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청천과 개작두'
서울시장 후보 조순(趙淳)이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연단에 섰다. 서울대 축제 마당이었다. 그가 젊은 표를 겨냥한 발언을 이어갔다. "나는 서울의 ''하얀 포청천'이 되겠습니다. 서울을 안전하고 살아 움직이는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1995년 첫 민선 시장 선거가 코앞이었다. 그해는 대만서 만든 TV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 크게 인기몰이를 했다. 포청천은 11세기 중국 송나라 수도 카이펑(開封)의 부윤(府尹)까지 지낸 청백리이자 판관이었다.
조순은 포청천 덕에 당선됐다. 포청천이 워낙 추상같은 관료의 표상이었고, 시장(市長) 격인 부윤을 지낸 점도 겹쳤다. 선거 때면 여러 후보가 '조순-포청천' 선거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포청천이 죄인 처형 때 썼다는 '개작두'란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너무 잔인했다. 그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자 여론이 서울시를 꾸짖었다. 조순이 말했다. "포청천이 작두로 단죄하듯 한 번에 해결할 순 없다. 한약을 쓰듯 장기적 치유가 필요하다."
그 뒤 '포청천' 별명은 주로 체육계 심판들이 갖다 썼다. '그라운드의 포청천'이라고 불렀다. 집창촌 성매매 척결에 앞장섰던 여성 경찰서장에게는 '미아리 포청천'이란 별명이 붙었다. 공정거래위원장, 소비자원장도 포청천이라고 불러주길 은근히 바랐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파헤친 검사가 옷을 벗으면 일부에서 "'포청천 검사'가 드디어 떠난다"는 고별사를 읊었다. 올해 6·4 지방선거 때도 일부 후보가 포청천이란 말을 썼다.
3주 전 새정치연합 문희상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포청천 얘기를 꺼냈다. "내 별명인 포청천처럼 공정한 전당대회를 준비하겠다." 며칠 뒤엔 "정당은 규율이 생명이다. 해당(害黨) 행위자는 개작두로 치겠다"고 했다. 비록 사석(私席)에서 한 말이지만 끔찍한 느낌을 줄 만큼 단호했다. "버릇없는 초·재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말과 겹쳐 서슬이 퍼렜다. 엊그제 세월호특별법 합의가 성사되자 그의 '개작두 엄포'가 통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도 중국 허난성 카이펑에는 원조 포청천이 썼다는 형벌 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평민을 처벌할 때는 개작두, 귀족에겐 범작두, 왕족에겐 용작두를 썼다고 한다. 관광지가 된 당시 시 청사에 들어서면 돌에 새긴 글귀가 눈길을 끈다. '공생명(公生明)', 공정함이 밝음을 낳는다는 뜻이다. 많은 정치인·관료가 포청천을 닮겠다고 했지만 퇴임 뒤까지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없다. '포청천 문희상'이 자신의 별명 값을 해낼지 궁금하다.
- 조선일보 만물상 -
2.[이기명 칼럼] 포청천과 '개작두'|
【팩트TV】개 작두는 서민용이고, 호 작두는 고위 공무원, 용 작두는 황실용이다. 죄 진 자의 목을 자르는 작두에도 신분차별이 있다. 포청천 얘기다. 작두에 목을 느린 죄 진 자들, 특히 고위 공직자나 황실 관련자들이 사색이 된 체 작두 아래 목을 느리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이고 자시고 반죽음이 된 의식속에서 한가지만은 분명할 것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자신의 목이 작두 아래 떨어질 줄은 설마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포청천의 법은 엄정했다. 그래서 힘없는 민초들은 포청천 영화를 보며 시원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다.
며질 전 재방송의 막을 내린 포청천 [찰미안]편에서는 황제의 사위가 용작두 신세를 진다. 죄 진 인간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위를 살리려는 공주와 태후와 심지어 황제의 사면장 까지도 거부하는 포청천이 그립다. 그는 사면장이 도착했다고 하는데도 문을 걸어 잠그고 사형을 집행한다. 그는 말한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법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도 황제도 모두 망한다.
강기훈씨의 유서대필 사건의 무죄 판결이 23년 만에 나왔다. 젊은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넣었던 부림 사건은 33년 만에 무죄가 나왔다. 그들은 23년과 33년이란 기나 긴 세월을 죄인으로 살았다. 이제 그 세월은 보상이 되지 않는다. 강기훈씨는 무죄 판결이 나온 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어찌 강기훈 씨뿐이랴.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은 무죄판결을 받자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들에게 죄를 물었던 법관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가. 강기훈 기소당시에 법무장관은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을 하는 김기춘이다. 두 사건에 관련해 법을 집행했던 인물들은 대법관을 했고 검찰총장을 했고 검찰 고위직을 지냈다.
강기훈 씨는 그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이다. 할 말이 없는가. 할 말이 있는데도 침묵인가. 이럴 때 포청천이 있다면 뭐라고 말을 했을까. 야만의 법을 질타했을까. 법을 보는 국민들의 눈은 싸늘하게 식었다. 23년 전, 유서를 대필했다는 검찰발표를 보면서 정신병자들을 떠 올리며 지나는 개가 부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의 유서를 대신 써 줄 수도 있다는 정신병적 사고와 국립과학수사 연구소라는 ‘국립’이란 두 글자가 창피하다.
법과 양심을 개작두 밑에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법의 정신을 믿을 것인가. 믿지 말 것인가. 국민들은 한 참 헤매야 할 것 같다. 김용판은 판사의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으로 무죄가 선언됐다. 김용판의 득의양양한 미소가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알송달송 판사의 말도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23년 33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된 판결이 다시 나올까. 그렇지 않기를 비는 국민들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너무나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고 한다. 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는가. 인간의 능력에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진지전능하다는 하느님의 능력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3년 동안 깔고 앉았다가 이제야 무죄를 선고하는 법관의 양심을 하느님은 용인하는가. 33년 동안 뭐하느냐고 ‘무죄’란 두 마디를 감싸고 아꼈단 말인가.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런 판결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법관이란 자의 말을 들으며 지나가는 개를 쳐다봐야 하는 국민감정을 눈꼽만치라도 이해를 하는가. 너 같으면 별수 있었을 줄 아느냐는 상투적인 변명은 치워라. 천만 명이 못된 짓을 했어도 불의는 불의다.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이 저질렀다 해도 잘못은 잘못이고 죄는 죄다.
국민의 힘은 위대하다고 한다. 그 말은 바로 정치인이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말은 맞다. 그러면 그렇게 위대한 국민의 말을 제대로 듣는가. 어느 개뼉다귀가 지껄이는 소리냐고 코웃음 치는 것은 또 누구인가.
이제 국민은 자신들의 분노가 포청천의 개작두로 변할 날을 그리워한다. 법의 공정성을 목매게 부르짓는 것이다. 국민들의 저 간절한 소망을 어느 개가 짖는냐고 할 것인가.
책 많이 읽고 공부 많이 해서 법관 되고 장관 되고 국회의원 되고 대통령 돼서 국민에게 욕이나 먹는다면 그 얼마나 딱하고 애달픈 일인가.
국민들이 개작두 들고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 가슴속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개작두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