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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처럼 올려드리려고 했는데
늦었네요. 그래도 아직은 즐거운 크리스마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여섯 분 모두 아주 개성적이고 멋진 글 기대만땅입니다.
모시게 되어 참 기쁩니다.
권경자(대구)
대구 아양수필 회원
주소: 대구시 동구 율하동
전화: 010-5049-6402
e-mail: rudwk48@hanmail.net
퇴직한 지 10년…. 퇴직 시 갑자기 닥친 많은 시간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뭘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때 바람 중의 하나가 글 쓰고 살아가고 싶다, 였습니다. 그 바람이 10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퇴근 후 집안일 마치고 학교에서 가져 온 책을 읽고 있으면 남편이 그랬죠 “이젠 그만 읽고 글을 쓰지. 그만큼 읽었으면 소라도 쓰겠다.” 아니 초등학교 문예반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었나 봅니다.
글을 쓰면서 제일 좋은 것은 토요일 보내기였습니다. 아직도 주말에 대한 기대, ‘누가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가자고 하지 않을까? 행여 자식들이 찾아와 주지 않으려나’ 하는 쓸쓸해진 마음을 컴퓨터 앞에서 다독이며 풀어 나갈 때 마음이 편안해지며, 모든 것이 따뜻이 보였습니다. 또 행복했습니다. 토요일을 글 쓰는 날로 잡았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며 옛일들도 생각하고, 지금의 나도 생각해보는 참으로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곳이 내 자리이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고, 뭔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게 가슴 뿌듯했습니다. 토요일이 소중한 날이 되었습니다. 차례로 엄마, 아버지, 남편을 보내고서, 정작 그들이 그리워질 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어 미안했는데, 내 자식들에게 엄마의 생각을 남길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갔다 돌아오면 항상 그대로인 빈집을, 쥐방구리 제집 드나들듯 찾아 와 온기를 채워주는 딸 가족,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집안 공기를 뒤흔드는 지유, 지인이. 멀리서 든든히 지켜봐주는 아들가족, 건휘와 완휘. 고마워….
글을 쓰게 격려해주시고 힘 돋아주시는 이상렬 선생님, 고맙습니다. 앞으로 글 쓸 수 있는 용기와 할 일을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글을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조근조근 말 나눠가면서 행복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재환
서울 출생
(현) National FP 부동산금융사업부 이사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매일경제 부동산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경제 부동산 리더스 칼럼니스트
대학, 공공기관 출강
주소 : 대구
전화: 010-9492-0620
이메일: elvismyung@hanmail.net
나는 문학이 싫었다
나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전공수업은 무척 지루했고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유명작가가 쓴 글이나 시를 보면 과연 저런 감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현실에 있을까. 왜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사여구가 이렇게나 많은 걸까. 문학은 오랫동안 내게 답을 주지 않았고 하기 싫은 것을 해내야만 하는 끈기와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는 인내만 배운 채 졸업하였다. 더 나은 직장에 가고 싶어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사회과학이란 분야는 무척 나에게 잘 맞았고, 애매모호한 표현과 감성적으로 느껴졌던 문학에서 볼 수 없는 명쾌함을 주었다. 그렇게 20년 남짓 정치·경제·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해내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삶이라 여겼다.
처음 수필을 접하다
직장생활 가운데 사회과학 공부를 오랜 시간 하다 보니 경제신문에 칼럼을 쓸 기회가 생겼다. 단순히 칼럼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처음 수필수업에 나갔다. 처음 접하는 수필은 무척 낯설었다. 무엇보다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해 난감했다. 3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수필 한 편을 썼다. 차츰 글 양이 늘어나면서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지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세월과 함께 새롭게 정리되었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사회과학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사회과학이며, 그 안의 관계는 평생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는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사회과학은 그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수필은 항상 먼저 사회 속의 나를 규정하며 살아왔던 내게, 나로부터 시작하는 세상의 느낌을 처음 가져볼 수 있는 매개였고, 수필을 쓰는 시간은 세상의 평균적인 감정에 맞추어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을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반백살 만에 철이 들다
“어머니, 나 신인상 받게 되었어요.” “그래 잘 되었네. 역시 엄마 닮은 아들이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시조 짓기를 즐겨하신다. 피는 못 속이나보다. 내 나이 오십, 반백살 만에 다시 문학의 입구에 서성이고 있다. 문학을 거부했던 난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재환아, 미안해. 이제야 철이 들어 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너의 글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착한 글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감이 사라지고 초조함이 드러날 때마다 아양수필 이상렬 선생님의 다독거림은 사방이 모래밭인 사막에서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었습니다. 글을 써 가는 과정에서 샘솟던 생각에서 느낀 오묘한 희열은 오아시스와도 같았습니다.
