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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안에서 요동치는 과거와 미래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죄목으로 체포 영장을 발부하여 정국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2012년 대선 개입 혐의로 국회의 국정조사를 받던 국정원이 위기에 몰리자 타개책으로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수법을 30여 년만에 재현했다는 보도도 있고, 과연 국정원이 제시한 ‘녹취록’대로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세력은 말도 안 되게 유치한 폭력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도 대두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밝혀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의 미래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극단적인 좌우가 부딪치는 시대착오적 소모전의 성격이 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작년 대선의 찬반이 52% 대 48%라고 본다면 매우 근소한 차이라고 하겠고,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양극단의 대결보다는 중도적 중용의 길을 선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민족의 힘을 분열시키지 않고 당면 과제인 경제 민주화, 남북 평화 유지, 나아가 3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 등이 힘차게 추진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지난 6월부터 제레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에 심취해 있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공유 경제,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 SNS의 발달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만나는 한겨레신문이 그러한 방향성에 딱 부합하는 다양한 기획물과 기사를 지속적으로 엮어가는 것도 발견하고 새삼 마음이 흐뭇해지더군요. 이미 우리 안에도 미래가 커다란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수평적 권력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보수적 세력과 언론들은 여전히 과거의 이념 대립과 남북 갈등을 부채질하는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요통치고 힘을 겨루고 있는 실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번 이야기는 제레미 리프킨 『3차 산업혁명』, 3부 협업의 시대, 7장 <애덤 스미스에게서 벗어나라>입니다. 고전경제학의 거장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자본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저절로 수요 공급이 조정된다는 것으로, 마치 뉴턴의 물리학 법칙이 그러하듯이 우주자연의 법칙처럼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너지 법칙인 열역학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있어서 자연자원을 무한 꺼내어 인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을 지속해 왔다고 합니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총에너지 합은 일정하며 총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으며, 우주 에너지 총량은 태초부터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며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도 계속 그러하다고 합니다.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언제나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고농도에서 저농도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흐른다고 합니다.
가령 석탄을 태우면 그 안에 있던 에너지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으며, 다만 그 에너지는 이산화탄소, 이산화항 등 여러 기체로 변해서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이지요.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지만 흩어진 에너지를 다시 모아서 원래의 석탄 덩이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독일의 과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1868년에 ‘엔트로피(entropy)’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에너지가 고농도에서 저농도로, 즉,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할 때 일이 가능하며, 에너지가 소모된 상태는 ‘평형 상태’라고 합니다.
1980년 리프킨은 『엔트로피』를 출판했고, 엔트로피에 대한 논의가 경제학을 넘어서 인류 경험 전체로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진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변함 없이 위력적이어서 열역학 이론에 입각한 경제학 이론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고 있다고 합니다. 뉴턴과 애덤 스미스라는 세기적 천재들의 위업을 쉽게 허물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도 과거의 힘과 새롭게 발견된 이론이 요동치며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 KBS1, 시사기획 ‘창’의 프로그램에 <공유, 경제를 바꾸다>(2013.3.19.)이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공유 경제의 현재 모습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빈집이나 빈 방을 빌려주는 전세계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2조원 이상의 자산 가치를 실현한 airbnb를 설립한 조 게비아
에어비엔비의 전세계 네트워크망에 오른 규모
전 세계 공유 경제의 규모 550조 원
카 셰어링(자동차 공유)의 대명사가 된 미국 집카의 세계적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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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협업의 시대
7. 애덤 스미스에게서 벗어나라
18세기 후반에 시장의 시대가 동트고 1차 산업혁명과 동시에 새로운 학문, 경제학이 나타났다. 애덤 스미스, 장바티스트세 등은 물리학을 이용하여 시장의 작동원리를 설명하였다.
뉴턴의 법칙과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
아이작 뉴턴 경의 수학적 방법론은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사상가들은 존재의 의미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할 때 뉴턴 이론을 사용했다. 우리는 누구나 학교에서 뉴턴의 세 가지 법칙을 배운다.
(1)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일정한 속도로 직선운동을 한다.
(2) 물체의 가속도는 작용한 힘의 크기에 비례하며 힘이 작용한 직선 방향으로 일어난다.
