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단상 14 장칼국수 이야기
요즘 주말에 시내에 나가다 보면 장칼국수집 앞에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아마도 장칼국수가 서울 사람들에게 강릉의 특선 음식으로 알려진 모양이다.
춘천의 닭갈비나 막국수처럼 강릉 장칼국수가 브랜드화 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어릴 때 장칼국수를 집이나 시내 음식점에서 먹어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정선이나 삼척 등 당시로서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갔을 때 칼국수나 미역국에 장을 푼 것을 먹으면서
‘이것도 괜찮네’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부족한 곳에서는 장을 풀어 그 단점을 카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바닷가에 살았던 나의 경험에 의하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식재료의 보관이 쉽지 않아 소위
제철음식이라는 것 외에는 신선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오징어가 대풍일 때는 일부는 말려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생물(生-物)은 금방 변하니 가격이 엄청 싸서 우리 같은
서민들도 오징어를 이용한 각종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안동 간고등어의 탄생 배경을 생각해 보자.
당시 울진이나 영덕에서 엄청나게 고등어가 잡혔을 때 그 일부는 등짐장수들에 의해(이 내용은 흥부가에서 흥부가
아르바이트한 업종에도 있다) 밤을 새워 태백준령을 넘어 안동지역에 도착했을 것이고 거기에서는 그 쯤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소금을 뿌려 염장을 시작했을 것이다.
자주 하다보니 소금을 적절히 빨리 뿌리는 기능인이 등장했고 우리는 오늘 그런 사람을 ‘간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단 소금을 뿌려 부패를 막은 짭잘한 고등어는 생선을 공급받지 못한 경상 충청 경기 등 내륙지방으로 퍼져나가며 ‘안동 간고등어’라는 브랜드가 되었고 사람들은 어느 새 그 고등어맛에 길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의 권유에도 불국하고 평생 간고등어를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신선한 고등어가 나는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미쳤다고 소금 투성이 간고등어를 먹겠는가.
그러나 전국적인 판매량을 보면 아마도 간고등어가 생고등어보다 많고,
그러다보니 간고등어의 맛에 익숙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가 없다.
원래 생선국도 맑은 국이나 조금 덜한 멁은 국이 주류이다.
요즘은 그런 생선국을 ‘지리’라는 일본말로 나타내며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에 장을 많이 풀거나 고춧가루를 잔뜩 뿌려 얼얼하게 끓여 매운탕이라는 이름으로
먹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장칼국수도 간고등어나 매운탕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국수에 필요한 여러 재료들이 신선하거나 좋지 못할 때 장을 풀어 그 단점을 뭉뚱그린 것이 장칼국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이 살벌해지면서 사람들은 부드러운 맛보다는 자극적인 맛을 원한다.
매일 먹는 집밥의 특징이 매일 먹어도 부담 없는 부드러운 맛이 중심이라면, 밖에서 먹는 외식(外食)의 특징은 선명한 자극과 그 기억이다. 아니 자극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졸업한 지 30년 정도된 중년들의 학창시절 은사에 대한 기억은 좋은 평범한 교사보다 희한한 짓을 많이 했던 소위
똘아이(?) 교사들이 추억의 중심이 된다.
마찬가지로 매우 매운 맛등 특별한 맛이 대뇌에 특별한 추억으로 각인된다.
나같은 평범한 입맛을 가진 인간이 먹기엔 지나치게 매워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교동짬뽕집에 주말마다 긴 줄이
늘어서고 전국적 유명세를 지니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일상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 먹는 관광객의 음식과 매일 점심때마다 들려야 하는 주민들의 입맛은 그런 점에서 다르기 마련인데
음식점들은 점점 관광객 매출에 부응하게 되다보니 주방에선 점점 자극적인 맛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설사 내 단골집이었더라도 어느 시간 서울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음식점엔 가지 않는다.
간판에 원조란 말이 붙을수록 원조의 맛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내 경험에 의한 판단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개 똘아이들이다.
평생 삼시세끼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 모든 음식에 백설탕을 들어부어 먹는 사람, 매일 학교 앞 교문에서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사람, 뒷걸음질로 산에 오르는 사람 등등이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막장 자극 만능의 시대에 오늘 우리는 살고 있다.
볼수록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산과 바다와 호수가 정적(靜的)으로 조화를 이루며 펼쳐진 경포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최고의 관광지였지만 오늘 날 관광객들은 설악산으로 몰려간다.
거기에서 정적인 아닌 동적(動的)이고 극적(劇的)인 산의 모습을 보고 자극받고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잔잔한 호수와 바다보다는 훨씬 더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칼국수는 자극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주장한다.
장을 풀지 않고 끓인 국수의 고유한 맛을 되찾자.
멸치를 기본으로 한 육수나 어쩌다 닭고기를 베이스로 한 육수에 국수를 넣어 맑게 끓인 잔채국수나 칼국시가 국수의 기본이다.
평양에 가서 옥류관에서 진짜 피양랭면을 먹어 본 사람들의 맛평가는 대개 아무 맛도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먹어온 냉면이 지나치게 양념 위주여서 랭면 본래의 맛을 잃었고 그런 맛에 우리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평양랭면도 자꾸 먹다보면 점점 맛있어 진다는 것이다.
칼국수도 마찬가지이다.
장이나 고춧가루를 최소화하여 음식재료 본래의 고유한 맛을 통해 저자극의 일상적인 맛을 되찾는 것은
우리 마음의 일상적 평화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감히 주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