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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교당 토요정례법회
원불교를 만나서
원기99년 3월 22일
청년2단 양도인
반갑습니다. 신심대박 2단 양도인입니다.
I. 자기소개
저는 현재 26살입니다. 고향은 부산으로 부모님께서는 부산에 계시고, 20살부터 홀로 서울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역과 경영을 전공했고, 작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4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현재는 인사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곧 입사 1년차가 됩니다. 작년부터는 남동생 양병현 교우와 함께 서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II. 입교 과정 및 법회·공부방·단회에서 느낀 점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작년에 이생을 마감하신 외할머니부터 집안의 원불교 인연이 시작이 되어 외가쪽은 다 원불교입니다. 집에 일원상이 있고, 네덕내탓 이라는 액자가 걸려있고, 목탁이 있고, 일요일 아침마다 교당에 가는 것이 당연하였던 환경 속에서 저는 부산 광안교당 어린이 법회의 에이스로 활동을 하다가 학생회에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며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점차 교당을 나가지 않았고, 대학 시절에는 종교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종교를 내가 선택해야지 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종교가 정해져 있나’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 원불교를 다니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친구가 제일 중요했던 10대, 20대 초반 시절에는 “원불교가 뭐야? 교당이 뭐야?” 이런 친구들의 질문이 저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었습니다. 또 종교는 굳이 필요 없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너를 위해서 가라고 하는 거라고 하시면 싫다고 반항했고 심지어 성당에 나가보겠다고도 했습니다. 이랬던 제가 지금은 이 법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사은님께, 대종사님께, 외할머니께, 어머니께, 스승님께, 도반님들께 감사하며 교당에 다니고 있고 동생에게 교당에 같이 나가자고 조르기도 합니다. 어머니도 이 반전에 가까운 변화를 놀라워하고 또 기뻐하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 막무가내로 교당에 나가기 싫다고 반항하던 저의 행동들이 어머니께는 상처가 되었겠구나 어머니가 힘드셨겠구나 싶어 죄송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하게 되었나 궁금하시죠? 이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23살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자기소개를 쓰면서 가장 힘든 것이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가장 큰 실패 경험은?’ 이런 질문들이었습니다. 혼잣말로 “지금이 제일 힘들다”라고 하면서 억지로 쥐어짜내서 자기소개서를 쓰곤 했는데요, 물론 자취생활의 어려움, 사람과의 갈등과 오해 같은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실 저는 딱히 힘들다는 것 없이 무난히, 별다른 실패 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유롭고 낙천적이고 나름 자신감 있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1년 넘게 계속 취업에 실패를 하며 처음 느껴보는 실패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입에 “짜증나”라는 말을 달고 사는 제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제 인생의 암흑기였죠.
그러던 중 2013년 1월, 어머니가 “만덕산 동선에 같이 갈래?” 하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 동안 몇 번 저에게 그런 제안을 했었지만 저는 당연하게 거절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제 스스로 마음 정리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시점이어서 못이기는 척 가겠다고 했고, 동생도 대학 입학이라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못이기는 척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 삶은 변환기를 맞게 됩니다.
만덕산 선은 대종사님께서 처음으로 선을 났던 만덕산 초선지에서 나는 7일간의 정기훈련입니다. 처음에는 새벽 일찍 좌선을 하는 낯선 일정과 어려운 설법말씀에 힘들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3일째부터는 점차 익숙해지면서 승산종사님의 설법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관조해보라는 종사님의 말씀을 따라 고요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순간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나고 변화하는 저의 마음들이 보였습니다. 그간 내가 얼마나 감사하며 생활하지 않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마음공부가 참 좋은 것이구나 해보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의 마지막 일정은 해제식 후 익산 상사원에 가서 좌산상사님을 배알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 안암교당과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안암교당 청년들도 김제원 교무님과 출가여행을 마치고 같은 시간에 좌산상사님을 배알하러 왔던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소개해주셔서 김제원 교무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그 때 교무님께서 명함을 주시며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어도 와~” 하고 말씀 하셨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13년 1월 19일에 안암교당에 발걸음 하게 되었습니다.
