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마네(島根県) 현 마츠에(松江市) 시청과 시 의회 교육민생위원회가 6세 때 히로시마 원폭(廣島) 낙하 중심지로부터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피폭해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 여동생을 잃은 체험을 바탕으로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남긴 참상을 그린, 故 나카자와 케이지(中沢啓治) 선생의 자전적 만화 <맨발의 겐(はだしのゲン)>을 시내 모든 초·중학교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없도록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폐가(閉架)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이 지난 달 중반에 아사히(朝日) 신문 등을 통해 보도되었다. 1973년부터 <소년점프>를 통해 연재된 <맨발의 겐>은 단행본만 판매량이 650만 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아가 <맨발의 겐>은 한국을 포함해 18개국에 수출되었으며, 일본 내에서도 2012년부터는 히로시마 시에서 평화 교육 목적 교재로 쓰고 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보수를 가장한 군국주의자들이 원폭 투하를 근거로 자신들을 피해자로 규정하기에 바빠 있는 반면, 나카자와 케이지(中沢啓治) 선생은 <맨발의 겐>을 통해 원폭으로 인한 참극의 원인을 군국주의와 천황이 제공했다고 이야기했다. 천황에 대한 비판은 일본 내에서는 금기 사항이다. 하지만 <맨발의 겐>의 경우 10권 20, 21쪽에서 주인공 겐은 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君が代)를 부르려는 교장에 맞서 '빌어먹을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 싫다'며 항의한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천황을 전범자로 규정하고, 원폭 피해 및 식민 통치로 인한 한국과 중화민국(現 대만)의 피해도 모두 천황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사서에서도, 심지어 한국 정치인들도 감히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강력한 정치적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겐, 류타와 함께 사는 가추코는 살인죄로 형무소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들로 천황,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의 장관과 공무원, 舊 일본군 간부들을 꼽는다. 이렇듯 <맨발의 겐>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본 군국주의 주역들에 대한 분노와 삶에 대한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어 예쁘고 흥미롭지 않지만, 깊은 감동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명작을 마츠에 시는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한 표현이 있어 시내 초·중학생들이 읽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 부적절한 표현은 2차 대전 중 舊 일본군의 학살극 장면을 말하는 것으로, 故 나카자와 케이지 선생의 아내인 나카자와 미사요 여사는 이와 관련해 '언론통제를 가하던 전시 판단과 똑같다'며 마츠에 시청과 시 의회의 처사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지난 달 26일, 마츠에 시 교육위원회는 당시 시 교육위원회 사무국 절차에 미비한 점이 있었다는 이유로 회의에 참여한 교육위원 5명의 만장일치로 <맨발의 겐> 열람 제한 조치를 철회했지만, 이 <맨발의 겐> 열람 제한 조치 파문에는 아주 충격적인 비밀이 숨어 있다.
마츠에 시가 <맨발의 겐>에 대해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4, 5월의 일로, 당시 마츠에 시에 살던 30대 중반 남성 자영업자가 세 차례에 걸쳐 시 교육위원회를 찾아가 초·중학교 도서관에 <맨발의 겐>을 비치하지 말라고 민원을 넣은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 중 한 번은 교토(京都)에서 거리선전활동으로 조선인학교 수업을 방해한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 전직 간부들이 동행했다고 한다. 이들은 방문 모습을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고, 이를 본 사람들이 시 교육위원회에 항의 전화를 걸어댔는데, 당시 교육총무과장은 한때 업무 마비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시 교육위 사무국은 경찰에 대응 방법을 상담하면서도 교육장을 통해서는 '<맨발의 겐>은 평화를 학습하는 중요한 교재'라며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 남성 자영업자가 진정서를 시 의회에 제출함으로써 9월 시의회 교육민생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심사하자, 당시 부교육장은 '<맨발의 겐>은 전쟁의 비참함을 전달하거나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용기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작품 전체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역시 묵살했다. 그러나 시 의회 교육민생위원회가 '작품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심사 과정에서 시 교육위원회 간부 5명을 모아 <맨발의 겐>을 정독함으로써 상황은 달라졌다고 한다.
이 5명 중 2명은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 <맨발의 겐>을 평화 학습 교재로 쓴 적은 있었지만 전 권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교육장은 '이것이 같은 작품이 맞는지 충격을 받았다'고 했으며, 교육총무과장도 '아무리 전쟁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내 아이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묘사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 5명이 공통으로 문제삼은 것이 바로, 10권에 실린 舊 일본군의 학살극 묘사였다. 이 중 당시 녀성 교육장은 '이러한 묘사를 발달단계에 있는 아이에게 보여줘도 되는지, 아이들의 눈에서 멀리 떼어 놓아야겠다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5명은 교육장실에서 ‘의회대책’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했다. 그리고 각 교장에게 전 권을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과격한 묘사가 포함된 권에 한해 대응하자는 방안도 나왔지만, '부분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문제 장면을) 검게 칠하거나 검열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의견이 나와 중단되었다고 한다. 작년 11월 26일에 열린 교육위원회 회의는 '의회의 판단에는 의구심이 든다'며 철수를 요구하는 진정 의견을 만장일치로 부결시켰지만, 교육장이 '연내해결'을 목표로 삼아 열람 제한 방침을 밀어부침으로써 <맨발의 겐> 열람 제한 초지는 교육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은 채 실행된 것이다.
