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을 흔히 밥도둑이라고 한다. 노르스름한 장이 담긴 게 등딱지에 밥을 비비면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장이 얼마나 맛있는지 고려 때 문인 이규보는 게장을 먹으면 굳이 신선이 되는 약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했다. 신선의 특징 중 하나는 죽지 않고 장수하는 것이다. 신선이 되는 약이 바로 불로초인데 게장을 불로초 못지않다고 본 것이다.
아이 불러 새 독을 열어보니
하얀 거품 솟으며 향기를 풍긴다
게는 금빛 액체, 술은 봉래주(蓬萊酒)
어이하여 약 먹고 신선을 구하랴
노랗게 익은 게장을 보며 신선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게장을 먹으며 술 한잔 먹는 것이 바로 신선놀음이라고 노래했다.
게장은 먼 옛날부터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였다. 기원전 7세기 이전인 주나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바쳤다는 맛있는 음식으로 ‘청주의 해서(靑州之蟹胥)’를 꼽았다. 해서는 게장이라는 뜻으로 한나라 때 사전인 《석명(釋名)》에서는 게를 잡아서 장을 담그면 뼈와 살이 녹아서 젓이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게장 중에서도 청주에서 잡힌 게로 담근 것이 가장 맛이 좋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세상이 모두 아홉 개의 주[九州]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는데 청주도 그중 한 곳이다. 청주는 지금의 중국 산둥성 태산의 동쪽 발해만에 위치한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보면 서해안이다. 그러니까 산둥성과 한반도 사이의 서해에서 잡히는 게로 담근 게장이 옛날부터 이름을 떨친 것이다.
게장은 임금도 즐겨 먹은 음식이다. 간장게장으로 인해 조선의 정치 판도까지 바뀌었으니, 영조 때의 일이다. 영조의 선왕이자 형님인 경종이 게장을 무척 좋아했다. 경종은 왕에 오른 지 4년째인 1724년 승하했는데 죽기 전날에도 게장으로 수라를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사망 원인이 나온다.
어제 임금이 게장과 생강을 드셨는데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다. 게와 감을 함께 먹는 것은 의사가 꺼리는 일이다.
공식 기록에는 경종이 게장을 먹다가 체해 승하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당시 세간에는 경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독살설에서 피의자로 지목된 이는 당시 동궁이면서 이복동생인 영조였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은 짧은 재임 기간 동안 극심한 당쟁에 휘말렸다.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세제인 영인군, 즉 영조의 지지 세력인 노론이 임금과 동궁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당파 싸움을 벌인 것이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영조는 당쟁을 없애려고 탕평책을 펴는데, 영조를 반대했던 소론 일부와 급진 남인 세력이 자신을 제거하려 들자 소론과 남인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이때 빌미가 된 것이 바로 게장이다. 소론 인사인 이천해가 경종이 동궁전에서 보낸 게장 때문에 사망했다는 소문을 내자, 영조가 임금을 모함한다며 역적죄를 물어 소론 일파를 제거한 것이다.
영조는 이후에도 계속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는데 왕이 된 지 31년이 지난 후에도 소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영조실록》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역적 신치윤의 게장에 관한 심문 기록을 보면 가슴이 섬뜩하고 뼈가 시려서 차마 들을 수가 없다. 황영(경종)에게 진어한 게장은 동궁전에서 보낸 것이 아니고, 주방에서 올린 것”이라고 했는데, 31년 전의 사건을 다시 거론할 정도로 시달린 것이다.
한편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정조 때 이름을 떨친 이덕무는 선비들은 게장을 먹을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비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적은 《사소절(士小節)》이라는 글에 실려 있는데, 게 등딱지에 밥을 비벼 먹지 말라고 강조했다. 보기 흉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거꾸로 말하면 체면을 중시한 조선시대에도 선비들조차 모양새 빠지건 말건, 밥을 게 등딱지에 비벼 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보기 흉할 정도로 지나치게 탐하지 말라’는 교훈이니 모든 일에서 절제의 미덕을 강조한 것이다.
첫댓글 간장게장 양념게장 다좋아하는데 울엄마 안계시니 먹을일이 잘 없네요ㅎ...
언제한번 직접 도전 해봐야할까봐요 ...엄마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