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 조용미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빡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연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 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나도 꿀에 인삼을 넣어 묵혀 본 기억이 납니다.
마늘은 넣어보지 않았지만 흑마늘은 만들어 보았지요.
여러가지 효소 만들기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인식되어 주부라면 누구나 몇 가지 효소 쯤은 즐기며 만들고 사용하면서 가족들의 건강에 일익을 담당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도 온갖 효소를 다 만들었고 효소는 <기다리는 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발효시는 쓰지 못했네요.
조용미의 가을밤을 다시 읽어 봅니다.
담가서 두 해 동안 잊어버린 채 놓아둔 마늘꿀절임은 마늘맛만이라거나 꿀맛만이 아닌 묘한 그들만의 맛으로 재탄생 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특성이 다른 두 가지가 만나서 조화를 이룬 그 맛에서
화자는 <내 속의 당신>을 떠올리게 되죠.
세상의 많은 부부들을 생각한 것이겠지요.
둘이서 오래 함께 하는 동안 나도 당신도 달라졌다는 의식, 그러나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자기희생이나 양보, 자신을 버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메시지....아니면 사랑하면 나보다는 상대방을 닮아 가는 것....
<맑고 깊어서 방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 가을밤이라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우리에게 중요한, 들어서 좋은 이야기는 장사치들의 외침이나 확성기 소리처럼 또렷하게 들리지 않는 법,
귀를 기우려야 들립니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온몸으로 듣는 것,
침묵 속엔 침묵만 있는 것이 아님을 되새김합니다.
이런 조용한 깨달음은 아마도 가을밤이어서 더욱 차분하게 마음 속으로 스밀 것 같은.....
울며 사과 먹기 / 오명선
윗집에서 일방적으로 보내온 사과상자
이건 사과가 아니다
밤마다 내 잠 속을 콩콩 뛰어다니는 어린 캥거루의 발목
쿵쿵쿵 주방으로 욕실로 돌아다니는 하마의 엉덩이
사과도 아닌 것이 사과 이름표를 달고 사과 흉내를 내며 사과인 척 공손하다
입만 열면 뻔한 변명, 뻣뻣한 반성, 꺾이지 않는 일방통행
고집불통의 이 상자
사과를 내 입에 물리고 밤낮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결국, 내 숨통을 틀어막을
의뭉스런 빨간 속내를 알면서도 뜯고
이렇게 흉보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억지춘향으로 뜯는다
캥거루가 하마가 훨훨 새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내 입과 귀는 진공포장 된다
우리들의 주거환경이 많이 현대화 되었지요?
이젠 시골까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으니 말입니다.
헌데 아파트의 층간소음문제는 골칫거리이기도 합니다.
윗층에 아이들이 많은 가족이 이사 왔다면, 더욱이 아랫층에 환자나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 거주한다면 사건이 벌어지기 쉬운 일입니다.
살인까지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도 방송을 통해 모두 아는 일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닌 울며 사과 먹기에서 다시 느끼게 됩니다.
윗집에서 일방적으로 보내온 사과를 먹는다기 보다 <뜯고> 있습니다.
맛있는 사과 맛을 느끼지 못함을 함의하고 있는 <뜯고>!
왜 그럴까요?
사과란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 그러나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사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만 뒤돌아서는 다시 되풀이 되는 소음이 진동하는 공간
살아 본 사람들은 다 공감을 합니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누웠는데
천장에서 (쥐들이 달리기 하는 것도 아니고) 캥거루가 뛰어다니고 쿵쾅거리며 하마가 걸어다닌다면?
지진이 나겠지요?
머리에 쥐가 난다고 할까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미안하다는 빈말과 함께 보내 온 사과 한상자로
진짜 어쩔 수 없이 인내해야만 하는
내 입과 귀는 진공포장 될 수밖에 없는
캥거루와 하마가 새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
과일 <사과>를 먹으면서 謝過를 받아드린다기 보다 인내하는 상황이 잘 그려졌지요?
우듬지 / 이규리
나무 밑동을 안았는데 왜 우듬지가 먼저 기척을 하는지
언젠가 당신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내게도 흔들리는 우듬지가 있음을 알았다
빠른 속도로 번지는 노을, 그 흥건한 물에 한철 밥 말아 먹었다 너무 뜨겁거나 매웠지만
상처라도 좋아라 물집 터진 진물에서 박하 냄새 맡던 저녁, 내 속으로 한 함지 되새 떼 쏟아져 날았다
손닿지 않는 곳에 뭘 두었니? 당신을 숨긴 우듬지엔 만질 수 없는 새소리만 남아
어느덧 말라버린 무화과 꼭지처럼, 살이 쏙 내린 잔뼈로 이름만 얽어놓은 그곳, 닿을 수 없는
<우듬지>는 나무의 꼭대기, 그러고 보니 말초신경이 생각나고 전선의 끝에서 스파크가 이는 것을 생각합니다. 우듬지는 나무의 가장 끝부분, 그러나 심장과 연결된 가장 민감한 곳일 거구요.
그래서 <첫>자가 생각납니다. 첫사랑 첫경험 같은....
화자는
너무 뜨겁고 맵고 상처라도 좋았던 기억, 첫사랑을 얘기합니다.
터진 진물에서 박하냄새가 난다고 미화되어 생각나는 ,
닿을 수 없는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