이것이 보도되자, 그 남성 자영업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부지런히 돌아다니길 잘했다'며 웃었다고 한다. 보도를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은 작품을 높이 평가했던 간부가 의회대책으로 책을 정독하는 동안 문제점을 발견하면서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권리에 대한 문제를 미처 생각지 못한 채 폐가 조치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일본 만화계는 만화가이자 교수인 지바 데쓰야(ちばてつや)가 이사장으로 부임해 있는 것을 포함, 약 600명의 만화계 종사자들이 가입해 있는 사단법인 일본만화가협회를 중심으로 지난 달 26일,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표현 규제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사단 일본만화가협회는 <맨발의 겐>을 '전쟁이라는 사실이 지나치게 생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친근하게 접하기 쉬운 표현 수단인 만화로 전달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폐가 조치에 대해서는 '결정한 어른들의 무지각한 오만함, 그리고 마땅히 존중해야 할 아이의 감성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점이 크게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에 교육위원장인 나이토 도미오(內藤富夫)는 기자 회견을 통해 학교에서 <맨발의 겐>을 허가 없이 열람할 수 없도록 한 시 교육위원회 사무국의 처신에 대해서는 열람 제한을 결정하기 전에 교육위원과 상담한 적이 없다며 '요청까지의 과정에서 절차가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기자 회견 하루 전에 열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는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일정의 제한을 가하는 것은 아이의 지식이 편향될 우려가 있어 발달에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제기되었다고 한다. 교육위원회 회의가 비록 제한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는 않았지만, <맨발의 겐> 열람 제한 조치를 철폐함으로써 어린이 및 청소년 한 명 한 명이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는 권리가 더욱 강력하게 보장되었으며, 그간 도서 비치는 학교 자율에 맡겨왔기 때문에 열람 제한 조치가 실행되기 전까지 <맨발의 겐>을 공개 열람실에 비치해 두었던 학교는 원래 있던 자리에 비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 신문은 보도했다.
교육 평론가인 오기 나오키(尾木直樹)는 '마츠에 시 교육위원회가 폭력적이며 과격하다고 한 장면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걱정한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교육적 배려와 규제는 다르다. 중학교까지 일률적으로 비공개로 하고, 교사의 허가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것은 아동권리조약에 규정된 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난폭한 방식이다. 책을 숨기지 않더라도 아이들끼리 충격과 불안을 공유하면서 그 근저에 있는 원폭과 전쟁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장을 만드는 등, 심리적인 악영향을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을 것이다. 시 교육위원회의 단편적인 방식에 많은 학교가 묵묵히 따랐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맨발의 겐> 문고판 등에 해설을 쓴 평론가 구레 도모후사(吳智英)도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준다든지 반전∙평화의 상징이라는 단순한 문맥만으로 파악한다면 시야가 좁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본질은 피폭 체험의 비극과 함께 부조리한 운명에 대한 분노를 강렬하게 그려낸 인간드라마다. 정치적 슬로건을 초월한 부분이 훌륭하며, 그렇기에 오랫동안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읽혀져 온 것이다. 일부 과격한 묘사를 이유로 작품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마쓰에 시 교육위원회의 대응은 졸렬하다. 겐은 현대의 민화이며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본의 문화이다. 시 교육위원회는 아동 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군국주의를 부활시킬 듯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주장하고, 다케시마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시마네 현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졌다. 안토니오 알타리바가 글을 쓰고, 킴이 그림을 그린, 스페인 내전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을 옮긴 만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몇 컷의 정사 장면을 근거로 간륜으로부터 청소년 유해 매체 판정을 받았고, 부끄럽게도 이 소식을 들은 원저자는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출간됐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 난민 수용소, 독재 체제의 참상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윤리라는 잣대를 앞세운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음란성 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슬프다'며 간륜의 이 기계적인 처사에 불만을 표하며 한국어판 역자에게 응원 편지를 써 보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우경화된 일본과, 현재 한국의 모습이 참으로 닮아있다는 점이다. 감추고, 금지하고, 모르쇠로 일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히틀러·무솔리니주의와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주의가 빚어낸 구시대적 발상이다. 한국(남한)은 확실히 평양조선(북한)과 같은 디스토피아로 변하고 있다. 껍데기만 자유민주주의지, 알맹이는 히틀러·무솔리니주의와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주의가 여러 분야에 걸쳐 판을 치는 지상 지옥이다. 이제는 남에 대한 비난을 더욱 즐기기 위한 그랬다더라식(일명 카더라식) 통신과 근거 없는 추론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증히교 신도들과 헌누리 정치 깡패들의 원압양면전술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그들 앞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용감하게 외치며, 문학, 만화,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문화이며 민생의 대변자임을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