많은 가르침에도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 제자를 사랑으로 감싸주신 선생님께 평생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생겼습니다. 수업 후 티타임을 통해 개성과 다양성이라는 귀한 가치를 일깨워 준 문우님들께도 그리움을 전합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 졸작을 신인상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의 마음 드립니다.
박정옥
전남 거문도 출생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전남 광주에서 보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현재 서울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개원 중
e-mail: pr5975@naver.com
몇 해 전 막내 대학입시가 끝나면서 제2외국어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욕심을 내서 일본어와 불어 학원을 모두 등록했다. 일어 학원 수업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직업을 이야기할까 말까 망설이며 내가 뜸을 들이니 선생님이 대뜸 물으셨다.
“혹시 작가신가요?”
“아… 네?”
이런 애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주로 선생님이 아니냐는 질문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나를 작가일지 모른다고 추측한 것이 신선할 뿐 아니라 마음에 뭔지 모를 즐거움을 주었다. 나를 포용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으로 봐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년에 두 가지 외국어를 배우니 무리가 되었는지 단어들이 뒤죽박죽되기 시작했다. 한국말까지 입에서 안 떨어지고 어중간한 영어마저 후퇴하였다. 하는 수 없이 일본어는 중도 포기하고 프랑스어는 살리기로 했다. 한 가지를 포기해도 남은 것이 큰 진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남 역 부근의 활기찬 풍경도 보고 젊은 급우들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다녔다.
어느 날 열 명 남짓한 우리 반에서 실력이 제일 좋은 남학생이 선생님의 질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답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였지만 불어로 길게 말하는 것이 대견한지, 선생님은 한참을 듣고 나서 대뜸 말씀하셨다.
“마음껏 상상을 했네. 소설가(ecrivain)예요?”
요즈음 흔히 말하는 한국말 농담 “소설 쓰시네”와 비슷하게 불어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때 선생님이 급우에게 말한 작가(ecrivain)라는 프랑스어 단어가 내게 몹시 새롭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단어로 여겨지며 무엇인가가 내속에서 꿈틀했다.
그게 뭘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3 때 일이 떠올랐다. 문학에 심취하여 불문과에 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가 엄청난 반대에 부딪친 일이다. 전문직을 택하라는 충고에 따라 의대를 지원하면서, 의사가 된 다음에 기필코 불문학을 공부하리라 다짐했었다. 문학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고 싶은 고교 때의 갈망을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것을 깨달았다.
그날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꿈과 다시 만났다. 그래서 어디 실을 곳도 없으면서 틈틈이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 글을 쓰다가 그만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학원에서 반이 새로 바뀌자 나를 전혀 모르는 선생님과 급우들 앞에서 자신을 수필가로 소개한 것이다.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나는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언젠가 등단하면 되니까…. 꼭 뻥을 쳤다고는 할 수 없지.’
마음속으로 합리화하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린 마음에 더 열심히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도 작가 타이틀을 갖는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꿈같은 소식이 어느 날 내게 날라왔다.
‘에세이스트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메일 제목에 이어서 보라색 평원에 핑크빛 홀씨들이 날라 다니는 동화 같은 그림이 나타났다.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할 수밖에 없었다. 길게 적힌 상세 안내문을 읽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온 집안에 기쁜 소식을 알렸다.
작가 대열에 합류하게 해주신 에세이스트 심사위원님들과 조정은 주간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금까지 응원해주셨던 선배님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지정숙
충남 논산 출생/ 포천시 거주/
포천문인협회 회원/ 경민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
한자강사/ 서정과서사 회원
주소: 경기도 포천시
전화: 010-4934-1703
이메일: 0503clover@hanmail.net
‘글을 참 잘 쓰는 구나’ 국어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말을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에세이스트’를 어렵게 만났죠.
간신히 ‘에세이스트’라는 문 앞에 섰지만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불편한 교통편과 먼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두려움! 두려움이었습니다. 대선배님들의 프로필은 대단했습니다. 제 자신이 누(累)를 끼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격지심은 저를 주눅들게 만들었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을 떠올렸습니다. 그래! 한 번 들어가보자.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그만두면 되잖아….
