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 백남기를 잘 아는가?
신록이 유달리 짙푸른 5월 4일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의 고 백남기우리밀밭에는 서울 등 전국에서 온 200여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 단순한 추모의 분위기가 아닌 「봄, 밀밭길의 추억」을 되살려나가고 있었다. 생전에 생가 뒤편 산자락을 다듬어놓은 널따란 밭에 자라고 있는 싱싱한 우리밀은 백남기군의 숨결인양 봄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그의 큰 삶을 흠모하는 농악대가 시골마을을 흥겨움으로 장식하고 「사단법인 생명평화 일꾼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3대 이사장 장휘국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추억의 밀밭길을 걸은 다음 우리밀 주먹밥을 먹고 보물찾기, 밀짚공예, 밀밭음악회까지 다양한 기념행사를 전개했다. 그런데, 우리는 광고 17회 동기로서 친구 백남기를 잘 알고 있는가? 동기 박영길과 함께 참석한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친구의 일대기를 옮겨 적는다.
★ 백남기는 1947년 富春마을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 광주고를 거쳐 중앙대학교를 다니며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과 싸우다 무려 3번의 제적을 당했다. 오랜 수배생활을 하며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갈멜 수도원에서 수사생활 등을 하다가 1980년 3월에 복교되었다. 그러나 그해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의 5.17 사전예비검속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김대중 내란음모 혐의로 징역을 살다가 학교로부터 세 번째 제적을 당했다.
출소 이후에 학업을 포기하고 바로 고향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가돌릭농민회 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2015년 11월 15일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하였는데 박근혜 정부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쓰러져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돌아가셨으며 현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잠들어계신다. 백남기의 죽음은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항쟁의 원동력이었으며 문재인 정부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해마다 11월 25일에 광주 망월동에서 추모제를 열고 있으며 『백남기생명평화상』시상식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상 백남기의 일대기를 적으면서 대충 살아온 나도 기념사업회에 참여할 방법으로 매월 일정 성금을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