(3) 힘이 작용하면 언제나 그 힘의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힘이 작용한다.
물리학의 수학적 확실성에 따라서 애덤 스미스 등은 일단 운동을 시작한 우주가 거대한 시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듯이 시장도 그렇게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우주의 제1원동력은 신이지만, 시장의 제1원동력은 이기심과 경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력의 법칙이 우주를 지배하듯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사건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뉴턴의 법칙은 오직 속도와 위치만을 설명하기에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비가역성을 고려하지 않아 경제활동의 원리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에너지와 물질 자원을 이용하고, 변형하고, 활용하고, 소모하고, 폐기하는 과정은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과정이다.
에너지 법칙이 모든 경제 활동을 지배하는 이유
19세기 후반이 되어 물ㄹ학자들이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을 정립한 후에야 경제학자들은 과학적 기반을 토대로 경제활동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열역학 법칙은 “우주의 총에너지 합은 일정하며 총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선언한다.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즉, 우주 에너지 총량은 태초부터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며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도 계속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언제나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고농도에서 저농도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흐른다.
가령 석탄을 태우면 그 안에 있던 에너지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에너지는 이산화탄소, 이산화항 등 여러 기체로 변해서 공중으로 흩어진다.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지만 흩어진 에너지를 다시 모아서 원래의 석탄 덩이로 만들 수는 없다. 독일의 과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1868년에 ‘엔트로피(entropy)’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에너지가 고농도에서 저농도로, 즉,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할 때 일이 가능하다. 에너지가 소모된 상태는 ‘평형 상태’라고 한다.
화석연료는 물질 형태로 저장된 대표적인 에너지다. 이는 지구 안에 유한한 자원으로 고갈될뿐이고 다시 생성될 가능성은 없다. 설사 수백 만 년 후에 비슷한 화석연료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별 의미도 없는 가정이다.
열역학 법칙을 경제 이론에 도입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 프레더릭 소디다. 그는 1911년 『물질과 에너지』에서 “열역학 법칙들은 정치체제의 성쇠, 국가의 자유나 속박, 교역과 산업의 활동, 빈부의 발생, 인류의 전반적인 물질적 복지를 지배하는 최후의 요소다”라고 했다.
소디의 공언을 직접 차용한 경제학자는 니콜라스 제오르제스쿠 로에젠이다. 그는 1971년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과정』을 출간했다. 당시 이 책은 대부분의 학자에게 묵살되었다. 이후 그의 제자 허먼 데일 리가 1973년 『정상상태의 경제를 지향하며』를 출간했다. 1980년 리프킨은 『엔트로피』를 출판했고 로에젠 교수가 발문을 써주었다. 나는 엔트로피에 대한 논의가 경제학을 넘어서 인류 경험 전체로 확대되기를 바랬다.
최근에 경영대학원들이 생태학적 고려 사항과 지속 가능성 이슈를 커리큐럼에 앞다투어 포함시키고 에너지 관련 문제와 기후변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전 경제학과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기대어 그런 문제를 다루었다.
뉴턴의 긴 그림자가 경제학 이론에 계속 남아 있는 한, 경제학은 그 기본 가정을 위협하는 분파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사학자 레이 캔터베리는 고전 경제학자들과 대결하는 일이 점점 더 힘겹다고 말한다. “때대로 일단의 경제학자들은 전통 경제학에도 혁신이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 그 누구라도 아이작 뉴턴이라는 천재, 애덤 스미스와 수많은 그의 추종자라는 벽에 부딪혀야 할 것이다.”
국가의 부에 관하여
고전 경제학의 근본적인 약점은 부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계몽 철학자 로크는 “자연에 완전히 내맡긴 땅은 쓰레기”라고 주장했다. 자연은 그 자체로 무용하며 인간의 노동력이 가해져 생산성 있는 자산으로 변화시켜야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경제활동이란 저(低)엔트로피 에너지 투입물을 자연에서 빌어와 가치있는 일시적 상품 및 서비스로 변형시키는 활동일 뿐이다. 그 변형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상실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엔트로피 개념은 잘 이해되기가 어렵다. 열역학 법칙이 처음 나왔을 때, 생물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생명체들은 계속 에너지를 먹어치우면서도 질서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생물학자 해럴드 블룸은 이에 대해 생명체들은 제2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또다른 형태로 적용된다고 했다.
