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밥과 김치를 주식으로 하고있고, 전통 재래장인 간장,고추장,된장등 고유의 전통음식을 지금도 많이 먹고있습니다..한국인의 정서상 식인문화는 존재하지도 않았을테고 한국사람은 외국의 식인문화를 야만의 극치로 생각할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반론이 있으신가요? 현대의 한국인의 체질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인은 인육은 커녕 고기를 건강의 적신호로 생각해서인지 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있습니다
따라서 인육문화와 한반도의 음식문화는 전혀 동떨어진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음식문화를 통해 한국인이 과연 대륙조선의 후예인지 아니면 토종원주민인지를 분명히 가릴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대륙에는 분명히 식인문화가 존재합니다. 원문을 찾을 길이 없어 인터넷에 떠있는 중국의 식인문화에 자료를 찾아보니 중국에는 食人문화가 5천년의 기원을 가지고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함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동이지방 사람인 공자도 인육을 즐겨먹었다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 문장을 인용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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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식인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중원을 둘러싼 격한 쟁투에 따른 잔혹한 형벌제도의 탄생과 사람을 잡아먹는 형벌이 성문법으로 제정되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점과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잦은 기근과 천재지변, 전쟁, 농업기술낙후로 인한 식량 부족 등이 한대 맞물리면서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식인이 허용되고 식량부족에 기근, 전란이 잦아들면서 차츰 식인문화는 아무 저항감 없이 중국민중에게 뿌리 박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정쟁, 전쟁에서 패배한 정적, 적국군병 및 국민 등은 "잡아 먹히는 인육"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상황에 따라선 자국국민을 임의로 대량 징발해서 하루에 수천명씩 군대의 식량으로 사용되어진 것도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와 인의를 강조하는 유교도 이에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왜냐면, 공자 역시 정당한 복수를 칭송하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왜 유교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식인문화와 관련 깊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떠도는 말 중에 하나가 "만일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그만큼 식인문화가 널리퍼져 있었고 모든 중국인이 사람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분위기가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예"와 "도덕"이 강조 되어질수 밖에 없었고 그런 사회분위기 하에서 유교가 발달 했습니다.
1)중국문명의 발전과 그 식인문화의 전파는 그 족적이 일치한다. 식인문화의 시작은 거의 대부분이 황하유역의 산동, 하남, 하북, 산서, 섬서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남쪽으로 남하해가는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어 식인문화는 중국문화의 전파에 따라 남하하여 회화유역에서 장강을 넘어 산동, 복건성으로 파급되어 집니다. 그 파급경로는 중국인들의 강남개발과 이주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즉 중국인이 많이 이주하면 인구가 급증하고 과잉개발에 의해 자연환경이 파괴되며 자연생태학적 균형이 깨어져 기근이 발생하고 식인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나라 시대 고조 2년 부터 흥평원년에 이르는 400년 도안 식인현상은 대부분 중국문명의 시작인 황하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흥평 2년 이후에는 장강, 황하일대에서도 발생하고 강남, 광동, 복건성에서 식인현상이 나타는 것은 중국세력이 남하한 3-4세기 이후 동진시대 이후가 됩니다.
2)인구과밀지역과 일치한다. 식인현상은 대부분 인구과밀지역과 일치해서 발생합니다.변경지역이나 미개발지역이 아닌 인구 과밀 개발지역에서 출현합니다. 특히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장안, 낙양, 개봉, 북경, 남경, 양주, 항주 등의 도시가 식인문화의 다발지역임은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3)정치환경변화와의 인과관계가 있다. 노신은 고대 중국국가 성립 이후의 사회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 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즉 노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국가라고 하는 사적인 권력에 의해 구축된 고대국가 폭력기관이 광대한 대중을 국가라고 하는 우리에 가두고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우리 속의 극빈한 군중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작용을 통해서 인구와 식량의 자동제어를 하고 자생 자멸해 간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노신은 수탈의 가혹화와 인구 과밀화가 가져온 식량위기 및 자연-사회환경의 악화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를 형성하고 중국의 식인문화를 창출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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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터넷에 떠있는 자료이고 한문이 아니기 때문에 자료의 신빙성을 의심해볼수있겠지만,
식인문화는 분명이 중국에 버젓이 존재했었기에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닐것입니다
식인문화가 생겨난 이유 중 '중원을 둘러싼 격한 쟁투에 따른 잔혹한 형벌제도의 탄생과..'이라는 말은 충격적입니다. 중원이면 바로 조선임금이 거주했던 곳이 아닙니까?
또한 장안, 낙양, 개봉, 북경, 남경, 양주, 항주 하남, 하북, 산서, 섬서성 등 분명히 조선(중국)의 지명들인데 이곳에 식인문화가 존재했었다니 우리가 알고있던 조선선비들의 청빈함과 인.의.예.지.신의 유교덕목을 숭상하는 조선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겁니다
한반도에 중국으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이 식인문화를 사료에서 흔적을 삭제했을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식인문화의 연구를 통해 조선의 문화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려야 할것 같습니다
첫댓글 제 생각엔, 조선의 풍습엔 식인풍습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화하족들이 대륙으로 자기네들 역사를 확장시키면서 자기네들 풍습을 기록 한 것 같군요.
조선에 식인풍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겁니다 왜냐하면 인진왜란때도 권율장군이 왜장을 죽인후 생간을 내어 씹어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하간 대륙조선설에서는 중국대륙이 조선이니 대륙의 식인풍습은 어디엔간 존재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