안암교당에 와서 처음 와보는 청년회의 분위기가 많이 낯설었습니다.
<법회와 공부방에서 느낀점> 하지만 법회와 공부방에서 교무님의 설법 말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이 법회나 학생 법회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강요로 억지로 몇 번 나갔던 다른 교당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매번 “아!”하고 무릎을 치는 깨달음 및 반성과 함께 저의 뇌와 마음을 자극하는 설법말씀이었습니다. 훌륭한 스승님께 진리에 대해 하나씩 배워나간다는 사실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일례로 최근에는 수요공부방에서 나태와 관련된 설법말씀과 정례법회에서 마음의 여유에 관련된 설법말씀을 통해 “아! 내가 정말 나태한 사람이구나!”하고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여유있고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교무님께서 진정한 여유는 철저한 미리준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아 진정한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더 바쁘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구나. 나는 그 동안 여유를 빙자한 나태함을 갖고 살아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10%의 부지런함과 90%의 게으름이 있는데 저는 항상 90%는 외면한 채 10%의 부지런함이 있으니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당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모른 채로 나는 게으르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단회에서 느낀점> 사실 고백하자면 처음 교당에 왔을 때는 교우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배워서 내가 발전하고 싶다는 공부심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왠지 원불교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착하게 행동해야 할 것만 같고, 다들 목석 같이 진지하기만 한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첫 단인 부처핸썸 4단의 이제선 단장님, 심하은 중앙님, 단원님들과 따로 만나기도 하고 단회를 한차례 두차례 하면서 저의 이런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교당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제선 단장님과 둘이 데이트를 할 때 “도인이는 처음에 자존심이 되게 세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어. 그런데 자존심은 사실 열등감과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거야. 자존심 보다는 자신감을 키워야 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때 정말 “아차!”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자신감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온실 속 화초 같은 아이였던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여러 안 좋은 습관들과 생활패턴 속 자행자지하며 살아가게 되었고 어느새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자존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자존심을 없애고 자신감을 키우자는 것을 화두로 삼고 살아갔더니 원불교 다닌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시절 친구로부터 “너가 원래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냐?”하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단회 때에는 단원들이 자기 말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지내온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하은중앙님의 단원들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과 정성도 감동적이었고, 단원들의 고민마다 대종사님의 법으로 연결시켜 해결책을 제시해주려고 하시는 제선단장님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 저런 단장이 되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승님께도 배우지만, 이렇게 도반님들께도 참 많이 배웠습니다. 서서히 차가운 제 마음의 벽은 허물어지고 이렇게 좋은 인연들을 만났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고, 교당에 완전히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제대로 “원불교를 만나”게 된 것 입니다.
III. 원불교를 만나서
이제 원불교를 만나서 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씀 드리고자 하는데요, 1년이 조금 넘은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폭풍 변화가 있었습니다.