모든 생물은 비평형상태다. 주변 환경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항상 환경 전체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대체로 더 진화한 종일수록 더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소비된 에너지를 더많이 토해낸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에어빈 슈뢰딩거는 “유기체는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질서를 빨아먹는다.”고 말했다. 에너지 흡수를 못하면 생명체는 죽는다. 죽음은 에너지 평형 상태이다.
화학자 타일러 밀러는 포식자가 먹잇감을 집어 삼키는 과정에서 “80~90%의 에너지가 단순히 낭비되거나 열의 형태로 손실되어 주변 환경으로 빠져나간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람 한 명이 1년을 살아가려면 송어 300마리가 필요하다. 이 송어들은 개구리 9만 마리를 먹어야 하고, 이 개구리들은 메뚜기 2700만 마리를 먹어야 하며, 이 메뚜기들은 1000톤의 풀을 먹어치워야 한다.”고 먹이사슬 안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엔트로피 증가과정을 설명한다.
다음은 비프스테이크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다.
(1) 450그램의 스테이크를 만들려면 사료용 곡물이 약 4kg 필요하다. 사료의 11%만 소고기 만드는데 쓰인다. 오늘날 곡류 생산의 1/3은 가축 사료용이다. 따라서 먹이사슬 꼭대기의 소비자로 인해서 다른 수억 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 기아,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2) 석유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화석연료, 트럭, 기차, 선박
(3) 성장촉진 호르몬, 사료 첨가제, 항생제, 방역용 약품
(4) 도축장, 공기총 기절, 전기톱, 부위별 해체 작업, 컨베이어 시스템, 포장, 배송
(5) 슈퍼마켓 진열, 조명,
(6) 소비자 구매, 냉장 보관, 조리 가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는 가축 사육에서 나온다. 이는 전 세계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양보다 많다. 결국 인간은 한 끼 식사로 비픗테이크를 먹어치우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 뒤에 각종 쓰레기를 남긴다.
열역학적 관점에서 국내총생산(GDP)란, 이용 가능한 에너지양의 감소와 엔트로피 쓰레기의 축적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에 포함된 일시적인 에너지 가치의 척도에 가깝다. 우리가 경제적 진보로 부르는 것도 실상 지구에너지의 소모일뿐이다. 결국 모든 문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질서를 주변 환경으로부터 빨아먹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지구를 더 궁핍하게 만든다. 이렇게 보면 국내총생산=국내총비용이 된다.
그러나 계몽 철학자들 이래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경제과정을 열역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있다. 지구상에 물질적 풍요의 천국을 만든다는 전망에 들뜬 고전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근면함으로 이상적인 낙원을 창조할 것으로 믿었다. 그들은 경제활동을 가속하는 것이 환경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래 세대에게 어두운 전망을 안겨줄 것이라는 상상 따위는 하지 못했다.
어쩌다 경제이론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었는가?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은 생산성이다. 열역학에서 중요한 것은 단위 산출물당 발생한 엔트로피이다. 30년 전 자동차 1대 만드는데 드는 에너지양을 측정했는데,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생산 속도와 변환 속도에 집착하여 추가 에너지 소모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우리는 더 빨리 움직이면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자본과 노동을 투입물로 생산성과 경제성장을 따진다. 노동자 1인당 투입된 자본의 양은 경제성장의 14%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나머지 86%는 바로 에너지다. 프랑스 환경경영학과 교수는 20세기 미국의 경제성장 곡선에 노동, 자본, 에너지를 투입한 결과 산업사회의 경제성장이 에너지 및 원재료를 유용하게 변환시키는 열역학적 효율의 증가에 따른 것임을 증명하였다.
NH호텔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숙박업계를 주도하는 큰 호텔 체인으로 400개의 호텔이 있다. CEO 부르지오는 에너지 비용이 30%에 달한다면서 온라인 제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에너지 소비량을 15% 이상 줄였다. 현재 NH호텔은 ‘지능형 객실’이라는 신 개념으로 물 사용, 냉난방, 조명의 사용을 체크하고 적게 사용한 고객에게는 포인트를 주어 다음에는 요금을 할인해준다. 또한 각 호텔을 미니발전소로 전환해나가고 있어, 이탈리아에서는 15%의 호텔에 태양광 에너지 설비를 마쳤다. 아울러 탄소 무배출 호텔을 지을 계획도 세웠다.