‘신입회원 작품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설마…하고 기다렸습니다. 세상에! 답이 왔습니다. 김병기 선생님의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신랄한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절로 환호성이 나왔습니다. 객관적 평가를 갈망하고 있던 저는 단비! 꿈에 그리던 단비를 맞게 된 겁니다. 필기도구를 챙겨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밀어주시는 선생님들의 손은 따뜻했습니다. 정이 넘쳐흘렀습니다. 저는 그 따뜻한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합평은 움츠려지는 저의 어깨를 펴주었습니다. 펜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가끔은 가슴 깊은 곳에 뭉쳐있던 응어리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힘들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서로 뒤엉켜버린 이야기가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졸작을 다 읽을 때까지 들어주시고 합평을 해주신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느 선생님을 만나야 하나 많이 방황했었는데 이제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활짝 열어주신 문 안으로 들어가려니 긍구(兢懼)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습니다. 가벼웠던 발걸음이 무거워지려고도 합니다. 저에게 이 상(賞)은 과분합니다. 하지만 힘을 내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늦었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수상자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그냥 수필이 좋아서입니다. 글이 쓰고 싶어서입니다. 대선배님들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선망하던 대선배님들을 만나 기쁩니다. 수필에 천착할 수 있는 지금을 저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게 껍질을 깨고 나와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렵지만 서있는 이곳이 꿈속이 아님을 알기에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봅니다.
경직된 펜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도록 노력하렵니다. 모자람을 채워 나가렵니다. 모자람이 많기에 채우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펜을 놓는 일이 더 힘듭니다. 그 당돌한 펜의 힘에 저를 맡기려 합니다.
내세울 것 없는 저를 이 자리에 세워주신 교수님, 심사위원 선생님, 월요반 선생님을 비롯한 수필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에세이스트!
한인자
서울출생
숙명여대 무역과 졸업
숙명여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서울교대 평생교육원 <내 글로 책쓰는 비결> 수료
대한통운 주식회사 근무
영서수필문학회 회원
주 소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휴대폰: 010-4688-7209
이메일: 5bj5js@naver.com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상의 사물과 현상을 대할 때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러나 작가들은 똑같은 현상을 보고 그 특성과 내면을 읽어내고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글로 창작을 하는 것 같다. 작가들의 그런 재능이 부럽고 늘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글쓰기는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50여 년을 하루같이 정겹게 살아온 남편이 갑자기 곁을 떠나갔다. 둘이 함께였던 삶이 혼란 속에 빠졌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있는 내게 안화성 작가가 글쓰기를 안내했다. 확실한 의욕과 자신감도 없이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서울교대 평생교육원 <내 글로 책쓰는 비결>에 출석을 하며, 수업을 들을수록 막연하던 글쓰기가 흥미로워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마음도 진정되었다.
이제는 사물을 볼 때 관찰을 하고 메모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을 활자로 쏟아 놓았을 때의 성취감과 후련함이라는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되었다. 밤송이가 품었던 알밤들을 오롯이 쏟아 놓듯이, 창작의 기쁨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열정적이고 자상한 가르침으로 지도해주신 김낙효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부족한 나에게 격려와 용기를 준 서울교대 문우님들의 응원이 언제나 큰 힘이 되었다.
아직 영글지 못한 작품이라 주저했는데, 신인상 당선 소식을 접하니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용솟음쳤다. 부족한 글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나의 첫 독자가 되어 힘이 되어준 딸과 컴퓨터교육에 도움을 주는 손주에게도 감사하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었지만, 마지막 빛을 발산하는 황홀한 일몰의 석양처럼 읽는 이에게 따스함의 여유와 생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도록, 기쁨과 감사로 열성을 다한 글을 쓰고자 계속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황옥화
대구 아양수필 회원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e-mail: hoh3409@hanmail.net
아파트 앞 정원에 붉게 타는 단풍나무가 오늘 따라 눈이 부신다. 어저께 까지만 해도 떨어져 쌓인 낙엽들이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게 보였었는데…. 내 인생도 저 단풍나무와 같은 시점에 와 있다.
딩동~ 메일이 왔다.
‘에세이스트 77호(2018년 1-2월)의 신인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발이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다. 두렵고 떨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굳어버린 듯 미동도 없이 단풍나무만 응시한다. 주르르 한 줄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건 부처님의 가피다. 그토록 갈망했던 길, 저 찬란한 단풍잎처럼, 아름다운 저녁놀처럼 후회 없이 나의 길을 가보라는 부처님의 계시가 틀림없다.
“감사 합니다”
마음만 있었지 천둥벌거숭이나 다름없는, 재능도 없고 모든 것이 부족한 저에게 선생님은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고, 대구 아양수필반 글벗님의 격려와 함께한 시간들이 오늘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제 남은 인생을 외롭지 않게 크나 큰 선물을 주신 이상렬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에세이스트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말없이 지켜봐주는 제 인생의 동반자 남편과, 마음 편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제 몫들을 잘하고 있는 아들, 며느리, 사위, 딸들, 그리고 이 길을 먼저 간 제 친구, 할 수 있다고 손 잡아준 남정화,
“고맙습니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따뜻한 마음으로 진솔한 얘기들을 쓰는 일이 모든 분들께 대한 보답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직은 마무리가 아닌 늘 새로운 시작에 도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