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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 일상적인 삶 : 삶과 죽음의 이미지 공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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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로 - 과거에 죽은 자식 : 죽음의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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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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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계집아이 - 현재 이웃에 살고 있는 아이 : 삶의 이미지 | ||||
서로의 존재를 반영하는 공유물 |
◘ 이해와 감상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현대문학》 1982년 4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을 잃고 정년 퇴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노부부의 초여름 어느 하루 낮시간을 통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밀가루를 함지박에 붓는 아내를 보고 식사전 산책을 나간다. 초여름 무더위, 이웃집 계집아이는 잃어버린 만화경을 찾는다. 예정되었던 교인들의 심방이 취소되고 밀가루 반죽이 남는다. 수도 검침원이 찾아온다. 시청 하급 관리인 필경사로 정년퇴직한 그는 틀니와 어울리지 않게 염색한 까만 머리이고 그의 아내는 호호백발이다. 아들 영로는 20년 전에 스무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아내 몰래 죽은 아들이 쓰던 서랍에서 아이의 만화경을 꺼낸다. 아내는 남은 반죽으로 맥이라는 형체를 만든다. 이웃집의 계집아이가 찾아와서 꽃을 꺾는다. 무서운 꿈을 꾸는 아이에게 아내는 맥을 주지만 아이는 그것을 팽개친다. 아내는 수없이 많은 맥을 만든다. 어느샌가 이웃집 아이는 거울장난으로 아내를 괴롭히고 마침내 아내는 그치지 않는 울음에 잠기고 만다.
노년의 쓸쓸함과 죽은 아들에 대한 추억이 어느 하루 무덥고 나른한 오후에 펼쳐지고 있다. 아내는 쓸모가 없게 된 남은 밀가루로 나쁜 꿈을 모조리 잡아먹는 맥을 만든다. 이들 부부에게 삶이란 나쁜 꿈과도 같다. 동경(銅鏡)은 옛사람들의 껴묻거리[부장품 副葬品] 중의 하나인 구리거울을 말한다. 오정희는 특유의 시적 문체로 그의 소설 안에서 현실과 기억, 꿈과 사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의 소설 안에는 언제나 죽음이 신화적인 세계와 통해 있다. 작가가 죽음과 삶을 하나로 여기는 태도는 이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 죽음을 기다리는 사물화된 육신
이 작품에서 두 노인의 모습은 죽은 육신의 모습처럼 무기력하다. 거울로 반사된 햇빛을 공포스럽게 생각하고 빛을 반사하는 아이에게도 무기력하다. 이가 없어 ‘틀니’를 하고 있는 노인은 맛이 주는 즐거움을 모른다. 아내 역시 미각을 상실하여 ‘간장’을 타는 일을 잊는다. 모든 감각이 사라진 육체란 영혼이 없는 사물과 같은 존재이기에 이처럼 감각을 잃어감은 노인의 육신이 생의 마감을 향해 감, 즉 사물화되어 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틀니 없이는 정확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불가능함을 의미하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박물관’이나 ‘무덤’처럼 정적만 있는 공간의 두 육신은, 이미 두 노인이 ‘사물화된 육신’의 상태에 근접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의 제시는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죽음’의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대립된 공간
이 작품은 기본적인 스토리보다는 삶과 죽음의 대립적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소개되면서 작품의 주제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소설이다. 작품에 나오는 여러 가지 대상들, 즉 어린이와 노인, 생을 향한 발랄함과 음울함, 햇빛에 반짝이는 꽃과 그늘진 습지의 썩어가는 곰팡내 따위 등, 인생의 양과 음이 섬세한 정서와 예리한 감각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중간중간에 소개되는 노부부의 죽은 아이 ‘영로’는 생의 슬쓸함과 노회의 무력감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그들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고 없으므로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는 공간에서 그들은 삶을 지속해야 한다. 삶이 덧없다는 말도 평범한 일상에서는 무의미하다. 이 작품은 이런 평범한 일상을 계속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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