20세기 대체로 기름값이 너무 쌌기에 재화 생산과 분배과정에서 열역학적 효율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피크 오일 현상으로 에너지 가격이 경악할 수준으로 치솟고 있으며, 화석연료의 과사용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계속 대기중에 유입되어 지구의 온도가 변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생산성을 논의할 때 열역학 효율과 엔트로피 결과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많은 경제학자가 현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경제 활동이 자연의 저장고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빌려와 쓰는 행위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풍요로운 자원을 꺼내 쓰는 속도가 생물권이 저장고를 다시 채우는 속도보다 빠르다면 언젠가 경제체제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경제사의 모든 부흥기는 새로운 에너지 체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에너지가 부족해지면서 에너지 변환에 따른 엔트로피 부채가 축적되기 시작한다. 3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곡선도 석유와 닮을 것인가? 광전지, 배터리, 풍력 터빈, 절전형 형광등과 통신 기술에는 희토류가 필요하다. 미국 물리학회는 2011년 보고서에서 녹색 에너지 개발에 희토류 자원 부족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장기적으로 더 큰 우려는 새로운 녹색 에너지로 이행해야 하지만 그 에너지를 가급적 아껴 사용해야 한다. 생명체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저엔트로피 물질이 지구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 열역학이 주는 교훈은 자연의 재생 스케줄과 조화를 이루도록 우리의 소비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해진다.
미국에너지효율경제협회에서 20세기 에너지 효율 변화를 추적하였더니, 1900년에서 1980년까지는 에너지 효율 수준이 2.5%에서 12.3%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1980년 이후로는 14% 근방에서 머물렀다. 이는 2차 산업혁명 에너지 인프라가 만기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또 지난 30년간 우리가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86%를 낭비해 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로 인한 엔트로피 청구서는 엄청나다. 대기 및 수질 오염과 재생 불가능 자원의 고갈에 수반되는 비용은 2010년에 4조 500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GDP의 3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기에 온실가스가 미래에 끼칠 영향까지 감안한다면 그 액수는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다행히 에너지 효율을 향후 40년간 현재의 세 배인 약 40%까지 올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최첨단 에너지 효율 기술을 이용해 모든 상업용 건물을 보강 재건하면 60%가까이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지붕 광전기 시스템까지 설치하면 88% 정도 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미국 전역의 상업용 및 주거용 건물의 인프라 개선에는 40년간 대략 4조 달러, 연간 1,000억 달러가 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누적 에너지 절감액은 6조 5000억 달러에 이르고 1년에 대략 1630억 달러를 절약하게 된다. 따라서 편익이용비율이 1.8이나 된다. 에너지 효율이나 재생 에너지 체계에 1달러 투자할 때 돌아오는 수익이 1.8달러라는 이야기다.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유권 개념
경제학자들은 소유권 관계를 대단히 신성하게 생각한다. 고전 경제 이론은, 시장에서 소유물을 교환하는 것이 경제활동을 부추기고 번영을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이러한 개념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정은 현대의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계몽철학자 로크는 사유재산을 자연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을 하고 공동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잉여 곡물 저장과 가축을 통한 소유물 개념은 기원전 1만년경 농업 시대가 시작되면서 생겨났다. 특히 관개문명이 등장하면서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되었지만 그 범위가 왕이나 상인들의 재산 정도로 한정되었다. 14세기 무렵까지도 땅이 사람에게 속한다기보다는 영주와 농노가 땅에 매여 있었다. 땅 매매 개념은 영국 튜더 왕조 시대 인클로져 법령 확립 이후의 일이다.