1. 공심
제가 생각한 달라진 점 첫 번째는 “’공심’에 대해 알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원불교를 만나기 전까지 살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몇 배로 열심히 했고 결과가 좋았더라도 제 스스로는 만족이 안 되고 항상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최선을 다했다”고 느낀 경험이 2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 첫 수요공부방 강연이고, 두 번째는 원기98년 부처핸썸 4단의 마지막 단회 후기입니다. 후기는 규진교우님이 댓글로 혼을 담은 후기라고 하셨었는데 정말로 어떻게든 단중님과 단원님들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혼을 담아서 5시간 정도 썼던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의 공통점은 하면서 힘들지만 즐겁고 행복했다는 것과 하고 나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동안의 작은 욕심 이었던 ‘남들보다 잘하겠다’는 욕심을 비워내고 이 두 가지 일을 할 때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줄 수 있을까, 보은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는 공심이란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일상수행의 요법 중 공감이 별로 안 갔던 부분이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였습니다. 상경대학 수업에서 늘 듣던 것이 ‘이윤추구’인지라 사실 ‘공심’이란 단어는 참 생소한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공심’은 제 머리 속의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계속 배우다 보니 ‘공심’이라는 것이 원불교인으로서 영생을 잘 살아가는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정말 많이 부족하지만 교당에 와서 주인의식, 공심, 감사심을 알게 되다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오늘 법회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해 준 분들의 작은 하나하나의 노력들, 단원불공을 하는 단중님들의 노력과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더 감사하게 되고 죄송한 마음도 들면서 공심을 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법회나 공부방 무결석에 대한 의미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내가 좋아서 결석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이제는 내가 무결석을 함으로써 공부하는 문화, 결석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결석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마음가짐과 생각하는 사고가 ‘나’라는 아주 작은 그릇에서 조금씩이지만 커져가고 있습니다.
2. 인연불공
두 번째 변화는 주위 인연에 불공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당 생활을 점차 열심히 하게 되면서 교당에서는 단원 불공하면서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불공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기 99년 불공 0순위는 제 동생입니다. 동생불공이 동생을 꼭 법회에 출석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먼저 모범을 보이고, 세심하게 챙겨주고, 정신, 육신, 물질로 지원해주는 동생이 존경할 만한 누나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생이 감화가 되어서 언젠가는 법회에 출석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동생불공이 부모님에 대한 보은의 일환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굉장히 무심한 누나였어서 동생에게 참 많이 미안한데, 이전에도 아 미안하다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의 마음은 이전의 그 마음과는 많이 다릅니다. 억지로 세운 목표가 아니라 그냥 저절로 마음속에 딱 자리 잡은 굳은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아직 많이 부족해서 이렇게 동생이 와있는 자리에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노력해가겠습니다.
중생들은 원래 준 것은 기억해도 받은 것은 잘 기억 못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얼마나 준 게 없고 받기만 했으면 받은 것만 기억납니다. 그래서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끔씩 친구들에게 나같이 못되쳐먹은 애랑 친구해줘서 참 고맙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표현도 잘 못하는 저와 오래도록 우정을 지속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맙습니다. 그 대표적인 친구가 우리 도권교우인데요. 참 고마운 친구 중 하나입니다.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자주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줘서 교화의 씨앗을 심고자 합니다. 베푸는 즐거움을 이제 쫌 느껴보려구요.
3. 지금의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니다.
세 번째 변화는 지금의 내가 본래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저는 제가 단점도 별로 없는 사람인 줄 알았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남자친구가 저의 단점을 지적하며 뭐라고 하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를 바꾸려고 하지마.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교무님께 배우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래 부처님이지만 그간의 습관과 업이 쌓이면서 지금의 성격을 가진 제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격이 원래 이래서 가족에게 살갑게 잘 못해요.’ 이건 그냥 핑계일 뿐이었죠. 마음공부를 하며 저의 단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더라구요. 그리고 이 단점들을 고쳐나가고 본래 부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굳어진 습관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노력하다가도 힘드니까 금세 놓아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저의 네 번째 변화를 만들게 됩니다.
