 전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1967년에 복원하였다

 

. 황희재상은 조선전기에 가장 뛰어난 명상(名相)이며

청백리(淸白吏)로 널리 알려진 분이고

그의 묘도 이곳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에 위치해 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우리를 동행 취재하기 위해 미모의 주애진 동아일보기자가 찾아주었고

그는 우리와 걸으며 우리 회원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도 걷기에 참여한 소감을 묻기에

평상시 생각하였던 인생이란 도전이다. 늙었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도전하고 노력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황혼을 즐겼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나누기도 하고

 

걷고 있는 나의 눈에 화석정 안내 표식판이 들어온다.

이곳은 몇 차례 찾았던 곳이지만

걷기 코스에 이곳 뿐 아니라 이 부근에 있는

율곡선생 유적지가 빠져 있어 아쉬웠다.

 

화석정(花石亭)은 임진강변 벼랑위에 자리 잡은 정자로

원래 고려말 삼은(三隱)에 한분인 야은 길재(冶隱 吉再)

유지(遺址)로 알려져 있는데

(기록이 없어 선산출신 야은이 이곳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알수가 없다)

 

이곳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의 오대조부인

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지었고

그의 후손인 이숙함(李叔緘)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율곡은 국사(國事)의 여가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이 정자에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지냈다고 한다

 

. 특히 이정자와 얽힌 이야기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몽진(蒙塵)하면서 밤에 임진강을 도하하며

이 정자를 태워 그 불빛으로 무사히 강을 건넜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전해지는 이야기로 율곡이 자기 사후에 있을 이 일을 예견하고

정자를 수리하며 나무를 광솔나무로하여

불빛이 오래 지탱하도록 하였다든지

 화석정의 화를 대신 로 썼다든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 화석정은 6.25전쟁 때 소진된 것을 1966년 복원,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이 부근은 율곡의 본향으로

 율곡선생 유적지가 있고 그곳에는 그를 배향한

자운서원(紫雲書院)과 율곡의 묘소, 신사임당의 묘소 등이 있다.

 

율곡은 조선조 유학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

쌍벽을 이룬 대표적인 학자로 그의 후학들에 의에

기호학파(畿湖學派)가 형성되었다.

 

그는 학문을 민생문제와 연결, 경세적인 입장에 서서

대동법(大同法), 사창(社倉), 당쟁조정 등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금도 이곳에는 그와 관련된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일행은 임진각역을 거쳐 평화랜드에 도착,

이곳에 마중 나와 있던 많은 회원들과 가족들과 기쁨의 상봉을 하였다.

 

임진각에 요즈음 남북한 긴장관계로 이곳에 취재차온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로부터 우리들은 의외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 일행은 환영인파를 헤치며 자유의 다리로 와 완주의 감격스러움에

눈물 흘리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아 만세삼창을 하였다.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감격스럽고 행복한 날입니다.

200847,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첫발걸음을 띄어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걸어 오늘 5년만에

임진각에 꼴인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의 혼과 자취를 느끼고 배우며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모습을 확인 했습니다.

이런 감격스러운 날 우리는

첫째로 우리의 대장정의 성공을 자축하고

 

둘째로 우리 한사모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셋째로 우리가 걸어서 발자취를 남긴 정동진, 정남진, 정서진에 이어

 

우리의 발자취를 정 북진인 북한의 중강진까지

남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만세삼창을 하겠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우리일행은 이곳에서 자리를 망배단(望拜壇)으로 옮겨

우리의 무사안주(無事完走)를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고하는 제례를 지내면서 다음과 같은 제문을 읽고 받치었다

 

維歲次

檀紀4346年 癸巳年 乙卯月 壬寅日

한반도를 극진히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산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한사모의 연인원 520여명의 할매 할배들은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하여

5년의 세월을 6273일을 걸어

3,800(1,520Km)를 뚜벅뚜벅 걷고 또 걸어

드디어 한반도 U자걷기의 종점인

서부전선 임진각에 도착하였음을

하늘과 땅과 여기모신 모든분 들에게

경건히 보고 합니다.

 

저희들이 무사히 임진각에 꼴인하기까지

저 높은 하늘에 계신분과

이 땅의 자연과 역사와

모든 지인과 가족

..인의 격려와 지원으로

우리들은 오늘 이곳에 꼴인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음껏 소리내어 울어봅시다

여러분 소리높혀 감격의 말들을 토해 내십시다.

여러분 더 큰 소리로 축배를 들어 올립시다.

하늘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우리 할매 할배들은 더 걷고 싶습니다. 저 북녘 땅까지

오는 세월 속에서도

이 강토에는 늘 안녕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통일의 그날까지 온 국민이 순백한 마음과 인화로

번영의 꽃을 피우기를 바라오며

 

여기모인 우리 한사모 회원은 물론

그들의 가족과 가정에도

늘 화평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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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6.14 03:06

    첫댓글 세 차례에 걸쳐 윤종영 고문님의 참가소감을 잘 읽고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7년 제주도 일주에서부터 한반도 둘레길 11구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영광이고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오며, 감사드립니다. 어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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