1차 산업혁명으로 재화 생산이 증폭하자 장인과 노동자들은 왕족보다도 잘 살게 되었다. 이에 고무된 계몽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사유재산제의 미덕을 극찬했다. 사유재산의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곧 시장 메커니즘이 되었고, 이를 통한 분배가 우주를 지배하는 뉴턴 물리학 법칙만큼이나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이기심의 추구에 따라 사회가 번영하고 인류 무한 발전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퍼졌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욕구와 경제학적 가정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제시한다. 이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특성은 사유재산권의 중요성만큼이나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인터넷 세대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공간에서 창의성과 지식, 전문성, 재화, 서비스를 공유한다. 이들은 이기심보다도 전체의 행복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행복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타인과 함께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의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는 고전 경제 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생물학적 욕구를 끌어낸다. 바로 사회적 교류의 욕구와 공동체에 대한 추구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소유권 개념, 즉 소셜 네트워크의 정보를 얻고 타인과 경험을 공유할 권리라는 개념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는 인터넷 접근권이 강력하고 새로운 재산권 가치를 지닌다.
중국 정부가 구글 검색 엔진 정보를 검열하는 방침에 구글이 더 이상 협조 않겠다는 2010년 선언. 클린턴은 “세계 여러 나라가 새로운 정보의 장막을 치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미국은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정보와 의견들에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가정보국 스노든의 폭로로 밝혀진 미국의 포털 사이트를 통한 정보 검색 충격 사실은 어찌할 것인가? 또한 구글은 수십 억 달러를 벌고도 탈세하였다. 사유재산에의 집착이나 세계 통제와 지배의 역사가 그리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
권위주의적 지배를 무너뜨린 소셜 미디어의 힘은 2011년 1월과 2월 이집트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수많은 젊은이가 잔혹한 독재자 무바라크에 저항하면서 18일간 거리 시위를 벌였다. 구글의 젊은 간부이자 시위 세력의 대변인이었던 와엘 고님은 페이스북으로 시위 촉발에 기여했고, 청년 중심의 저항 세력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경찰과 군부대의 허를 찌르고 힘을 발휘해 세계에서 가장 독재적인 정부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흐름은 튀니지, 리비아, 예멘, 요르단, 바레인 등 중동 지역 곳곳에서 발생했다. 인터넷 세대는 중앙집권적인 독재 정부의 종말을 요구한다. 그들은 개방적이며 투명하고 국경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를 요구한다. 인터넷으로 인해 생물권이 새로운 정치적 경게선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지정학은 시대착오적 유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픈 소스 공유 공간에서 상업이나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일이 더 많아지면 지적 재산은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물이 될 수 있다. 음반업, 종이 신문업 등이 사양 산업이 되고 있다. 지난 25년간 생명공학회사들은 유전자 특허를 취득하려고 애써 왔다만, 최근 젊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연구결과를 인터넷상의 오픈 소스 공유 공간에 무료로 게제하여 생물학적 지식의 공유를 촉진한다.
보편적 접근권을 확립하고 지구상 모든 인류에게 글로벌 공유 생활권에 속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면 사회적 교류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질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권리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과거 소유권 확보를 위해 행했던 투쟁만큼이나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자본 대 사회적 자본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혁명은 거대 자본의 필요가 생겼고, 상인들은 금융자본을 끌어모았다. 그리하여 생산이 자본에 예속되고 자본가와 생산자 사이에 계급관계가 나타난 것은 전통 방식과 근대 방식을 가르는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의 분산적. 협업적 커뮤니케이션 및 에너지 공간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금융자본의 축적만큼이나 중요하다. 오늘날 2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저렴한 인테넷 전화를 사용하고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서로 접속하는데, 이들이 발휘할 수 있는 분산적인 힘은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보다 더 크다.
과거 통신기술이나 에너지 발전소를 소유하려면 엄청난 자본비용이 들었지만, 머지않아 재생 가능 에너지가 보편화되면 누구나 분산형 에너지망을 통해 에너지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방적인 인터넷과 인터그리드를 사용하면 누구나 미래의 기업가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20대의 젊은이들이 기숙사 방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여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든 사실을 생각해 보라.
소유물을 생산하여 교환하는 것이 자본주의 주춧돌이었다. 하지만 교환비용이 점점 싸져서 사실상 제로가 되는 지능형 경제에서는 그런 소유물 교환 방식으로 수익을 내기 힘들다. 경제가 수평적 분산적으로 변하면 개별적 교환 보다 피어투피어 관계가 더 유리하다. 협업 네트워크로 나간다.