4.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목표가 필요하다. [현재의 나]
네 번째 변화는 서원을 세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풀리고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큰 원동력인 서원을 세우고 싶습니다. 현재 저는 또 한번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원불교를 만나 마냥 행복했다면 지금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아픕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에 피로가 많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2월, 몸에 이상신호가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내내 앓고 병원에 가고 이런 생활을 반복했는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그 주는 겨울 정기 훈련 주였습니다. 훈련에 가야 하는 금요일이 되어도 몸이 좋아지지가 않아서 점심시간에 링겔을 맞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링겔을 맞고 나니 머리가 너무나 맑아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정신이 맑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제 몸과 마음이 어떤지 모른 채 피로에 파묻혀 그냥 살아왔던 거죠. 훈련 마지막 밤에 염불로 법신불 사은님을 외는 시간이 있었는데 눈물이 펑펑 났습니다. 처음에는 그 동안 나도 모르게 힘들었던 것들이 북받쳐 올라와서 울었고, 그 다음에는 내가 그 동안 잘못 살아왔던 것에 속상하고 죄송하여 참회하면서 울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저는 사실 눈물이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요 원불교를 만나서 울보가 된 것 같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무거운 짐과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는데 집이 너무나 어질러 져있었습니다. 2차 폭풍 눈물이 시작됐습니다. 좀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펑펑 울면서 청소를 했습니다. “정말 이렇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강한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질러진 주변 환경이 제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나름대로 마음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표가 없이 되는대로 살다 보니까 내 주변 환경은 어질러져 있고 엉망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특히 내 인생, 영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은요. 앞서 말했듯 나태한 저는 목표를 세우는 것도 어렵고 힘드니까 회피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목표 없이 사는 것은 더 힘들다는 것을 이제 진짜 알게 되었습니다. 목표한 방향도 없이 그냥 바다 위에 표류하는 배처럼 사는 삶, 사막에서 빙빙 제 자리 걸음만 하는 삶은 이제 그만 살고 싶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며 서원을 하나 세웠습니다. 라고 하면 정말 좋았겠지만 아직 세우지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큰 숙제입니다. 이 성장통을 겪으며 아파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한마음 한마음 챙겨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서 앞으로 진급하고, 도움을 주는 양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V. 강연을 마치며 + 앞으로의 다짐
이제 앞으로의 구체적 다짐을 말씀드리며 강연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서원도 세우고 싶고, 신심도 키우고 싶고, 공심도 키우고 싶고, 보은 하고 싶고. 참 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력양성”을 하고자 합니다. 보통 “힘 닿는 데 까지 열심히 할게요!”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저는 그 말을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힘이 커져야 더 많이 도울 수 있겠구나’라고요.
자력양성의 첫 번째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 혹은 헌배를 하고자 합니다. 체력이 안 좋으니 교당, 가정, 직장 생활 모두에서 의욕이 줄어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꾸준한 수행을 통해 마음의 힘을 비축하고 신심을 키우고자 합니다.
직장, 가정, 교당으로 나누어서 자력양성을 위한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먼저 직장에서는 자력을 양성하기 위해 그 동안 체력이 안 된다는 핑계로 게을리 했던 공부를 하려 합니다. 가정에서는 경제적 능력을 키워서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하고 다음 단계로는 동생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어서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교당에서는 지도자를 위한 준비로 교리공부와 마음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교무님께서 단원이라고 생각하는 단원은 진짜 단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미래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공부하고, 또 현재의 위치에서 제가 단원, 부원으로써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도울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도우며, 열심히 공부하는 문화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자력양성에 뒷받침되어야 할 것은 “취사력”입니다. 저는 취사력이 약해서 무슨 일이든지 처음 첫 발을 내딛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힘들고 하기 싫고 회피하려는 마음을 극복하고 무조건 실천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자력양성을 위해 실천한 것은 영어학원을 끊은 것과, 신용카드 없애고 학자금 갚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과 좌선을 하기 시작한 것, 교전스터디를 시작한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잘 이겨내고 나아가는 양도인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서툴러서 이번 강연은 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정말 진솔하게 저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딱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원불교를 만나서 강연이 저에게는 참 의미 있고 은혜로웠습니다. 저의 진솔한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조금의 감상이라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 강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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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교무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기 위해 작년부터 매주 들리는 교당 카페가 있습니다.
오늘은 거기서 놀라운 글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딸아이가 쓴 글이었습니다.
아이의 진솔한 글이 저의 흐트러진 정신을 일깨워주고 크나큰 은혜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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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의 진솔한 글이 저의 흐트러진 정신을 일깨워주고 크나큰 은혜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