《뉴욕 타임즈》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를 “공유와 소유의 관계는 아이팟과 8트랙 녹음테이프의 관계, 태양전지판과 탄광의 관계다. 공유는 깨끗하고 신선하며 포스트모던하다. 반면에 소유는 지루하고 이기적이며 후진적이다.”라고 했다.
콤팩트디스크(CD)를 구매하던 습관이 웹사이트에 가입하여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귀는데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문화가 자동차 리스 문화로 옮겨가 GM 이나 다임러 토요타 같은 회사들이 차량을 보유한 채로 고객과 장기 서비스 계약을 맺고 있다.
갈수록 소유권보다는 접근권이 중요해지고 공급자가 보유한 소유물을 리스나 렌털, 타임 셰어, 보유 계약 등을 맺어 시간 단위로 이용자에게 대여하는 방식이 등장하자 지속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자동차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동차회사의 소유물이 되면, 회사는 내구성 있고 유지 비용이 적게 드는 차량, 쉽게 재활용하고 탄소발자국을 적게 남기는 차량을 만드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판매자와 구매자에서 공급자와 이용자로, 시장에서 소유물을 교환하는 시스템으로부터 네트워크상에서 시간 단위로 서비스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삶의 질이라는 꿈
3차 산업혁명은 지구인들의 관계맺기와 그 책임과 관련된 인식을 변화시킨다. 각 대륙에 걸치는 협력적 공유 공간을 통해 지구의 재생 가능 에너지를 공유하면 인류라는 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움틀 수밖에 없다. 상호 연결성에 대한 자각과 생물권에 함께 소속된 존재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삶의 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꿈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다.
20세기를 지배한 ‘아메리칸 드림’은 물질적 이기주의, 자율권, 독립 추구면에서 계몽주의 전통 안에 안락하게 자리잡고 있다. 21세기는 협력적 이해관계, 연결성, 상호 의존에 기반을 둔 미래를 꿈꾼다. ‘진정한 자유’란 고립된 섬 같은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깊이 참여할 때 얻을 수 있다. 자유가 삶의 최적화라면, 그것은 개인의 경험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가, 또 사람들과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유대를 맺는가를 토대로 측정해야 마땅하다.
삶의 질이라는 꿈은 집단 내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 고립되어 타인을 배제한 채로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의 질을 획득하려면 모든 사람이 공동체 생활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어느 한 사람도 뒤처지지 않도록 모든 구성원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계몽주의 경제학자들은 행복과 ‘훌륭한 삶’이 개인적 부의 축적과 동의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있는 오늘날 젊은 세대는 경제적 안정도 필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에 비례한다고 믿기도 한다.
경제적 번영을 측정하는 GDP라는 용어는 1년간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 총량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 GDP라는 지표의 문제점은 긍정적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경제활동도 계산에 포함한다는 점이다. 군비확충, 교도소 건설, 4대강 사업 투자, 또는 오염된 환경 정비 등 모든 활동이 반영된다.
GDP라는 도구를 개발한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도 “한 국가의 복지는 국민소득으로 추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장의 양과 질에 대한 구분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고,...‘더 많은’ 성장을 향한 목표를 세울 때는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성장시킬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을 반영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 번영 지표가 개발되고 있다. 지속가능경제복지지수, 경제웰빙지수, 유엔인간개발지수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유아사망률, 평균수명, 건강보험, 교육 성과, 빈곤 구제, 소득 불평등, 주거비 수준, 환경 청정도, 생물 다양성, 범죄감소율, 여가 시간 등을 반영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 모두가 집단적인 책임을 느껴야 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시공간적 터전은 임의적인 정치적 경계선을 넘어 생물권을 아우르는 범위까지 확대된다.
시공간의 재발견
게몽주의 경제학자들은 뉴턴 역학이라는 진리 안에서 매우 기계적이고 실용적인 시공간을 인식하였다. 공간을 창고와 같은 용기로, 시간은 자원 사용을 가속하고 무한한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유연한 도구였다. 그리고 인간은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생산할 외부적인 힘이었다.
1970년대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과 미국의 린 마굴리스는 지구상에 생명이 존속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화학적 과정과 생물학적 과정이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의 ‘가이아 가설’은 수십 년간 다양한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러브록과 마굴리스는 지구를 생명체처럼 작동하는 자기조절시스템이라고 본다. 그 근거로 산소와 메탄의 조절을 예로 든다. 생명체가 살아가려면 아주 좁은 범위내로 산소 농도가 조절되어야 한다. 산소가 그 범위를 넘으면 지구는 화염에 휩싸이고 생명체는 절멸하고 말 것이다. 대기중에 산소 농도가 늘어나면 미세 박테리아의 메탄 생성과 방출이 늘어난다. 메탄은 산소 농도를 적정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이것은 지구생물권을 생명체가 번성하는 환경으로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무수히 많은 피드백 루프 가운데 하나이다.
비교적 최근에 이해하게 된, 생태적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피드백 루프 원리는 3차 산업혁명 경제의 정보 및 에너지 피드백 네트워크 모델과 매우 유사하다. 만약 기술이 예술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원리를 모방한다면, 3차 산업혁명의 네트워크 인프라는 지구생태계의 작동원리와 점점 닮아간다. 인류를 지구 생명 공동체의 구조 안에 다시 자리 잡도록 만들기 위해 반드시 우리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관계를 지구 생태계의 생물학적 관계와 유사하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세계관은 자연을 그저 대상으로 보았지만, 새로운 세계관은 자연을 관계의 집합으로 본다. 과거의 특징이 분리·몰수·해체·감축이라면 새로운 관점은 결합·보충·통합·전체론을 특징으로 한다. 예전의 과학은 자연에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방법에 몰두했지만, 새로운 과학은 자연을 지속가능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과거의 과학은 자연에서 독립하여 군림하려고 했지만, 새로운 과학은 자연에 참여하여 협력하려고 애쓴다.
과거에 우리는 자연을 식민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약탈하고 노예로 만들어야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은 자연을 우리가 돌보고 가꾸어야할 공동체로 인식한다. 따라서 인류가 오래도록 안녕과 행복을 구가하려면 지구 활동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적 제약 내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틀에서 보면 지구는 단순한 자원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체를 존속시키는 상호작용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는 생산성이 아니라 생성력에 놓아야 하며, 자연을 순전히 이용하려 드는 대신에 생물권을 유지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효율성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구조물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3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인간 개개인은 생물권 전체를 흐르는 에너지 흐름과 지구화학적, 생물학적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아니,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생물은 무수히 많은 생체 시계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일, 태음월, 지구 공전주기, 계절의 변화에 맞춰 생리적 조절을 한다. 비행기를 타고 표준시간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시차로 인한 피로를 겪는다. 이는 인체가 지구의 리듬에 맞춰 섬세하게 조정된다는 증거이다.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인류는 지구 리듬에 맞춰 살았다. 하지만 1, 2차 산업혁명의 화석연료 때문에 인류는 처음으로 지구의 주기성과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24시간 조명, 인터넷 사용, 비행기 여행, 교대제 근무 등 수많은 활동으로 생체 시계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탄소 에너지 사용으로 인류는 자연의 순환주기가 아니라 인간의 기술과 창의력으로 번영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동안 물질적 부 대신에 지구생태계는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3차 산업혁명은 다시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지구 생물권의 에너지 흐름(태양, 바람, 물 순환, 바이오매스, 지열, 파도와 조수 등)에 의존하면 우리는 다시 지구의 리듬과 주기성에 연결될 수 있다.
앞으로 고전주의 및 신고전주의 경제 이론은 상당 부분 새롭게 태동하는 경제 패러다임 안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다. 열역학의 렌즈를 끼고 수정해야할 부분도 많다. 에너지 법칙을 일종의 공용어로 사용한다면, 경제학자들도 과학자, 건축학자, 도시설계 전문가들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학제간 토론이 진지하게 이루어진다면 경제 이론과 경제 활동이 새롭게 통합되고 3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에 동반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경제학만이 아니다. 고전주의 및 신고전주의 경제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시스템도 1, 2차 산업혁명의 시녀 역할을 해왔으며, 상업 질서의 가정·정책·관습들을 그대로 반영해왔다. 중앙집권적인 2차 산업혁명에서 수평적인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춰 교육 시스템을 개조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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